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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에게 어그로가 끌려..!
작가 : 실버월넛
작품등록일 : 202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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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PVP
작성일 : 25-06-22     조회 : 11     추천 : 0     분량 : 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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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일 오전 11시, 게임사업3팀 회의실.

 유비는 전날 야근의 피로를 없애버리겠다는 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야무지게 꿀꺽 삼키며 어글호 팀장을 주시했다.

 어글호 팀장이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마커로 큼지막하게 썼다.

 [결투장 NEW 토너먼트 업데이트]

 그는 뒤돌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주에 기획안 마무리하고, 빠르게 업데이트 진행합시다.

 [결투장] 콘텐츠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급하게 추가된 건이긴 합니다만..“

 회의실 안 당황스러운 분위기에 어글호 팀장은 멈칫 발언의 템포를 약간 조절했다.

 ”광고를 통해 유입된 유저들을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좀 더 힘내주셨으면 합니다.“

 ‘힘내달라는 말 조차 진심이 느껴지지 않다니···’ 유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때, 굳어진 분위기를 깨고 설정 차장이 입을 열었다.

 “어... 너무 신규 유저들만을 고려한 거 아닌가요? 기존 유저들은 아직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상태이고..

 콘텐츠를 플레이중인 유저라 해도, 이게 정말 즐거워서인지, 이벤트 보상 때문에 억지로 하는건지..

 “우선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어글호가 말을 자르듯 이어갔다.

 “성과가 나온 이상, 다음은 더 빠르게 밀어붙여야죠.”

 신유비가 손을 듬과 동시에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어팀장님, 지난 콘텐츠에 대해선 아직도 커뮤니티에선 피드백이 좀 나뉘는 편이었어요.

 유저 커뮤니티 쪽에서는 감정 몰입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몰입이요?” 어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시기에 필요한 건 몰입보다 긴장감입니다.

 이젠 우리 게임에 경쟁 요소도 필요하다는 게 여러모로 입증되지 않았나요?”

 어글호 팀장의 발언과 동시에 마케팅팀 온캐리 대리도 쏜살같이 덧붙였다.

 “유튜브,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에서도 이젠 PvP 영상을 더 많이 만들고, 더 잘 퍼져요.”

 ”그건 바이럴 이벤트 때문 아니었나요?“ 양어린이 악의는 없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꾸했다.

 온캐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노트북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시도하듯 딴청을 피웠다.

 양어린과 온캐리의 시트콤같은 대화 속에서도

 유비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수많은 문장을 고르고 섞고 정리하다가··· 그냥 Del키를 눌러 지워버렸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반박을 삼키고 말았다.

 

 결국 어글호 팀장의 의견대로 빠르게 업데이트를 진행하기로 결정된 후, 사람들은 술렁이면서 회의실을 나왔다.

 설정 차장은 급하게 기획팀 멤버들을 소환해 작은 회의실로 회의를 이어갔고,

 온캐리 대리도 급하게 자리로 돌아가 팀장에게 결정된 바를 공유했다.

 반면, 조용히 회의실에서 나와 자리에 돌아온 유비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왠지 저번주부터 계속 몸 빼고 모든 곳을 두들겨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멘탈도··· 이성도··· 마음도···

 봄 햇살이 잔잔히 사무실을 비추고 있었지만, 마음 한 켠은 흐려져 있었다.

 6개월 전, 늦가을 즈음의 회의실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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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팀장님, 지금 공유주신 콘텐츠 업데이트 플랜에는 유저 피드백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운영팀장은 회의실 밖으로 새어나갈 정도로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강하게 어필했다.

 그럼에도 어글호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감정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번 기능 업데이트에서 유저들이 호소하던 어지간한 불편은 다 해소되지 않았나요?

 내년 2Q 업데이트는 시기상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해 보기 좋은 시점입니다.

 나머진 3Q 업데이트 회의에서 다시 논의해 보시죠.”

 단호한 어글호의 말에 운영팀장은 질색이라는 듯 창백한 낯으로 마지막 호소를 뱉어냈다.

 “그때가 되면 늦습니다. 유저는 기다려주지 않아요.”

 “··· 빈 자리는 결국 다른 유저들로 채워지지 않겠어요?“

 얼음같은 공기가 흘렀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숨을 죽였다. 운영팀장은 작게 읖조렸다.

