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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네크로맨서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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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지하철역
작성일 : 16-06-08     조회 : 798     추천 : 0     분량 : 4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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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하철역

 

 

 

 재민은 아까 일진들과 함께 도망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거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진들을 한 방에 골로 보내 버리는 그의 주먹질은 거부를 용서할 것 같지 않았다.

 재민이 주머니를 뒤져 가진 돈을 모조리 내밀었다.

 7,300원의 돈.

 “고맙다. 내가 꼭 갚아주마.”

 “아, 아니에요.”

 “어허, 내가 꼬맹이들 삥이나 뜯는 걸로 보여? 갚아준대도.”

 우진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깜빡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참. 나 휴대폰 없지. 어디 종이에 전화번호 적어줘 봐.”

 우진의 말에 재민은 시키는 대로 가방에서 공책 끄트머리를 찢어 전화번호를 적었다.

 자신의 번호를 그대로 적어야 하는지, 가짜 번호를 적어야 하는지 수십 번의 번뇌가 찾아왔다.

 ‘에잇, 어떻게 확인하겠어.’

 재민은 일부러 가짜 번호를 적었다. 괜히 나중에 자신을 불러내 또 돈을 뜯을 것 같아서였다. 한시라도 빨리 해코지를 당하기 전에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래. 형이 돈 갚을 때 연락할게.”

 “네. 안녕히 계세요.”

 안 갚아도 되니 제발 다시 보는 일이 없었으면 싶은 재민은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우진은 소각장을 나와 교정을 걸었다.

 “햐,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

 5년밖에 흐르지 않았다지만 그에겐 20년 만에 와보는 학교였다.

 “그럼 내 나이가 스물네 살인가? 어머니, 아버지도 50이 넘으셨겠네.”

 가족들을 생각하자 다시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참고 견딘 것은 언젠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리라는 간절함 덕이었다.

 “수아도 많이 컸으려나?”

 늦둥이 동생 수아가 두 살이었으니 어느덧 일곱 살이나 되었을 터였다. 가족들을 생각하자 우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학교를 나와 인도를 걷자 마주치는 사람마다 수군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우진의 차림이 말이 아니었다.

 차원 이동의 여파 때문인지 걸치고 있던 장비는 모조리 증발해 버렸고, 옷도 꼬질꼬질한 무명옷이었다. 신발도 가죽신을 신고 있어 사람들의 눈에 충분히 이상해 보일 만했다.

 “거참.”

 괜히 민망했으나 그렇다고 기가 죽을 우진은 아니었다. 옷차림 따위로 괜히 고개를 숙일 정도의 멘탈은 진즉 초월한 우진이었다.

 쪽팔려봐야 어차피 집에 갈 때까지만이다.

 우진은 애써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며 지하철역을 찾았다.

 

 “응? 웬 군부대야? 사고 났나?”

 지하철 입구에 군인들이 몰려 있었다. 무슨 훈련이라도 하는지 아예 초소까지 치고 근무를 서고 있었다.

 “허, 참. 뭐지?”

 우진은 마침 지나가는 행인에게 말을 붙였다.

 “저기요. 말씀 좀 물을게요.”

 “아, 안 믿어요.”

 마흔쯤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신경질적으로 답하며 벌레라도 본 듯이 발걸음을 빨리해 총총 사라졌다.

 뭐지? 기분이 묘한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지나가기에 얼른 그들을 붙잡았다.

 “저기요.”

 “아, 놓으세요. 저 도 같은 거 몰라요.”

 신경질적인 반응에 우진은 울컥했으나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도 믿으란 게 아니라……. 저기 군인들 뭐예요? 훈련 있어요?”

 우진의 물음에 여학생들이 마치 신기한 생물이라도 보듯 우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군인들이 던전 입구 지키는 거야 당연하죠. 아, 놔요. 저 학원가야 돼요.”

 여학생이 우진의 팔을 뿌리치고 불결한 듯 팔을 쓰다듬으며 멀어져 갔다.

 “하, 싸가지들.”

 그나저나 요즘은 지하철을 던전이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5년의 세월이 짧다고 느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요즘 애들 유행어인가.”

 자신이 학교 다닐 때도 한창 그랬으니까, 뭐.

 줄임말이나 은어는 인터넷이 발달하며 그 변형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으니 5년이나 옛날 사람인 우진이 모를 만도 했다.

 “어? 저긴 군인들 없네.”

 우진은 횡단보도 건너의 지하철 입구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길을 건넜다. 지하철 입구의 계단을 내려가니 감옥과 같은 쇠창살의 철문이 쳐져 있었다.

 “뭐야, 왜 막아놓은 거야?”

 어쩐지 오가는 사람들이 없다 했더니 아예 폐쇄해놓아 그런 모양이었다. 우진이 쇠창살 너머를 보니 지하철 통로의 불빛은 밝았다.

 철문엔 단단한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치 아파트 경비실 같은 작은 부스가 있어 안을 살폈다.

 열쇠 꾸러미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곤 가져와 자물쇠를 열어보았다.

 철컥.

 “뭐야? 왜 잠가놓은 거야?”

