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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 이웃은 원플러스원
작가 : 하루감정
작품등록일 : 201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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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르바이트생과 단골(2)
작성일 : 16-10-30     조회 : 388     추천 : 0     분량 : 4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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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점하고도 한 시간이 지났지만 먼저 기다리던 손님이 있어 분식점은 활발했다.

 10평 남짓한 가게에는 외발 탁자와 스툴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조리공간이 보이고 출입구 왼쪽에는 끝이 말린 종이가 정수기와 스테인리스 반찬통을 댄 벽에 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셀프’라고 적혀 있었다. 벽을 마주한 탁자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단일이 물이 든 컵을 탁자에 내려두기가 무섭게 토끼가 한 손을 불쑥 내밀었다. 휙, 하고 옷깃이 바람을 갈랐다.

 

 “정식으로 인사드려요. 304호 송나나입니다. 나이는, 스물여섯이에요.”

 “302호. 최단일이죠. 세 살 많아요.”

 “저기 오빠라고 불러도 되요? 302호나 단일 씨라고 부르는 건 건방져보여서.”

 “흐음.” 단일은 건성으로 대꾸하며 단무지 한쪽을 베어 물었다. 짭조름했다.

 “그리고 말 놓으셔도 되요.”

 “............”

 

 단일은 잠깐 시선을 들었다. 어제 본 천연덕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단조로워보이던 눈빛과 입매가 부드럽게 일그러졌다. 미지근한 미소. 토끼는 손으로 왼쪽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가슴이 뛰었다. 단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젓가락질하며 덤덤히 말했다.

 

 “물론. 이걸로 초면은 아니니깐 나도 그쪽을 본명으로 부를게.”

 “...아, 어제는 고마웠어요.” 토끼가 양갈래 묶음 머리를 가슴께로 모아서 살짝 잡아당겼다. 고개를 숙여서 분홍색으로 물든 귀가 분식점의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토끼는 어제처럼 핑크색 바람막이 점퍼와 고등학교 체육복 바지차림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이랄까, 덕분에 단일은 중학생 조카에게 밥 한 끼 사주러 나온 기분이었다.

 

 “머리모양 어울려.”

 “아..........고, 고마워요.” 토끼의 반응은 미묘하지만 아까보다 조금 느렸다. 토끼는 괜히 주방 쪽을 흘깃하며 주문한 요리를 기다리는 척했다.

 “염색해 볼 생각 없어? 뭐, 갈색이나 하얀색...” 단일은 은근히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갈색은 몰라도 하얀색은....”

 “하기야 탈색을 여러 번 하면 머릿결이 많이 상하려나. 그건 곤란하지.” 단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문제가 아닌데요...” 토끼는 단일의 의도를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이 점원이 라면 두 그릇과 김밥 한 줄을 내왔고 잠시 멈춘 대화가 재개되었다.

 

 “부족하지만 맛있게 드세요.”

 “고마워. 근데 어젯밤에 얘기한 ‘지켜야 한다는 약속’ 말이야.”

 “아......” 토끼는 젓가락으로 뜨거운 면발을 살살 휘저으며 생각에 잠겼다.

 “당분간 마중 나오라는 건가?”

 

 깜짝 놀란 토끼는 눈을 크게 뜨며 단일을 똑바로 쳐다봤다. 단일은 라면 국물에 김밥을 찍어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맛있다’라는 말을 노래의 후렴구처럼 흥얼거리고 있었다. 토끼는 제 표정이 멍청해보일세라 다급히 고개를 숙여 라면을 먹었다. 가지런하면서 작은 치아로 면발을 꼭꼭 씹으면서 단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민했다. 용건을 알아차린 이유는 둘째고, 단일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지가 첫째로 궁금한 사안이었다. 귀찮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거절하지 않아.” 단일이 감정을 싣지 않은 말투로 툭 내뱉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예상할 만 일이지. 그런데 피하려는 사람이 어제 집 앞 골목에 있던 사람이야?”

