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욕심이 부른 화(1)
“후, 끝났네요.”
성구는 질린 얼굴로 땀을 닦았다. 가장 마지막 층의 넓은 공간을 몬스터들이 빼곡 채울 정도로 많았다. 물론, 성구가 전투에 가담한다고 땀을 흘린 것은 아니었다.
“다 캤냐?”
우진의 말에 성구가 혈석 무더기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형 같은 분이 어떻게 F급이세요? 적어도 D급인데. 아니, 능력이 많으시니 C급도 받으실 수 있을 텐데.”
“나중에 받지 뭐.”
심드렁히 말하는 우진을 성구는 괴물 보듯이 했다. 던전 마지막 층의 몬스터를 전멸시킨 것은 우진과 그의 소환수들이었다.
성구가 한 일은 우진이 지목한 몬스터들을 헤집어 혈석을 캐는 뒤처리 작업이었다.
2성과 1성 몬스터들을 홀로 사냥할 수 있는 전투 능력은 능히 D급에 가까웠고 다재다능함은 C급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해골 소환에, 혈석을 찾아내는 탐색, 거기에 더해 어떻게 한 것인지 죽은 몬스터들의 시체에서 희끗한 뭔가를 뽑아 자신을 치료해 준 능력까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남다르다고 했던가? 성구는 각성자 등록을 마친 지 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는 초보 각성자 강우진이 크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 근데 뭐하시는 거예요? 그거 안 팔고 배우시는 거예요?”
“응, 왜?”
우진은 손에 쥔 마법서에 마력을 주입했다. 마법서가 사라지며 전기 충격 마법이 우진에게로 흡수되었다.
업적 포인트야 차차 쌓이고 있지만 달리 배워야 하는 스킬도 많았기에 마법서가 나온 김에 전기 충격을 배웠다.
네크로맨서 계열의 마법서가 아니니 이보다 더 상위의 마법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었다.
전기 충격 정도면 대인공격 마법으로 쓸 만한 것. 배워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헐, 형 능력도 많으신 것 같던데 추가로 마법을 또 배우시는 거예요? 그거 팔면 못해도 1억은 받을 텐데…….”
“……?”
홍성구의 말에 우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100포인트짜리 마법서가 1억?
“…비싼 거였냐?”
“당연하죠. 추가로 능력을 각성할 수 있는 건데요. 아티팩트하고는 질적으로 다르죠.”
아티팩트가 마력을 주입해 새겨진 마법을 발현시켜 주는 것이라면 마법서는 그 마법을 각성자 본인이 익히는 것이다.
잃어버릴 염려도 없이 영구적으로 마법을 얻는 것이니 하급의 마법서라 하더라도 비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 그 비싼 게 왜 고작 2성 던전에서 나와?”
“저엉말,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에요. 거의 안 나와서 그렇지. 근데 어떤 마법이에요?”
“네가 아까 한 방 맞았던 거. 홉고블린이 쓰던 전기 충격.”
“헐, 그 정도면 못해도 정말 1억은 받을 텐데…….”
1억. 1억이라.
“후우.”
마법서가 1억일 줄 알았다면 그냥 팔아버리고 전기 충격 따위야 100포인트를 써서 배웠으리라. 포인트 상점에서 마법서를 구입해 팔고 싶었지만 포인트 상점에서 구입한 스킬북은 거래불가였다.
오직 우진만이 배울 수 있는 것.
우진은 목숨이 간당간당한 성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영혼 갈취’라는 스킬을 배웠다. 50포인트나 했지만 어차피 배워야 하는 스킬이기에 주저함은 없었다.
몬스터든 사람이든 사망하고 나서 잠깐 그들의 영혼이 시체 근처에 머무른다. 그때 그 영혼들을 갈취해 에너지원으로 삼는 것이다.
마력이나 기력, 체력 등 모든 것이 소량 회복된다. 우진이 아닌 남에게 주입할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효율이 낮았다.
성구는 우진이 치료 마법을 쓴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이의 생명력을 뺏어 나눠 준 것이다.
“쓰읍, 후. 아까워 말자.”
우진은 괜히 쓰린 속을 달랬다. 마법서를 그대로 팔면 한동안 던전을 돌지 않아도 됐건만. 아니, 떨어진 서울 땅값을 생각하면 지금의 원룸보다 더 큰 빌라로 이사할 수도 있을 텐데…….
아, 생각하질 말자.
“이 정도 혈석이면 얼마냐?”
“못해도 800쯤은 받을 것 같아요. 더 받으려나. 저도 잘 가늠이 안 돼서…….”
10만 원을 투자해 그 정도라면 꽤 괜찮게 남겼다. 일행이 도망치지 않았다면 분배해서 겨우 100만 원 정도의 돈을 만졌겠지만 말이다.
