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적군보다 무서운 아군(2)
“온다, 막아!”
배도수의 말에 종철이란 남자가 즉시 능력을 발동했다. 희끗한 막이 펼쳐진다 싶더니 홉고블린이 날린 번개가 와서 부딪혔다.
파지직!
방어막이 사라지며 번개도 함께 사그라졌다.
“됐다. 가자!”
배도수는 즉시 발화 능력을 이용해 홉고블린의 시야를 어지럽히며 일행과 돌진했다. 성구도 홉고블린을 향해 화염구를 냅다 집어던졌다.
‘위험할 텐데.’
홉고블린은 지능이 높다. 마법을 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홉고블린이 위험한 것은 그 마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끼이, 끽.
괴성에 가까운 홉고블린의 소리에 근처의 고블린들이 뭉쳤다. 몽둥이를 쥔 고블린들의 손에 조잡한 방패가 들려 있었다.
여기저기 지하철역에서 뜯어낸 표지판부터 신문 거치대까지 다양한 것들을 임시로 들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숨긴 고블린들이 긴 대롱을 꺼내 들고 조준했다.
“공격! 홉고블린만 먼저 끝내면 돼.”
배도수의 말에 궁수도 홉고블린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지만 놈은 계단 난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화염구 공격에 흥분해 달려들었어야 할 고블린들은 진영을 정비한 채 그저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고블린들과 팀이 충돌했다.
“이, 이놈들 뭔가 다른데?”
드잡이질하는 놈들의 체격도 힘도 같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악하게 싸운다는 것이다. 묘한 위화감을 느끼는 일행이지만 이미 전세는 기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퓨퓨퓩.
숨어 있던 고블린들이 그들 특유의 무기인 마비침을 쏘아냈다. 그중에는 독침이 섞였을 수도 있었다.
“아, 따거, 뭐야?”
“어어, 몸이.”
완벽한 전신마비는 아니지만 마비침을 맞은 부위가 잠깐 경직되는 정도라도 창칼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라면 큰 위험요소로 작용했다.
퍼억!
“어어?”
고블린이 휘두른 곤봉에 한 명이 쓰러지는 것이 시작이었다. 배도수는 심장이 옥죄어오는 듯 답답한 느낌이었다.
칼 한번 휘두르면 죽을 놈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하니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쯧, 저래서 안 된다니까.’
홉고블린이 위험한 것은 그의 신체 능력도 마법도 아니었다. 고블린보다 높은 지능으로 인한 지휘 능력이다.
지휘관을 가진 고블린들은 더는 1성의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그들 무리 자체를 한 개체로 봐야 했다.
“도, 도망쳐. 빠져나와.”
후방에 있던 배도수의 외침에 근접 공격수들이 앞다투어 도망쳤으나 이미 한 명은 완전히 실신한 후였다. 이대로 도망치면 그가 죽을 것은 뻔한 일.
화르륵, 펑!
쿨타임이 끝나자마자 생성해 던진 성구의 화염구에 뒤쫓던 고블린 둘이 불이 붙어 황급히 물러났다. 그 틈에 근접공격수들이 재빠르게 후퇴했다.
“안 되겠다. 일단 빼자!”
“종철이는?”
“이미 죽었어! 보면 몰라?”
격앙된 배도수의 외침에 그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동료에 대한 미안함, 두려움, 살고자 하는 욕구가 버무려져 음울한 표정들이었다.
고민해 봤자 어차피 결정은 뻔했다.
자신의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다.
“후퇴!”
배도수의 외침에 일행이 서둘러 도망쳤다. 그렇다고 고블린 무리가 가만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파지직!
정신을 차린 홉고블린이 날린 전기공격이 그대로 성구의 몸에 직격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을 쩍 벌린 성구의 눈은 이미 흰자위를 보이며 뒤집어져 있었다.
“쳇, 어서 도망쳐!”
