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의료원 장례식장.
예상은 했지만 빈소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고 썰렁했다.
작업복 같은 조끼를 입고 오가는 남자 두엇이 전부였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이의 마지막이란 그 살아생전이 어떠했던지 참으로 조촐하구나. 그리 어렵게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남은 돈 털어서 미리 누구한테 부탁이라도 좀 해 놓지.
그나마 이렇게 이틀이라도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이는 운이 좋은 편이라는 장례지원단 직원의 설명이 다시 떠올랐다.
"너무 젊은 나이에 가셨어요."
상주도 없고 조의금 받는 이도 없는 빈소에서 두 번의 절을 하고 다음엔 뭘 하지, 생각하며 멍청하게 영정사진을 바라볼 때였다. 뒤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한 걸음 정도 뒤에 조끼 입은 남자가 손에 향합을 쥔 채 서서 영정사진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조끼에는 '장례지원단'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전화 통화한 그분인가?
"진단만 좀 빨리 받았어도 좋았을 텐데.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 선고가 내려진 거나 마찬가지였대요. 그러고도 한참 버티시긴 했지만."
남자는 제상 쪽으로 다가가 향로 옆에 향합 통을 내려놓았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제상 위 양초에 불을 붙인 남자는 방금 내려놓은 향합에서 향 몇 개를 꺼내 끝부분을 촛불에 태우고는 정성스레 분향했다.
그러고 보니 빈 양초에 빈 향로였구나. 그제야 상갓집 특유의 무거운 향내가 눅눅하게 퍼지기 시작했고 비로소 퍼플레인님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 났다.
살짝 고개 숙여 예를 표한 후 두 손을 가볍게 턴 남자는 잠깐 앉으시죠, 라며 빈소 한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무 것도 없는 좁디 좁은 빈소. 텅빈 빈소 구석에는 그래도 낡은 정수기와 페트병 음료 몇 개, 종이컵, 믹스커피가 궁색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쪼그리고 앉는 남자를 따라 얼결에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으니 남자는 종이컵에 음료수 한 잔을 가득 따라 내밀었다.
"고인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요? 어려 보이시는데."
"그냥, 온라인 동호회 회원이에요. 책 거래 때문에 한 번 오프로 뵀고요. 책 읽고 추천해주고 감상 나누는 뭐 그런 카페라서 가끔 책을 서로 교환하거나 중고로 판매하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책을 좋아하셨구나."
"저는 별로. 그분은 뭐, 좋아하니까 가입하셨겠죠."
"어쨌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인의 첫 문상객이시네요. 몇 분이나 더 오실지. 아, 저는 구청 주민생활지원과에서 나왔습니다. 이 조끼는 잠깐 빌렸어요. 장례지원단에서 수고 많이 해주고 계시죠."
"네…."
"고인이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하신 건 아셨어요?"
"아니요."
"혈혈단신인 데다 유언을 남긴 것도 아니라서, 나랏돈이랑 민간 지원을 받다 보니 이렇게밖에 못 해 드리네요. 서운하시더라도…."
당황스럽다. 서운하다니. 내가 왜? 지금 내가 퍼플레인님 아니 남동남 님의 지인 내지는 문상객 자격으로 이 구청 직원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는 상황 자체가, 불편함을 넘어 이분께 괜한 에너지를 쓰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잘 모르는 분이에요, 저한테 그렇게 자세히 설명해주실 필요 없는데요, 하려다가 서로 뻘쭘해질까 싶어 관뒀다. 남자는 일이 좀 남아서, 잠깐 드시면서 계세요, 하고는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하….
내 입에서도 끙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갑자기 내 발로 장례식장을 찾아온 게 후회된다. 고인이 내가 아는 퍼플레인님이 맞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막상 초라한 빈소를 보니 프린스가 살아있건 말건 그깟 문자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고.
어쨌든 잘 가세요, 퍼플레인 아저씨. 그간 가족도 없이 외롭게 혼자 살아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프린스랑 같은 날 가셨으니 그래도 좋으시겠어요. 거기서 프린스랑 친구 하세요. 행복하시구요.
남은 음료를 입에 털어 넣고는 몸을 일으키려는데 한 여인이 빈소에 들어섰다. 세련된 정장 차림에 무표정한 얼굴로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여인은 그대로 서서는 그저 제단 쪽만 바라보고 있다.
막 일어서던 나는... 나갈 길이, 없다.
좁은 빈소의 출입문을 막고 선 그녀는 전진도 후진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서 있었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는 그녀가 비켜줄 때까지 페트병들과 함께 얌전히 구석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영정사진만 바라보던 여인은 드디어 몸을 움직였고, 제단 앞으로 가 분향한 후 두 손을 모으고는 고개를 숙였다. 교회에 다니는 분이구나.
여인이 조문하는 사이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지은 죄도 없이 발소리를 죽여가며 출입구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어느새 조문을 마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혼자일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귀에 양손을 모으고 왁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그 나지막한 여인의 한 마디에 심하게 놀란 나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경직시키고는 멈춰 서야 했다.
"네에."
"가족은 아니신 것 같고."
"그냥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다. 아침에 문자 받고 온 거예요."
"참 인생 허무하네요. 그죠?"
애초에 대답 같은 건 관심도 없다는 듯 여인은 나가자는 손짓과 함께 입구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향수 냄새가 훅 밀려들었다. 얼결에 여인의 뒤를 따라 빈소 밖으로 나왔다.
"차나 한잔 할래요?"
여인은 복도 끝의 자판기를 가리켰다.
