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각성자(2)
우진은 버스에서 내리며 폰을 꺼내 지도 어플을 실행했다. 로딩 중을 나타내는 동그란 막대가 무한대로 도는 것을 보며 폰팔이 놈을 어떻게 처단할까 고민했다.
30초가 지나서야 지도가 떴고 우진은 내비게이션 기능을 이용해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를 탐색하는 1분 동안 또 한참이나 기다려 안내를 시작했다.
- 각성자 관리국.
우진은 각성자 등록을 하기 위해 관리국을 찾았다. 접수처에서 간단한 신상명세와 능력을 적은 뒤 접수번호를 받고 잠깐 기다려 검사장으로 향했다.
검사장에는 곳곳에 카메라가 달려 있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관리국의 각성자 두 명과 검사결과 작성을 위해 공무원 하나가 앉아있었다.
관리국으로 복귀한 공무원 오준환은 강우진의 파일을 살폈다.
“소환 능력이시네요? 시연해 보시겠어요?”
지극히 사무적인 그의 물음에 우진이 되물었다.
“여기서요?”
우진이 멀뚱히 있자 준환은 모니터에서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 구면인가?’
불과 사흘 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그때 우진의 차림새와 지금의 차림새는 큰 차이가 있어 오준환은 알아보질 못했다.
“매개가 필요한데요.”
“아, 대가형 소환 능력이군요. 어떤 매개죠?”
“시체 하나 주시죠.”
“네?”
준환은 물론 관리국의 각성자들도 일순 당황했다. 우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사람 시체 말고요. 몬스터나 뭐, 죽은 동물도 됩니다. 뼈있는 놈으로요. 아, 물론 사람도 되고요.”
“아, 알겠습니다.”
준환이 당황하면서 지원부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지원부에서 실험용으로 쓰이다 죽은 토끼의 사체를 가져왔다.
검증실의 중앙에 놓인 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일어나라.”
파팍!
토끼의 사체가 폭발하며 해골병사 하나가 불쑥 솟아났다.
키키킥.
해골병사가 내는 기괴한 소리에 준환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별의별 희한한 각성자들을 많이 보지만 이런 장면은 또 처음이었다.
하지만 9급이라 짬이 얼마 안 되는 준환이 처음 본다 뿐이지 이런 이능을 가진 각성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네, 네크로맨서시군요.”
각성자는 이능에 따라 마법사니, 전사니, 성기사니 여러 가지 별칭으로 불렸다. 언데드를 조종하는 네크로맨서도 물론 있었다.
“보시다시피.”
“소환계열 이능은 소환수의 전투력으로 각성 등급이 매겨집니다. 저걸 한번 공격해 보시겠어요?”
실험실의 중앙에 생겨난 홀로그램을 보며 우진은 새삼스런 눈으로 검증장을 살폈다. 반구형의 검증장은 여기저기 장치가 달려 있어 홀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상 전투라 생각해 주세요. 소환수의 움직임을 보는 겁니다.”
홀로그램은 작은 몸집의 코볼트였다. 드레빗만큼이나 흔한 몬스터지만 좀 더 집단적으로 출몰하고 무리 행동을 하는 습성 때문에 사냥이 까다로운 놈이었다.
키킥.
우진의 의지에 따라 해골병사가 코볼트를 상대했다.
실체가 없는 홀로그램인지라 휘두르는 뼈칼이 그대로 통과했지만 여기저기 빼곡히 달린 기계장치들이 그 움직임을 그대로 측정하고 있었다.
5분 정도가 지났을 때 준환은 멈추도록 지시했다.
“다른 이능이나 능력이 있습니까?”
“뭐, 딱히 별다른 건 없어요.”
아직은.
“흠, 잠시만요. 저 따라오시겠어요?”
준환은 휴게실로 안내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곤 한 시간 만에 나타나 검은색 카드를 주었다. 고급 신용카드 같은 재질이었는데 주민등록증처럼 우진의 사진이 박혀있었다.
“각성자 등록증이에요. 신분증 겸, 직불카드로 쓰실 수도 있습니다.”
카드에는 우진의 간단한 신상명세와 F 등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F 등급은 낮은 겁니까?”
“음. 높다곤 할 수 없죠. 아니, 제일 낮죠. 소환수의 전투능력이 생각보다 약해서….”
당연하지. 포인트도 투자하지 않아 1레벨인 해골병사들이다. 보통 성인의 절반 정도의 힘밖에 낼 수 없었다.
“음, 뭐 등급 낮으면 던전 입장에 제한 있고 그럽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파티 꾸리실 때 등급 따라 배분에서 좀 밀리긴 하죠.”
문제없었다. 어차피 파티가 아니라 혼자 던전을 이용할 생각이니 말이다.
우진은 굳이 맨손으로 철도 끊을 수 있다느니, 소환수 14개체를 동시에 소환할 수 있다느니 떠벌리지 않았다.
“저, 그런데 저희 어디서 봤던가요?”
오준환의 물음에 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옛 기억을 더듬으며 생각해 내려 애쓰진 않았다. 아니, 그럴 가치를 못 느꼈다.
“처음인데요. 그럼 수고하세요.”
우진이 그대로 관리국을 나서 버리자 준환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괜히 뭔가 찜찜한 기분. 준환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찜찜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 그때 그놈이구나. 과천역 1번 출구.”
파견 업무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준환은 상사로부터 신나게 혼이 났다. 던전 출입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준환이 서랍 더미를 뒤져 과천역 1번 출구 출입기록일지를 꺼내 들었다.