애초에 본래의 팀도 아닌 성구의 죽음은 그들에게 조금의 미안함도 들게 하지 못했다. 던전에 입장하기로 마음먹은 각성자의 죽음은 언제나 그림자에 숨어 있다.
그가 운이 없었을 뿐이다.
키익, 킥!
고블린들은 얼마간 뒤쫓는 시늉을 하다가 홉고블린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기둥에 숨어 있던 우진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몰이사냥은 오랜만이네.”
사망자 둘에, 나머지는 도망쳤다. 한껏 몰려든 고블린들을 보며 우진이 희게 웃었다.
보고 즐기는 쇼타임은 끝났다.
“자, 가보자. 똘마니들아.”
파팍, 팍!
우진의 부름에 쓰러져 있던 고블린 네 마리의 시체가 터지며 해골병사들이 소환되었다.
끼긱.
키키키.
원숭이가 놀란 듯 소리치는 고블린의 비명과 해골병사들 특유의 장난스러운 음성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우진이 쥐고 있던 가벼운 곤봉을 버리고는 인벤토리에서 빠루를 꺼내 들었다.
무게감도 적당하고 묵직해 파괴력도 있어서 일단 제대로 된 무기를 구하기 전까지 아쉬운 대로 쓰려고 인벤토리에 보관하던 차였다.
“자, 가보자고.”
우진이 뛰어들자 해골병사들이 장군의 진입로를 열 듯이 달려들어 고블린들을 몰아붙였다.
당황한 홉고블린의 다급한 명령에 고블린들이 막아섰지만 빠루에 머리통이 터져 나갈 뿐이었다.
키키키.
죽은 고블린들의 시체는 그대로 터져 나가며 해골병사로 화했다. 스킬 포인트를 소모해 레벨을 올려놓았더니 이제는 어지간한 하급 각성자급의 신체 능력을 발휘하는 해골병사였다.
잘 죽지도 않았기에 지배한계인 14마리가 모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고블린들의 피로 얼룩진 빠루를 당황한 홉고블린의 앞에 치들었다.
놈이 든 지팡이의 끝에 ‘파지직’ 소리와 함께 전기가 모여들었다. 가늠해 보니 얼추 녀석의 전기공격 쿨타임이 끝난 듯싶었다.
우진이 빠루 뒷부분의 뾰족한 부위를 홉고블린의 머리통에 쑤셔 박았다.
콰작. 피시시.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 그 공격에 지팡이에 맺힌 전기들이 차마 쏘아지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후, 이거 포인트 모으기 좋네. 역시 사냥은 몰이사냥이야.”
고블린 한 마리당 업적 포인트 2, 홉고블린은 무려 5의 포인트나 올랐다. 겨우 2성 던전이 이럴진대 그보다 상위의 던전에 가면 얼마나 오르겠는가.
포인트 상점에서 팔고 있는 마법서들을 생각하면 아르펜 행성에서 이룩했던 경지를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싶었다.
경험치도 쏠쏠해 1레벨을 올렸다.
“역시 파티플레이는 나랑 안 맞아.”
앞에서 몸빵해 줄 해골병사도 있었고, 뒤에서 공격할 딜러 또한 조금만 더 레벨을 올리면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괜히 파티플레이로 사냥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우진이 막타를 치는 몬스터들이 적어 경험치나 업적의 습득이 더뎠다.
우진은 널브러진 고블린들의 시체를 보며 탐색 마법을 시전했다. 번거롭게 모든 고블린의 시체를 헤집어 혈석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탐색 마법에 의해 마나의 기운을 가진 것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우진은 바닥에 쓰러진 홉고블린의 품에서 빛이 새어나오자 그것을 뒤져 보았다.
“어? 마법서네.”
우직은 마법서를 이리저리 둘러봤으나 무슨 마법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어차피 식별 마법이야 배워야 하니, 이참에 구입해야겠네.”
우진은 포인트 상점을 불러내 20의 업적 포인트를 소모해 ‘식별’ 마법을 배웠다.
일회성 소모 아이템인 식별스크롤을 이용해도 되지만 어차피 자주 사용하는 마법이기에 배워둬서 나쁠 것이 없었다.