방금 마셨고, 저는 이만 가볼까 하는데…. 입에서만 맴도는 말을 삼킨 채 나는 이미 자판기 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인의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여인은 커피를 뽑아서 내게 건네고는 두 번째 커피 버튼을 누른 후 팔짱을 낀 채 자판기 음료 배출구 부분만 쳐다봤다. 잘 마시겠습니다, 하고 그냥 갈까?
"잠깐 앉죠."
커피를 꺼낸 여인은 복도 벽을 따라 마련된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꼬아 올리고는 종이컵에 입을 댔다. 엉거주춤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은 나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후루룩 커피를 한 입 마신 여인은 내게 고개를 돌리곤 물었다.
"직장인?"
"네."
"남동남 씨하고는 어떻게 아세요?"
"안다고 하기도 뭣한 게 온라인 동호회 회원이고 겨우 두 번 봤어요."
"저는 딱 한 번 뵌 분이에요. 오늘 문자 받고 좀 황당하더라고요."
목에 통째로 박힌 고구마가 쑥 내려간 듯 시원함과 함께 반가움이 확 밀려들었다. 그거다. 황당함. 죽은 사람을 두고 내뱉기에는 좀 미안한 표현이어서 그렇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말.
"저도, 사실 성함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아이디로만 알아서."
여인이 큭, 삐져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막으며 눈치를 살폈다. 비로소 뻣뻣한 어색함이 풀리며 동지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 쳐다보는 여인의 표정에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꿀꺽 삼켰다.
"책 동호회였거든요. 게시판에 절판된 책을 구한다고 퍼플레인님이, 저분 아이디가 퍼플레인인데요, 퍼플레인님이 글을 올리셨어요. 그 책이 저한테 있었거든요. 엄마 책이긴 하지만. 원래 잘 안 보던 책인데 너무 열심히 찾고 계시니까 제가 드리겠다고 했죠."
"그래서, 만나서 책을 드린 건가요?"
"드렸죠. 가격을 물으시기에 어차피 안 보는 책이라 그냥 가지시라고 했더니 근처 커피집으로 절 데리고 가셨어요. 거기서 커피 사주시고 젊은 시절 이야기, 이런저런 얘기 좀 하시고. 정말 구하고 싶던 책이었나 봐요. 계속 이리저리 들춰보고 만져보고. 받자마자 책 표지 안쪽에 자기 전화번호를 적는 거 있죠?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어머, 하며 놀란 여인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분 원래 습관이었구나. 저도 책 때문에 알게 된 건데? 지하철에서 이분 전화번호가 적힌 책을 주웠거든요."
"정말요?"
"빈자리에 책이 덩그러니 있더라고요. 좋은 책이라 앉아서 들춰보니까 '남동남'이라는 이름이랑 전화번호가 있는 거예요. 좀 웃기기도 하고. 진짜 책 주인인가 싶어 문자 보내봤죠. 혹시 지하철에 책 놓고 내리셨냐고. 바로 전화가 왔어요.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우와."
"뒤따라 오겠다고, 저 내릴 역을 알려달라는 거예요. 전 한참 더 가야 하는데. 그래서 내가 지금 잠깐 내릴 테니 어디 어디 역 플랫폼에서 뵙자 했죠. 정말 금방 뒤따라 오셨어요.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무소유>였거든요."
"무소유요?"
"법정스님 책, 절판된 거요. 이게 아직도 고가에 거래된다면서요? 생각해보니 에이 아까워. 처음 발견했을 때 그냥 슬쩍 가져갈 걸 그랬나 봐요. 가져갔어도 그 전화번호 때문에 내내 찜찜했겠지만. 그런데…. 왜 그래요?"
장난스럽게 웃던 여인은 멍해진 내 얼굴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무소유>. 너무나 열심히 구하는 바람에 선뜻 내어주고는 괜히 줬나 싶었던 엄마의 유품. 내가 퍼플레인님에게 준 바로 그 책이었다.
엄마의 유품은 트래블백 하나가 전부라고 했다. 가방 안에는 옷 몇 벌, 책 몇 권, 화장품, 길거리에서 산 듯한 액세서리 몇 개가 전부였다.
내 짐과 함께 장롱 속 한자리를 차지하던 엄마의 유품 가방을 정리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였다. 정리라고 해봐야 책은 책꽂이에, 옷은 옷장에, 액세서리는 책상 서랍에 넣은 것이 전부지만.
<무소유>는 몇 권 안 되는 엄마의 책 중 하나였고, 퍼플레인님에게 넘길 때만 해도 이게 엄마 책인지 내 책인지 누구한테 빌린 책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세상에! 진짜요? 세상 참 좁네. 어머 신기해라. 내가 그 책 안 찾아드렸으면 여기, 님께도 서운했겠어요. 성함이?"
"이요한이라고 합니다."
"신용숙이에요."
그제야 여인과 나는 통성명을 하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클러치에서 명함을 꺼내 능숙하게 건넨 여인은 꼬맹이 아들이 하나 있고 옷이나 핸드백 같은 걸 파는 작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한다고 했다. 여인이 건넨 명함에는 CEO 신용숙,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과 블로그 URL,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 아이디가 적혀 있었다.
신용숙은 명함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대리님이시네."
"코딱지만 한 회사라 입사하자마자 막 대리도 주고 과장도 주고 그래요."
"줄 만하니까 줬겠죠."
신용숙은 웃으며 명함을 클러치에 넣었다.
그때였다. 장례식장 입구 쪽에 검은 옷차림의 젊은 여인이 나타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