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미궁황제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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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소리 없는 암투의 시작.
작성일 : 16-10-14     조회 : 1,470     추천 : 1     분량 : 19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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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룡은 황궁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좀처럼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던 황태후가 그 대신에 잠행을 떠날 것을 요청 해 왔고,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황족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물론 황족들이 우호적이지 않을만한 이유라고 한다면 그가 숙청한 신하들 때문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겨우 그 정도의 일로 황족이 돌아섰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혹시, 어머니께서 다른 황자들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인가?”

 의룡의 눈에 설핏 날카로운 의심의 기운이 들어찼다.

 “비룡? 지룡? 수룡? 셋 중에 누구지?”

 황위 서열에 드는 아우들이지만 그들 또한 진정으로 황위 서열 안에 드는 이들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황태후의 노리개를 자처하며 그녀에게 힘을 보탠 공신들의 아들이기에 외가의 성을 따라 황 씨 성이 된 이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통이 아닌 자들이 적통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바라서도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 또한 같은 생각인지는 미지수였다. 또한 세 명의 형제들이 부리던 가신들 중에 누군가가 이번 숙청의 대상이었다면, 이들의 반발이 일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그럼 누구의 가신인가. 누가 황위를 찬탈하려는 것인가. 이전엔 신경조차 쓰지 않던 것들이 신경 쓰였다.

 대를 이어 병권을 움켜쥐고 있는 대장군 집안을 친가로 둔 지룡은 상당한 무골이다. 머리는 나쁘지만 옆에 지략을 겸비한 책사가 있다면 무력을 써서 황위를 찬탈 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지룡에게는 책사를 겸비 할 만큼 위험한 인물이 존재한다.

 감히 황위를 노릴 수도 없고 황위를 노릴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지룡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를 두 손으로 주무르며 계략을 꾸밀만한 인물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는 바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황후의 부름에 응할 정도의 야심도 겸비한, 지룡의 아버지 천위완이다.

 그동안은 황태후의 눈치를 보고 황권에 감히 도전 할 빌미가 없어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지만, 후궁을 들이는 문제와 신하를 대거 숙청 한 것이 그들에게 빌미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시기적절하게도 지금은 황태후조차 출궁해 버려서 궁 안에는 그들을 억누를 세력이 전무하다.

 그 말인 즉, 의룡 혼자의 힘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또한 비룡과 수룡도 무시 할 수 없는 정적들이다.

 비룡은 집안이 한미한 자라고 해도 그 자신이 여러 모로 월등했다. 문무를 겸비하고 청룡을 제외하면 가장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엔 어머니를 가장 닮은 외모이기에 청룡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어쨌든 표환국 내에선 가장 아름다운 사내라 할 수 있다.

 그런 비룡이 누군가와 손을 잡고 움직인다면 그는 그 어떤 이들보다 위험한 적이 된다.

 가령…….수룡이라던가.

 수룡은 세 명의 이복형제들 중에서 가장 야심이 적은 사람에 속하지만 겉으로 제 속을 내보이지 않는 면에선 누구보다 위험했다. 집안도 대대로 무신 집안인 비룡과 마찬가지로 대를 이은 문신 집안의 후예이다. 그만큼 형제 중에서도 가장 심계가 깊다는 말이 된다. 또한 수룡은 의심이 많고 한 사람에 얽매이는 놈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붙을 수 있지만 또 누구든 배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룡이 외적인 부분에서 청룡과 흡사한 장점을 갖고 있다면 수룡은 내적인 부분에서 놀랍도록 청룡과 비슷한 점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자신을 막을지도 모르는 형제들이 모두 의심스럽다.

 ‘차라리 싹, 다 죽여 버릴까.’

 그러나 이들을 죽인다면 더 큰 광풍이 그에게 내려 질 것이 자명하다.

 의룡은 초조했다. 한 달 가까이 여의주를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지 못했고, 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형제들이 의심스럽다.

 주변의 신하들은 그가 내놓는 안건마다 사사건건 반대의견을 내며 노골적으로 압박 하고 있었다. 더 이상 황제인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새 황제의 재목이 있지 않고는, 믿는 구석이 확실치 않고서는 신하들이 그렇게 경거망동하고 안하무인으로 날뛰진 않을 터였다.

 의룡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무당에게 보낼 서신과 신하들에게 보낼 서신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황군을 불러들여 청룡의 동태를 철저히 살필 것을 명령했다.

 “청룡 곁으로 누구도 찾아가게 둬서는 아니 된다.”

 세 명의 형제들을 은밀히 처리하기 전에 청룡이 날뛰어선 안 된다. 한 번도 자신 앞에서 날뛴 적이 없는 청룡이지만 그는 모르지 않았다. 청룡이 무언가 하려고 든다면 자신은 속수 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란 것을.

  ***

 

 

 스르륵- 스르륵-

 동굴 안으로 무언가 들어왔다.

 “왔느냐?”

 청룡이 누군가에게 말을 걸자 동굴을 감시하던 황군 중 한명이 놀라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황군의 수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막아서지 않았다면 황군은 지레 겁을 먹고 그에게 읍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청룡은 황군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아주 작은 녹색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뱀은 어디서 온 것인가.’

