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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황제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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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굴에서 만난 스님.
작성일 : 16-10-05     조회 : 830     추천 : 2     분량 : 8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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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진후 씨?”

 남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진후 씨.”

 “누군지 모르지만, 길을 잃은 거라면 얼른 나가거라. 여긴 네가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니라.”

 ‘분명 배우 진후의 얼굴인데.’

 내가 착각하는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얼굴을 찬찬히 확인 했지만 남자는 요즘 한창 여러 드라마와 사극을 종횡 무진하는 진후가 맞았다.

 “머린 왜 그렇게 박박 밀었어요? 아, 혹시 제가 누군지 몰라서 그러시는 거라면······. 그건 이해 할게요. 겨우 한 번 같이 촬영 해놓고 아는 척 하는 저도 우스우니까요.”

 “나는 어서 네가 나가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서 나가거라.”

 남자의 목소리가 싸늘하다. 그 모습에 나는 짐짓 부아가 치밀었다.

 “저기요! 사람이 말을 하면 얼굴이라도 보고 대답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가 누구이기에 얼굴을 보고 맞이하라는 것이냐.”

 “네? 아니, 제가 누구든 상관없이 사람이 말을 하면 얼굴은 마주 봐야 하는 거잖아요.”

 남자는 귀찮은 듯 근처의 돌 조각 하나를 뒤로 던졌다.

 딱-!

 “아야!”

 “어서 나가거라. 지금은 내가 참선수행 중이니 방해 받고 싶지 않구나.”

 “참선 수행?”

 ‘설마, 스님 역할을 맡은 건가?’

 나는 그가 이 근처에서 J방송국 드라마 촬영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하면 조금 이상한 점도 있었다.

 ‘진후 씨는 머리 미는 걸 싫어하는데? 어쩌다가 머리를 저렇게 밀어버린 거지? 그리고 머릴 저렇게 밀어버리면 다른 사극 드라마는 가발을 쓰고 하려는 건가?’

 그의 머리는 대머리로 보이게 하는 가발이라기엔 너무나 반질반질하고 완벽한 두피 그 자체였다. 약간의 잔머리도 없이 박박 밀어버린 듯 동그란 뒤통수엔 설핏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왠지 손이 근질거리며 시원하게 밀어버린 머리를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에게 닿으려는 손을 다른 쪽 손으로 틀어잡았다.

 “그럼 촬영 잘 하세요.”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가야겠구나.’

 “잠깐.”

 “예?”

 “촬영이라니, 그건 무슨 말이냐.”

 “진후 씨······.아, 아니. 당신 누구?”

 옆모습에서 진후임을 확신 한 게 무색하게도 남자의 콧대는 살짝 주저앉아 매부리코를 연상 시켰고 눈 밑엔 반달 모양의 흉터가 있다.

 ‘진후 씨가 아니야?’

 그러자 단숨에 믿을 수 없던 사실이 확실해졌다.

 ‘타임 슬립?’

 “너는 어디서 온 아이냐. 그동안 내가 못 보던 아이인 걸 보면 근자에 궁에 입궁한 걸로 보이는데. 그러하냐?”

 “아······.저는······.”

 ‘이게 타임 슬립이 확실하다면 저 남자는 스님이라는 건데. 말투는 어째서 사극에 나오는 황족 말투와 같은 걸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온 아이냐고 물었느니!”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스님이 점점 더 의심스러운 듯이 묻는다.

 “어디서 온 아이냐. 혹, 나를 죽이러 온 자객이란 말인가.”

 남자의 얼굴에 일순 살기가 감돌았다. 스님의 복장을 하고 까만 승려 복장을 하고 있는 남자가 가까이 걸어오자 나도 모르게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나, 나는······.”

 “정말 자객이냐? 그렇다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온 것이더냐.”

 사극 드라마를 볼 때는 저 멍청이들이 왜 피하질 못하고 말조차 제대로 못하나 싶었는데, 내가 겪어보니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저런 눈빛에 행동을 보게 된 사람은 1차적으로 몸이 굳어버린다는 것을.

 “자객이냐고 물었다!”

 남자는 이제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로 목 부근을 겨냥했다.

 “······.”