 우진은 열쇠 꾸러미를 부스에 가져다 놓고는 철문 너머로 향했다.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 보이는 통로는 사람 하나 없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양쪽으로 늘어선 지하상가도 한참 전에 장사를 접은 듯했다.

 “지하철 운행 안 하나? 아예 역을 폐쇄했나 보네.”

 역이 폐쇄되었다면 지하철을 운영할 리가 없었다. 문을 막아놓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우진이 막 발길을 돌려 나가려 할 때였다.

 

 <과천역 1번 출구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뭐지?”

 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하, 그 던전이 진짜 던전인 거야?”

 은어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머리가 지끈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우진이 한숨을 쉬며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들을 훑었다.

 

 <이미 공략된 던전입니다. 기본 몬스터들이 소환됩니다.>

 

 충분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우진은 당황은커녕 오히려 익숙한 기분마저 느꼈다.

 “아르펜 행성하고 너무 비슷한데?”

 

 우진이 지난 20년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였던 그곳. 아르펜 행성은 다름 아닌 게임 세상이었다. 아니, 게임 설정의 새로운 세상이라고 해야 하나?

 “지구가 변했단 거야? 아니면 내 눈에만 이런 거야.”

 우진은 고민해 봤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지하철을 타려 했을 뿐인데 던전으로 들어왔다. 꼴을 보아하니 지구도 5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 나가자.”

 지하철이 안 되면 버스를 타고 가면 될 일이다. 발길을 돌렸을 때 우진의 앞을 가로막는 투명한 결계가 있었다.

 

 <귀환석이 없습니다.>

 

 “허, 거참.”

 우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귀환석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르니 곤란했다.

 “괜히 잠겨 있었던 게 아니네.”

 한번 열어봤다가 아니면 다시 돌아나가려 했건만, 괜한 궁금증에 이제는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별수 없이 귀환석이란 것을 찾아야 탈출할 수 있을 듯싶었다.

 “어디 보자.”

 마법을 잃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단련된 몸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20년 동안 살아남은 그의 생존경험도 있었다.

 망해 버린 가게를 뒤져 보다 옷걸이 봉을 발견했다.

 끼리릭.

 간단히 돌려 옷걸이 봉을 꺼내 간단한 곤봉을 만들었지만 아쉬웠다.

 “너무 가벼운데.”

 옆의 상가를 둘러보다 보니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가운데 빠루가 있었다.

 부웅, 붕.

 “쓸 만하네.”

 우진은 빠루를 챙겨 쥐고 의자를 하나 들고는 바닥에 내려쳤다. 부서진 의자의 등받이를 뜯어내 대충 다듬자 몇 번 정도는 쓸 만한 방패가 만들어졌다.

 “가볼까?”

 귀환석이 어떻게 생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기본 몬스터들이 소환되었다고 했다. 이 정도 대비로 될까 싶어 불안했지만 어차피 뒤로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에 의존해 걷던 우진은 지하철 화장실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끈적끈적한 느낌.

 슬쩍 몸을 숙여 부서진 타일 조각을 주워 던졌다.

 채앵.

 유리문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에 그것이 반응했다.

 쿠르.

 괴상한 괴성을 흘리는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인가 싶을 정도의 괴상한 생김새였다. 강아지처럼 생겼는데 토끼처럼 큰 귀를 가지고 있었다.

 지구엔 존재하지 않는 생물이지만 우진은 너무 잘 알고 있는 몬스터였다. 아르펜 행성에서 수없이 마주쳤던 몬스터.

 “드레빗.”

 크와.

 드레빗은 두 쌍의 송곳니를 위협적으로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뒷다리를 이용한 점프 돌격은 드레빗의 장기이자 유일한 공격 수단이었다.

 쾅.

 방패를 들어 막자마자 빠루를 휘둘렀다.

 꾸룩.

 머리통을 때리자 드레빗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 드래빗의 목줄을 누르고는 빠루의 끝을 이용해 찔렀다.

 익숙한 몬스터의 등장에 그리 위협적이지 못한 놈이라 하더라도 방심은 금물. 죽일 수 있을 때 확실히 죽이는 것, 몬스터를 상대할 때 생존에 필요한 기본이자 필수 덕목이었다.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드레빗의 몸이 축 처지자 우진은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드레빗은 항상 암수가 함께 다니는 특징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드레빗 하나가 뛰어올라 무시무시한 아가리를 벌린 채 날아오고 있었다. 의자 등받이로 만든 방패는 이미 이전의 공격을 막으며 박살이 난 상태.

 우진은 빠루를 들고 그대로 내뻗었다.

 콰직!

 뀌엑.

 빠루는 정확히 드레빗의 아가리를 관통해 뒤통수에 삐죽이 튀어나와 버렸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교한 찌르기로 내지른 한 수가 카운터가 되었다.

 “어째, 익숙한데?”

 우진은 처음으로 아르펜 행성에 소환되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서웠는지. 그래도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라 할 만했다.

 “아르펜 행성의 몬스터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지? 이 던전이라는 곳도 찜찜한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익숙해도 너무 익숙했다.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부터 시작해서 몬스터의 출현까지, 아르펜 행성이었다면 이상할 것이 하등 없었겠으나 이곳은 지구.

 지구의 지하철역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러다 레벨 업이라도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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