피브 마을에서 벗어난 마르코는 버려진 도시라 불리는 쓰레기더미로 가득한 지역으로 향했다. 300년 전에 쓰던 물건들이지만 썩지도 않는 물건들을 처리하지 못해 한곳에 모아두던 것이 이제는 어느새 쓰레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분명 위험하다고 경고했소. 지금이라도 돌아가시오.”
버려진 도시의 입구에 도착한 마르코가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지만, 메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언제까지 같은 질문과 대답을 계속하실 생각이세요? 하이에나들이라면 저도 피브 마을에서 익히 들었던 자들이에요. 함정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도적들 소굴에 마르코 부대장님 혼자 어떻게 보내겠어요?”
그 말에 마르코는 피식 웃었다. 서쪽 지역에서 감히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었다.
“원래라면 나를 방해하는 자라면 가차 없이 베었겠으나, 들소 용병단의 의뢰인이기도 하고 하르마게돈의 사람이니 살려두는 것이오. 난 누구를 지키는 일에는 소질이 없소.”
“걱정하지 마세요. 전 누군가를 지키는데 소질 있거든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메이의 말에 마르코는 단념한 듯 고개를 저으며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버려진 도시 안은 음침한 기운이 가득 느껴졌다. 사람의 발 길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곳이 지금은 곳곳에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팟!
길을 걷던 마르코는 갑작스럽게 날라 오는 화살을 이미 예상했던 듯 손쉽게 몸을 돌려 피하였다. 하지만 이윽고 화살이 계속 쏟아지자, 등에 메고 있던 자신의 키만 한 대검을 꺼내어 들어 화살들을 쳐내었다. 그러다 뒤에 따라오던 메이가 생각이나 재빨리 뒤돌아보았는데 메이는 생각보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화살을 피하고는 폐차 뒤로 몸을 숨어버렸다. 그 모습에 마르코는 피식 웃고는 대검을 방패 삼아 자신도 쓰레기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화살이라니…. 바깥세상은 하르마게돈과 쓰는 무기도 정말 다르네요.”
“살아남은 인류 중에 뛰어난 인재들을 모두 하르마게돈에서 데려갔으니, 문명의 격차가 심할 수밖에.”
“그나저나 생각보다 숫자가 많네요?”
“기껏해야 30~50명이라 들었는데…. 70~80명은 되어 보이는군.”
마르코 말대로 언제 인원을 더욱 충원했는지, 파비앙에게 들었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하이에나들이 자신을 포위하기 시작하였다.
“하긴, 이 정도 준비도 하지 않고 날 함정에 빠뜨리려 하지는 않았겠지.”
“역시 함정인 걸 알고 계셨네요? 그런데도 왜 이곳에 오신 거예요?”
“찾아다니기 귀찮았는데 잘된 일이라 생각했었소.”
그 말에 메이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이곳에서 나오지 마시오.”
마르코는 그 말과 함께 대검을 들고는 앞으로 나섰다.
“들소 용병단의 부대장 마르코이다.”
그 말에 하이에나들 사이에서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젊은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하이에나의 두령 트니르요. 사실 아직 들소 용병단과는 부딪칠 생각은 없었는데…. 워낙 좋은 기회이다 보니, 이해하시오.”
“라이그 부행수 정도면 준비를 잘 했을 것이니, 이해하오.”
“크큭…. 역시나 알고 있었구려. 사실은 난 마르코 부대장에게 악감정은 없소. 오히려 그대 덕분에 두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니 감사하고 있지.”
“사담은 여기까지면 충분한 것 같소만.”
마르코의 말에 트니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 모시거라.”
그 말과 함께 하이에나 떼들이 마르코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마르코는 압도적인 숫자임에도 침착하게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팟.
“크악!”
“으아!”
하르마게돈과 다르게 칼이나 봉과 같은 근접 싸움이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르코가 대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시체의 파편이 여기저기 튀어 올랐다. 그 모습을 보던 메이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돌리면서도 심장이 뛰는 기분이 느껴졌다.
‘여기서 나서면 방해만 될 뿐이야.’
격투술도 자신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장점은 원거리 싸움이었기에, 메이는 마르코를 도와주는 대신 몰래 뒷길로 몸을 움직여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라도 도망치는 걸 보니 다행이군.“
싸우는 와중에도 메이가 신경 쓰였던 마르코는 메이가 자리에서 벗어난 것을 보고는 안심이 되는 듯 본격적으로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두령님, 생각보다 저항이 거셉니다.“
트니르에게 수하 한 명이 긴장되는 표정으로 말하자, 트니르는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넌 저자를 처음 봤으니 그렇겠지만…. 이 정도는 각오한 바이다. 라이그 부행수가 준비해 준 것은 착오 없이 진행했겠지?“
”아, 네. 하이에나 전원의 무기에- 아! 드디어 한 방이 들어갔군요!“
수하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트니르도 얕았지만, 마르코의 왼팔에 검이 스친 것을 발견하였다. 긁힌 것처럼 아주 작은 상처였지만 트니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시작이군. 반응이 오면 바로 대기조까지 돌격할 수 있게 준비하거라.“
”네! 두령님!“
마르코는 일대 다수의 싸움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침착하게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불가능하여 왼쪽 팔에 스치는 검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곧바로 자신의 팔에 상처를 입힌 하이에나를 처리하기는 했으나, 왼쪽 팔의 상처에서 께름칙한 느낌과 함께 거슬리는 기분이 느껴졌다.