 “자객인가 보구나.”

 “아, 아닙니다. 자객은.”

 겨우 터져 나왔다.

 “아니다?”

 “네. 아닙니다.”

 “그렇다면 궁인이라는 건데, 이 곳으론 어찌 뛰어 들어온 것이냐.”

 남자가 의심이 걷히지 않은 눈으로 물었다.

 “저는······. 누군가 절 잡으려고 하기에, 이리로 피신하게 된 것 뿐입니다.”

 나는 남자가 나를 숨겨 줄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말했다. 어째서 날 잡으려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온 후에 곧바로 말을 탄 남자들에게 쫓겼다. 지금의 예감으론 저들에게 잡혀 들어갔을 시에 꼼짝없이 엄청난 일을 당하고 말 거라는 사실이다.

 “그럼 너는 도망친 궁인이로구나.”

 남자의 얼굴이 일순 비정하게 변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

 “예. 그러니 부디······.”

 남자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내저었다.

 “위험한 아이로구나. 너는 내게 자객보다 위험한 아이다. 그런 너를 한 시도 이런 곳에 놔둘 수는 없느니라.”

 남자는 나를 밀어내며 말했다.

 “내가 황군을 부르기 전에 자진해서 돌아가거라.”

 “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단 말이다. 황궁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뭐라 하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하여라. 그것만이 네 목숨을 보전할 방법이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이다.”

 “예? 정말······.저보고 저 밖으로 나가란 말이십니까?”

 “그렇다.”

 남자는 차갑게 일갈하며 참선수행에 들어갔다.

  ***

 

 매정하게 돌아선 남자의 등을 노려보며 천천히 밖으로 나섰지만 차마 동굴 밖으론 걸어 나갈 수 없었다. 밖에는 아직도 말발굽 소리가 난무했고 무수히 많은 황군의 고함소리가 주변을 에워쌌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 많은 황군을 동원했을까.’

 우리는 사극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타임 슬립을 한다면 끽해야 평민이나 황궁 무수리 정도 밖에 안 될 거라고. 그러니 행여나 그런 행운인지 재앙인지 아리송한 일을 겪게 된다면 가늘고 길게 죽지만 말고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 그때는 거의 반 장난 식으로 그럴 리가 없다 말하며 황당하고 무서운 말도 많이 했다.

 지금은 그 말들이 부메랑이 된 것 같아서 몹시 두렵고 막막하다.

 드라마에선 타임 슬립으로 어리고 예쁜 여자 몸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던데. 지금 거울을 볼 수 없어서 얼굴이 어찌 생겨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키와 체형은 아무리 봐도 이전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일단 키만 보더라도 이 세계로 오기 전 172cm보다 한참은 작은 것 같고, 몸은 여기저기 옷 속에 말려들어가 있는 살집을 주물러보니 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통실한 체형인 것 같다.

 150cm나 될까?

 게다가 발에 신은 신발 역시 조금은 무겁고 불편한 고무와 비단이 반반씩 섞인 신발로 작은 발을 옴짝 달싹 할 수 없이 감싸고 있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 실력 하나는 타고 난 운동 신경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불편하고, 현대의 신발보다 무거운 신발을 신고서 말을 탄 추적 군인들에게 꼼짝 없이 잡혔을 것이다.

 더욱 더 천운인 것은 짧은 시간 안에 이런 비밀스러운 동굴을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동굴의 주인은 까칠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어쨌든 난데 없이 떨어진 이계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 것 치고는 운이 좋았다.

 익숙한 느낌이 고대의 중국과 흡사해 보이긴 하지만 (중국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던 장면과 비슷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것이) 고대 중국으로 타임 슬립을 한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적어도 도망 중에 이런 동굴도 찾았고, 냉정하게 내치기는 했어도 나름대로 도움을 준 남자도 있으니까.”

 ‘앞으로 저 남자가 내게 득이 될 사람일지, 독이 될 사람일지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괜찮아.’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입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쉴 새 없이 되뇌었다.

 잠시 후,

 두근거리던 심장이 다스려지자마자 나는 진후의 얼굴을 한 남자에게 급격한 호기심이 치밀었다.