 동굴까지 올 때까지도 황군은 저런 종류의 실뱀을 본 적이 없다. 깊은 산중에 큰 독사가 몇 마리 있기는 했지만, 독사가 산 아래로 내려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독사는 전체적으로 붉은 점에 둘러싸인 진갈색 뱀이었기에 지금 보는 뱀과는 모양부터가 다르다.

 이상함을 느끼며 황군은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청룡을 감시했다.

 “먼 길 오느라 많이 배가 고팠겠구나.”

 그러나 청룡은 그 말을 하면서 실뱀에게 육포와 벌레를 던져 주며 뱀과 뱀이 먹을 식량을 작은 분화구 안으로 밀어 넣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상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구나.’

 황군들은 무심하게 행동하는 청룡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딘가 이상했지만 너무나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 정말 청룡이 일을 도모하고 있는지 아리송했다.

 며칠 동안 황군이 보아 온 청룡의 생활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오전엔 가부좌를 틀고 내내 앉아 있다가 식사 시간에 잠깐 밖으로 나가서 버섯과 콩. 나물. 과일 이외엔 그 어떤 것도 먹지 않았고, 점심 저녁에도 비슷한 섭식을 유지할 뿐이다.

 중간에 뱀이 오고 갈 때는 잠깐 가부좌를 풀고 뱀과 산책을 하거나 뱀을 들고 장난을 친다. 그러나 그 또한 특이하지 않았고, 산책을 하는 장소도 동굴에서 멀지 않은 근처에서 이어졌다.

 완벽하게 빈틈을 찾아 볼 수 없는 행동.

 그것이 오히려 수상하기는 했지만 수상함을 느낀다고 해서 황족을 황군이 함부로 어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혹, 밤이 되면 또 다를까 싶어 밤마다 집중적으로 더 감시를 강화하기도 했으나 그 또한 실패였다.

 청룡은 밤마다 석화반 주화입마상태로 잠을 자며 아침이 될 때까지도 꼼짝 않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법도 없다. 안에서 별반 따분한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이 생활을 진정으로 즐기는 기색이다.

 돌이 된 몸은 아침이 훌쩍 넘어서야 찾아 온 뱀이 돌이 된 몸에서 한참을 배회해야 깨어났다.

  황제를 알현 할 때에도 그는 그랬다. 황군이 모두 달려들어 그를 황제 앞으로 끌고 가야 했고, 이후에 말을 하도록 만들려고 몇 번이나 단단한 돌이 된 몸을 두드려야만 원래 몸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정황을 두고 보자면 청룡은 정말로 혼자선 주화입마를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이게 그저 속임수일 뿐이라면? 황군은 쉬이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의심 가는 것은 또 있다.

 청룡의 동굴엔 유독 뱀의 비늘이 많았다. 뱀이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은 확인 할 수 있었지만 목적지는 알 수 없다.중간에 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뱀이 본래 어디서 서식하고 있는지도 오리무중이다.

 황궁 내에서는 뱀을 기르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황궁 밖에 있다고 봐야 하는데, 산에는 독사 말고는 없으며 성 밖에는 뱀을 질색 하는 이들 뿐이다.

 황군의 수장 견권병이 이 사실을 황제에게 말했지만 황제는 코웃음을 칠뿐이다.

 “감시를 하라 했더니 그런 것만 주워 왔더냐.”

 “쉽게 볼 일이 아닌 듯합니다.”

 “쉽게 볼 일이 아닌 건, 지금 내 정사가 엉망이라는 것뿐이다. 황제가 버젓이 있음에도 저들은 짐을 우습게보고 있지 않느냐. 짐에게 상소를 올린 것이 저들이거늘, 저들은 짐이 상소에 도장을 찍으려고만 들면 아귀처럼 달려들고 있다. 페하! 이것은 아니 되옵니다. 페하! 통촉 하여 주시옵소서! 전에도 저들이 짐의 머리 꼭대기에 오르려 드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굴진 않았느니라. 그런데도 황군의 수장이라는 네 놈은, 이런 시시한 일을 보고랍시고 황제인 나를 알현하려 들었더냐! 가뜩이나 머리가 아픈 이 시국에, 짐을 능멸하려 드는 것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로 짐을!”

 “페, 페하.”

 “권병은 들어라.”

 “네. 페하.”

 “너는 앞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짐을 알현하려 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 아니라, 초분을 다투는 일이어야 할 것이야.”

 “말씀, 받잡겠사옵니다.”

 권병은 지금 이 일도 초분을 다투는 일이라 짐작했지만 진노한 황제 앞에서 섣불리 입을 놀리진 않았다. 그러나 뒤이은 황제의 말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청룡을 감시하는 일은 여기서 멈추어라. 보아하니 그놈은 그리 노는 것이 좋은 듯하니, 더 이상 황군을 무의미한 일에 놀릴 수 없음이야.”

 “페하! 하지만 이건 쉬이 넘길 수 없는 사안이옵니다.”

 “쉬이 넘길 수 없는 사안은 지금 짐에게 있느니. 알지 않느냐. 당장이라도 짐을 해하려는 사특한 무리들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이냐. 아님, 모르는 척 구는 것이냐.”

