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라진 가족(1)
퍼억!
키엑.
드레빗의 위협적인 박치기에 해골병사 하나가 한 방에 와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운 좋게 팔과 어깨가 깨물렸다.
뼈뿐인 해골병사들에게 이빨 공격이야 위협적일 것도 없었다. 빈약한 힘에 의한 공격력도 별 볼일 없어 그들이 휘두르는 무딘 뼈칼은 드레빗에게 별 효용이 없었다.
하지만 드레빗의 위협적인 첫 돌격을 막아낸 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할 일을 다했다.
퍼억, 퍽!
우진이 휘두르는 빠루에 드레빗들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순식간에 세 마리의 드레빗을 죽여 버린 우진이 그들을 매개로 해골병사 셋을 추가로 소환했다.
키키킥.
하나가 부서졌지만 오히려 수가 많아진 다섯 마리의 해골병사가 우진의 앞을 믿음직스럽게 막아섰다. 우진은 의지로써 그들을 조종하며 앞으로 나섰다.
퀴엑!
부서진 지하철의 창문들 사이로 드레빗들이 우글거리며 달려 나왔다. 그 수가 엄청나 우진이 순간적으로 멈칫할 정도였다.
“막아!”
다섯 마리의 해골병사가 방벽을 쌓듯 일렬로 늘어섰다.
퍼퍼퍽!
부나방처럼 뛰어든 드레빗들이 해골병사들의 사지를 향해 박치기를 날렸다.
퍼석!
가운데 있던 해골병사가 쓰러지며 그 틈을 비집고 드레빗 하나가 정확히 우진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우진의 빠루가 4번 타자의 스윙처럼 허공을 갈랐다.
“한 놈 추가!”
저만치 튕겨 나간 드레빗의 시체가 터지며 해골병사 하나가 더 소환되었다.
해골병사들이 버틴 가운데 한데 엉겨 붙은 드레빗들을 향해 우진의 빠루가 타작하듯 내리쳐졌다.
“죽어라. 죽어!”
퍼퍼퍽!
우진은 드레빗들의 숨통이 끊어지는 족족 해골병사로 소환해 버렸다.
<마력이 부족합니다.>
우진의 마력은 15.
열다섯 번의 소환이면 마력이 동나 버린다. 마력의 회복은 자연적 회복과 아이템이나 스킬을 이용한 회복이 있었다.
스탯 [회복]을 올리게 되면 마력의 자연 회복력이 빨라진다. 마법사에게 지능, 마력, 회복은 굉장히 중요한 스탯이었다.
스탯 [치유]는 자연적인 신체의 회복을 의미했다. 자가 치유력과 무력 스킬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기력]의 보충 속도를 올려줬다.
전사들에게 아주 중요한 스탯.
우진은 회복, 치유 모두 10의 스탯치를 가지고 있었다. 회복이야 시간당 10의 마력을 회복시켜 줄 것이고, 중요한 것은 10의 치유.
애초에 하나도 올리지 않은 기력 따위 보충하나 마나 상관없지만 10 정도의 치유 수치만으로도 어디 긁히고 까진 상처쯤은 몇 분 만에 지혈이 되고 몇 시간 만에 아물어 버린다.
하루만 지나도 얕은 상처 따위는 흉터도 남지 않을 정도로 치유될 정도였다.
“다 뒤져라!”
우진은 자가 치유력을 믿고 빠루를 든 채 돌진했다.
부웅, 퍽! 부웅, 퍽!
이미 인간의 범주를 초월한 그의 움직임에 빠루가 휘둘러질 때마다 드레빗들이 고꾸라졌다.
지하철역을 가득 채운 수십 마리의 드레빗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레벨 업!>
우진의 레벨이 4가 되며 떨어졌던 마력 수치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하, 목말라 죽겠네.”
우진은 드레빗의 시체 밭이 되어버린 역을 두리번거리다 자판기로 향했다. 이미 부서져 버린 자판기의 문을 뜯어냈다.
꽈직.
