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더보기
작가연재 > 현대물
서울역 네크로맨서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6.8
  첫회보기 작품더보기
 
7화 - 재회
작성일 : 16-06-08     조회 : 858     추천 : 0     분량 : 4911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7. 재회

 

 

 

 “우진아, 우리 우진이 맞구나. 우진이 맞아.”

 어머니는 우진을 붙잡고 한참이나 울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우진이 5년 만에 살아 돌아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간 어디 있었던 게냐?”

 “말하자면 길어요. 그보다 다른 가족들은 어디 있어요? 집 가보니까 없어졌던데.”

 “수아는 유치원 가 있지. 네 아비는…….”

 어머니는 말을 하다 말고 또다시 울먹였다. 좋지 못한 예감에 우진은 두근거리던 심장이 싸늘히 식는 느낌이었다.

 “가요. 집으로 가서 이야기해요.”

 “그래. 그러자꾸나. 집으로 가자.”

 어머니는 우진이 이대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까 두 손을 꼭 쥐고 교무실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며 담담히 말하는 어머니를 통해 그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날 퇴근 도중 던전쇼크에 휘말리셨다. 그때 당시 지하철을 이용하던 그 수만 명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시체조차 찾지 못한 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홀로 수아를 보살피며 살아야 했다.

 집안의 가장을 잃고 아들마저 행방불명이 되었음에도 어머니가 버틴 것은 어린 수아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집안을 홀로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의 힘겨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는 던전쇼크로 똥값이 되었고, 혼란스러운 서울에서 그동안 가정주부로만 지낸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수아마저 아프자 집안의 재산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제는 정말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

 정말 아등바등 버틴 5년이었다.

 “살았으니 됐다.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그때 지하철이라도 탄 줄 알았구나.”

 어머니는 우진이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감사한 듯싶었다.

 버스는 한 시간을 달려 본래 그가 살던 집 근처로 이동했다. 해머길드의 본사 빌딩이 차지한 그 블록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닥다닥 붙은 빌라촌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너나 네 아비가 돌아올까 싶어서 가까운 데로 이사했단다.”

 던전쇼크 당시의 행방불명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어머니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5년 만에 아들이 돌아왔으니 그에 대한 보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한참 돌아 어느 한 빌라로 향했다. 아주 작은 원룸이었는데 재민의 집보다 더 좁았다.

 거기에 쌓아놓은 짐도 많아 더 비좁게만 느껴졌다.

 “여기 꼼작 말고 있어라. 내 유치원에 들러 수아 찾아오마.”

 어머니는 우진을 원룸에 홀로 남겨두고 집을 나서셨다. 우진은 좁디좁은 방을 가득 채운 상자들을 보며 궁금증에 하나를 풀어보았다.

 “아…”

 상자엔 다름 아닌 자신의 옛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다른 상자들을 열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자신의 옷은 물론, 아주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까지도 들어 있었다.

 5년 전 아파트에 살던 그때의 짐들을 모조리 원룸에 구겨 넣었으니 집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물건들을 버리지 못한 연유를 알 듯해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돌아온 수아는 말똥말똥한 얼굴로 우진을 올려다보았다. 인상이 창백해 보이지만 하얀 피부가 귀엽게만 보였다.

 우진의 기억 속 두 살 아기는 일곱 살의 귀여운 꼬맹이가 되어 있었다.

 “수아야, 오빠야. 인사해야지.”

 “오빠?”

 어머니의 옷깃을 잡고는 경계하듯 올려다보는 눈과 마주쳤다. 우진은 최대한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수아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수아야, 잠깐 오빠랑 놀고 있을래? 엄마가 금방 맛있는 밥해 줄게.”

 “응? 엄마, 식당 안 가?”

 “그럼. 오늘 하루 쉬는 날이란다.”

 어머니는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점심이건만 진수성찬을 차리셨다. 고기 반찬을 보며 유난히 신이 난 수아를 보면 평소에 자주 먹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흐뭇하게 자신을 보시는 어머니를 보며 그에 보답하듯 우진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세 공기를 비우고서야 숟가락을 멈췄다.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인간의 경계심을 낮추는 아주 좋은 수단이 되곤 한다.

 수아는 금방 적응했는지 ‘오빠, 오빠’ 소리를 잘도 조잘대며 우진에게 달라붙었다.

 경계심이 없다기보다는 애정에 굶주린 듯해 보이는 그 모습에 우진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수아는 유치원 갔다 오면 혼자 노는 거야?”

 “응. 엄마 엄청 고생하셔. 그래서 매일 혼자 놀아.”

 일곱 살짜리의 대견한 말에 우진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 참. 나 말고 미미 머리 빗겨 줘야지.”

 “아, 으응.”

 우진은 수아가 건네주는 미미라는 바비인형의 머리를 손가락만 한 빗으로 빗겨주었다.

 우진은 수아와 인형놀이를 하면서도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에게 시선이 가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5년 만에 연로해지신 기분이다. 설거지를 하던 어머니는 벨 소리에 전화를 받더니 급히 화장실로 가서 통화를 했다.

 [아니, 한창 바쁜 시간에 그렇게 가는 게 어딨어요? 당장 돌아와요.]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에요. 연차로 안 될까요?”