 황제가 크게 진노하는 모습에 권병은 더 이상 입도 뻥끗 하지 못했다.

 “…….”

 ‘허나, 페하. 이 일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면 어쩌시렵니까.’

 권병은 청룡이 대수롭지 않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권병의 우려는 괜한 오해가 절대 아니었다.

 청룡이 벌이고 있는 일에 뱀이 아주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다.

 황군이 진즉에 감시를 강화했음을 알고 있던 청룡은 남들이 독수리나 비둘기를 통해 서신을 교환 할 때에 이미 서역에서만 산다는 귀한 녹색 실뱀을 황궁 안으로 밀반입 해 왔다.

 청룡은 열아홉 살부터 스물다섯이 된 지금까지 실뱀에게 지속적으로 먹을 것을 주면서 그 안에 치명적인 독을 섞어 넣었다. 그리고 실뱀이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산책을 빌미 삼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조련했다.

 청룡은 자신만이 아는 뱀 땅굴을 몇 개 만들어 실뱀이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청룡이 조련한 뱀들은 이것뿐만이 아니라 사백여 마리에 달했다. 게다가 이 녹색의 뱀은 보통의 뱀과 도 아주 많이 달랐다. 실뱀은 일단 허물을 벗는 시기가 잦다.

 일단 허물을 벗고 나면 습하고 어두운 곳이 아니고서는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제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동굴 주변은 습하고 어두웠기에 여기까지 도달하고부터는 제 형태가 나타나지만 궁 밖으로 나가거나 햇볕이 뜨거운 궁 안을 활보할 때는 한참을 자세히 보지 않는 한,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뱀의 허물은 서늘한 곳에서 일주일 정도 말리면 독특한 성분으로 변한다는 것도 이미 서역의 상인에게 들어 알고 있다. 이 사실은 녹색 뱀을 전서구 대신으로 사용하는 소수의 사람이거나, 뱀을 취급하는 상인이 아니고서는 모르는 비밀이기도 했다.

 녹색 뱀의 허물이 일주일 후에 독특한 성분으로 변하면 청룡은 그것을 태워 곱게 가루를 낸 후에 두꺼운 가죽 재질로 만들어진 향낭 안에 이것을 넣어 두고 사용했다.

 녹색 뱀 자체에는 독이 없지만 일단 녹색 뱀의 비늘이 일주일 동안 마르고 태워지는 과정에서 독성이 발생한다.

 평상시에 들고 다닐 때나 만질 때에 독이 발작 하는 것이 아니라 꽃의 기름과 뱀의 허물을 가루 낸 것이 합쳐지면 독이 되어 피부로 침투 하고 사흘간 발작하다가 이유 모를 병질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청룡이 은밀하게 넓힌 세력에서는 이 독이 어디서 파생 되는지는 알지 못해도 서신을 받은 후에 꽃의 기름을 사용하거나 꽃의 기름을 만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정도의 정보는 공유 되고 있다.

 이들 틈에 첩자가 들어오기라도 하게 되면 십중팔구 이 사실을 모른 채, 독에 중독되기 일쑤였다. 그로 인해 그동안 청룡은 자신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고, 은밀하게 첩자를 처리 해 왔다.

 녹색 뱀의 가루를 미량 사용하게 되면 환각 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황족들과 일부 고위 관리들은 비싼 꽃의 기름을 장기간 아주 많은 곳에 사용 해 왔기에 대부분 피부가 반들반들 윤이 나는 반면에, 독성에는 아주 많이 취약한 성질을 갖고 있다.

 특히 황제는 꽃의 기름을 많이 즐기는 이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꽃의 기름을 애용했다.

 그렇기에 첩자들을 통해 황제와 몇몇 황족. 그리고 관리들에게 이 가루를 조금씩만 노출 시키면 서로를 의심하고 정신이 혼미해 질 거라고.

 청룡의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미량의 뱀 허물 가루와 작은 화살로 쏘아올린 서신 몇 장만으로도 이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마음 속 깊이 숨겨 뒀던 야욕을 밖으로 내보이기 시작했으니.

 청룡은 오늘 뱀의 입 안에 숨겨져 있던 서신을 통해 바깥의 동향을 알아낼 수 있었다.

 황태후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을 꾸미는지를.

 황태후는 황제보다 먼저 작금의 상황을 눈치 챘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분위기를 제일 먼저 눈치 채고, 황위 찬탈을 막기 위해 사가에서 생활 하는 원로원의 황족들을 만나고 다녔던 것이다.

 허나 황태후가 모르는 일이 있다. 원로원이 지금 누구의 사람인지. 9년 동안 청룡이 원로원과 얼마나 잦은 접촉을 해 왔고, 황제가 벌였던 실책을 원로원과 함께 수습 해 왔는지도 알지 못한다.

 사실 원로원의 황족들은 그를 황족으로서 예우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 황제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됐을 때, 전쟁에서 패하고 황궁 근처까지도 적국의 군사들이 밀려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 때부터 모든 것은 달라졌다.

