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더보기
작가연재 > 현대물
서울역 네크로맨서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6.8
  첫회보기 작품더보기
 
8화 - 각성자 (1)
작성일 : 16-06-08     조회 : 883     추천 : 0     분량 : 4628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8. 각성자(1)

 

 

 

 우진은 멀뚱히 전화기를 보며 씩 웃었다.

 “잘됐네.”

 일부러 가짜 번호를 가르쳐 주다니…….

 집도 알고 있으니 어차피 상관없다. 어떻게 며칠 신세 질 부탁을 할까 싶었는데 조금 뻔뻔해도 될 성싶었다.

 좋은 핑계를 얻었다.

 우진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재민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

 

 “휴.”

 도재민은 슬금슬금 자신의 눈치를 보며 피하는 아이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일진 놈들이 건드리지 않는 것은 좋은데 다른 일반 학우들도 재민을 피했다.

 한 명만 빼고.

 6인용 식탁에 홀로 앉아 급식을 먹던 그의 앞에 식판이 탁 놓였다.

 “야, 그 오빠가 일진 애들 다 박살 냈다며? 진짜야?”

 재민은 애초에 발단이 된 인물인 이슬기의 물음에 한숨을 쉬었다. 슬기는 자신이 봐도 예뻤다.

 하지만 공부에 열중하지 않고 연애나 하는 건 지금도 고생하고 있을 누나에 대한 배신이다.

 “그냥 밥이나 먹자.”

 “헤헤, 그 오빠 네 사촌 형이라던데 진짜야?”

 소문이 이상하게 난 모양이었다. 재민이 뭐라 해명하기도 전에 슬기가 배시시 웃었다.

 “헤헤, 잘생기기만 한 줄 알았더니 빽도 있었네. 이수혁이 이제 찌질하게 방해 안 하겠다.”

 슬기를 멀리하는 게 꼭 누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진인 이수혁이 슬기를 짝사랑하는 건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슬기가 그런 수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잘생긴 재민에게만 사근거리니 수혁이 재민을 곱게 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재민이 괜히 슬기에게 철벽을 친 것은 수혁의 눈치 때문도 있었다.

 ‘이제 눈치 볼 필요 없잖아?’

 정말 우진이 자신의 사촌 형은 아니지만 그렇게 소문이 났다면 나쁠 건 없었다. 어쨌든 일진 놈들이 자신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재민은 좋을 대로 생각했다. 눈치 볼 필요 없다.

 “너도 나 좋아하지?”

 슬기의 돌직구에 재민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한결같이 적극적일까?

 슬기가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왜에? 나 안 예뻐?”

 예쁘지. 그렇게 당당하게 본인 입으로 말하니 어이없다는 거지.

 “에혀, 밥이나 먹자.”

 연애보다는 역시 공부다. 연애는 취직하고 해도 늦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자신을 귀찮게 하는 슬기를 떨쳐 내고 재민은 학원으로 향했다.

 

 띠리리.

 “어, 누나.”

 학원으로 가는 하굣길은 항상 누나 도지원에게서 전화가 오는 시간이다.

 [별일 없었어?]

 “별일은 무슨, 아참. 나 어제 이상한 형을 만났는데 우리학교 5년 선배라던데. 누나도 알아? 이름이 강우진이라던데.”

 누나도 자신과 같은 미도 고등학교의 선배였다. 생각해 보니 누나가 5년 선배이므로 우진과는 동기였을 터였다.

 [어? 우진이? 던전쇼크 전에 갑자기 행방불명된 애였는데…….]

 지원도 우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그의 행방불명 때문에 전교생이 그의 존재를 알았을 뿐, 학창시절 그렇게 친했거나 한 아이는 아니었다.

 “어, 누나도 알고 있네. 이번 주말에 집에 오면 자세히 이야기해 줄게. 그 형이 나를 도와준 게 조금 있어서.”

 [그래, 재민아. 누나 쉬는 시간 끝났다. 공부 열심히 하고 밥 꼭 챙겨 먹고.]

 3교대의 빽빽한 공장생활을 하는 누나였다.

 누나 덕에 생활비 걱정도 없이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는 재민이다. 그에게 다섯 살 많은 누나는 엄마이자 아빠였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참, 돈 주고 간다더니 그냥 갔네.”

 재민은 우진을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또라이 같긴 했지만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일진들을 두드려 팰 때는 정말 무서웠지만, 어쨌든 자신에게는 잘 대해줬으니 말이다.

 우진이 일진들을 혼내준 것만 하여도 이미 7,300원의 가치는 넘었다. 애초에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몇 번이나 꼭 갚아준다고 해놓고는 그냥 간 것을 생각하자 우스웠다.

 

 띠딕, 띠로리.

 학원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온 재민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못 보던 신발이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귤을 까먹고 있는 그가 있었다.

 “재민이 왔냐?”

 “혀, 형. 우리 집 비밀번호 어떻게 안 거예요?”

 “누를 때 봤지.”

 “이, 이거 가택침입이에요.”

 “아, 전화하고 왔는데 다른 사람이 받더라.”

 “그, 그건.”

 “전에 언제든 오라며, 재워준다고.”

 “그건 그냥 빈….”

 찔리는 게 있는 재민은 괜히 말을 더듬었다.

 그땐 정말 돈 뜯기고 괜히 엄한 꼴 당할까 봐 거짓 번호를 준 것 이었는데…….

