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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황제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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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진정한 도움은 상대가 모르게.
작성일 : 16-10-08     조회 : 745     추천 : 2     분량 : 5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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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룡은 경비가 허술한 별궁 지붕을 타넘고 황궁 서고를 오가던 중에 흥미로운 장면들을 발견 했다. 황궁으로 보내 놓고도 자꾸만 걱정이 되었던 궁녀가 별궁으로 가는 길에 다른 궁인들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것과, 그가 서고에서 돌아가는 길에 황제가 몰래 궁녀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는 모습이었고, 그 외에도 궁녀가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낯선 궁인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궁녀에게서 내궁의 노련한 후궁들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를 보며 이 어수룩해 보이는 궁녀가 사실은 굉장한 여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 했다. 아무리 궁에서 오래 생활 했다고 해도 그녀는 무수리였다.

 최하층 계급의 궁인으로서 겪는 황궁의 삶과 최고층 계급의 궁인으로서 겪는 황궁의 삶은 분명히 달랐고, 무수리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과 후궁이 타인을 대하는 방식 또한 크게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궁녀는 무수리와 후궁에게서 보이는 그런 간극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처음의 순한 인상에서는 알지 못했던 아주 오랫동안 터득한 심계가 그녀의 눈 곳곳에서 번뜩이고 있었기에, 그는 이 순간 놀라움으로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무수리인데……. 어찌하여 노련한 후궁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인가.

 궁녀는 이미 사람 몇을 죽인 것처럼, 혹은 곧 이어 누군가를 죽일 예정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뭘 꾸미고 있는 건가.’

 궁녀의 전방으로 보이는 다른 궁녀들은 미색이 뛰어나지만 어딘지 여인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보통 여인들처럼 하늘하늘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자세가 아닌 거칠고 투박하게 내뻗어나가는 자세부터가 말이 안 됐다. 마치 사내처럼.

 “사내?”

 ‘사내를 무수리로 분장 시켰다?’

 후방으로 서 있는 황군 여섯 명도 처음 보는 수상한 인물임엔 틀림없었다.

 “앞에 여섯. 뒤에 넷. 정확히 열 명이로군. 열 명으로 무엇을 하려는 거지? 혹시 반역을 도모하는 것인가?”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허나 그는 궁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그들에게서 희미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궁인이 되게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였지만, 네 형제들이 궁인이 될 기회는 열어줄 수 있을 듯싶구나.”

 “정말입니까?”

 “그래.”

 ‘일을 구해 준다? 흠, 그렇군. 편법을 쓰지 않는 이상, 한 집에서 한 명 이상의 궁인은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것만으로 판단을 하기엔 무언가 부족했다.

 청룡은 궁녀가 하는 말을 좀 더 가까이로 다가가 듣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이틀 뒤에 있을 혼인식 행사에 한 명씩 나타나는 것이다.”

 “무슨 위험한 일인가요?”

 “아니.”

 “그럼 어떤 일을 하는 것입니까. 누구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면…….”

 “죽이는 일이 아니라 그들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어떻게요?”

 “너희들의 미색으로.”

 “미색으로요? 저희가……. 황족의 노리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시, 싫습니다!”

 “그게 아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너희가 할 일은 그저 황족들의 신경만을 분산시키고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진 그저 집으로 돌아가 내가 다시 불러들일 때까지 숨어 있으란 말이야.”

 “그것뿐입니까?”

 “그래. 은밀하게 움직이되 드러내놓고 분란을 만들진 말거라. 그냥 너희들이 할 것은 황제와 황태후 근처를 오가며 시선을 분산 시키는 일 뿐이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이 그뿐이라면, 그 명을 따를 것입니다.”

 “이해가 빠르구나. 그럼 나도 너희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내려 줄 것이다.”

 ‘정말 저 여인이 무수리로 몇 년을 살아 온 게 확실한 것인가.’

