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룡은 두 눈을 비비며 대화원으로 들어선 신하들을 헤아렸다.
‘겨우 이 것 밖에 안 온 것인가?’
모두에게 혼인식 초대장을 보낼 때까지만 하더라도 혼인 축하 선물이 속속들이 당도하며 의룡의 혼인을 기뻐하는 반응이었던 그들이다. 그런데 겨우 이틀 사이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적은 숫자의 사람들만이 대화원에 모이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신하들의 표정에 전에 없던 경계심과 살의가 번득인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지 그의 의심이 불러온 것인지, 아니면 정말 역심의 발로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들 잘 오셨소.”
“감축 드리옵니다. 페하!”
“페하의 혼인식을 감축 드리옵니다.”
“이렇게 아리따운 후궁을 들이게 되신 것을 감축, 또 감축 드릴 따름입니다.”
진중하기 짝이 없던 신하들 중 몇몇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과도한 행동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선 한결같은 두려움이 한꺼풀 깔려 있는 것을 그는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어째서 이틀 사이에 그렇게 변한 것인지 아직 연유를 파악치 못했다.
‘혹, 청룡의 간계인 것인가.’
청룡 밖에 없다고 생각 했다.
의룡은 황군을 은밀히 불러 지시를 내렸다.
“동굴로 가서 청룡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보고 오거라.”
“존명!”
그 시각 청룡은 그림자 심복에게 지시를 내리고 지름길로 내달려 이미 동굴에서 참선수행에 들어간 터였다.
혼인식이 예정대로 거행 되는 것 같으면 하늘 위로 준비 해 놨던 황조를 던져라.
황조는 왜…….
황족들과 신하들에게 이미 비밀 서신이 한 통씩 가 있다. 황조가 하늘 위로 오르면 황제가 신하들을 도륙 한다는 밀서이니라.
페하.
들키지 말고 은밀히 움직여야 한다. 발이 빠르고 활을 잘 쏘는 이들도 둘만 추려서 각각 궁 안과 밖에 배치하여라. 내, 그들에게 또 다른 서신을 줄 터이니 황제와 황족들에게 골고루 서신을 보내야 한다.
안팎으로 이간질을 시키란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하지만 황제가 쉽게 이간질에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배후의 조종자를 찾으려 들 것이니 서신을 모두 뿌린 뒤에는 궁에서 재빨리 몸을 숨겨라.
저희가 궁에서 사라지면 일이 틀어지진 않을는지요.
그건 염려 할 것 없다. 일은 제가 알아서 굴러갈 터이니. 하하하하.
청룡은 자신이 벌여 놓은 일들을 떠올리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뒤이어 그는 온 몸을 불붙은 돌덩어리처럼 굳히고 지그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곧 있으면 황군 중 한명이 자신을 보러 올 것이다.
그때쯤 그의 몸은 절대로 밖에 나갈 엄두를 못 낼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이다.
석화반 주화입마(기행이 역류 되어 반쯤 돌이 된 주화입마)에 빠진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고, 황군은 그에게서 아무런 꼬투리도 잡을 수 없다.
청룡이 여기서 돌이 된 채 기다리는 동안 궁 안에 있는 신하들은 겁에 질려 황제의 눈치만 살필 게 분명하다.
황제는 대번에 신하들의 달라진 점을 알아 챌 것이고 그들이 혼인식을 기점으로 반역을 도모한다고 믿을 것이다.
넉넉잡고 두시진이면 충분하다.
두 시진 후에는 단단히 준비 한 황군들이 궁을 에워싼 채 황제를 보호한다.
그렇게 황제는 혼인식 당일. 그동안 미약한 의심조차 품지 않았던 이들의 실체가 만 천하에 공개 될 것이다.
황위를 찬탈하려 했던 황족들이 속속들이 도착해 황제를 시해하려 들테니 그것을 막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터. 혼인식이 제대로 거행 될 리가 없다. 그렇게 반나절을 더 버틴다.