”상처를 입었다!“
”쉬지 말고 밀어붙여!“
하이에나들의 외침과 함께 자신의 왼팔에서 감각이 둔해지는 것을 깨닫고는 마르코는 피식 웃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준비했군. 하긴 단순히 이빨 빠진 하이에나들 몇 마리 늘렸다고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지금 알아차려 봤자다. 시간이 부족해 독약은 구하지 못했으나 마비 약만으로도 충분히 네놈을- 크학!“
말을 하던 하이에나를 베어버린 마르코는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왼쪽 손이 축 늘어지자, 그 커다란 대검을 오른손만으로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방심했다. 좀 귀찮아지겠군.‘
잠시 왼팔의 상태를 확인하던 마르코는 뒤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하이에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하이에나가 씩 웃으며 검을 높게 쳐들던 순간 바깥세상에서 듣기 힘든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탕-!
”크학!“
총성과 함께 마르코의 뒤에 있던 하이에나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다른 하이에나들이 놀란 듯 움찔하였다.
”이, 이건….“
”총소리?“
”누가 그런 귀한 무기를…….“
마르코는 재빨리 총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자, 쓰레기들 더미 꼭대기에 자리 잡은 메이가 보랏빛이 도는 권총으로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화살보다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저 정도 거리에서 저격용 총도 아닌 권총만으로 저격한 것에 내심 놀랬으나, 마르코는 하이에나들이 움찔하여 공격을 멈춘 것을 기회 삼아 앞으로 치고 나갔다.
’싸움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막아라! 두령님을 노린다!“
트니르에게 달려드는 마르코를 하이에나들이 애써 막으려 했지만, 마르코의 기세에 이미 눌린 상태였다. 그러자 트니르의 수하가 재빨리 말했다.
”우선 자리를 피하시지요.“
”이런….“
”두령님만 무사하시다면 마비 독이 퍼질 때까지 시간을 더 끌 수 있습니다. 두령님을 모시어라!“
트니르는 분한 얼굴이었으나, 냉정하게 봤을 때 시간만 끌면 자신의 승리가 장담 되었기에 수하 열댓 명 정도를 이끌고 마르코의 반대 방향으로 피하였다.
’여기서 놓치면 낭패다.‘
마르코도 트니르를 끝까지 쫓으려 했지만, 생각보다 하이에나가 필사적으로 앞을 막자, 돌파하려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젠장, 힘을 ‘해방’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찰나, 그 순간 트니르 쪽에서 별안간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끄악!“
”반대쪽에도 한패가 있다!“
마르코가 재빨리 몇 명을 더 베어내고는 앞을 바라보자, 트니르 앞에 파비앙을 비롯한 젊은 마을 사람들이 몇 명 서 있었고 맨 앞에 손도끼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있는 흐엉이 보였다.
”위험하니까, 나서지 마.“
흐엉은 그 말과 함께 손도끼를 휘두르며 앞으로 돌진하였다. 하이에나들은 젊은 여자가 휘두르는 도끼를 우습게 생각한 듯 흐엉을 맞이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고 파괴적인 그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였다.
”피하십시오! 두령님!“
흐엉의 도끼에 맞은 수하가 죽기 직전에 비명을 지르자, 트니르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어디를 가려고? 네놈이 대장이지?“
흐엉이 트니르를 발견하고는 가려 했지만, 자신의 도끼에 맞았던 트니르의 수하가 흐엉의 발목을 잡았다.
”어서…. 가십시오….“
”도적놈들 주제에….“
흐엉이 발을 빼려 했지만 쉽게 빠지지 않자, 당황한 그 틈을 타, 트니르가 몸을 움직여 뛰기 시작했다. 앞에 파비앙과 마을 사람들이 있었지만, 성인도 안되는 햇병아리 같은 놈들이라 생각했기에 트니르는 검을 빼 들고는 위협하며 소리쳤다.
”죽기 싫으면 비켜!“
어린 청년들은 그의 위세에 겁을 먹은 듯 뒷걸음질을 치려는 자들도 있었으나, 파비앙을 비롯한 몇 명은 물러나지 않고 파비앙의 곁을 지켰다.
”저놈이 우리 피브 마을의 원수, 하이에나의 두령이다.!“
파비앙의 외침과 함께 파비앙과 청년들이 트니르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흐엉이 놀란 듯 소리쳤다.
”안 돼! 도망쳐!“
트니르는 하이에나의 두령답게 제대로 격투술도 배우지 못한 어린 청년들을 베어 넘기더니 파비앙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 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마르코가 처음으로 소리쳤다.
”네가 죽으면 피브 마을의 미래는 없다!“
그 외침에 파비앙은 간신히 트니르의 검을 피했으나,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네가 피브 마을의 미래라면 저승길의 동무로 만족스럽겠구나.“
트니르가 씩 웃으며 쓰러진 파비앙을 향해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렸다.
타앙-
”컥….“
언제 쓰레기 더미에서 내려왔는지, 트니르의 심장에 총을 쏜 메이는 흐엉의 주변 하이에나들에게 총을 쏘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 말에 흐엉이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
”누가 보면 약속이라도 한 줄 알겠네요.“
”자, 얼른 마무리 지어요.“
트니르를 잃은 하이에나들은 개중에 끝까지 싸우는 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트니르의 카리스마로 단합되었던 자들이었기에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