“다 내 것이다.”
“무, 물론이죠.”
“귀환석은?”
“여기 챙겼어요.”
“이제 나가자.”
우진과 성구가 막 혈석들을 챙겨 가방에 쓸어 담고는 위층으로 향할 때였다.
“매복 같은데.”
저 레벨의 감지 스킬이지만 옅은 살기를 감지해 우진에게 경고를 보내왔다. 우진이 멈춰 서자 성구의 표정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모든 몬스터를 토벌했다. 귀환 후 재입장하지 않는다면 몬스터 리젠은 없다. 매복이 있다면 도망쳤던 배도수의 일행뿐이다.
“PK라도 하려는 걸까요?”
불안한 듯 떨리는 성구의 물음에 우진이 되물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어?”
“가끔 있죠. 비공식적으론 더 많을 거예요. 그래서 웬만하면 모르는 사람하곤 파티를 잘 안 해요. 마법서나 아티팩트 같은 보물이라도 나오면 헬게이트 열리는 거죠.”
“싸움이 나면 보통 어떻게 처리되는데?”
“던전 안에서의 일을 어떻게 알겠어요. 확실한 증거라도 있지 않은 다음에야 모두 불문율에 붙여요.”
“허, 거참 시체 유기하기 편하네.”
우진이 씩 웃으며 어두컴컴한 계단 위를 보았다. 멈춘 걸음 그대로 뒤를 보았다. 널브러진 몬스터의 시체들.
우진은 그대로 뒷걸음질 쳐 계단에서 멀어졌다. 성구도 덩달아 우진을 뒤따랐다.
“거, 쥐새끼마냥 숨어 있지 말고 왔으면 나오지 그래?”
우진의 말에 곧 반응이 왔다. 배도수 일행이 느릿하게 계단을 밟고 내려서고 있었다. 어색한 표정들은 미안한 듯 보이기도 했고, 그냥 실없어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된 겐가? 자네들이 다 해치웠나?”
능청스럽게 묻는 배도수의 연기에 우진은 성구를 향해 낮게 말했다.
“가까이 오면 기습할 생각이야.”
“어쩌죠?”
성구의 불안한 눈빛이 우진을 보았다. 우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거, 도망친 놈들이 뻔치 좋게 나타났네. 결계 앞에서 기다리지, 여기까진 왜 왔대?”
대뜸 내뱉는 우진의 반말에 배도수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이내 표정 관리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자네 왜 그러나, 같은 팀끼리. 작전상 후퇴에 다시 던전 클리어하러 왔을 뿐이야. 와보니 몬스터들을 다 처치해 놓았군. 어떻게 한 건가?”
배도수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F급 각성자 둘이서 몬스터들을 싹쓸이했다곤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니까. 배도수의 시선이 슬쩍 혈석이 가득 든 가방을 향했다.
우진은 웃었다.
욕심에 눈이 먼 놈들은 봐야 할 것도 외면해 버린다.
“지랄 옆차기를 하네. 귀환석이라도 챙겨서 튀려다가 밥 차려 놓으니까 탐 나냐?”
우진이 혈석이 가득 든 가방을 앞에다 던져 버렸다.
촤르륵.
열린 가방 사이로 혈석들이 쏟아졌다. 그 위치가 교묘해 우진과 배도수 일행의 중간쯤이었다.
“탐나면 주워 가봐.”
우진의 말에 배도수가 인상을 굳혔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이군. 우리도 어쩌지 못한 몬스터 무리를 해치운 자네들에게 PK를 건다고? 오해야, 오해.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계속해 봐.”
“못 챙겨 간 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하지만 제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어쩌겠나? 우린 그저 귀환석을 찾으러 왔을 뿐이야. 자네가 던전을 클리어했으니 다행히 종철이 시신도 수습해 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네.”
배도수의 말에 우진은 자신이 너무 예민했었나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이곳 사람들이 전부 아르펜 행성과 같지는 않겠지.
계단 위에 매복하고 있었던 것도 그럼 혹시 모를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래의 상황을 모르니 말이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도…….’
지난 20년 동안 한 줌의 재화에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동네에서 살다 보니 너무 날카로웠나 보다. 이곳은 지구, 그것도 서울이다.
평화와 도덕이 살아 숨 쉬…
화르륵.
…기는 개뿔.
우진은 자신의 눈앞에서 발화하는 화염에 얼른 팔을 휘저었다.
“지금이야.”
배도수의 외침에 활을 든 사내가 홍성구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의 화염구 공격은 요주의 능력이었다.
배도수는 도망쳤을 때 일행과 합의했다. 아직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2성 던전에 도전하기 버겁다는 것을 말이다.