 들리지 않도록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들릴 정도로 이야기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들... 미안합니다.”

 운영팀장의 바로 옆자리에서 이 혈전을 지켜보던 유비는 그땐 그 사과가 유저들에게 하는 사과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건 이 전투를 홀로 떠나려는 자의 남겨진 전우들에 대한 사과였던 것이었다.

 그는 그 달 말 퇴사했기 때문이다.

 

 “그때 난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유비는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으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우린 아직 거센 바람을 일으키거나 막아설 수 없는 게 맞아. 너무 죄책감 갖지 마 유비야.“

 옆자리 양어린이 무심히 말했다.

 혼잣말에 대꾸받은 것 뿐 아니라 속마음을 들켜버림에 깜짝 놀란 유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린을 바라봤다.

 어린은 싱긋 웃으며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만 있을 유비가 아니었다.

 회사에선 뉴비일지 몰라도, [메르하임]에선 아니었다.

 

 그날 오후, 유비는 용기를 내어 게임사업본부 총괄, 엄언희 본부장의 방을 찾았다.

 미리 방문 문의 메신저를 보내둔 비서에게 목례를 하자 눈짓으로 입장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엄언희는 컴퓨터 앞에서 정신없이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데스크 위에는 아이 사진이 담긴 포토 프레임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오늘은 시어머니가 아들 어린이집 하원을 못하시게 돼서 빨리 나가봐야 하는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워킹맘 엄언희 본부장이 엄살을 부리듯 너스레를 떨었지만

 곧 고개를 들어 유비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정색했다.

 “무슨 일이에요, 신유비 씨?”

 “저... 결투장 관련 신규 토너먼트 콘텐츠 말입니다.

 유저 반응이 호불호로 나뉘고 있어서, 조금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부장님도 [메르하임] 긴급 업데이트 플랜에 동의하셨기 때문에

 어팀장님께서 강경하게 밀어붙어시는 거겠지만..

 제가 입사 이래로 아니 입사 전부터 지속적으로 살펴 본 유저 동향으로 판단했을 때

 지금은 정말 심각할 정도로 실망하고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신규 유저들의 높은 과금 지표 때문에 모든 걸 외면하시는 상황인데 다른 사람의 말은···”

 “거기까지.”

 본부장과의 대면이란 무겁고도 유일무이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거침없이 쏟아내는 유비의 발언을 엄언희 본부장이 잠깐 막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등을 기댔다.

 “운영팀장이 공석이라 유비씨가 다 떠안는 건 알고 있었어요.

 본인의 경력에 비해 힘든 일을 맡고 있다는 거 압니다.

 어글호 팀장은 특히 더... 좀.. 그렇죠?"

 엄 본부장은 표현을 아꼈다.

 솔직하고 편안한 커뮤니케이션과 진취적인 의사 결정, 40대 다소 늦은 나이에도 출산 후 빠른 복직으로

 가정과 회사에 두 개의 계정을 동시에 키워낼 수 있는 건 엄 본부장님만 가능할 거란 사업본부원들의 이야기가 아부 만은 아니었다.

 유비도 그런 엄 본부장을 믿고 따르고 있었다.

 

 엄언희 본부장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20년 직장 생활을 오롯이 게임과 함께 했어요.

 우리 나라에 게임 서비스란 게 생기기 시작했을 때 우연히 그 길로 들어가 지금까지 자리잡고 있는 거죠.

 유비씨는 유비씨의 서비스 기조가 맞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볼 땐 어글호 팀장도 틀리지 않아요.

 우린 매일 그 밸런스를 맞춰 나가야 하고, 그 밸런스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가 각 부서의 목표겠지요.

 유비씨가 무슨 짓을 해도 어글호 팀장의 플랜을 막을 수는 없을 거에요."

 굳은 유비의 얼굴을 살피며 엄언희 본부장은 말을 이어갔다.

 "...다만, 그 플랜을 보완할 수는 있겠죠."

 엄 본부장의 말에 유비의 동그란 눈이 더욱 동그래졌다.

 "내리는 폭우를 막을 수 없다면, 유저들에게 비를 피할 만한 동굴을 안내해 줍시다."

 본부장의 말에 무언가 떠오른 듯 유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사나이의 외투를 벗긴 건, 바람이 아니라 햇빛이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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