 남자가 황족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느낌상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찌 된 이유인지 황궁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산의 동굴에서 스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 또한 마음에 걸렸다.

 저 남자는 무슨 이유로 스님이 되어 있는 것일까?

 “살짝 물어볼까?”

 따닥, 따닥, 따닥, 따닥.

 종종걸음으로 살금살금 걷는다고 하는데도 이놈의 신발이 자꾸만 소음을 만들었다. 또한 걸을 때마다 살갗이 쓸리며 발이 사정없이 조여서 고통스럽게 했다.

 ‘대체 여긴 어느 나라냐고!! 이런 꽉 조이는 신발을 신은 걸 보면 옛날 고구려, 백제, 신라 뭐 그런 나라들 중 하나인 것 같긴 한데……. 아니, 아냐. 이건 당혜나 전족과 비슷하긴 하지만 또 달라. 꽉 조이긴 하지만 전족이 아니고, 거추장스러우면서 예쁘긴 하지만 당혜도 아니야. 두가지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신발 모양에, 달리기엔 무리가 없을 정도

 지만 긴장이 늦춰지면 발이 몹시 아파와. 마치 잘못 만들어진 공장의 불량 신발처럼.’

 내가 신발과 의복을 보며 이 세계를 추측 하고 있을 무렵, 남자의 입에서 기어이 성마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직도 안 가고 뭐 하는 것이냐.”

 그리고 남자는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며 힐난의 시선을 던졌다.

 “저, 아직……. 위험해서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남자에게 양해를 구했지만 남자는 매정하게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어서 가거라.”

 “잠깐만 여기 있게 해 주세요! 귀찮게 안 할 테니까요.”

 남자는 끝끝내 매정한 태도를 고수했다.

 “얼른 가라는데도?”

 “저 사람들만 가면 저도 갈게요. 예?”

 “얼른 황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크게 경을 칠 것이다.”

 나는 남자가 몹시 야속했다.

 “잠깐만 있다 간다는데,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래요?”

 울컥 눈물이 흐르고 화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의 고요한 위압감에 압사 당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깐 머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음을 모르느냐.”

 “알아요. 안다고요! 나도 역사 같은 건 모르지만, 사극에서 보면 이렇게 누구랑 얽히면 사건 사고가 빵빵 터져서 도와준 사람도 위험해진다는 것 정도는 안다고요. 하지만 어떡해요.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도망쳐야겠는데. 이대로 끌려가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나가요?

 무슨 스님이 측은지심도 없고 애민정신 같은 것도 없어요?”

 “측은지심? 애민정신~? 지금 그거, 나보고 하는 말이더냐?”

 “네! 동물도 포수에게서 도망치면 숨겨주는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하물며 나는 사람인데 그것도 연약한 여잔데…….”

 “대체 어디가 연약한 여자라는 거냐?”

 남자의 눈썹이 크게 씰룩였다.

 ‘아, 그래! 지금 이건 실수다.’

 “연약 하진 않지만 어쨌든 여잔데……. 도와주진 않아도 방관 할 순 있는 거잖아요. 아주 잠깐. 잠깐이면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을 거예요. 예?”

 “싫다.”

 “싫어요?”

 “그래. 황군이 쫓아 온 걸 보니, 넌 죄를 져도 보통 큰 죄를 진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냐?”

 “자,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른다?”

 “네. 저 말이에요. 지금 영문도 모르고 쫓기는 중이거든요.”

 “영문도 모른 채 쫓긴다고?”

 “네.”

 “그거 참 이상한 일이군.”

 남자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황제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자였던가.”

 “어쨌든…….저는 지금 이대로 못 나가요. 적어도 제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꼴이 됐는지는 알고 가야 하잖아요. 아무리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은 세상에 있다고 해도 이유 없이 죽임 당하고, 이유도 납득 못한 채 쫓기는 그런 일. 당하고 싶지 않거든요.”

 “이유를 납득치 못한 채 당하는 게 싫다?”

 “그런 건, 정말 싫어요.”

 나는 간절한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적어도 남자가 이 눈빛을 무시 하지 않을 정도는 되는 인간이기를 바라며.