황제는 그동안 믿음과 애정으로 품어 왔던 황족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엔 그 많은 황족들을 도륙 할 수 없겠지만, 한 시도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될 터이니 그동안 그에게 집중 되어 있던 의심과 감시가 허술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궁녀 하나를 살리면서 내일을 도모한다. 좋은 방법이지. 좋은 방법이야! 하하하하.’
***
의룡은 동굴로 보냈던 황군이 돌아오자마자 청룡에 대해 물었다.
“그곳에 있더냐?”
“예. 페하. 있었사옵니다.”
“무얼 하고 있는지 보고 왔느냐.”
“페하. 청룡은 가부좌를 틀고 참선수행을 하던 도중에 석화반 주화입마에 빠진 듯 보였사옵니다.”
“뭐라? 주화입마? 무얼 했다고 주화입마에 빠져! 혹, 그놈이 무공을 연마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어?”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래?”
“네. 전하! 공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사옵니다.”
“하~ 좋다. 좋아!”
의룡은 황군의 대답에 저도 모르게 안심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을 살피는 여러 눈들을 보며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저 놈들이 남았어.’
몹시 신경이 거슬리고 있었다. 아까 전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 직전이면 창공을 날아오른다는 황조가 대화원을 한 바퀴 돌았다.
누구에게서 온 지 추적 할 수 없는 밀서도 받았다.
[황족들 중 일부는 천자가 되기를 바라고, 또 일부는 현 황제의 시해를 바라고 있는 인물들이며 그들은 모두 배꽃의 화원 안에서 모이게 될 것이다.]
배꽃의 화원이라면 유일하게 이 곳 황궁 대화원 뿐이었다.
다른 곳은 여러 꽃이 뒤섞여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만 이곳 대화원은 사시사철 배꽃 말고는 그 어떤 꽃도 피우지 않았다. 그것은 몇 년 전 여의주가 배꽃을 보고 웃던 모습에 반했던 의룡이 일부러 기존의 꽃나무들을 모두 솎아 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날아 온 밀서에는 오늘 대화원에 와 있는 신하들과 궁 밖의 황족들 대부분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지 않은가.
의룡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신하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그들의 두려움이 손 안에 잡히듯 빤히 들여다보였다.
황제를 죽이는 길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작금의 황제는 포악하고 천하를 다스릴 자질이 부족해. 다른 황족들 중에서 황제를 추대해야만 하겠어.
이대로 손 놓고 앉아 있다간 지금 당장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을 거다.
황제는 이제야 영문 모를 이들의 시선을 해독 할 수 있었다.
‘나를 죽이고 황휘를 찬탈 하겠다. 그럴 순 없지!’
의룡은 싸늘한 눈을 들어 황군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들을 당장 포박하라!”
“존명!”
***
혼인식이 있을 대화원에 억지로 끌려오며 서서히 체념하고 있었다.
나는 이 황궁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끔찍하지만 이 남자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며 빨리 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터였다.
그러나 잠시 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들을 당장 포박하라!”
“존명!”
혼인식 하객이 지나치게 적은 것에 황제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신하들을 포박하라는 지시가 내려질 줄은 몰랐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순간에 이런 상황이 있을지 모른다는 짐작은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일까.
“페, 페하?”
“너는 잠시 뒤에 가 있어라.”
황제는 날 화원 뒤편으로 보내고 황군에게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한 놈도 빼놓지 말고 포박하라. 저들은 역도의 무리이니라.”
“페하께서 저 역도의 무리를 포박하라신다!”
“와~~!”
“페하! 소신들을 이리 대할 순 없으십니다.”
촤촥-!
“페하. 어찌, 저희를 이리 버리시나이까.”“페하…….”
“페하…….윽.”
촤촤촷-!
“페, 페하…….”
챙, 챙, 챙.
“페하~!”
끔찍한 비명이 몇 번인가 들려오고 화원 뒤편에 서 있던 내 발 아래까지도 찐득찐득한 핏물이 고였다.
“꺅-!”
드라마로 볼 때는 스스로가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로 몰입해서 봤건만, 실제 장면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실로 끔찍함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다. 즐겁기는커녕 구역질이 치민다.
