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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위하여>마르코:다시 돌아온 남자
작가 : 쉼표
작품등록일 : 202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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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기다림
작성일 : 24-08-13     조회 : 137     추천 : 0     분량 : 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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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 일어난 흐엉은 얼른 준비하고 곤히 자는 메이와 데메테르 두고 먼저 숙소에서 나왔다. 제나일을 지키러 가기 위해서도 이지만 어제 상황을 마르코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메이와 데메테르처럼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엘리시온에서 마르코와 가장 알고 있었고 처음으로 데려온 장본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동료애는 있었다. 마르코가 있는 숙소는 원래 창고로 쓰던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었다. 그러나 문 앞에 도착한 순간 마르코와 함께 낯익은 사람이 같이 나오자 흐엉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샨?“

 리샨도 흐엉과 마주치자 놀란 듯했지만, 흐엉보다는 침착한 표정이었다.

 ”이런 아침 일찍부터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였나 보네?“

 ”적어도 네가 이 시간에 있는 것보다는 그럴싸한 사이긴 하지. 여긴 어찌한 일이야?“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다시 확인코자 묻는 흐엉의 질문이었다.

 ”너와는 달리 마르코님께서는 현명한 선택을 하셔서 말이지.“

 ”젠장…. 아무것도 모르는 마르코님을 이용하려는 거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야. 그냥 내버려 둬.“

 ”글쎄….“

 리샨이 마르코를 슬쩍 바라보자, 마르코가 담담하게 말했다.

 ”상관이 있게 되었소.“

 ”제가 분명 중립을 지키라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당신 또한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 같소만….“

 ”하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네요. 그래도 당신과는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나 또한 전장에서 마주치지 않길 바라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리샨이 흐엉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 비밀리에 코모그님과 밀담을 나누었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진짜 그쪽으로 붙었나 보구나.“

 ”네가 알았으니 비밀리라고 할 수는 없겠지. 그냥 당분간 도와주기로 한 것뿐이야.“

 ”그럴 거면 우릴 도왔으면 좋았잖아!“

 리샨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흐엉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너를 배신한 것도, 4 지역 엘리시온과 스칼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그리고…. 라울을 죽인 것도 저들이잖아. 그런데 왜 하필 저들과 같이하겠다는 거야?“

 ”라울…. 그렇군. 그냥 난 더는 동지들의 피를 보기 싫었을 뿐이야. 평화적으로-“

 ”4 지역에 10년 동안 처박혀 있었더니 한가하고 한심할 놈이 되어버렸군.“

 ”뭐?“

 자신의 말에 흐엉이 노려봤지만 리샨은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마르코에게 말했다.

 ”가시죠. 당신의 숙소는 이제 이런 곳보다는 훨씬 나은 곳이랍니다.“

 ”리샨!“

 마르코는 흥분한 흐엉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 먼저 떠났다. 리샨도 발걸음을 떼고는 흐엉을 지나쳐가며 마지막으로 말을 하였다.

 ”네가 평화에 찌들어서 잊고 있나 본데, 정신 차려 흐엉. 우리 같이 가축 소리나 듣는 불법 출생아들에게 평화라는 단어만큼 위험한 것도 없어.“

 

 ”코모그님의 말 때문에 허락하긴 했지만 그렇게 하루종일 붙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나일이 자신의 집무실안 구석에서 삐딱하게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흐엉을 보고 말하자, 흐엉이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저도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그렇군요.“

 자신의 목숨이 제일 위험할 텐데도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제나일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지만, 한숨을 내쉬고는 제나일을 보며 말했다.

 ”라울…. 기억하세요?“

 서류를 보던 제나일은 멈칫하더니 서류를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생각이 빠르고 영리한 동지였죠. 엘리시온을 사랑하고 엘리시온을 위해서 어떤 일도 할 각오가 되어있었지만…. 생각보다 정이 많은 동지이기도 했고요.“

 ”왜 데메테르를 납치하는 일에 왜 라울을 보낸 거죠? 라울은 첩보부에서 파견 동지들과 연락책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고요. 그런 일은 전투원이나 해야 할 일이었는데!“

 말을 하던 흐엉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오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나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가더니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저와 온건파의 사람들이 당시 리더이셨던 가비님에게 4 지역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간청을 드렸었죠. 약속된 파견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 저의 간청을 정면으로 반박한 젊은이가 라울이었습니다. 추후에 안 사실이지만 아마 자신의 오랜 친구였던 흐엉님을 위한 반박이었겠죠. 그래도 어린 나이에 한 파벌의 수장 말에 당당히 맞서던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어린 시절 저와 닮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제 화를 더 돋우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소리는 그만 하세요.“

 제나일은 몸을 돌려 자신을 노려보는 흐엉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벌은 달랐지만, 그만큼 애정이 있는 동지였습니다. 라울을 귀하게 쓰고 싶었지만, 어린 시절 저에게 정면으로 맞섰다는 이유로 연락책 같은 변방의 임무를 맡고 있었죠. 그래서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올림포스 스피어를 상대하는 일이었다고! 그럼 뻔히 죽을 것을 아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라울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너울님을 중심으로 강경파의 세력들이 다시 힘의 안정을 찾고 처음 목소리를 낸 것이 ’인류의 봄‘의 3대 개화 중 마지막 세 번째 개화였습니다. 알고 계시죠? 첫 번째 개화가 과학 기술의 개화, 두 번째가 바깥세상과의 개화 그리고….“