  ***

 

 몇 분이 더 지났지만 남자의 단호함은 굽혀질 줄 몰랐다. 또한 남자는 거만한 말투로 황당한 말을 지껄였다.

 핀트가 어긋 난 사극 드라마의 대사처럼 어긋나도 한참은 어긋난 말을 구사하는 남자의 말이 참으로 우스웠다.

 “내가 널 품어 줄 여유가 없느니라.”

 ‘품어? 뭘 품어. 아, 진짜. 이 스님이 뭐라는 거야.’

 “잠깐만 절 여기 내버려 두시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도 널 지킬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남자의 얼굴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차가웠다.

 ‘이런. 타잔 빤쓰만도 못한 인간! 어떻게 진후 같은 얼굴을 하고 저런 차가운 말을 할 수가 있지?’

 진후를 닮았으면서도 몸서리 쳐질 정도로 차가운 남자의 얼굴을 보니 원래 있던 세상이 더욱 그리워졌다.

 “잠시면 됩니다. 아주 잠시만.”

 “놓아라!”

 남자는 거칠게 자신의 소맷부리를 갈무리하며 나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아앗?”

 “가자!”

 “어? 어디로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혼자 나가는 것이 싫다하니, 내 친히 너를 황군에게 데려다 주겠느니라.”

 “제가 왜 숨어 있는지 들으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이래도 날 황군에게 넘길래?’

 안 나오는 눈물을 쥐어짜며 애처롭게 그를 올려다봤다.

  ‘이런 씨! 역효과다.’

 그의 뭐 씹은 것 같은 표정을 보니 안 하느니만 못 한 것 같다.

 나는 애처로운 표정을 거두고 남자와 마찬가지인 어투로 물었다.

 “왜 제가 꼭 가야만 하나요? 어째서 지금 꼭 가라고 하십니까.”

 “돌아가지 않으면 너는 영영 도망자 신세니라. 그래도 평생 도망 칠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지. 허나 너 같은 여인은 십중팔구 반나절도 못 버티고 잡혀서 참형에 처해지고 말 것이다.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죄만 더 늘어난다면 말이다.”

 “무, 무서운 소리 말아요! 그리고 제가 왜 참형을 당합니까? 무슨 죄를 지었다고요!”

 남자의 음울한 눈이 뚫어질 듯 나를 응시했다.

 “너는 황궁을 벗어나려던 것이 아니더냐.”

 “제가요?”

 ‘물론 지금은 그런 마음이 굴뚝같지만. 설마, 내가 들어 온 이 몸의 주인도? 아니 왜?’

 “그건 분명히 대역죄에 해당한다. 또한 너를 누군가 맹렬히 뒤쫓는다면 그건 네가 그보다 큰 죄를 지었다는 말이겠지. 가령, 황족을 시해 했다거나.”

 “…….”

 ‘내가……. 아니, 이 몸의 주인이 황족을 시해 해? 아니지. 시해가 아니라 누명을 뒤집어 쓴 거라면. 누명이라면……. 아이 씨! 이 몸으론 미인계도 못 쓸 테니 살 수 있는 확률이 없잖아!’

 남자는 두려워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나 겁먹지 말거라. 황족이 움직였다는 건, 네 죄가 황족 시해는 아니란 것이다.”

 “황족 시해가 아니면요?”

 “하나가 아니라면 다른 것이겠지.”

 “예?”

 남자가 예의 음울한 눈으로 씩 웃었다.

 “무엇이겠느냐. 너를 모시러 온 것이다. 아마 저들도 지금 애가 바짝 바짝 타고 있을 것이 자명할 터.”

 “모셔…….요?”

 ‘딱 봐도 무수리나 해 먹을 이 몸의 주인을?’

 “그래. 아무래도 넌, 황제의 후궁이거나 후궁이 될 몸인가 보구나.”

 “후, 후궁이요?”

 나는 어리바리한 얼굴로 남자자에게 반문했다.

 “저기요. 혹시, 황족이신가요?”

 남자는 그렇다는 듯이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황족, 이에요?”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는 나에게 청천 벽력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아닌 것 같으냐?”

 ‘아…….역시 이 남자. 황족이었구나.’