 궁녀는 황후 정도나 되어야 보일 수 있는 절제되고 교교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저것은 수많은 모략을 통해 몇 번이나 싸움에서 이겨 본 여인만이 보일 수 있는 미소이다.

 어린 나이에 무수리로서의 삶이 인생의 전부였던 여인이 보일만한 미소는 절대 아닌 것이었다.

 ‘넌 대체 어떤 여인이란 말이냐.’

 생각 했던 것만큼 엄청난 짓을 벌이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엔 안도 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지켜만 보기엔 어딘가 허술하게 느껴졌다.

 “나머진 내가 해결 해 줄까?”

 아무리 심계가 깊어도 실수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열 명의 사내를 궁으로 끌어들이는 게 문서를 위조해서 올리고, 궁문을 몰래 열어 안으로 데려 오는 데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군데군데 증거가 남을 일이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곧 황제가 눈치 챌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괜한 오해로 이번엔 진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건 안 되지.’

 청룡은 황제 몰래 심어 놓았던 그림자 심복들을 불러들였다.

 “페하.”

 “쉿.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다.”

 “…….”

 “아주 은밀하게 궁녀가 만들어놓은 흔적을 지워라.”

 “저 궁녀의 흔적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열 명의 궁인들이 자리를 채워도 안전할 만큼 공석을 만들고, 궁 밖으로 몰래 내보낸 궁인들에게 전답을 쥐어 주거라.”

 “소문이 나지 않겠습니까.”

 “궁에서 나가지 못해 안달인 궁인들로만 미리 추려 놓았느니라.”

 선견지명이었는지 청룡은 그동안 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궁인들의 정보를 상당량 보유 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의 뒤를 봐주기도 했으니 궁인들은 성문 밖으로 나가는 즉시, 궁 안에서의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것이다.

  ***

 ‘응?’

 이번에도 목욕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의 시선은 그 때 그 시선처럼 소름 돋게 등줄기를 훑는 시선이 아니었다. 보다 따뜻한 시선, 혹은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거북스럽지 않게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누구야?”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소리쳤다.

 팍-! 파파파팟!

 별궁의 지붕 끝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 보겠습니다.”

 황군으로 위장한 이들이 순식간에 날카로운 표정이 되어 지붕 위로 뛰어 올랐다.

 “거기 서!”

 “누구냐-!”

 “서라!”

 팍-!파파파팟. 파바바밧-!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또 오른 쪽에서 뒤쪽으로 위장한 이들을 놀리듯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만 하시지요.”

 나는 지붕 위에 올라서 있는 괴한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어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불필요한 놀림은 거두시지요.”

 지붕 위에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그런 것이냐?”

 “그렇습니다.”

 “아직 어린 사람들이라 놀리는 게 안 된다면, 어리지 않은 사람은 놀림을 당해도 괜찮다는 말이냐?”

 목소리가 낯익었다.

 ‘내가 이 목소릴 어디서 들었더라? 아?!’

 “아까 낮에 그 스님?”

 “금세 알아채는구나.”

 “여긴 무슨 일이시죠? 성가신 일엔 휩쓸리지 않으시는 분이신 줄 알았는데요.”

 궁인으로 위장한 이들을 물리며 불만스럽게 주절거렸다.

 “성가신 일에는 휩쓸리지 않으나 재밌는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니라.”

 “재밌는 일, 말이십니까?”

 “그렇다.”

 “여기에 무슨 재밌는 일이……. 설마, 제 일을 훼방 놓으시려는 건가요?”

 남자의 말이 신경을 건드린다.

 “훼방 놓으실 거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사라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사라지지 않겠다면?”

 나는 남자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서 제가 소리를 지르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희롱을 한다고 고할 셈인가.”

 “그렇다면요?”

 “어이쿠, 이런. 은인을 대하는 자세가 형편없구나.”

 “은인은 무슨. 저를 황군의 말 위에 던져 준 이가 어찌 은인이 되겠습니까.”