우진의 괴력에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던 자판기의 문이 아예 뜯어지며 몇 개의 캔이 눈에 들어왔다. 우진은 콜라 캔을 하나 집어들고 바람을 후 불었다.
쌓인 먼지가 날아가니 비교적 온전한 모습인지라 마셔도 될 듯했다.
딱, 치익.
캔을 열어 미지근한 콜라를 벌컥 들이켰다.
“크아. 꺼으으으.”
부글거리는 가스에 트림을 시원하게 내뱉은 우진은 피식 웃었다.
던전이 되어버린 지하철역에서 괴물들을 쓰러트렸다.
아직도 아르펜 행성인 듯 착각마저 들었으나 근 20년 만에 느껴보는 탄산음료의 시원함에 지구로 귀환한 것이 실감이 났다.
“이제 진짜 집에 가보자고.”
우진이 회복된 마력으로 탐색 스킬을 시전했다.
“으음.”
망가진 지하철의 기관석 쪽에서 반짝이는 은은한 빛이 있어 따라가 보니 그곳에 손가락만 한 보석이 놓여 있었다.
은은한 녹색의 그것은 우진이 손에 쥐자 빛을 잃었다.
<귀환석을 획득하였습니다.>
우진은 그것을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결계의 근처에 다다르자 손에 쥐고 있던 귀환석이 빛을 내며 흩어져 결계에 닿았다.
츠츠츳.
결계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우진이 발길을 옮겨 과천역 1번 출구의 계단을 밟았다.
***
“으으, 싸는 줄 알았네.”
오준환은 9급 공무원이다. 공략 완료되어 한 달 동안 폐쇄된 [과천역 1번 출구] 던전의 출입통제요원으로 발령난 지 한 달.
별다른 사고 없이 파견 기간 한 달을 꽉 채웠다.
이제 내일이면 본청으로 출근하는데 급히 화장실을 다녀온 준환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뭐, 뭐여?”
잠겨 있던 던전의 출입구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아찔함에 하늘이 노래졌다.
“미, 민간인이 들어갔나? 하, 시발. 좆됐네.”
열린 입구 너머를 보니 결계가 생성되어 있었다. 누군가 던전 안에 있다는 신호.
“하, 시발. 빨리 구조요청 날려야겠네.”
드레빗이 각성자들에게나 하위 몬스터로 분류되지 일반인에게는 괴물이다. 오준환이 재빨리 전화를 걸려는데 결계가 흐려지며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어어?”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준환은 그대로 몸이 굳었고 우진은 그런 준환을 마주 보며 놀랐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 저 문을 따고 들어간 건 그냥 호기…….”
“가, 각성자입니까?”
준환의 물음에 우진이 생각했다. 그가 말을 뱉기도 전에 준환이 말을 쏟았다.
“후우, 10년 감수했네. 여기 출입 기록 좀 남겨주십시오. 어휴, 다행이네, 다행. 근데 얻을 것도 없는 던전엔 왜 가셨습니까? 솔로플로 클리어한 거 보니 꽤 강하신 분 같은데.”
우진은 그가 건네주는 던전 출입기록일지에 대충 이름과 소속을 갈겨쓰고는 말을 아꼈다.
‘왜 가긴. 지하철 타고 집에 가려고 그랬지.’
제대로 변명할 말이 없으면 침묵이 제일이다. 상대가 알아서 변명거리를 던져 주니 말이다. 사인을 마친 우진이 당당히 되물었다.
“가도 됩니까?”
“아, 네. 가셔도 됩니다.”
우진은 몇 걸음 걷다 뒤돌아서 물었다. 5년이란 세월은 짧은 시간이 아닌 모양이다. 던전도 생기고, 각성자란 것도 생긴 것을 보니 말이다.
“근데, 요즘 버스 요금 얼맙니까?”
“예?”
뭐지? 각성자는 거의 부자라던데.
오준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
“세상 참 많이 변했어.”
우진은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을 보며 중얼거렸다. 버스 요금이 300원 오른 것보다 더 놀라운 변화는 도로의 차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버스에 달린 텔레비전에서는 ‘어디 어디 지하철역 몇 번 출구가 공략에 성공했다’ 등등의 뉴스를 흘리고 있었다.