 청룡이 소수의 정예병일 뿐이었던 심복들을 적국의 군사들 틈에 끼워 넣고, 갖고 있던 뱀 허물 독을 보내서 적을 독살하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는 지금 형체도 없이 가루가 됐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나라를 소리소문 없이 지키며 거대 세력들을 설득시키고 조용한 카리스마로 휘어잡았다는 것을 황태후는 간과하고 있었다.

 원로원의 황족들 중 일부 반발 세력들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들의 딸들과 부인들이 독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청룡은 그동안 심복을 통해 황족들에게 비싼 꽃의 기름을 선물로 보내왔고, 그것은 그 집의 식솔들의 차지가 되었다.

 독은 천천히 아주 많은 이들에게 전파 되었고,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독에 중독 된 이들은 서서히 미쳐갔다.

 반발 세력에 속하는 황족들은 그것이 독 때문에 그리 된 것임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 독을 중화 시킬 방법을 아는 것이 청룡이라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황태후가 아무리 원로원을 움직여 다른 황족들을 제압하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미 그들은 황족들에게 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 했기에.

 이로서 청룡 자신이 이곳에 앉아 저들을 움직일 토대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그는 기다리는 동안 여의주라는 여인의 일을 해결하기만 하면 됐다.

 “혼인은 무효화 시켜 놨으니, 황제가 어지간히 몸이 달아 있겠군. 하지만 어쩌나……? 혼인하지 않으면, 아무리 후궁이라 해도 취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의 법도인 것을.”

 청룡의 입가에 비릿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아하하- 아하하하!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청룡은 한동안 보지 못 한 의주의 별궁으로 향했다.

  ***

 

 

 

 

 

 의룡은 황궁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좀처럼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던 황태후가 그 대신에 잠행을 떠날 것을 요청 해 왔고,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황족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물론 황족들이 우호적이지 않을만한 이유라고 한다면 그가 숙청한 신하들 때문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겨우 그 정도의 일로 황족이 돌아섰다고 보기는 힘들다.

 “혹시, 어머니께서 다른 황자들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인가?”

 의룡의 눈에 설핏 날카로운 의심의 기운이 들어찼다.

 “비룡? 지룡? 수룡? 셋 중에 누구지?”

 황위 서열에 드는 아우들이지만 그들 또한 진정으로 황위 서열 안에 드는 이들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황태후의 노리개를 자처하며 그녀에게 힘을 보탠 공신들의 아들이기에 외가의 성을 따라 황 씨 성이 된 이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통이 아닌 자들이 적통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바라서도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 또한 같은 생각인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세 명의 형제들이 부리던 가신들 중에 누군가가 이번 숙청의 대상이었다면, 이들의 반발이 일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럼 누구의 가신인가. 누가 황위를 찬탈하려는 것인가. 이전엔 신경조차 쓰지 않던 것들이 신경 쓰인다.

 대를 이어 병권을 움켜쥐고 있는 대장군 집안을 친가로 둔 지룡은 상당한 무골이다. 머리는 나쁘지만 옆에 지략을 겸비한 책사가 있다면 무력을 써서 황위를 찬탈 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지룡에게는 책사를 겸비 할 만큼 위험한 인물이 존재했다.

 감히 황위를 노릴 수도 없고 황위를 노릴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지룡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를 두 손으로 주무르며 계략을 꾸밀만한 인물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는 바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황후의 부름에 응할 정도의 야심도 겸비한, 지룡의 아버지 천위완이다.

 그동안은 황태후의 눈치를 보고 황권에 감히 도전 할 빌미가 없어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지만, 후궁을 들이는 문제와 신하를 대거 숙청 한 것이 그들에게 빌미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시기적절하게도 지금은 황태후조차 출궁해 버려서 궁 안에는 그들을 억누를 세력이 전무하다.

 그 말인 즉, 의룡 혼자의 힘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또한 비룡과 수룡도 무시 할 수 없는 정적들이다.

 비룡은 집안이 한미한 자라고 해도 그 자신이 여러 모로 월등하다. 문무를 겸비하고 청룡을 제외하면 가장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엔 어머니를 가장 닮은 외모이기에 청룡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어쨌든 표환국 내에선 가장 아름다운 사내라 할 수 있다.

 그런 비룡이 누군가와 손을 잡고 움직인다면 그는 그 어떤 이들보다 위험한 적이 될 수 있다.

 가령…….수룡이라던가.

 수룡은 세 명의 이복형제들 중에서 가장 야심이 적은 사람에 속하지만 겉으로 제 속을 내보이지 않는 면에선 누구보다 위험하다. 집안도 대대로 무신 집안인 비룡과 마찬가지로 대를 이은 문신 집안의 후예이다. 그만큼 형제 중에서도 가장 심계가 깊다는 말이 된다. 또한 수룡은 의심이 많고 한 사람에 얽매이는 놈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붙을 수 있지만 또 누구든 배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룡이 외적인 부분에서 청룡과 흡사한 장점을 갖고 있다면 수룡은 내적인 부분에서 놀랍도록 청룡과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지금은 자신을 막을지도 모르는 형제들이 모두 의심스럽다.

 ‘차라리 싹, 다 죽여 버릴까.’

