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레벨 업!
우진이 아르펜 행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곳은 게임 세상과 같았다. 아니, 게임에 익숙한 지구인인 우진이기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 세계의 법칙일지도 모르나 우진에겐 어쨌든 게임처럼 느껴졌다. 차이가 있다면 가상의 세계가 아닌 실체였다는 것이지.
레벨이 존재했고 우진은 만렙의 네크로맨서로 성장했다. 여정의 끝을 보진 않았으나 차원의 관리자를 만나 미련 없이 지구로 귀환했다.
그때 이룩했던 모든 마법을 잃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구에서는 필요치 않은 능력이라 생각했으니까.
헌데 어떻게 된 일인지 던전이라는 곳에 들어온 지금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드레빗 정도는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그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있다면 위험할지도 몰랐다.
더 강한 몬스터를 만나기 전에 귀환석을 얻어 던전을 탈출하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
“아르펜과 비슷하다면 귀환석이란 것도 몬스터가 가지고 있거나 뭔가 특유의 기운을 풍길 텐데.”
능력을 가진 돌이나 물건은 그 자체로 기운을 풍긴다. 마치 살기를 내뿜는 몬스터의 기척처럼 말이다.
우진은 깨진 타일 조각을 쥐곤 날카로운 부분으로 드레빗의 가죽을 찢어 안을 헤집어보았다.
두 마리 모두 살펴 보았으나 몬스터들이 품는 특유의 마나석인 혈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치 없는 놈들이네.”
우진은 헤집어진 드레빗의 시체를 놔두고 한쪽 기둥에 슬쩍 숨었다. 피 냄새를 맡고 근처의 몬스터가 와도 좋았고 아니더라도 잠깐 추스르고 다시 탐색을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퀴릭?
드레빗 두 마리가 나타나 죽은 드레빗의 시체를 살피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생긴 것은 개처럼 생겼어도 후각은 그리 발달하지 않은 드레빗은 청력으로 사물의 위치를 파악했다.
빠직.
일부러 크게 내디딘 발에 깨진 타일 조각들이 밟히며 우진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퀴이!
드레빗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어 훌쩍 우진을 향해 날았다.
우진이 빠루를 쥐고 야구 스윙을 하듯 후려쳤다.
퍼억, 퍽!
시간차를 두고 날아드는 드레빗의 머리통을 연달아 깨부쉈다. 그와 함께 눈앞에 그 메시지가 나타났다.
<레벨 업!>
“허, 진짜야?”
우진은 황당함에 얼른 상태창부터 열어보았다.
레벨 : 1
이름 : 강우진
클래스 : 네크로맨서(전승)
등급 : 미배치
업적 : 4
마력 : 0/0 기력 : 0/0
<스탯>
근력 : 15, 민첩 : 13, 체력 : 17, 지능 : 15
마력 : 0, 기력 : 0, 회복 : 0, 치유 : 0, 지배 : 0
미분배 포인트 : 99
<스킬>
조합상자 소환(Lv 1)(전승 스킬)(분배 불가능)
업적 상점 이용(Lv 1)(전승 스킬)(분배 불가능)
미분배 포인트 : 99
처음 아르펜 행성에 소환되었을 때와는 영 딴판인 상태창을 보곤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 사라진 게 아니었어.”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동안 아르펜 행성에서 이룩했던 모든 힘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전승.
말 그대로 만렙의 캐릭터가 1레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러 가지 혜택을 받으면서 말이다.
척 보기에는 전승 스킬 두 가지가 생겼고, 스탯과 스킬 포인트가 전승 전 레벨만큼 주어진 것 같았다.
“클래스는 똑같이 네크로맨서라.”
네크로맨서로서 모든 것을 이뤘다. 궁극이라는 언데드들까지도 지배하에 부려봤었다.
나쁠 게 없었다.
서울이 이상하게 변해 버린 것 같은 지금.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힘이 생겨 나쁠 일은 없었다.
먼 미래를 볼 것도 없이 당장 던전을 안전하게 탈출하자면 힘이 필요했다.
우진은 레벨 업을 겪자마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다.
능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초기화 되었을 뿐이라 생각하니 위협에 대처할 심리적 피로가 상당히 낮춰진 기분이었다.
괜히 피 냄새를 맡고 몬스터들이 몰려올까 싶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망가진 상점이 늘어선 통로로 들어오자 우진은 본격적으로 새로 생긴 전승 스킬을 살펴보았다.
<조합상자>
여러 가지 재료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물건을 얻어낼 수 있다. 혹은 물건을 넣어 핵심적인 재료를 추출해 낼 수도 있다.
“어떻게 사용하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스킬인지라 어떻게 사용하는가 싶어 시동어도 내뱉고 여기저기 찾다 인벤토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벤토리의 하단에 조합상자가 놓여 있었다. 건드려 보니 또 다른 인벤토리가 열렸고 아래에 [조합], [추출]의 두 가지 버튼이 있었다.
“쳇, 인벤토리도 확장하기 전으로 돌아갔네.”
인벤토리는 겨우 3칸의 공간뿐이었다. 레벨이 오르면서 확장하면 더 늘어나지만 아무런 전승 특전이 없는 듯해 아쉬웠다.
물론 가장 아쉬운 것은 그동안 모은 아이템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우진은 또 다른 전승 스킬 업적 상점을 건드렸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니 업적 상점은 시동어로 활성화가 가능했다. 몇 번 불러내는 걸 반복하자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불러오는 것이 가능했다.
상점은 스킬북과 장비, 소모성 아이템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었다. 구입에 필요한 대금은 업적 포인트.
“재밌네.”
아르펜 행성에서는 업적 상점 따위는 없었다. 이건 마치 인터넷 쇼핑을 아무런 장소의 구애도 받지 않고 하는 것과 같아 보였다.