 눈 앞이 캄캄해졌다. 하필이면 황족에게 이런 무례를 범했나 싶어서 골이 띵하니 울려왔다.

 그래. 그러고 보니 말투며, 행동거지에서부터 황족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이긴 한다.

 황족이 동굴에 있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사극 드라마에서도 보면 이런 저런 사정으로 황족이 아닌 척

 숨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그러니…….

 ‘황족이면 저런 것쯤 짐작하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겠지. 하지만 이 여자가 도망을 칠 정도면 황제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데. 나 정말 황궁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솔직히 싫었다. 황제의 명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혼인을 해야만 하는 제도는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도 거부감이 일었던 것이기에 이 세상에 왔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황제가 정말 혼인하기 끔찍한 사람이라면, 난 그런 혼인 절대로 못해! 죽어도 못 해! 아니, 그게 아니라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혼인은…….’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혼인 할 사람이 저 남자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눈 딱 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 사람을 참아 넘길 수 있을까?

 “싫어요!”

 “황제와의 혼인이 싫으냐?”

 “네. 싫어요!”

 ‘그러니까. 날 자꾸 보내려고 하지 말아요. 제발.’

 그러자 남자는 서글픈 눈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가 왜 너를 잠시도 데리고 있을 수 없는 줄 아느냐? 그건 내가 그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왜…….”

 “나는 황족이 틀림없지만, 황족이어선 아니 되는 사람이니라. 아니……. 감히 황권에 도전할 수 없는 황족이라 하는 것이 맞는 거겠지. 황제의 성이 어찌 되는지 아느냐?”

 나는 고개만 내저었다.

 “황 씨 성을 갖고 있느니라. 황가의 적통은 모두 황 씨 성을 갖고 있지.”

 “…….”

 “그럼 나는 어떤 성일 것 같으냐.”

 ‘왜 자꾸 이런 걸 묻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모르겠지. 황가에서도 쉬쉬하는 황족을 네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남자의 눈이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나는 현 황제의 형이지만 황제의 아들이 아니니라.”

 “네?”

 “내 어머니는 황위 서열 두 번째의 황녀였지만 황제가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황위를 얻지 못하게 된 후, 어머니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동생이자 황위 계승 1위였던 태자와 결혼하며 황후가 되셨지.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버리셨지만……. 현 황제를 낳은 후에도 세 명의 배다른 형제를 더 낳으셨느니라. 그러니 내겐 정말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라도 있다면 아버지를 찾아갔을 것이나, 내 아버지가 위 씨 성을 가진 남자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

 “어머니께…….물어 보시지는 않으셨습니까?”

 “묻는다고 말 해 주실 분이 아니시다. 나를 만나지도 않으려 하시는 분이니, 내가 무얼 기대 할 수 있겠느냐. 또, 나는 말했다시피 다른 형제들처럼 황족으로서 대우 받지 못하는 존재이니라.”

 ‘근친 혼? 배다른 형제? 숨겨진 황족…….’

 “나는 여기 버려져 황족이되, 황족이 아닌 사람으로 숨만 쉬다시피 살아야 했다. 그리고 장성한 뒤에는 죽임 당하지 않기 위해 속세의 인연을 놓았음을 내 손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런 내가 너를 잠시라도 숨겨 둘 수 있을 성 싶으냐?”

 “그래서 제 등을 떠미시는 겁니까?”

 “그렇다. 나는 속세와의 연이 끊긴 자이니, 당연히 속세의 여인을 만나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남자의 말을 듣고 보니 그의 행동이 그리 매정하게만 보이진 않았다. 고려 시대의 연화 공주와 신라 시대의 미실을 합쳐 놓은 것과 같은 어머니에게 내쳐져 혹독한 세월을 보낸 사람이기에 일견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

 자기 한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남자에게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갈게요.”

 나는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황궁으로 향했다.

 ‘그래. 까짓 것, 부딪혀 보지 뭐!’

  ***

 

 

 

 

 

 

 

 

 

 

 

 

만우절재방송 16-11-22 22:08
 
여기에도 매정한 어머니가 존재하는 군요 ㅠㅠ
  ┖
야광흑나비 16-11-23 21:57
 
매정한 어머니는 어디에나 존재하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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