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나 말을 타는 것도 힘든 일이네요.”
말 위에서 흐엉이 기지개를 피며 말하자, 메이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도 걷는 것 보다 덜 피곤하고 시간도 며칠이나 단축했잖아요. 보세요. 벌써 하르마게돈이에요.”
메이의 말대로 하르마게돈을 상징하는 거대한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하고 두꺼운 벽과 절대 넘을 수 없는 높은 높이는 하르마게돈이 바깥세상과 단절하고 독자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간단한 예시와도 같았다. 하르마게돈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Y로드 기차길 끝에 있는 아이기스라는 성문을 제외하고는 절대 하르마게돈을 넘나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엘리시온은 오랜 노력 끝에 저 두꺼운 성벽을 뚫고 자신들만의 출입구를 만들었다.
이사벨은 멀리서 몇 본 본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가까이서 본적은 처음이었기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그러다 옆에서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말없이 성벽을 바라보고만 있는 마르코를 바라봤다.
“어때요?”
“20년 전과 변한 것이 없어서 반가우면서도…. 서글프군.”
“계획이 모두 끝나도…. 하르마게돈에서 계속 사실 건가요?”
감정을 절제하며 이사벨이 묻자, 마르코가 담담하게 답했다.
“내 계획이 끝나면…. 하르마게돈이란 나라는 없어질 테니 무의미한 질문이야.”
“그런가요.”
이사벨이 작게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메이가 뒤돌아 이사벨에게 말을 몰며 다가왔다.
“이쯤에서 이사벨님과 들소 용병단은 자리를 잡고 기다리시면 될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선 안으로 모셔서 차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됐습니다. 여기서 움막을 짓고 머무를 테니 연락 주십시오.”
이사벨이 말하면서도 마르코를 바라보자, 마르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목숨을 구해준 것, 내가 살 수 있게 희망을 준 것…. 모두 잊지 않을 거야.”
“기껏 살게 해 줬는데 함부로 죽진 말아요.”
“하하…. 또 만날 때까지 몸조심하도록 해.”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네가 날 피하지만 않는다면 꼭 다시 만날 거야.”
“마르코 부대장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어색하네요. 어서 가세요.”
“잘 있어.”
엘리시온의 성벽 출입구에 도착한 마르코는 그들만의 암어를 통해 출입문을 통과하였다.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문이라 허리를 숙여서 들어가자, 엘리시온의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메이님, 흐엉님.”
“잘 계셨어요, 부우님?”
메이가 반갑게 인사하자 콧수염을 기른 통통한 중년의 사내, 부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말이 성문 책임자이지, 하루 종일 서 있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답니다. 하하…. 그런데….”
부우는 말하면서도 처음 보는 사내가 메이와 흐엉의 뒤를 따라 들어오자,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분은 들소 용병단의 부대장이신데 이번 저희와 함께 일을 하게-”
“외지인이란 말입니까?”
메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굳은 표정으로 마르코를 노려보던 부우는 언성을 조금 높이며 말했다.
“어떻게 외지인을 데려오실 수 있습니까? 상부에 허가가 떨어진 것입니까?”
“하르마게돈의 정부처럼 되고 싶어서 우리가 성문을 만들었던가?”
흐엉이 비꼬듯 말하자, 부우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리더가 엘리시온의 ‘인류의 봄’을 선포했고 3대 개화 중의 하나가 바깥세상과 연계와 공존이라도 들은 것 같은데 아닌가? 개화를 위해 피를 흘렸던 동지들이 알면 통곡을 하겠군.”
“흐, 흐엉님!”
거친 말에 메이가 놀라 흐엉을 말리면서 부우의 눈치를 살폈다. 표정에서는 더욱 분노가 끌어오는 듯했나, 부우는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군. 새로운 시대를 위해 피 흘린 동지들을 볼 면목이 없을 뻔했어. 통과입니다. 지나가십시오, 메이님.”
“부우님….”
부우가 눈길을 마주치지 않자, 메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르코에게 눈짓하며 지나갔다. 그러나 흐엉이 지나갈 때쯤 부우가 나지막하니 말했다.
“네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으나, 개화를 위해 피를 동지들은 내전에 참전했던 동지들이야. 감히 함부로 입에 담지 말게.”