“살 수 있는 게 없네.”
장비라고 해봐야 어차피 살 수 있는 것들은 조잡한 것들 뿐. 지금 당장 크게 써먹을 것이라곤 스킬인데 가장 하위의 스킬들도 10의 업적 포인트를 필요로 했다.
우진이 고르고 고른 스킬은 세 가지.
[탐색], [감지], [해골병사 소환]
모두 업적 포인트 10을 필요로 하는데 탐색은 주변의 가치 있는 물건들을 찾도록 도와주는 스킬로, 귀환석을 찾아야 하는 지금 필요한 스킬이었다.
감지는 위험을 사전에 보다 명확히 알려주는 패시브 스킬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필수 스킬이고, 해골병사 소환은 네크로맨서의 기본 스킬 중 하나였다.
전승의 영향 덕분인지 이미 클래스가 정해져 버린 탓에 스킬을 익히는 데 제약이 생겨 버렸다.
공통의 마법 스킬이나 무력 스킬은 익힐 수 있지만 클래스 스킬은 오직 네크로맨서의 것만 익힐 수 있었다.
“뭐, 지금 고민해 봐야 어차피 포인트도 모자라네.”
지금 쌓인 4의 포인트를 보자면 방법은 명확했다. 드레빗 하나에 1의 포인트. 여섯 마리의 드레빗을 더 해치우면 스킬 하나를 구할 수 있다.
당장 몬스터를 안전하게 잡자면 전투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스킬이 아니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스탯>
근력 : 30, 민첩 : 30, 체력 : 30, 지능 : 30
마력 : 10, 기력 : 0, 회복 : 10, 치유 : 10
지배 : 9
미분배 포인트 : 0
우진은 분배가 완료된 스탯창을 보며 빠루를 휘둘러보았다.
부웅, 붕.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파공성이 났다. 슬쩍 몸을 움직여 보니 아까보다 몸이 가벼웠고 그것들이 적용된 반응 속도는 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보통의 인간들이 10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지금 우진은 보통의 성인 남성보다 세 배 더 강력한 근력을 가졌고 세 배 더 빠르며, 세 배 더 체력이 좋았다.
“세 배 더 똑똑한 건 모르겠고.”
확실히 기억력이라던가, 암산 능력이 좋아진 듯 뇌의 회전이 빨라진 기분이었지만 당장 체감되는 것은 신체적 움직임이 컸다.
“자, 가보자고.”
목표는 명확하다.
드레빗 여섯 마리를 해치운다. 탐색 스킬을 구한다. 귀환석을 찾는다. 그리고 던전을 탈출한다.
빠루를 든 우진이 다시금 아래를 향해 움직였다.
***
“하, 더럽게 많네.”
드레빗은 아르펜 행성에선 발에 챌 정도로 많은 몬스터다. 그만큼 마주치기 쉽고 해치우기도 쉽다.
하지만 그것도 연속으로 좁은 통로에서 마주치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우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계단을 통해 내려가자마자 맞닥뜨린 드레빗들을 차례로 해치우며 착실히 업적 포인트를 모았다. 어둑한 통로를 지나며 해치운 드레빗만 27마리.
업적 포인트를 이용해 필수로 필요한 탐색과 감지 스킬을 구입했다. 구입과 동시에 인벤토리에 생겨나는 스킬북을 그대로 익혔다.
한 번에 마력 1포인트를 소모하는 탐색 스킬을 시전해 보았지만 주변에 귀환석이라 불릴 만한 아이템이 보이지는 않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실행해 보았지만 귀환석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남은 장소는 오직 한곳.
“저길 내려가야 하나?”
우진은 계단 난간에 숨어 슬쩍 아래를 보았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지하철이 정차해 있는 역사 안.
한눈에 보기에도 20마리는 넘는 듯한 드레빗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좁은 통로에서 서너 마리 정도야 동시에 상대 가능하지만 저렇게 넓은 곳에서 20마리가 넘는 드레빗에게 포위된다면 다칠 것이 뻔했다.
“후, 역시 혼자 움직이는 건 성격에 안 맞아.”
우진은 드레빗의 피로 얼룩덜룩해진 빠루를 보며 피식 웃었다.
업적 상점을 활성화한 우진은 남은 포인트로 [해골병사 소환] 스킬북을 구입했다.
<해골병사 소환>
몬스터의 시체를 제물 삼아 [힘 5, 민첩 8, 체력 5]의 해골병사를 소환한다.
소모 마력 : 1, 필요 지배력 : 1
우진은 추가로 27마리의 드레빗을 잡으며 두 번의 레벨 업으로 3렙이 되었다. 레벨 업마다 다섯 개씩 오른 스탯 포인트 10을 나눠서 마력과 지배에 투자했다.
마력 : 15, 지배 : 14
15마리의 해골병사를 소환할 수 있고 그중에 14마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배력 수치를 벗어난 소환수는 통제력을 잃고 그저 몬스터가 되어버리고 만다.
“일어나라, 똘마니들아.”
우진은 궁극에 이른 네크로맨서. 전승되어 쪼렙부터 시작한다지만 이미 왔던 길을 다시 걷는 격. 주문이나 시동어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익숙하고 숙달된 마법은 의지만으로도 발현이 가능했다.
쿠르르.
근처에 있던 드레빗의 시체 셋이 터지며 해골병사 셋이 소환되었다. 워낙에 약한 놈들이다 보니 후반에는 거의 쓰지도 않았던 놈들이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가자.”
아직 후방 지원 마법은 없지만 드레빗 정도라면 상관없었다. 우진과 해골병사 셋이 계단을 내려가자 드레빗들이 반응하고 달려들었다.
“돌격!”
키에엑!
해골병사들이 괴성과 함께 뼈칼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