 그러나 이들을 죽인다면 더 큰 광풍이 그에게 내려 질 것이다.

 의룡은 초조했다. 한 달 가까이 여의주를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지 못했다.

 주변의 신하들은 그가 내놓는 안건마다 사사건건 반대의견을 내며 노골적으로 압박 한다.

  더 이상 황제인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인다.

 새 황제의 재목이 있지 않고는, 믿는 구석이 확실치 않고서는 신하들이 그렇게 경거망동하고 안하무인으로 날뛰진 않을 것이다.

 의룡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무당에게 보낼 서신과 신하들에게 보낼 서신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황군을 불러들여 청룡의 동태를 철저히 살필 것을 명령했다.

 “청룡 곁으로 누구도 찾아가게 둬서는 아니 된다.”

 세 명의 형제들을 은밀히 처리하기 전에 청룡이 날뛰어선 안 된다. 한 번도 자신 앞에서 날뛴 적이 없는 청룡이지만 그는 모르지 않았다. 청룡이 무언가 하려고 든다면 자신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란 것을.

  ***

 스르륵- 스르륵-

 동굴 안으로 무언가 들어왔다.

 “왔느냐?”

 청룡이 누군가에게 말을 걸자 동굴을 감시하던 황군 중 한명이 놀라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황군의 수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막아서지 않았다면 황군은 지레 겁을 먹고 그에게 읍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청룡은 황군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아주 작은 녹색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뱀은 어디서 온 것인가.’

 동굴까지 올 때까지도 황군은 저런 종류의 실뱀을 본 적이 없었다. 깊은 산중에 큰 독사가 몇 마리 있기는 했지만, 독사가 산 아래로 내려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독사는 전체적으로 붉은 점에 둘러싸인 진갈색 뱀이었기에 지금 보는 뱀과는 모양부터가 달랐다.

 이상함을 느끼며 황군은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청룡을 감시했다.

 “먼 길 오느라 많이 배가 고팠겠구나.”

 그러나 청룡은 그 말을 하면서 실뱀에게 육포와 벌레를 던져 주며 뱀과 뱀이 먹을 식량을 작은 분화구 안으로 밀어 넣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상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구나.’

 황군들은 무심하게 행동하는 청룡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가 이상했지만 너무나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 정말 청룡이 일을 도모하고 있는지 아리송했다.

 며칠 동안 황군이 보아 온 청룡의 생활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오전엔 가부좌를 틀고 내내 앉아 있다가 식사 시간에 잠깐 밖으로 나가서 버섯과 콩. 나물. 과일 이외엔 그 어떤 것도 먹지 않았고, 점심 저녁에도 비슷한 섭식을 유지할 뿐이다.

 중간에 뱀이 오고 갈 때는 잠깐 가부좌를 풀고 뱀과 산책을 하거나 뱀을 들고 장난을 친다. 그러나 그 또한 특이하지 않았고, 산책을 하는 장소도 동굴에서 멀지 않은 근처에서 이어졌다.

 완벽하게 빈틈을 찾아 볼 수 없는 행동.

 그것이 오히려 수상하기는 했지만 수상함을 느낀다고 해서 황족을 황군이 함부로 어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혹, 밤이 되면 또 다를까 싶어 밤마다 집중적으로 더 감시를 강화하기도 했으나 그 또한 실패였다.

 청룡은 밤마다 석화반 주화입마상태로 잠을 자며 아침이 될 때까지도 꼼짝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는 법도 없다. 안에서 별반 따분한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이 생활을 진정으로 즐기는 기색이다. 돌이 된 몸은 아침이 훌쩍 넘어서야 찾아 온 뱀이 돌이 된 몸에서 한참을 배회해야 깨어났다. 황제를 알현 할 때에도 그는 그랬다. 황군이 모두 달려들어 그를 황제 앞으로 끌고 가야 했다.

  이후에 말을 하도록 만들려고 몇 번이나 단단한 돌이 된 몸을 두드렸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두고 보자면 청룡은 정말로 혼자선 주화입마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게 그저 속임수일 뿐이라면? 황군은 쉬이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의심 가는 것은 또 있다.

 청룡의 동굴엔 유독 뱀의 비늘이 많았다. 뱀이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은 확인 할 수 있었지만 목적지는 알 수 없었다. 중간에 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뱀이 본래 어디서 서식하고 있는지도 오리무중이다.

 황궁 내에서는 뱀을 기르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황궁 밖에 있다고 봐야 하는데, 산에는 독사 말고는 없으며 성 밖에는 뱀을 질색 하는 이들 뿐이다.

 황군의 수장 견권병이 이 사실을 황제에게 말했지만 황제는 코웃음을 칠뿐이다.

 “감시를 하라 했더니 그런 것만 주워 왔더냐.”

 “쉽게 볼 일이 아닌 듯합니다.”