<식별>
밝혀지지 않은 아이템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지능이 높을수록 실패 확률이 낮아진다.
소모 마력 : 1
우진은 마법을 배우자마자 마법서를 식별했다.
<전기 충격>
대상을 향해 전기공격을 가할 수 있다.
소모 마력 : 1, 대기 시간 : 20
“호오. 아까 이놈이 쓰던 거네.”
우진은 포인트 상점에 검색해 전기 충격의 가격을 알아보니 업적 포인트 100짜리의 마법서였다.
그저 불꽃을 일으키거나 물을 생성하는 정도의 하급 원소마법은 30포인트로도 살 수 있었다.
전기공격은 그것들보다는 쓸 만한 대인공격 마법이니 세 배나 더 비싼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애매한 가격이네.”
고블린 50마리를 해치워야 벌 수 있는 포인트다. 고블린을 해치우는 속도를 생각하면 그리 비싸 보이지도, 그렇다고 막 구입할 정도로 싸 보이지도 않았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기에 우진은 마법서를 품에 챙기고는 여전히 빛을 반짝이는 고블린들의 머리통을 갈라 혈석을 캤다.
“으으으.”
“응?”
혈석을 캐던 우진은 신음에 인상을 굳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타난 몬스터는 없었다. 주변을 경계하는 우진의 눈과 쓰러져 고통에 찬 성구의 눈빛이 마주쳤다.
희번덕거리던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잔뜩 찡그린 인상이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은 듯 괴로워 보였다.
그의 곁에 다가간 우진이 쪼그려 앉았다. 전기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성구는 굳은 혀를 억지로 굴려 뱉어냈다.
“사, 살려주…”
“어디까지 봤냐?”
우진이 성구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간절한 눈빛만이 가득한 성구를 내려다보는 우진의 얼굴은 무심하기만 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야 수없이 봤다. 동료도 있고, 적으로 만났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죄 없이 타락하여 영혼을 빼앗긴 이들도 있었다.
“아, 뭐 상관없으려나.”
아르펜 대륙이 아니다. 굳이 이 정도 일로 성구를 죽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국의 첩자도 아니고, 입막음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서서히 혀가 풀리는지 말투가 또렷해지는 성구였다. 화염구의 능력을 갖춘 성구다. 마력을 다룬다는 의미는 그 자신도 항마력을 어느 정도 가졌다는 의미.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 두고 가도 아래층의 몬스터에 의해 죽을 것이다.
“살려주면 뭐 해줄 수 있냐?”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뭘?”
“형님이 D급 각성자라는 걸 말입니다.”
성구의 말에 우진이 피식 웃었다. 홉고블린에 고블린 십여 마리의 무리를 쉽게 해치울 정도면 D급 정도의 각성자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알려져도 별 상관없는 이야기들. 우진의 관심은 그런 것에 있지 않았다.
“얼마 줄래?”
“네?”
너무 당황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홍성구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였다.
“내가 그냥 이대로 가면 너도 저렇게 될 걸?”
우진이 가리킨 곳엔 피떡이 되어 축 늘어진 종철의 시신이 있었다. 고블린들의 곤봉에 여기저기 얻어맞아 참혹한 모습이었다.
“드, 드리겠습니다.”
살 수만 있다면 어디 돈이 문제겠는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모두 줄 수 있었다. 돈이야 각성자 등급이 높아질수록 더 많이 벌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어, 얼마를 원하십니까?”
성구의 말에 우진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성구가 깜짝 놀랐으나 이내 이를 앙다물었다.
‘2천이면 목숨 값으로 전혀 아깝지 않아.’
저금해 둔 돈을 거의 다 쓰겠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각성자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 앞으로 벌 돈이 더 많았다.
“알겠습니다.”
성구의 대답에 우진이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2백이면 솔로 플레이할 정도 입장료는 되겠어.’
귀환 3일 차.
아직은 소박한 각성자 강우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