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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 이웃은 원플러스원
작가 : 하루감정
작품등록일 : 201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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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르바이트생과 단골(1)
작성일 : 16-10-18     조회 : 336     추천 : 0     분량 : 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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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화 아르바이트생과 단골

 

 

 삑-

 삑- 삑 – 삑- 삑-

 

 단일은 머리가 베란다로 향하게 누운 채 밤하늘을 응시했다. 5분이 넘도록 짖어대던 자동차의 경보음이 멎자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리가 귓속까지 시원하게 긁었다. 단일은 효자손으로 휴대전화를 능숙하게 끌어당겨 화면을 켰다. 휴대전화를 구매한지 3년이 넘었지만 제조사에서 기본 설정한 배경화면과 디지털시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시간은 오후 11시가 조금 넘었다.

 

 “하아, 라면 먹고 싶다.”

 “나도.”

 “끓여와.”

 “없어.”

 “그럼 나가서 사오던가.”

 “그러는 너야말로 사와. 지난번에도 내가 나갔잖아.”

 “치사하기는.”

 

 혼자보다 둘이 좋은 이유는 라면을 사서 끓여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나’란 인간이 ‘단수’라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전체 가구의 27%를 차지하는 1인 가구, 혼족(나홀로족)의 취약점은 응석을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현실에 있었다. 단일은 덤덤히 혼잣말을 이어갔다.

 

 “시켜먹을까?”

 “그거도 하루 이틀이지. 비싸기나 하고.”

 “해바라기한테 가볼까?”

 “콜.”

 

 콜이라고 해봤자 301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일은 등을 긁적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바깥으로 나오자 시원한 가을바람이 옷자락을 쓸어 올렸다. 단일은 까치집이 생긴 머리는 개의치 않고 트레이닝 바지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슬리퍼를 끌었다.

 여행자와 거주자를 구분하려면 그 사람이 어디에 시선을 두는지 확인하면 된단다. 밤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보며 걷던 단일은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가 흠칫했다. 저만치 걸어오는 여자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보행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착! 착! 착!

 

 희뿌연 가로등 불빛이 반사된 얼굴에는 광기 비슷한 반가움마저 어려 있어 소름이 돋았다. 뒤를 흘깃해도 지나온 골목은 속 빈 순대처럼 공허하게 뻗혀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

 

 그러는 동안에도 여자와의 간격은 빠르게 좁아지고 있었다. 체구가 작고 상당히 앳된 여자였다. 아니, 소녀 내지 꼬마라고 부르는 게 나으려나. 힘찬 걸음걸이에 맞추어 양갈래 묶음 긴 머리가 허리춤에서 좌우로 통통 튀어 올랐다.

 

 “토끼.” 단일은 무심코 뱉은 단어를 듣고 끄덕였다.

 

 토끼는 지퍼를 턱까지 끌어올린 바람막이 핑크색 점퍼와 K고등학교 동계 체육복 바지 차림이었다. 그래도 학생이 아니란 것쯤은 알았다. 단일은 304호가 든 빵빵한 부직포백에서 시선을 거두고 상체의 각도를 보란 듯이 틀었다.

 

 다가오지 마.

 

 분별없이 달려드는 초식동물의 사정거리에는 단일만 우뚝 서 있었다. 단일은, 빈손을 번쩍 들며 함박 웃는 토끼를 교통콘 삼아 스윽 지나쳤다.

 

 “오빠~!”

 “?1?!”

 단일은 어느새 토끼와 팔짱을 끼고 의지와 상관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토끼는 팔을 잡아당겨 단일의 눈높이를 억지로 낮춘 다음 종알종알 말을 이었다. 위에서 바라보니 양갈래 묶음 머리가 영락없이 토끼 귀였다. 커피냄새가 진동했다.

 

 “내가 빨리 오라고 했어? 안 했어?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친구가 만나느라 늦었다고 말해요.”

 

 토끼는 첫말과 뒷말의 높낮이를 자유롭게 조정하며 명령했다. 연하게 화장한 큼직한 눈도 말의 목적에 따라 눈빛을 달리했다. 순진무구하던 인상이 험궂게 돌변하자 단일은 혀를 찼다. 토끼두목 같네. 하지만 저만치 길어지는 정체불명의 그림자를 보고도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만 좀 달라붙어. 네가 편의점에서 보자며?” 단일이 능글맞게 말했다.

 “으응? 아! 그러니깐 내가 언제 그랬다고?!”

 “됐어. 저녁은?”

 “이제 먹어야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토끼가 그림자의 정체를 못 본 척 밝게 물었다.

 “고기 먹고 싶어. 고기 사줘!” 단일이 싱긋 웃었다. 진심이었다.

 “....집에서 라면 끓여줄게.” 토끼는 의도를 간파하고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도록 애썼다.

 

 바로 몇 보 앞에 그림자의 정체가 있었고, 몇 십 보 앞에는 고기집이 있었다. 단일의 관심이야 성인 남성이 아니라 순전히 먹을거리에 있었다.

 

 “에이, 별 수 없네.”

 

 단일은 진심으로 서운해 하며 그림자 곁을 지나쳤다. 동시에 팔을 잡은 토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모자를 눌러 쓴 상대는 노골적으로 단일을 주시했다. 못 볼 걸 본 마냥 손끝으로 챙을 살짝 든 채 입술을 달싹였다. 단일은 무시했다.

 “.....휴우, 고마워요.” 주택 입구에 들어서자 토끼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별말씀을. 라면으로 갚으세요.”

 “진담이에요?” 토끼가 계단을 오르다말고 눈썹을 찌푸렸다. 양갈래 묶음 머리가 나비 날개처럼 위아래로 퉁겼다.

 “고기면 더 좋고요.”

 “라면으로 할게요.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요.” 토끼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지키면 고기 사주는 건가요?”

 “이 남자가...”

 “그거 알아요? 밑에서 듣고 있을지도 몰라요.” 단일이 바닥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알았어요. 시간이 늦었으니까 얘기는 내일 해요. 오후 1시, 유미네 분식점에서 만나요. 괜찮아요?”

 “오전 10시.” 단일이 가차 없게 되받아쳤다. 오후까지 참을 수 없었다.

 “......좋아요. 오전 10시.” 토끼는 302호 앞에 서 있는 단일을 보고 결의를 다지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만나요.”

 “좋아요.”

 

 철컥.

 

 현관문을 닫고 거실에 깔아둔 요에 대자로 눕자마자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유일하게 번쩍이는 액정에는 며칠 전에 전화번호를 저장한 이름이 떠 있었다. 단일은 몇 조쯤 생각에 잠긴 다음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뭐라고 다다다, 떠들어대는 통에 귀가 멍멍했지만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후야.” 이름을 부르는 단일의 목소리가 한없이 다정했다.

 “....네, 형.” 시후가 뚱한 말투로 대답했다.

 

 단일은 본격적으로 대화를 잇기 전 휴대전화에 저장한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301호. 토끼를 미행하던 그림자의 정체는 해바라기였다. 무슨 말부터 하면 좋을까. 단일이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몸을 반바퀴 구르며 상냥하게 말했다.

 

 “너, 저녁은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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