그 말에 흐엉이 부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들이 5 지역 안에서 서로 치고받으며 고상하게 피를 흘릴 동안, 우린 4 지역에서 개죽음을 당하며 처절하게 피를 쏟아냈어. 그 망할 내전만 아니었다면 피를 흘리는 정도에서 그쳤겠지만 말이야. 내가 말한 동지는 그들을 말한 거야.”
부우는 모두 지나가자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젠장….”
“베아니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마르코 부대장을 왜 가둔 거야?”
의자에 기대어 서류를 살펴보던 베아니스는 자신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흐엉을 힐끗 한번 보고는 다시 서류를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나도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가워.”
“엘리시온이 언제부터 손님 대접이 이따위로 변한 거야?”
“초대받지 않는 손님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지.”
“베아니스?!”
“아, 귀 떨어지겠네. 조용히 해. 다 너와 메이님을 위한 거야. 잠자코 있어.”
“뭐라고?”
베아니스는 인상을 쓰며 귀를 후비다가 메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바깥 생활은 어떠셨어요?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몸은 괜찮지만, 마음은 불편하군요.”
평소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메이조차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베아니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시잖아요? 쥐꼬리만 한 거로도 강경파분들에게 꼬투리를 잡히는데 외지인을 함부로 데려오다뇨? 게다가 아무런 보고도 없이 말이에요.”
“농사지을 땅과 그곳을 지킬 용병단 알선에 관한 건 저희에게 맡기신 것 아니었나요?”
“그건 맞지만-”
“혹시 리더께서 시키신 건가요?”
메이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지 베아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일단 선조치 후보고를 할 생각으로….”
“뭐? 선조치 후보고? 참 나, 엘리시온 위계질서도 바닥으로 떨어졌군. 내가 직접 보고하겠어.”
흐엉이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려 하자, 베아니스가 재빨리 말했다.
“외교부 위계질서는 생각 안 해? 외교부 간부이신 아친님께서 이미 보고하러 가셨어.”
똑똑.
이미 활짝 열린 문이었지만 문 앞에서 마른 몸에 하얀 피부를 가진 젊은 남성이 노크했다.
“보고가 끝났으니, 가시죠.”
“아, 아친님!”
베아니스가 서둘러 옷을 단정히 여미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아친이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고는 메이와 흐엉을 보며 말했다.
“고된 출장이었겠으나, 리더께서 바로 뵙기를 원하십니다.”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마르코 부대장을-”
“그자도 같이 데려오라고 하셨으니 가시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의 엘리시온의 리더인 제나일은 스무 살 때부터 엘리시온의 시작을 같이한 원년 멤버 중의 한 명이었다. 존경받던 초대 리더인 모르민이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강경파의 수장인 가비가 2대 리더로 추대되었고 이후 엘리시온의 노선이 무력적 시위로 바뀌게 되었다. 하르마게돈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전투를 하면서 다른 지역까지 힘을 확산시켰는데 이때 5 지역만큼 4 지역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엘리시온이 가장 거대했던 시기이기도 했으나 동지들의 피를 너무 흘린 시기이기도 해서 이 때문에 가비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지금 엘리시온의 주축 세력인 온건파였다. 이 온건파는 가비의 절대적 카리스마와 믿음 때문에 원래 엘리시온에서 큰 영향력이 없었으나 제나일이 스무 살 중반쯤 되는 어린 나이에 가비와 강경파 간부들을 향해 강력한 비판을 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세력이 늘어났고 결국엔 가비를 중심으로 온건파의 세력이 통합되면서 강경파와 맞설 힘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강경파에 비하면 훨씬 약한 세력이었으나 제나일이 온건파의 수장으로 활약하면서 약 10년간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4 지역을 거의 장악할 뻔했던 엘리시온에게 병력을 지원해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이후 그 유명한 바람의 기적과 성녀가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약 10년간의 대립과 내전으로 엘리시온의 힘은 미약해졌고 하르마게돈 정부조차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여 5 지역 동쪽 끝으로 밀어 두고는 내버려 둘 정도였다. 가비는 엘리시온 중에 가장 엘레시온을 순수하게 사랑한 여인으로 동지들끼리 피를 흘린다는 사실에 회의감과 좌절감을 느끼고는 온건파와의 내전에서 유리한 상황임에도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
그리고 가비는 이후 리더 자리를 제나일에게 내어주고 곧바로 은퇴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따르던 무력 단체인 ‘불꽃’을 해산시키고 자신의 측근들에게 더는 대립과 반목을 하지 않을 것을 명했다.