 “쉽게 볼 일이 아닌 건, 지금 내 정사가 엉망이라는 것뿐이다. 황제가 버젓이 있음에도 저들은 짐을 우습게보고 있지 않느냐. 짐에게 상소를 올린 것이 저들이거늘, 저들은 짐이 상소에 도장을 찍으려고만 들면 아귀처럼 달려들고 있다. 페하! 이것은 아니 되옵니다. 페하! 통촉 하여 주시옵소서! 전에도 저들이 짐의 머리 꼭대기에 오르려 드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굴진 않았느니라. 그런데도 황군의 수장이라는 네 놈은, 이런 시시한 일을 보고랍시고 황제인 나를 알현하려 들었더냐! 가뜩이나 머리가 아픈 이 시국에, 짐을 능멸하려 드는 것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로 짐을!”

 “페, 페하.”

 “권병은 들어라.”

 “네. 페하.”

 “너는 앞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짐을 알현하려 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 아니라, 초분을 다투는 일이어야 할 것이야.”

 “말씀, 받잡겠사옵니다.”

 권병은 지금 이 일도 초분을 다투는 일이라 짐작했지만 진노한 황제 앞에서 섣불리 입을 놀리진 않았다. 그러나 뒤이은 황제의 말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청룡을 감시하는 일은 여기서 멈추어라. 보아하니 그놈은 그리 노는 것이 좋은 듯하니, 더 이상 황군을 무의미한 일에 놀릴 수 없음이야.”

 “페하! 하지만 이건 쉬이 넘길 수 없는 사안이옵니다.”

 “쉬이 넘길 수 없는 사안은 지금 짐에게 있느니. 알지 않느냐. 당장이라도 짐을 해하려는 사특한 무리들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이냐. 아님, 모르는 척 구는 것이냐.”

 황제가 크게 진노하는 모습에 권병은 더 이상 입도 뻥끗 하지 못했다.

 “…….”

 ‘허나, 페하. 이 일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면 어쩌시렵니까.’

 권병은 청룡이 대수롭지 않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권병의 우려는 괜한 오해가 절대 아니었다.

 청룡이 벌이고 있는 일에 뱀은 아주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군이 진즉에 감시를 강화했음을 알고 있던 청룡은 남들이 독수리나 비둘기를 통해 서신을 교환 할 때에 이미 서역에서만 산다는 귀한 녹색 실뱀을 황궁 안으로 밀반입 해 온 터였다.

 청룡은 열아홉 살부터 스물다섯이 된 지금까지 실뱀에게 지속적으로 먹을 것을 주면서 그 안에 치명적인 독을 섞어 넣었다. 그리고 실뱀이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산책을 빌미 삼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조련 해 왔다.

 청룡은 자신만이 아는 뱀 땅굴을 몇 개 만들어 실뱀이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청룡이 조련한 뱀들은 이것뿐만이 아니라 사백여 마리에 달했다. 게다가 이 녹색의 뱀은 보통의 뱀과 도 아주 많이 달랐다. 실뱀은 일단 허물을 벗는 시기가 잦았다.

 일단 허물을 벗고 나면 습하고 어두운 곳이 아니고서는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제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었다. 동굴 주변은 습하고 어두웠기에 여기까지 도달하고부터는 제 형태가 나타나지만 궁 밖으로 나가거나 햇볕이 뜨거운 궁 안을 활보할 때는 한참을 자세히 보지 않는 한,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뱀의 허물은 서늘한 곳에서 일주일 정도 말리면 독특한 성분으로 변한다는 것도 이미 서역의 상인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은 녹색 뱀을 전서구 대신으로 사용하는 소수의 사람이거나, 뱀을 취급하는 상인이 아니고서는 모르는 비밀이기도 했다.

 녹색 뱀의 허물이 일주일 후에 독특한 성분으로 변하면 청룡은 그것을 태워 곱게 가루를 낸 후에 두꺼운 가죽 재질로 만들어진 향낭 안에 이것을 넣어 두고 사용한다.

 녹색 뱀 자체에는 독이 없지만 일단 녹색 뱀의 비늘이 일주일 동안 마르고 태워지는 과정에서 독성이 발생했다.

 평상시에 들고 다닐 때나 만질 때에 독이 발작 하는 것이 아니라 꽃의 기름과 뱀의 허물을 가루 낸 것이 합쳐지면 독이 되어 피부로 침투 하고 사흘간 발작하다가 이유 모를 병질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청룡이 은밀하게 넓힌 세력에서는 이 독이 어디서 파생 되는지는 알지 못해도 서신을 받은 후에 꽃의 기름을 사용하거나 꽃의 기름을 만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정도의 정보는 공유 되고 있다.

 이들 틈에 첩자가 들어오기라도 하게 되면 십중팔구 이 사실을 모른 채, 독에 중독되기 일쑤였다. 그로 인해 그동안 청룡은 자신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고, 은밀하게 첩자를 처리 해 왔다.

 녹색 뱀의 가루를 미량 사용하게 되면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

 황족들과 일부 고위 관리들은 비싼 꽃의 기름을 장기간 아주 많은 곳에 사용 해 왔기에 대부분 피부가 반들반들 윤이 나는 반면에, 독성에는 아주 많이 취약한 성질을 갖고 있다.

 특히 황제는 꽃의 기름을 많이 즐기는 이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꽃의 기름을 애용했다.

 그렇기에 첩자들을 통해 황제와 몇몇 황족. 그리고 관리들에게 이 가루를 조금씩만 노출 시키면 서로를 의심하고 정신이 혼미해 질 거라고.