 “네. 보셨죠? 그 남자.” 토끼가 한숨을 쉬었다.

 “그거랑 관련해서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말씀하세요.”

 “그때 너는 그 남자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집까지 따라온 걸 따돌리려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가 돌아온 게 아니라.”

 “네...”

 “그럼 조금 이상한데....” 단일은 그렇게만 말하고 그릇째 라면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뭐가요?” 토끼가 경계심을 담고 물었다.

 “너는 내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집으로 가는 골목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잖아. 그 남자 말고는.”

 “................”

 “그 남자가 가버린 줄 알았다는 변명은 날 갑자기 끌어들인 이유가 안 돼.”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요.”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니지 않나.” 단일은 한쪽 어깨가 뻐근하여 주물렀다.

 “그러니깐 갈대에요.” 토끼가 삐친 듯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지마. 알고 있었잖아. 그 남자가 301호가 사는 걸.”

 “..........아아.” 토끼는 더 이상 신음이 새지 않도록 입을 꾹 다물었다. 양입술이 시옷자(ㅅ)로 야무지게 교합했다. 토끼가 겨우 한 마디 했다.

 “한 패군요.”

 “그 녀석이나 너나 결국 동네사람이야. 왼쪽에 사느냐, 오른쪽에 사느냐만 다를 뿐.”

 “........그러면 오늘 왜 나온 거예요? 날 도와주려던 게 아니었어요?”

 “그야.”

 

 라면, 이라고 할 뻔했다. 단일은 맥을 못 추고 불고 있는 토끼의 라면을 걱정스럽게 보았다. 덩달아 제 라면을 내려다본 토끼는 그릇 안에 답이 있나보다고 착각했다. 토끼는 한 손에 젓가락 한 짝씩 들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안 먹어?”

 “.....네?”

 “라면.”

 “.......”

 “거절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하지만 이유는 본인한테 직접 듣고 싶어. 아까처럼 상대를 난처하게 만드는 건 내 취미가 아니거든.”

 “특기 같습니다만.”

 

 토끼는 단일 쪽으로 라면 그릇을 밀어주었다. 조금 전까지 단일의 얼굴을 훔쳐보며 부끄러워하던 기색은 사라진지 오래다. 묶음 머리를 보란 듯이 어깨 뒤로 넘기고 팔짱을 꼈다. 토끼의 부탁은 해바라기의 얘기와 전혀 달랐다.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검은 눈동자가 토끼를 빤히 응시했다. 잘못 들은 걸까? 토끼는 생김새와 다르게 의뭉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갖고 싶은 남자가 있어요.”

 

 단일은 지난번과 같은 자리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칼과 도마만으로 집안의 분위기는 리드미컬했다. 소반에는 한소끔 끓인 된장찌개와 깍두기, 밥 두 공기가 있었다. 해바라기는 주변의 잡동사니에서 실수 없이 헤어밴드를 찾아냈다. 헤어밴드를 하자 피부가 한결 뽀얘보였다. 노란 머리지만 오히려 더 밝은 색이 어울릴 법한 외모였다. 이너컨츠에 박은 하얀 피어싱이 텔레비전 화면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해바라기는 마치 친정엄마처럼 단일이 먹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단일이 시선을 느낀 걸 알고 손을 내저었다,

 

 “먹어, 먹어.”

 “기분....좋아 보이네.” 단일이 마지못해 아는 척했다.

 “그래 보여?” 해바라기가 싱글벙글 웃었다.

 “응. 내 멱살 잡을 때도 이렇게 웃어주지 그랬어.”

 

 단일도 싱글벙글 웃었다. 다만 진심으로 해맑은 해바라기와 달리 단일의 미소는 오한이 날 정도로 섬뜩했다. 호선을 그린 입술이 오늘따라 붉어보였다. 해바라기가 합장한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리며 사죄했다.