 [아니, 이 아줌마가. 쥐꼬리만 한 식당에 연차가 어딨어요? 평소에도 딸내미 아프다는 핑계로 잘도 빠지면서. 잘리기 싫으면 당장 돌아와요!]

 일반인에 비해 몇 배는 예민한 청각의 우진은 작게 소곤거리는 통화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대강의 사정을 파악한 우진은 가슴에 돌을 얹어놓은 듯 묵직한 기분이었다.

 화장실을 나온 어머니는 급히 설거지를 마치고는 미안한 얼굴로 우진과 수아에게 말했다.

 “수아야, 미안한데 오빠랑 좀 놀고 있을래?”

 “음, 괜찮아. 오빠랑 놀고 있을게.”

 옛 기억이야 없을 텐데도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잘도 오빠하고 따르는 수아가 귀엽기만 했다.

 “우진아, 미안해서 어쩌지?”

 우진이 넉넉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그래. 금방 다녀오마.”

 어머니가 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수아가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피, 맨날 바빠. 수아는 맨날 혼자야.”

 울먹이는 수아를 보며 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야. 오빠가 있잖아.”

 “치, 언제 봤다고 오빠래.”

 “허허, 진짜 오빠 맞아. 너 어릴 때 기억 안 나? 내가 기저귀도 갈아주고 했는데.”

 “나 이제 쉬 안 싸!”

 우진은 투덜거리는 수아를 달래 놀아주었다. 저녁쯤이면 오실 줄 알았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우진은 손수 요리를 시작했다.

 아르펜 행성에서 노숙은 흔한 일이었고 요리는 우진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까 장을 봐온 식재료들이 몇 남아 있었다.

 

 우진은 간단히 계란을 곁들여 야채볶음밥을 해내고는 수아와 나눠 먹었다. 어머니가 돌아온 것은 9시가 다 되어서였다.

 “미안. 엄마가 늦었지? 밥은 어떻게 했니? 내일 우진이 너 휴대폰부터 사야겠다.”

 어머니는 우진과 연락이 되지 않아 어지간히 마음 졸이며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좁은 원룸에 이부자리를 펴고 눕자 몸을 틀기도 비좁았다. 수아는 금세 잠들었으나 어머니도 우진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네가 돌아와서 엄마는 참 좋단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었고 우진은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건 아니야.’

 우진은 무너진 건물에 깔리기라도 한 듯 답답한 심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부산스러운 아침을 맞이해 수아가 유치원으로 등원하고 어머니도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우진아, 구청 가서 주민등록증부터 재발급받아라. 엄마가 퇴근하면 이따가 같이 휴대폰이나 보러 가자. 어디 가지 말고,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아니다. 배고프면 요 앞에 식당에 와서 먹으렴. 마트 앞에 승미 식당이다.”

 “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우진은 모두가 출근하고 홀로 남게 되자 기분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할 일이 많았다.

 행방불명 신고도 취소해야 하고 구청에 들러 주민등록증도 재발급받아야 했다.

 고3 때 소환되느라 졸업도 못했다. 검정고시도 봐야 했고, 백수로 살 것도 아니니 취업도 해야 했다.

 ‘돈을 벌어야 해.’

 바쁜 어머니도 그랬고 매일 홀로 지내야 하는 수아도 안타까웠다. 이제 이 집안의 가장은 자신이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많이 벌어야 해.’

 공부를 다시 해도 되고,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도 된다. 우진은 빠르게, 그리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운명처럼 느껴졌다.

 아니, 꼭 자신을 끌어들이는 악마의 손짓과 같았다.

 ‘각성자.’

 우진은 어머니가 쥐여 준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석 장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머니가 박스에 고이 간직해 둔 자신의 옷을 꺼내 입고는 집을 나섰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행방불명 신고도 취소했다. 은행에 들러 자신의 계좌를 개설하고는 휴대폰 가게에 들러 휴대폰도 하나 구매했다.

 “이게 요즘 가장 잘나가는 제품입니다, 고객님. 내구력이 남달라 유명한 각성자들도 많이 쓰고 있는 모델입니다.”

 판매원의 추천으로 산 휴대폰을 쥐고 어머니의 번호를 등록해 메시지를 보냈다.

 ‘집 근처에 자취하는 아는 동생이 있어요.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며 검정고시라도 준비할까 봐요.’

 우진의 메시지에 당장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고 불안해하는 그녀를 달래느라 한참을 통화해야 했다. 공부를 하기에 지금 집의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그녀도 마지못해 허락했다.

 “후, 미안하긴 하지만 다음에 신세 갚지 뭐.”

 

 재민의 집은 우진의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걸어가도 될 정도였기에 큰 집을 구하기 전에 당분간 지내기에 가장 적당했다.

 우진은 꼬깃한 메모지를 펴 도재민의 번호를 입력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연결음이 울리고 곧 전화를 받았다.

 [네, 동진인력 박휘소입니다.]

 걸걸한 목소리에 우진은 혹시 자신이 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어 번호를 대조해 보았으나 같은 번호였다.

 [여보세요. 전화 걸었으면 말씀을 하세요.]

 “재민이 아니냐?”

 [아닙니다.]

 뚝-

 짜증 내는 음성과 함께 끊겨 버린 전화기를 보며 우진이 혀를 찼다.

 “하, 뭐지? 이 새끼, 나 깐 거야?”

 우진이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맨위로맨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