 청룡의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미량의 뱀 허물 가루와 작은 화살로 쏘아올린 서신 몇 장만으로도 이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마음 속 깊이 숨겨 뒀던 야욕을 밖으로 내보이기 시작했으니.

 청룡은 오늘 뱀의 입 안에 숨겨져 있던 서신을 통해 바깥의 동향을 알아낼 수 있었다.

 황태후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을 꾸미는지를.

 황태후는 황제보다 먼저 작금의 상황을 눈치 챘다. 황위 찬탈을 막기 위해 사가에서 생활 하는 원로원의 황족들을 만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황태후는 모르고 있었다. 원로원이 지금 누구의 사람인지. 9년 동안 청룡이 원로원과 얼마나 잦은 접촉을 해 왔고, 황제가 벌였던 실책을 원로원과 함께 수습 해 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사실 원로원의 황족들은 그를 황족으로서 예우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 황제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됐을 때, 전쟁에서 패하고 황궁 근처까지도 적국의 군사들이 밀려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 때부터 모든 것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그때는 소수의 정예병일 뿐이었던 심복들을 적국의 군사들 틈에 끼워 넣고, 갖고 있던 뱀 허물 독을 보내서 적을 독살하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는 지금 형체도 없이 가루가 됐을 것이었다.

 원로원의 황족들 중 일부 반발 세력들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들의 딸들과 부인들이 독에 중독되어 있었다.

 청룡은 그동안 심복을 통해 황족들에게 비싼 꽃의 기름을 선물로 보내왔고, 그것은 그 집의 식솔들의 차지가 되었다.

 독은 천천히 아주 많은 이들에게 전파 되었고,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독에 중독 된 이들은 서서히 미쳐갔다.

 반발 세력에 속하는 황족들은 그것이 독 때문에 그리 된 것임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 독을 중화 시킬 방법을 아는 것이 청룡이라는 것은 아주 잘 알았다.

 그러니 황태후가 아무리 원로원을 움직여 다른 황족들을 제압하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미 그들은 황족들에게 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 했기에.

 이로서 청룡 자신이 이곳에 앉아 저들을 움직일 토대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그는 기다리는 동안 여의주라는 여인의 일을 해결하기만 하면 됐다.

 “혼인은 무효화 시켜 놨으니, 황제가 어지간히 몸이 달아 있겠군. 하지만 어쩌나……? 혼인하지 않으면, 아무리 후궁이라 해도 취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의 법도인 것을.”

 청룡의 입가에 비릿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아하하- 아하하하!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청룡은 한동안 보지 못 한 의주의 별궁으로 향했다.

  ***

 그 시각 별궁에서는 어디선가 나타난 실뱀으로 인해 주변이 발칵 뒤집힌 상황이었다.

 “실뱀이 나타나?”

 “지금 실뱀 한 마리가 나타나서 후궁의 마마님들이 혼비백산, 난리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마마께서도 뱀이 잡히기 전까지는 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마시어요.”

 수발을 드는 궁녀의 말이 있었지만 의주의 표정은 그리 겁에 질린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그녀의 표정은 기대에 찬 표정에 가까웠다.

 “그 뱀, 아직도 궁을 돌아다니고 있니?”

 “네. 마마!”

 “가자!”

 “네?”

 “가자니까?”

 “마, 마마…….”

 궁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막았다.

 “아니 되옵니다. 위험합니다.”

 “실뱀이라며.”

 “그렇지만…….”

 “실뱀은 독 없어!”

 궁녀의 말에도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즐거움으로 넘실대고 있다.

 ‘그동안 이놈의 후궁들 때문에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참에 뱀을 잡아서 방에 풀어 놓으면……. 심심함도 잡고, 후궁들 발길도 뚝 끊기고 일석이조라 이거지!’

 며칠간 별궁은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황제가 권능 전에서 신하들과의 악력 싸움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동안, 여기 별궁에서도 아주 불쾌한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분연히 그녀를 불러들였고, 그 시간동안 후궁 첩지를 받은 이들과 황후는 거의 찬밥 신세나 다름없이 지내 온 듯 했다. 그러다 보니 꼭지가 돌아버린 후궁들이 황후를 위시해 그녀가 기거하는 별궁으로 들이닥쳐 온갖 자잘한 꼬투리를 잡으며 그녀를 괴롭히고 있던 터였다.

 황후가 살집이 많아서 게을러 보이니 살을 빼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며칠 동안은 별궁 전체를 청소하며 황제의 부름이 있을 때마다 권능 전으로 차 심부름을 오가야 했는데, 그럴 때면 청소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일을 늦게 처리한다고 황후에게 또다시 핀잔을 듣곤 했다.

 황후가 한차례 그녀를 닦달하고 난 뒤에는 후궁들이 돌아가며 들이닥쳐서 화장을 꼬투리 삼기도 하고, 언행이 바르지 못하다고 하며 황궁의 법도를 가르친다는 핑계를 들어서 통 안에 가득 채운 쇠구슬 속으로 그녀의 몸을 던져 놓고는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얹어 놓은 채로 몇 시간이나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지금 그녀의 온 몸은 마치 부황을 한 듯이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울혈이 잡혀 있다.