제나일은 이런 가비에게 감동하여 강경파에게 일체 보복행위를 금지하고 오히려 뜻이 있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였다. 그러면서 약해진 엘리시온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면서도 인류의 봄이라는 정책을 내세웠다. 무력이 아닌 문명과 공존을 통해 동지들의 자유를 가져오려 한 것이었다.
제나일은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가 회의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정신을 차리며 포박당한 채 끌려오는 마르코를 바라봤다.
“마르코 부대장님!”
메이와 흐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아친의 손짓에 분한 듯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제나일은 붉은색 피부를 가진 마르코의 모습이 신기하긴 했으나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외지에 나가본 적이 없으니 자신이 모르는 세상이 존재하리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들소 용병단의 마르코 부대장입니까?”
마르코는 가볍지만 단단한 음성의 제나일을 바라봤다.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하르마게돈에게 반기를 든 현재 유일한 집단인 엘리시온의 수장치고는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 선생이나 학자와 같은 이미지의 사내였지만 눈빛이 한없이 깊은 것을 보니 역시 한 집단의 수장을 할 만한 그릇이라 생각했다.
“그렇소.”
“예의를 차리지 못할까?!”
원탁의 탁자에 앉은 사람 중 제나일의 옆에 앉아 있던 체격이 좋은 중년의 사내가 호통을 치자, 제나일이 손을 들어 그를 말렸다.
“코모그님, 들소 용병단은 저희와 우호 관계를 맺을 용병단입니다.”
각진 턱에 수염을 기른 코모그란 사내는 그 말에 의외로 생각보다 쉽게 화를 삭이며 자리에 앉았다.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중에 외지인들과 만난 사람은 있으나 엘리시온 중심부에 들어온 사람은 그대가 처음이나 다들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이해하오.”
“저런….”
굽히지 않는 마르코의 태도에 다른 사람들도 인상을 찌푸렸으나, 제나일은 별다른 내색 없이 계속 말했다.
“일단 그를 풀어주고 자리에 앉히십시오.”
“리더. 들소 용병단과 거래를 할 예정이기는 하나 아직 아무것도 신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회의에 참석한 과학부 간부인 마얀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거친 수염을 기른 사내가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게다가 간부들의 허락 없이 뭣대로 신성한 회의실에 외지인을 들이시다뇨?”
“간부들 허락이니? 감히 리더가 간부에게 허락을 맡을 위치에 있는 자리였소? 밀란?”
코모그가 다시 노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밀란 역시 눈을 피하지 않으며 말했다.
“상하 평등을 지향하며 원탁을 만드시건 제나일 리더가 아니었소?”
“밀란님의 말이 맞습니다. 간부들과 회의 없이 외지인을 드린 점을 사과드립니다.”
순순히 제나일이 사과하자, 코모그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밀란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리더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그냥 넘어가겠으나, 수비대 간부에게는 책임을 물으셔야 합니다.”
“부우님 말씀입니까?”
“네. 엘리시온의 안전을 지키는 수비대 책임자라는 자가 어찌 상부에 보고 없이 외지인을 함부로 통과시킨다는 것입니까? 신원도 불명확하고 첩자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제나일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리면서 입을 열려고 할 때 옆에서 눈을 감고 묵묵히 듣고만 있던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만하게, 밀란.”
“너, 너울님!”
“이 자리는 바깥세상과 공조에 관한 결과 보고와 외지인에 대한 향후 처우를 결정하는 자리일세. 자네가 말한 수비대의 처벌에 관한 것은 형법부의 간부인 내가 할 일이니, 문제가 있다면 따로 내가 건의하겠네.”
밀란이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자, 제나일은 너울을 향해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나 너울은 고개를 돌려 다시 눈을 감을 뿐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마르코는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깟 포승줄이야 언제든 끊고 도망갈 수 있었지만, 일단은 계속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기에 순순히 제나일의 말을 따랐다. 마르코가 자리에 앉자 아친이 입을 열었다.
