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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 이웃은 원플러스원
작가 : 하루감정
작품등록일 : 201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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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스피드 데이트(2)
작성일 : 16-09-27     조회 : 440     추천 : 0     분량 : 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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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아아-.

 달그락.

 

 단일은 이제 막 씻은 접시 한 개를 식기건조대에 올려두었다. 두 손으로 싱크대를 짚고 매달리자 어이구, 한숨이 절로 쏟아졌다. 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대충 문지르고 충혈이 된 눈을 깜박였다. 아직도 울음 섞인 넋두리가 머릿속에서 윙윙 울렸다. 단일은 수도꼭지에 매달린 코알라 고무인형을 손가락으로 툭, 튕겼다.

 

 “....흠냐, 흠냐.”

 

 거실에는 해바라기가 대자로 뻗은 채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어정쩡하게 벌린 입가엔 침이 맺혔고 삐딱하게 흘러내린 헤어밴드가 두 눈을 교묘하게 가렸다. 먹다 남은 크림 파스타와 오므라이스가 담긴 접시는 발에 밀려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데 포크는 안 보였다. 단일은 등위를 긁적이며 창가로 다가갔다. 무심코 깔아뭉갠 사탕 포장지가 바스락거렸지만 해바라기는 깨어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커튼을 조금 젖히자 한낮의 햇살이 단일의 이목구비를 환하게 밝혔다. 한일자로 뻗은 눈매와 입매가 절묘하게 한 쌍을 이룬 무미건조한 인상이었다. 보통 머리, 보통 피부, 보통 체격. 어디에나 한두 명씩 있는 평범한 외모였다. 체념에 4할, 무심에 5할, 짜증에 1할을 배분한 표정이었다. 다시 커튼을 치자 단일의 얼굴은 사방에 어질러진 물건처럼 어슴푸레해졌다. 해바라기가 넋두리를 들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길 바라며 접시 하나를 닦았었다. 볼품없는 기대에 불과하지만.

 

 “.....서영 씨.” 라고 해바라기가 칭얼거리며 쿠션에 얼굴을 박았다.

 “.................”

 

 아가처럼 색색 거리는 숨소리가 아렴풋하게 들렸다. 단일은 해바라기의 노란 뒤통수를 우두커니 보았다. 해바라기가 쏟아낸 단어 가운데 베스트가 ‘서영 씨’였다. 듣다보니 두 사람은 ‘스피드 데이트’에서 여러 번 만났었다. 스피드 데이트는 프로필 카드를 교환한 여러 명의 이성과 10분간 1:1 대화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번거롭기보다, 그 사람에게 투자한 시간만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 해서 유행한 미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기 수준보다 높은 사람을 주변에서는 접하기 어려우니깐 일종의 ‘운’을 기대하고 단체미팅에 합석했을지 모른다. 확실히 소개팅 한 번 보다 스피드 데이트 한 번이 여러모로 효율적이었다. 선택을 못 받을 거라는 불안감보다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점수를 더 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간혹 반대의 확률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별 일도 다 있네.”

 

 그나저나 ‘서영 씨’는 해바라기가 찾던 이상형이었을까. 해바라기가 몸을 뒤척였다. 단일은 해바라기 앞에 쭈그려 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양 손바닥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생각할거리가 있으면 하는 버릇이었다. 주정을 알아듣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같은 말을 반복했으니깐. 해바라기와 서영은 한 달 전, 스피드 데이트에서 처음 만났다. 장소는 주선업체에서 임대하는 서울 근교의 주점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로 만난 장소도 동일했다. 그러니깐 두 사람은 4주 연속으로 스피드 데이트의 일원으로 마주한 셈이다. 문제는 해바라기에 대한 서영의 태도였다.

 1주차에 서영은 해바라기에게만 희한한 제안을 했다. 프로필 카드를 교환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해바라기는 다른 남자와는 서슴없이 프로필 카드를 교환하는 서영의 태도에 갸웃했다. 대화는 평범했다. 선택은 모든 이성과 데이트를 마친 후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매칭 결과는 당일 저녁 문자로 발송됐다. 수신자는 매칭에 성사된 커플에 한했다. 그날 해바라기는 다른 사람을 선택했고 문자를 받지 못 했다.

 2주차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놀란 얼굴을 했는데, 해바라기는 서영이 먼저 놀라기에 덩달아 놀랐다고 한다. 2주차에도 서영은 프로필 카드를 교환하지 말자고 했다. 거기에 중요한 신호가 있다고 짐작한 해바라기는 서영을 선택했지만 문자는 오지 않았다. 그날도 대화는 평범했다.

 3주차에 들어서야 프로필 카드를 교환했지만, 특이한 사항은 없었다. 프로필이 거짓이 아니라면 2번에 걸쳐 나눈 대화에서 수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서영은 다른 생각에 빠졌는지 질문을 세 번 놓쳤다. 자신하고만 프로필 카드를 교환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처음에는 서로 가격을 매기는 기분이 들어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이성에게 프로필 카드를 교환하지 말자고 하면 이상한 여자로 찍힐까봐 인상이 좋은 해바라기에게만 제안했다고 한다. 이제야 프로필 카드를 교환한 건 더 이상 알려주지 않은 사항이 남아있지 않아서였다. 과연 프로필 카드의 기재사항은 ‘이름’, ‘나이’, ‘주거지’, ‘직업’, ‘취미’, ‘특기’, ‘하고 싶은 말’이 전부라서, 2주간 충분히 다룬 화제에 불과했다. 3주차에도 해바라기는 서영을 선택했고 문자는 오지 않았다.

 어차피 매칭 결과는 당사자만 알아서, 해바라기는 4주차에도 스피드 데이트에 참석했다. 다시 한 번 서영을 만나고 싶었다. 4주차에도 서영은 테이블에 착석해 있었다. 해바라기는 당돌하게도 자신을 선택하면 매칭이 성사된다고 고백했다. 서영은 대답하지 않고 살포시 미소 지었다. 제한시간이 도래하기 몇 초전, 서영은 안색이 피로해 보인다며 빈혈이 있냐고 물었다. 확실히 전날 밤에 과음하기는 했다. 해바라기는 괜찮다며 손을 흔들었다. 서영은 다음 차례의 이성이 다가오기 전에 재빨리 덧붙였다.

 

 “괜찮으시다면 다음 주에도 나와 주세요.”

 

 해바라기는 그날도 문자를 받지 못 했다. 단일은 보고 있던 만화책을 제자리에 내려두었다. 무심코 구경하였다가 쓰레기 더미에서 1권을 찾아 5권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봐버렸다. 집안은 어느새 컴컴해서 무슨 정신으로 말주머니를 읽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단일은 부엌에 가서 마지막 계란을 달군 팬에 깨뜨렸다. 해바라기의 고민은 간단했다. 6주차에는 그녀와 반드시 커플이 되고 싶다는 것.

 

 치이익!

 

 단일은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계란을 한 번에 뒤집었다. 반숙을 좋아했지만 노른자가 덜 익은 상태에서 2인분으로 나누기가 불편했다. 잠이 깬 해바라기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일어나면서 담요에 발이 걸렸는지 콰당, 넘어지는 소리와 고통에 겨운 신음이 정적을 산산조각 깨뜨렸다. 단일은 ‘스피드 데이트’에 차려입을 옷을 고민하며 다시 한 번 팬을 흔들었다.

 

 치이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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