 낮에 남자가 한 행동은 낯이 붉어질 정도로 황망한 일이었다. 어떻게 된 남자가 과년한 처녀를 나무 넝쿨로 칭칭 묶고 황군 앞에 데려가는 내내 엉덩이를 때릴 수 있는지.

 무례하고 야만적인 남자였다.

 “보통은 그런 걸 두고 은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네가 어디에 기준을 두는지 모르겠다만, 낮의 일은 너를 도운 것이 확실하다.”

 “하하. 그런 말을 하실 거라면 어서 가버리십시오.”

 “은인을 이렇게 푸대접을 해서야……. 네가 아무리 싫어해도 나는 지금 차를 얻어 마셔야겠다.”

 남자가 뻔뻔하게 별궁으로 밀고 들어왔다.

 “제법 찬바람이 부는구나. 목도 영~ 깔깔하고……. 차를 우려 다오.”

 쉽게는 안 갈 것 같아서 아무렇게나 우린 차를 갖고 갔다. 그러자 남자는 한 모금 마시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서 연신 토악질을 하는 것이었다.

 “케켁, 우웩. 이걸 차라고 우려냈느냐? 이거 참, 사람 잡을 궁녀로구나.”

 “제가 무슨…….”

 “되었다. 억지로 하는 일에 무엇을 기대할까.”

 남자는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큰 보폭으로 걸으며 문지방을 넘었다.

 “이틀 동안 조심 하여라.”

 그리고 남자는 아리송한 한마디의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방에 들어와선 걱정 없이 잘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남자가 나타난 다음부터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약을 바짝 올리고는 통 모를 소리를 내뱉고 간 잘생긴 남자로 인해 마음이 싱숭생숭 해졌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고 가는 거야. 이틀 동안 조심 하라니. 설마, 다 들은 건 아니겠지?”

 남자가 자신의 말을 엿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황제한테 말하기라도 하는 날엔?’

 걱정이 되니 걱정 저 너머로 울화통이 터져 오른다.

 “아, 그 인간을 잡아서 제대로 단도리를 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 했네. 실수 했네!”

 당장이라도 황군이 문을 밀고 들어올 것만 같아서 자꾸만 문 앞을 노려봤다.

 “도와 달랄 땐 안 도와주고서 엉뚱한 일엔 나서는 저의가 뭐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도 뭔가 대비책을 만들어 놔야겠지? 아픈 척을 할까? 아니, 아냐. 이건 너무 뻔해. 그럼 황제한테 먼저 이실직고를? 아냐. 이렇게 했다가 큰일을 치루면……. 아아~ 뭘 어떡하지?

 차라리 야밤에 황제를 미혼 약에 중독 시킬까? 그래. 그렇게 하고 적당한 궁녀를 방 안에 밀어 넣으면…….아, 환관이 있었지! 못 나가잖아.”

 황제를 알현할 때 문 밖에 서 있었던 거대한 덩치의 환관을 떠올리니 자꾸만 자신이 없어졌다.

 “그냥 정신만 쏙 빼놓고 말까? 아니, 왜 황제는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해가지고……. 참, 어느 시대나 예쁜 게 죄라니까.”

  ***

 청룡은 여전히 지붕 위에서 궁녀의 말을 들으며 숨죽인 웃음을 삼켰다.

 “한동안 궁 안이 시끄럽겠군.”

 청룡은 궁녀의 흔적을 지우고 돌아온 그림자 심복들에게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이틀 동안 주변을 감시해라.”

 “존명!”

 잠시 후, 청룡의 가문 논 같던 눈에 약간의 습기가 차올랐다.

 ‘이곳은 아무리 되돌아 와 봐도 정이 붙지 않고 피로한 곳인데……. 오늘은 어쩐지 그 감정이 덜 한 것 같구나. 이것은 무엇 때문이더냐.’

  ***

 

 

 

 

 

만우절재방송 16-11-29 17:01
 
청룡의 계획이 궁금해 지네요~^^
  ┖
야광흑나비 16-11-29 17:04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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