“일단 들소 용병단과의 거래는 리더와 상의한 결과 그들의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단, 파견에 관한 것은 다른 부의 간부님들과 상의를 해야 할 내용이므로 이는 추후에 따로 해당 간부님과 상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마르코 부대장에 관해서는….”
아친이 제나일을 슬쩍 바라보자, 제나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하르마게돈 사람이라고요?”
그 말에 마르코가 메이와 흐엉을 바라보자, 둘은 슬쩍 눈길을 피해버렸다.
“두 분은 엘리시온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면서도 그대를 이곳에 들이기 위해 노력한 것이니 너무 기분 상해하지 마십시오.”
“20년 전까지 5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제나일이 자신을 존중해 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마르코도 예의를 차리며 말하자 제나일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5 지역이라면 어디에….”
“큰 바위 마을입니다.”
“큰 바위 마을?”
제나일이 모르겠다는 듯 코모그를 바라보자, 코그모는 잠시 턱을 긁적이며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아마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일 겁니다.”
“그렇군요. 어쩌다 바깥세상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신 겁니까?”
“정부군에게 불법촌과 불법 출산에 대한 명목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음…. 저희의 동지셨군요. 목숨을 보전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제나일의 동지란 뜻은 엘리시온이 불법 출생아들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기 때문에 불법 출산에 관한 자들을 형제나 친구처럼 여기는 전통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실제로 마르코의 방금 발언 때문에 그에게 적게 심을 품었던 몇몇 사람들은 인상을 풀며 호의적인 눈빛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바깥세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르마게돈에서 살기를 원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불모지라고는 하나 한 용병단의 부대장 자리는 가벼운 자리가 아닐 텐데…. 무슨 이유로 이곳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제나일의 물음에 마르코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가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저런….”
“신이시여….”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듯 저마다 탄식을 했지만 제나일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계속 물었다.
“정말 그것뿐입니까?”
“가족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습니까? 다만….”
제나일은 순간 마르코의 눈빛이 살기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찾을 가족이 없다면…. 복수를 해야지요.”
“복수라면 정부입니까? 군입니까? 아니면…. W컴퍼니입니까?”
“나에겐 세 곳 모두 같은 곳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아니, 아닙니다.”
마르코의 뒷말이 궁금했으나 개인적인 내용이라 생각했는지 깊게 묻지는 않았다.
“그럼 당분간 저희와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나일님!”
밀란이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지만, 너울이 다시 눈을 떠 그를 제지하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엘리시온이 되란 말씀입니까?”
“하하하, 아뇨. 저희도 아직 그대를 신용하지 못하니 함부로 엘리시온으로 들일 수는 없지요. 다만 바깥세상에 대한 일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받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적이 같지 않습니까?”
마르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했다시피 가족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곧바로 큰 바위 마을로 갈 것입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제나일은 마르코의 표정이 굳어지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해하려는 생각이 아닙니다. 그대가 없는 사이에 세상이 변했습니다. 5 지역은 지금 하르마게돈이 다스리는 서쪽과 엘리시온이 다스리는 동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지만 양측은 최근 5년간 서로의 구역에 침범하지 않는 무언의 약속을 한 상태입니다. 어떠한 왕래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 저희 쪽 구역에서 누군가가 서쪽으로 가려 한다면 평화로운 휴전상태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들키지 않을 자신도 있고 들킨다 한들 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 말에 이번엔 제나일의 표정일 굳어지며 말했다.
“당신과 당신 가족에게 일어난 불행이 수백 수천 명에게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전 엘리시온의 리더로서 동지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은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일은 불가합니다.”
‘이대로 이자들을 모두 죽이고 떠나야 하나….’
제나일이 더는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자, 마르코는 잠시 고민을 하였다. 그러다 조용히 앉아 있던 메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리더의 말씀처럼 일단 저희와 같이 있으시지요. 그럼 어떻게든 마르코 부대장님이 큰 바위 마을로 갈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겠소?”
그 말에 제나일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믿으십시오. 왜냐하면, 저분이 최근 5년 중 유일하게 휴전선을 넘으신 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