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민서의 일기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안녕,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야!
오늘은 내 생일이란다. 정말 오랜만에 맞은 주말 생일이여서 너무 기뻤어. 애들한테는 일주일 전부터 광고해놨지! 그런데 이번엔 생일선물 같은 거 사오지 말라고 했어. 그냥 파티 와서 축하나 해주고 밥이나 먹고 놀자구. 왜 그랬냐고? 뭐 물론 생일선물 받으면 기분이야 좋지. 그런데 막상 지금까지 애들한테 받은 선물들 한 번도 제대로 써 본적이 없어. 아깝지만 매일 버리게 되더라고. 그냥 생일날엔 애들이랑 막 노는 게 제일 최고로 좋은 생일선물인거 같애.
놀토도 아니라서 학교 끝나자마자 애들이랑 바로 혜화역으로 달려갔어. 그리곤 명동으로 갔단다. 교복 입고 말이야. 명동에 가니까 애들이 자꾸 VIPS가자고 하는 거야. 그런데 난 거기가 싫어. 거긴 주말엔 명동 한복판이라 사람이 너무 많거든. 대신 조금 빠져나와서 충무로 쪽으로 걸었어. 그러다 사거리에 있는 아웃백에서 생일파티를 했어. 아웃백 특유의 조명이 좀 어두운 것만 빼면 거긴 조금 낫더라구. 애들한테 먹고 싶은 거 있음 아무거나 주문하라고 했는데 다들 쭈뼛대는거야. 역시 고를게 너무 많으면 고르기가 너무 힘들어. 알잖아.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캔디병에 있는 사탕 중에 무슨 색부터 먹을지 한참 고민하는 것처럼 말야. 그래서 그냥 메뉴에 있는 거 종류별로 다 시켜봤어. 그랬더니 애들이 눈을 완전 동그랗게 뜨고서는 괜찮냐고 하는거야! 이런! 나를 뭘로 보고. 내가 보기엔 말라도 얼마나 잘 먹는다고!
막 한참 먹고 있는데 민서가 갑자기 생일선물이라고 뭘 주더라고.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역시 생일선물은 받아야하는 거였나봐.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니까. 맞아! 너도 민서 알겠구나. 그래 너를 사준 애 말야. 눈도 크고 무지무지 예쁜 애. 내가 실제로 본 애들 중에 제일 예쁜 거 같아. 얘가 자기 얼굴만큼이나 어찌나 예쁘게 포장했는지 민서한테 열어봐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열어봤단다. 포장도 이렇게 예쁜데 열어보면 얼마나 예쁠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열어보니까 분홍색 폭신폭신한 커버에 쌓인 니가 있더라. 그냥가방에 넣으면 더러워질까봐서 포장지로 다시 싸서 넣었어. 답답했다면 미안! 아, 민서한테 고맙다고도 못 했어!
파티 끝나고서 노래방도 가고 명동에서 해가 다 넘어갈 때까지 애들이랑 몰려다니면서 수다 떨었어. 이번 생일이 여태까지 제일 재밌었어.
벌써 잘 시간이야! 놀라워! 나 글 쓰는 것도 무지 싫어하고 일기는 초등학교 아기시절에나 써봤는데 일기가 이렇게 술술 나올 줄은 전혀 몰랐어. 음, 내일 다시 널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어. 아까도 말했지만 글 쓰는 거 무지 싫어하거든 헤헤.
민영이는 분홍색의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을 덮는다. 푹푹 찌는 난방에 민영이는 불쾌감을 느낀다. 방의 창문을 활짝 연다. 올 해는 웬일인지 벌써부터 북풍이 차다. 어두운 거실로 나간다. 아직 부모님 중 누구도 들어오시지 않은 게 분명하다. 민영이는 불은 켜지 않는다. 익숙하게 소파 옆에 있던 유리항아리의 뚜껑을 연다. 불이 꺼져 있어 이미 민영이의 원추세포는 제 기능을 하지 못 한다. 반 쯤 남은 사탕들 사이로 손을 넣는다. 몇 번 덜그럭 거리다 아무 색이나 집어든다. 가느다란 엄지와 검지를 사탕과 함께 입 안까지 넣었다 꺼낸다. 어금니와 볼 사이로 사탕을 넣는다. ‘갸드륵 갸르륵’ 소리를 내며 맛을 본다. 분명히 일기장 색과 비슷한 분홍색이다. 익숙한 딸기맛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