 “새끼. 누가 때리냐? 그냥 일로 와봐. 내가 물어볼게 있어서 그래.”

 재민이 긴장하여 뻣뻣이 앉았다. 집주인이 바뀐 듯한 묘한 그림을 그리며 우진이 깠던 귤을 하나 입에 넣고는 물었다.

 “각성자 돈 많이 번다며?”

 “그, 그렇죠.”

 “보니까 길드니 협회니 뭐, 소속도 많고, 던전도 공개된 게 있고 독점된 게 있고 하던데, 설명 좀 해봐.”

 너무나 뜬금없는 질문인지라 재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그건 왜요?”

 “던전 좀 공략해 보려고.”

 “형, 각성자였어요?”

 깜짝 놀라 물은 재민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스무 명이 넘는 일진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트린 우진이었다.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그 신들린 몸놀림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바보같이 지리산에서 무술을 배우고 왔다고만 생각했다니.

 “돈 좀 필요해서 그래. 아는 대로 좀 말해봐.”

 “공개 던전이라도 일단 출입하려면 협회에 각성자 등록은 하셔야 돼요.”

 본래 길드며, 각성자에 관심이 많던 재민이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또래 남자아이들은 모두 그럴 것이다.

 우진은 열성적인 설명을 귤을 까먹으며 묵묵히 들었다.

 “그러니까 각성자 등록만 하고 혼자 가서 던전 공략하는 게 제일 돈 많이 번다는 거네?”

 우진의 설명에 재민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설명을 뭐로 들었다는 말인가?

 “정산 비율은 그렇긴 한데요. 그건 너무 위험하고, 길드에 드는 방법이 제일 좋아요. 아니면 협회나 관리국에 취직하는 것도 좋고요.”

 “길드는 입사시험 본다며?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 없어. 협회나 관리국은 죄다 월급제 아냐? 한 달을 어떻게 기다려.”

 재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 최소한 파티는 구성하셔야 돼요. 던전은 진짜 위험한 곳이에요. 아참, 휴대폰 사셨다고 했죠? 이 어플 꼭 받으세요.”

 “어플?”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우진을 대신해 재민이 어플을 다운로드해 주었다.

 “제가 대신해 줄게요. 어? 갤러기1이네. 와, 아직도 이런 거 쓰네. 가족들이 쓰던 건가 봐요?”

 “그, 그거 최신 폰인데?”

 “예에? 이거 4년도 더 지난 건데요. 설마 신규로 산 거예요?”

 재민의 반응에 우진은 자신이 바가지를 뒤집어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폰팔이 새끼를 그냥!’

 할 게 없어 궁극의 네크로맨서를 상대로 사기를 치다니. 아르펜 행성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아, 겁나 느리네. 어쨌든 이게 던전포럼이에요. 원래 지하철역 안내 어플인데 각성자 협회에서 구입해서 대대적으로 리메이크해서 지금은 던전에 관해 종합적으로 다루는 포털어플이죠.”

 재민은 주절주절 아는 것을 쏟아냈다. 던전포럼은 그야말로 종합적인 어플이었다.

 공략 인원을 모집하는 구인부터 공략 기간 중의 던전을 검색하는 기능, 던전 브레이크까지 얼마 남지 않은 위험 던전을 알리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알림 기능도 있었다.

 “협회에 각성자 등록하고 각성자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미공략 던전 중엔 누가 도전했고, 누가 실패한 이력까지도 다 나와요.”

 “흐음.”

 우진은 조작법을 배워 어플을 대강 만지다가 말했다.

 “어쨌든 이걸로 검색해 보고 미공략 던전에 도전하면 되는 거네?”

 “안전하긴 공략된 광산이 좋다니까요.”

 공략된 던전인 광산은 정보가 공개된다. 제일 중요한 귀환석의 위치라던가 등장 몬스터 등을 알 수 있으니 파티를 짜기도 수월했고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최초 공략에 성공한 길드나 각성자가 그 던전에서 캐내는 물건에 대한 일정한 지분을 가진다는 것이다.

 협회에 일정액의 수수료를 내고, 최초 공략자에게 또 일부 수수료를 내는 것이다.

 아직 이전의 힘도 다 되찾지 못한 우진에게는 탐색 기간에 놓인 공략된 던전에 출입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런 광산은 최초의 입장에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진으로서는 아주 부담스러운 금액을 말이다.

 미공략 던전은 목숨을 거는 도전이 담보되니 모든 것이 무료였고, 광산은 그야말로 아이템이나 몬스터 사체, 혈석을 캐내기만 하면 되는 금광이니 엄청난 수수료와 입장료를 받았다.

 “제법 돈벌이 되는 던전은 입장료만 10만 원 넘는다며?”

 “그, 그렇죠.”

 그 이상 하는 던전이 즐비했지만 그 이하의 던전은 없었다. 과천역 1번 출구처럼 아무런 돈도 되지 않아 폐광이 되어 공짜인 던전은 있어도 말이다.

 우진은 고민했다. 미공략 던전에 도전해 한탕을 노릴 것인가, 적은 수익이지만 안전하게 공략된 던전을 노릴 것인가.

 고민은 되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무모한 도전을 하기엔 가족들이 눈에 밟혔다.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목숨 걸고 미공략 던전을 클리어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께 다시 돌아가 입장료를 달랠 수도 없고…….

 “돈 좀 빌리자.”

 “…….”

 당당한 우진의 말에 재민은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맨위로맨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