돈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1성 던전을 다시 돌아야 할 판이었다.
조심스럽게 귀환석이라도 찾을까 싶어 돌아왔는데 몬스터들이 죄다 죽어 있었다. 홉고블린마저 죽어 있는 것을 보곤 머리를 굴렸다.
욕심이 났다.
아무리 찾아봐도 종철의 시신만 있을 뿐, 우진과 성구의 시신이 없었다. 그 말은 둘이서 아래층을 공략하러 갔다는 말.
홉고블린을 해치울 정도라면 둘 중 하나는 본래의 실력을 숨겼으리라. 그리고 몰래 기습을 준비했으나 상대가 먼저 눈치채 버렸다.
배도수는 우진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리고 동시에 간을 봤다. 해치울 정도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 말이다.
우진이 던진 가방에 든 혈석은 도수의 눈을 뒤집히게 할 만큼 많았다.
1성 던전을 돈다면 꼬박 한 달은 일해야 만질 액수였다.
배도수는 의심 가득한 우진의 날카로운 반응에 확신했다.
‘우릴 경계하고 있다.’
경계한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무슨 수로 몬스터들을 해치웠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위험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공격해 볼 만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들이친다.’
배도수는 미리 약속했던 사인을 주고는 발화 능력을 발휘했다. 우진의 얼굴을 가득 채우는 화염과 동시에 화살이 날아가 성구의 어깨를 꿰뚫었다.
“크윽.”
당황한 그가 화염구를 생성하기도 전에 일행이 들이닥쳤다. 무기는 질긴 몬스터 가죽보다 사람 가죽을 더욱 손쉽게 찢어발길 것이다.
“후, 원망 말게. 각성자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배도수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를 들어 허우적거리는 우진을 향해 찔렀다.
쉬익.
불꽃에 시야가 가린 우진이지만 용케 배도수의 찌르기를 알고는 그 손을 잡아 엎어치기로 그를 던져 버렸다. 그 힘과 빠르기가 굉장해 배도수는 손쓸 틈도 없었다.
신체 능력 각성자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후. 화끈하네.”
우진은 사그라지는 화염을 마른세수로 쫓으며 당황한 배도수 일행을 노려보았다. 성구는 어깨에 화살을 박은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만 있었다.
“꽤 발칙한 공격이었어.”
얼굴이 벌건 것이 약한 화상을 입은 듯했지만 우진은 미소 짓고 있었다.
“어떻게 예측을 벗어나질 못하냐?”
우진이 양팔을 뻗었다.
파팍!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몬스터들의 시체가 터져 나가며 육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장관이라기보다는 심약한 사람은 그대로 기절할 만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나를 원망해라.”
우진이 희게 웃었다.
원망한다고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한껏 비웃어줄 테니.”
약자들의 원망 따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영혼마저 구속당해 타락할 그들에게 그것마저 허락지 않는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
해골들의 뼈칼에는 자비도, 망설임도 없었다.
“크아악.”
순식간에 쓰러진 그들을 보며 우진이 배도수를 향했다. 꿈틀거리는 그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다.
“자, 잠깐 대화를…….”
“발화 능력 쿨타임 기다리냐?”
콰직!
우진은 망설임 없이 배도수에게서 뺏어든 칼을 그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부들거리다 이내 축 처진 그를 보며 우진은 별다른 감흥 없이 그가 맨 가방을 뺏었다.
홉고블린을 만나기 전까지 얻은 혈석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우진은 거기에 더해 배도수의 품을 뒤져 지갑을 꺼내 들었다.
현찰을 모두 빼 들고 주머니에 찔러 넣는 우진은 어느새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홍성구는 눈앞에서 사람 넷의 목숨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자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던 말을 두 손으로 막았다.
너무 놀라 어깨에 박힌 화살이 아픈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쓰러진 다른 일행의 주머니까지 뒤지는 우진이 중얼거렸다.
“하여튼, 뒤통수치는 새끼들은 답이 없어.”
나보고 들으라는 말인가? 성구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난 뒤통수 까는 놈들이 제일 싫어. 안 그냐? 성구야.”
휙 돌아보는 우진과 눈이 마주친 성구는 너무 놀라 오줌을 지릴 뻔했다. 사람 넷을 죽이고도 우진은 너무나 무심한 얼굴이었다.
몬스터만 죽여도, 아니, 작은 짐승만 죽여도 흥분되거나, 죄책감이 들거나 감정이 생기게 마련인데 우진은 사람을 죽이고도 그저 길가의 잡초를 뽑아낸 듯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살인자를 넘어선 느낌.
그 평온함이 홍성구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왜 대답을 안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