피비린내가 넓은 화원의 꽃향기를 묻어버릴 듯이 지독하게 주변을 에워쌌다.
어지러움이 엄습했지만 차마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벌써 발밑의 노란 빛이 도는 흙더미에도 핏물이 가득 채워져서 붉은 땅이 되어 있었다. 기절한다면 이 바닥에 구르겠지. 끔찍하다.
차라리 정신을 단단히 챙기고 서 있자.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황제는 지금 신하들에게 화가 단단히 나 있다. 황제의 눈이 살벌하게 희번덕거리는 것을 보니 이 살육이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가만히 숨어 있으면 이 시간도 끝이 나겠지.
황제가 말한 대로 얌전히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누군가 귓전에 ‘비겁해.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그러고 서 있을 거니?’ 비난 하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알 게 뭔가 싶었다.
“빨리 끝나라. 빨리 끝나라.”
몸을 한껏 웅크리고 사극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시신의 모습을 애써 회피했다. 그러나 하나 둘씩 목이 떨어져 나가는 신하들의 부릅뜬 눈에는 경악과 분노. 사나운 원망의 그림자가 넘실거린다.
목을 치게 만든 것은 황제인데, 황제와 혼인 할 뻔한 나를 향해 원망을 토해내는 눈빛이다.
‘그렇게 보지 마!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냐. 여긴 사극이 아닌 진짜 현실 세계니까. 아무리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지만 나도 죽는 건 싫거든? 여기서 죽으면 어찌 될 줄 알고 내가 나서겠어.’
몸을 사리고 또 사렸다.
역시 사극이 좋다고 해서 진짜 황제가 좋을 수는 없다. 더구나 황제는 무섭게 생긴 것도 모자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사람을 죽인다.
안 그래도 자신 없는 황제와의 혼인이 더욱 자신 없어졌다.
나도 언젠가 수틀리면 저런 식으로 황제에게 죽임을 당하겠지.
궁녀들이 했던 말이 이제야 제대로 와 닿았다.
‘이건 내가 겪어야 할 현실이야. 혼인을 하게 되면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어. 죽더라도 칼에 맞아 죽을 순 없잖아.’
나는 떨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뒷걸음질 쳤다.
아까 전, 옷 속에 있는 몸통을 새끼줄로 칭칭 감고서 끌고 왔던 상궁은 진즉에 신하들 곁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목이 잘려버렸다.
이제 새끼줄로 묶고 강제로 혼인식장으로 끌고 갈 사람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궁녀들은 우왕좌왕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내가 치장하고 있던 노리개며 옥반지 같은 패물들을 빼앗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몸이 굳어 있었기에 눈만을 사정 없이 돌리며 그 광경을 방관 할 뿐이었다.
그리고 몸이 멀쩡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저들을 향한 연민이 생기고 있었기에.
‘저들도 나처럼 똑같이 살고 싶어 해.’
몸이 제대로 움직이게 되자마자 맹렬히 궁문 앞까지 뛰어갔다.
탁탁탁탁. 탁탁탁탁탁.
한참을 뛰어가던 도중 누군가와 부딪혀 궁문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끼이이이-
“아, 안 돼!”
나를 밀쳐내고 빠른 속도로 남자가 뛰어나가자 활짝 열려 있던 궁문이 허무하게 닫혔다.
잠시 후, 나는 보고 말았다.
나를 스쳐 도망가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진 후…….”
검은 옷에 긴 머리를 넓은 모자로 덮어씌우긴 했지만 드러난 콧날과 입매가 너무나 진후와 닮아서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청룡. 그가 황궁 대화원에 있었다.
나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때 동굴에서 남자가 내게 한 말은 진심이었다. 스님 행세를 하던 남자는 내가 그의 삶에 끼어들어서 그가 하려는 일을 막는 걸림돌이 되는 걸 질색 했던 것임을 그 순간 완전히 이해했다.
‘저 사람이 혼인식 날 황제가 신하들을 죽이도록 만들었어.’
그는 나의 혼인식 날을 기점으로 황위 찬탈의 초석을 다지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