[이름 : 강우진, 소속 : 지구별, 각성자 번호 : 12345]
장난스레 적힌 기록지를 보자 준환은 다시금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고위급도 아니고 겨우 F급이었어? 그것도 오늘 등록한 신삥이네. 아놔.”
준환은 겨우 이런 놈 때문에 상사한테 그렇게 혼이 나야 했나 싶어 한동안 씨근덕거렸다.
“어? 근데 F급이 어떻게 혼자 클리어했지?”
과천역 1번 출구가 혈석도 나오지 않는 드레빗뿐이지만 결코 F급 혼자 클리어할 만한 던전은 아니었다.
“거참.”
준환이 고개를 갸웃하며 파일을 그대로 책상에 던져 두었다. 어차피 다시 볼일도 없는 사람, 알게 뭐란 말인가.
***
관리국을 나온 우진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던전포럼을 실행시켰다. 한참이나 걸리는 로딩화면에 짜증이 폭발하기 전 어플이 실행되었다.
재민에게 배운 대로 검색 옵션에 입장료를 10만 원에 체크하고 소환 몬스터의 등급을 2성 아래로 설정했다.
“여기가 제일 가깝네.”
우진은 [신림역 7번 출구 던전]까지 가는 버스 노선을 검색하고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이야, 이거 어플이란 게 정말 편하네.”
5년 동안 지하철 대신 던전만 생긴 게 아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스마트폰을 이제는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었다.
실생활에 편리한 어플들도 넘쳐났고 말이다.
신림역이 가까워질수록 건물들의 높이가 낮아지며 황량해졌다. 역세권이라며 빌딩들로 번화한 거리는 없었다. 사거리는 드문드문 공터도 있었고 넓은 주차장도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한번 일어났던 모양이네.”
그게 아니라면 멀쩡한 빌딩이 철거되고 저런 공터가 남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1번 출구 방향은 아예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목적지인 7번 출구 앞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진은 맛집 블로그를 보고 찾아오는 네티즌마냥 몰려온 사람들의 긴 줄을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걸 생각 못했네.”
낮은 금액의 입장료와 2성 이하의 몬스터들만 소환되어 위험부담이 적지만 돈벌이는 되는 광산은 경쟁이 치열했다.
우진은 하는 수 없이 줄을 섰다. 삼삼오오 짝지어 수다 삼매경에 빠진 것을 보니 모두 함께 일하는 무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앞줄에 서 있던 날렵한 인상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형씨, 보아하니 혼자 같은데 우리 파티에 끼지 그러나? 마침 딱 일곱 명 모았는데 한 명이 비어.”
“아, 괜찮아요. 전 혼자서 입장할 겁니다.”
우진의 거절에 남자가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 굳이 왜 입장료 아깝게 혼자 입장하나. 어차피 제한 시간까지 혈석 캐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어리둥절한 우진의 표정을 보곤 남자가 껄껄 웃었다.
“광부된 지 얼마 안 됐나 보구만.”
각성자를 부르는 은어가 있었다.
미공략 던전을 위주로 전문으로 도전하는 이들을 레인저, 공략된 안전한 던전에서 혈석 캐기를 주로 하는 이들을 광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지하철역에 출동하여 군인들과 함께 몬스터를 처리하는 이들을 가디언이라 불렀다.
주로 하는 일에 대해 그렇게 부를 뿐 직업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라 레인저가 광부가 되기도 하고 광부가 가디언이 되기도 했다.
남자는 우진이 초짜라 생각했는지 대략 광부들의 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던전은 입장 인원에 제한이 있었다.
레인저들이 던전을 공략할 때 최대 인원수대로 팀을 꾸려 도전한다.
이들을 공격대라고 불렀는데 대한민국 3대길드가 유명한 것은 유능한 공격대를 보유하고 있어서였다.
광부들도 마찬가지다.
최대 인원수대로 팀을 꾸려 입장하는 것은 순전히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신림역 7번 출구 던전의 최대 입장 수는 8명.
“그러니까 혼자 이용하려면 여덟 명분 80만 원을 내야 한다구요?”
“그렇지. 그것도 시간당 요금이지.”
던전의 기본 소환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 정보가 이미 공개되어 덜하다 뿐이지 광부 또한 목숨을 거는 것은 똑같았다.
귀환석은 대부분 던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다. 혼자서 한 시간 안에 클리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시간 오버라도 되면 괜히 입장료를 두 배로 물어야 하는 것이다.
‘혼자서 두 시간 이용하자면 입장료만 160만 원.’
그 안에 몬스터를 모조리 때려잡고 혈석을 혼자서 차지하자면 돈벌이야 쏠쏠하겠지만 그 정도 능력이 되는 각성자면 돈이 더 되는 상위의 던전을 가지 겨우 별 두 개짜리인 2성 던전을 찾을 리가 있겠는가.
“등급이 어떻게 되나?”
“F급인데요.”
“쯧쯧, 멋모르고 무작정 찾아온 듯한데 자넨 운이 좋아. 배운다 생각하고 우리 파티에 끼게. 안전은 보장해 주지.”
“흠, 그럽시다.”
안전 따위야 우진 스스로 충분히 챙길 수 있었지만 순순히 파티에 끼어들었다. 순전히 입장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빨리 레벨 올려서 마음 편하게 던전이나 공략해 봐야겠네.’
제약도 많고, 수수료도 많이 떼는 광산은 우진의 성미에 맞지 않는 듯싶었다. 아쉬운 대로 일단 오늘 하루는 체험한다 생각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