 

 “미안! 정말 미안! 진짜 미안! 어제는 내가 흥분했어.”

 “농담이야. 멱살이라고 해봤자 옷만 늘어난 게 다니깐.” 단일은 귀찮은 듯 눈을 굴렸다.

 “나 정말 손버릇 나빠. 고칠게! 용서해줘. 난 형이 걔랑 진짜 사귀는 줄 알았지.”

 “사귈까봐.” 단일이 단조로운 말투로 말했다.

 “응. 그런 줄 알았잖아. 으응? 지금 뭐라고?” 해바라기의 안색이 금세 창백해졌다.

 “농담이야. 키우는 거면 몰라도.” 단일이 젓가락질을 멈추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 말도 농담이지?”

 “........” 방의 한 점을 노려보는 단일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하하.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인가보다.”

 

 해바라기는 어색하게 자문자답하며 밥 한 술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단일은 갑자기 생각난 듯 젓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그 자리엔 수건 두 어장이 걸린 작은 선풍기가 있었다.

 

 “302호. 갖고 싶은 남자가 있다네.”

 “응?”

 

 해바라기가 밥알을 씹다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몇 초쯤 적막. 볼륨을 높이지 않았는데 텔레비전 소음이 거실을 쩌렁쩌렁 울린다는 착각이 들었다. 단일은 남몰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까만 눈을 빛냈다. 한 일자를 닮은 눈매와 입술이 부드럽게 일그러졌다.

 

 “그것도 네가 의심하는 손님.”

 “거짓말.”

 

 해바라기가 즉각 대답했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무리도 아니었다. 한 달 전이었다. 해바라기는 스피드데이트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다른 이상형을 발견하여 눈부신 속도로 완쾌했다. 본인 체구만한 이삿짐을 영차영차 나르는 토끼에게 넋이 빠져있던 걸 단일은 바깥에서 하드를 먹으며 구경한 적 있었다. 해바라기 말로는 토끼가 고등학교 후배라던데 그래봤자 상대는 해바라기를 모르는 눈치였고 오히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을 빤히 보던 눈길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로부터 며칠 뒤, 프랜차이즈 카페 유니폼차림으로 집에 들른 걸 본 이후 간헐적으로 카페에 출석하는 해바라기였다.

 

 “과연 수상한 사람이 수상한 사람을 알아보는 걸까?” 단일은 노랫말처럼 질문을 흥얼거리며 다시 밥 먹는 데 집중했다.

 “나, 나는 그 녀석처럼 노골적으로 쳐다보지 않았어.” 해바라기가 입술을 내밀었다.

 “그게 더 음흉하거든.” 단일은 깍두기를 아삭 깨물었다.

 “형. 302호가 뭘 모르는 거야. 그 놈이 자길 미행한 걸 알면 그런 마음을 품겠어? 그, 그리고 정말 302호가 그런 말을 했어? 갖고 싶은 남자? 말도 안 돼. 순한 외모로 어떻게 그런 음란한 생각을 하지? 아아, 그건 카운터펀치라고. 아냐. 반칙이야.”

 “그런 말하면서 좋아죽겠다는 표정은 뭔데?” 단일은 오싹해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반전매력이 있었네. 히야, 귀여워.”

 “저기,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은데...그 반전매력 있다는 숙녀가 말이야. 네가 무서우니 나보고 마중 나와 달라더라. 네가 지켜준답시고 깜깜한 곳에 서 있는 게 얼마나 섬뜩했으면 그랬겠니.” 단일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지 그랬어? 집 앞까지 미행한 손님이 있었다고.”

 “곤란하다고.” 해바라기가 침울하게 말했다.

 “곤란하다니, 뭐가?”

 “그 자식, 매일 같이 카페에 간다고. 자신을 훔쳐보던 놈이 미행한 걸 알면 얼마나 무섭겠어.”

 

 해바라기가 밥맛이 뚝 떨어졌는지 젓가락을 툭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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