‘공략에 성공하면 던전에 따라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안전. 실패하면 안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뉴스는 5년간 세상과 단전되어 있었던 우진에게 현실과의 괴리를 좁혀 주었다.
해외토픽으로 도쿄의 어느 지하철역이 터져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군대를 동원해 막아냈다고 했다.
‘역세권도 옛말이군.’
언제 공략에 실패해 몬스터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폭탄을 옆에 두고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하철역 근처에 사느니 차라리 원전 옆이 안전하다는 것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서울은 지하철로 못 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지하철이 촘촘히 연결된 대도시다. 어딜 가나 몬스터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었다.
서울의 인구가 확 줄어든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 인구가 줄어드니 교통량도 확 줄었다. 나는 듯이 달려간 버스가 멈춰 섰을 때 우진은 눈앞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지, 집이…….”
우진의 집이었던 아파트가 사라져 있었다.
“…….”
너무 당황스러우면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본래 5층짜리 아파트였던지라 재건축,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그가 사라진 5년 사이에 이렇게 으리으리한 빌딩이 들어설 줄은 몰랐다.
- 해머길드.
집이 있던 곳엔 척 봐도 아파트가 아니라 사무실 빌딩같이 생긴 건물이 위압적으로 솟아 있었다.
근처에서 빌딩을 구경하는 우진을 정문에 서 있던 경비가 수상히 여기고 다가왔다.
“뭡니까?”
다짜고짜 묻는 경비병을 보며 우진은 욱하던 화를 내리눌렀다. 마음에 안 든다고 바로 죽여 버리고, 멋대로 그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일은 아르펜 행성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곳은 지구.
우진은 억지로 화를 참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잠시 그러고 있자 어느 정도 화가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여기 살던 사람들 어디 갔습니까?”
“엥?”
“여기 빌딩 짓기 전에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
“아니, 이 사람이 그걸 왜 나한테…….”
경비는 우진을 향해 눈을 치켜뜨다 깜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사람 눈이 저렇게 무서워도 된다는 말인가.
“나, 나야 모르지. 빌딩 지어지기 전에 여긴 폐허였는데.”
“폐허?”
우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흉흉한 기색에 경비가 식은땀을 흘렸다.
5년 전 던전쇼크 때 죽은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당시 지하철을 이용하던 사람들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죽었다.
한 달 동안 클리어하지 못하면 던전이 터진다.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때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또 부지기수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처하기엔 서울은 너무 거대하고 굼떴으니까. 몬스터들의 난리로 미사일이 떨어진 곳도 있었고, 난동에 엉망이 된 곳도 많았다.
“모, 몬스터들 난리 때 폐허 된 곳이 지천인데 왜 여기서 난리요?”
경비의 말에 우진은 속으로 분노를 다스렸다.
‘침착하자. 침착해.’
엄한 데 화풀이할 일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살아 있다, 살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겨우 이성의 끈을 유지할 수 있었다.
괜히 지레짐작하고 날뛰는 건 우스운 일이다. 이성적인 마법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후, 겨우 5년이다. 찾을 방법은 많다.’
20년을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5년이 흘렀다. 그래, 겨우 5년이다. 구청에 가보면 이전 주소가 남았을 것이다. 등본만 떼봐도 사망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아, 나 주민등록번호도 모르는데.’
주민등록증은 고2 때 발급받았지만 지금에야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민등록번호야 그의 모교를 찾아가면 그만이다.
학생기록부만 뒤져 봐도 알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그가 잊어버린 부모님의 휴대폰 번호를 알 수도 있는 일이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수록 편안한 기분이었다.
그래, 가족들은 모두 안전하다. 아직 찾지 못했을 뿐. 이미 시간은 6시를 지나고 있어 학교를 찾아가기도, 구청을 가기도 애매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내일 아침을 맞이할 숙소와…
꼬르륵.
우진이 주머니를 찔러보니 5,800원의 돈이 만져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빌딩의 길 건너 식당가가 즐비했다.
우진이 횡단보도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