 ”4 지역의 개화….“

 ”가비님이 계셨던 시절부터 강경파들의 숙원 사업과도 같았던 4 지역의 개화를 강하게 주장했었죠. 그런데 라울은…. 그런 강경파들에게 맞서 오히려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당신 때문이었겠죠….“

 ”도대체 왜….“

 ”라울은 과학 기술이나 생체연구가 온건파의 의견이긴 했으나 강경파인 자신이 데메테르를 데려온다면 생체연구는 강경파가 차지할 수 있다고 강경파 동지들을 설득하더군요. 그리고 그의 설득은 통하였고…. 임무는 실패한 것입니다.“

 흐엉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참아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이 메이님과 함께 데메테르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을 때는…. 라울이 펼친 기적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더욱 당신과 데메테르를 귀하게 여기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라울에게 해주지 못했던 만큼 말이죠.“

 제나일은 소리 없이 흐엉의 어깨가 들썩거리자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겨 전축 앞에 섰다. 인류가 멸망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남는 전쟁을 하다 보니 예술 문화의 명맥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하르마게돈에서 3대 금기라 불리는 의학, 과학, 예술 중에 하나로 속하다 보니 음악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욕망은 법으로 막을 수 있는 법이 아니었다. 정부 몰래 여전히 예술가들은 존재했고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좋지 못한 음질이긴 했지만, 전축과 같은 기계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제나일은 요즘 유행하는 ’여명‘이라는 예술가가 만든 음악을 틀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아까 보던 서류를 들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엉의 어깨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들썩였지만 제나일은 자신 나름의 배려인 듯 못 본 척, 못 들은 척해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외교부의 주요 인사들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외교부의 부원들은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생각보다 메이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외교부 소속이긴 하지만 정식 엘리시온은 아니었기에 중요하거나 깊은 업무를 하기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메이에게 업무를 지시하던 간부와 부간부가 없으니 마땅히 메이에게 업무 분담을 시킬 사람이 없어서 더욱 한가해졌다. 그 때문에 메이는 외교부에 있기가 영 껄끄러운 듯 데메테르가 있는 엘레나의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어젯밤 흐엉과 나눈 대화 때문에 엘레나나 데메테르를 그냥 두기가 걱정이 돼서이기도 했다.

 다행히 메이는 엘리시온에서 몇 명 안되게 엘레나가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메이가 연구실에 있는 것에 대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메이가 어제 나누었던 이야기를 엘레나에게 전하며 몸을 조심하라고 걱정해주었지만 정작 엘레나의 반응은 무덤덤하였다.

 ”이미 엘리시온에게 몇 년 동안이나 감금당해서인지 별로 겁나지는 않네요. 제나일이 지도자가 되면서 자유로운 지금이 어색하기도 하고요.“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엘레나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메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몇 년 동안이나 잡혀계셨던 것 치고는 되게 열심히 일하시네요, 하하.“

 ”날 가둔 것은 가비이지, 제나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꼭 해야 할 일도 있고요.“

 ”해야 할 일이요?“

 ”네, 그것 때문에 내 모든 것은 버리고 온 거예요. 내 과거도, 삶도…. 가족도…. 그러니 엘리시온에 저에게 무슨 짓을 했든 제 연구를 멈출 수는 없어요.“

 엘레나가 좀처럼 하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데메테르는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가족이라고 하면 혹시 저번에 리샨님이 말씀하신 3 지역 사람들 말인가요?“

 데메테르의 말에 엘레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여전히 무덤덤하게 말했다.

 ”내 딸이야. 나이는 네 또래 정도 되겠구나. 아니지…. 몇 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너보다 나이가 많겠어.“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나에겐 그 아일 보고 싶어 할 자격이 없어. 이 연구가 끝나야…. 겨우 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허락될지도 모르겠지.“

 ”그래도-“

 데메테르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메이가 눈짓하며 데메테르의 말을 조용히 말렸다. 메이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일부러 활발한 목소리로 농담을 하듯 말했다.

 ”아무튼, 흐엉님은 당분간 제나일님의 호위를 맡기로 했으니 당분간은 보기 힘드실 거예요. 그러니 보고 싶으셔도 참으세요. 하하.“

 ”흐엉님이 제나일을 호위한다…. 참 이상하군요.“

 ”네?“

 엘레나는 잠시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컴퓨터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흐엉님의 솜씨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온건파로서는 그렇게 신용할 만한 사람인지도 의문인데 흐엉님 혼자 호위를 하다니….“

 ”빙결도 없고 주요 엘리시온 전투원들은 휴전선에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요?“

 ”부우님의 수비대도 있잖아요. 실력이야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충성심에서는 더욱 믿음직스러울 텐데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빙결과 온건파 주요 인사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다니…. 이건 대놓고 제나일을 노리는 사람들에겐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란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그걸 제나일이 모를 리도 없을 테고….“

 ”그건 그래요. 그리고 코모그님도 자릴 비우셔서 제나일님의 호위를 더 신경 써야 하데 제나일님은 오히려 태평하시다니까요.“

 ”마치 자기 자신을 죽이러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군요.“

 ”네?“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강경파 사람들이 진짜 반란을 일으킬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엘레나가 다시 안경을 쓰고는 컴퓨터로 고개를 돌리며 자기 일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메이는 찜찜한 듯 생각에 잠겼다.

 ’엘레나 박사님 말대로 진짜로 반란이 일어날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반란이 당연히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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