 황후는 그래도 몸을 고단하게 만들 뿐이지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아서 그럭저럭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후궁들은 달랐다.

 ‘역시 첩이 첩 꼴을 못 보는 거지.’

 그렇게 소름 돋는 남자도 황제이고 지아비라고 자기들끼리 싸우며 사랑 받으려 애쓰는 것이 안쓰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날이 심해져가는 후궁들의 만행을 고스란히 견디고 싶진 않았다.

 황제에게 후궁들의 일을 말하면 간단히 해결 될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그들을 찍어 누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황제에게 자신을 품을 빌미를 주고 싶지 않다.

 황제는 지금까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지 못하고 있어서 정식으로 그녀와 밤을 보낼 수 없다. 더구나 황제의 손길을 교묘하게 거부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있는 터라, 점점 더 애가 닳아 가는 것이 그녀 눈에도 도드라지게 보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황제에게 조금 힘들다고 손을 내민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황제와의 밤까지도 허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후궁 첩지를 받지 않은 궁녀는 아무리 황제라 해도 품을 수 없다. 그러나 후궁 첩지를 받지 않은 궁녀를 황제가 크게 돕는 일이 생긴다면, 궁녀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후궁 첩지 유무와 관계없이 황제와 밤을 보낼 수 있다.

 그러니까. 후궁이 아니면서 황제와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뭐 때문에 후궁 첩지를 안 받으려고 이렇게 용을 쓰는데. 그 징그러운 황제랑 억지로 밤을 보내? 그것도 후궁도 뭣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으로?’

 별궁 후미진 곳에는 전대 황제들과 밤을 보낸 궁녀들이 함께 사는 방이 따로 있었다.

 그녀들은 전대 황제와 밤을 보내고 버려진 여인들이다.

 가장 나이가 어린 여인으로는 그녀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기 전의 나이와 비슷한 스물 대 여섯 살의 여인도 있다. 집안의 위기나 자신의 안위가 걸려 있는 부득이한 일이 생겨서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고, 하룻밤을 보낸 뒤 버려지는 길을 택해야 했던 여인들은 그렇게 젊은 나이에도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별궁 구석에서 쓸쓸한 생을 살아야 했다.

 그곳은 담장이 정말 높았다.

 겨우 쥐 한 마리가 오고 갈 정도의 작은 구멍이 드문드문 있어서 그 틈으로 마음 좋은 궁녀들이 말을 걸거나 먹을 만한 음식을 조금씩 넣어주곤 했지만, 그 외에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생을 살고 있다.

 그녀는 그런 생을 살고 싶지 않다. 후궁이 되는 일은 끔찍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원치 않는 남자와 밤을 보낸 후, 기나긴 삶을 고난 속에서 살아간다.

 그럴 바엔 차라리 후궁이 되는 게 나을 정도로.

 어쩌면 황제는 그런 선택을 바라며 그녀의 등을 떠미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쯤에서 현명한 선택으로 두 가지의 끔찍한 선택지를 모두 폐기 처분 시켜야만 한다.

 온전히 살아가려면.

 ‘일단 후궁들부터 여기 못 오게 만드는 게 좋겠지? 그 과정에서 황제가 나를 여자답지 않은 괴팍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금상첨화일 테고. 이 나라는 남녀 불문하고 뱀을 혐오한다니까. 파충류를 겁내지 않고 덥석 덥석 잡는 나를 끔찍하게 볼지도 몰라. 그럼 섣불리 나를 건드리려는 움직임도 줄어들겠지.’

  ***

 

 

 

 

 

 "우아아악~!"

 '헉! 뭐야?'

 "거기 막지 않고 뭐해?!"

 "마, 마마님."

 "잡아, 어서?!"

 "마마님. 고정 하셔요. 저, 저희들이 잡을 테니...."

 "잡긴 뭘 잡아. 제대로 몰기나 해!"

 별궁 지붕 위를 사뿐사뿐 뛰어넘어오던 청룡은 느닷없는 여의주의 음성에 잠시 발을 삐끗했다.

 고개를 슬쩍 내밀어 보게 된 광경은 의주가 궁녀들과 실뱀을 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다. 단정한 옷차림은 개나 물어가라는 듯이 실끈으로 허리 부근을 동여매고 머리는 반쯤 산발이 되어서 자신을 말리는 궁녀들을 사정없이 바닥에 메따 꽂았다.

 "큭큭큭큭."

 웃음을 멈추려 해 봐도 자꾸만 웃음이 튀어나온다.

 조용히 그녀가 기거하는 방의 지붕으로 타 넘어가려던 청룡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 오는 황제의 모습을 보며 잠시 몸을 낮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도 황제를 발견한 듯 딱딱히 굳은 얼굴을 숨기며 읍소했다.

 "페하를 뵈옵니다."

 "일어나거라."

 "네. 페하."

 "의주. 지금 뭘 하고 있던 것이냐?"

 황제는 직접적으로 현 상황을 물었다.

 "무엇을 말씀이시옵니까. 페하?"

 의주는 그런 황제를 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며 반문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냔 말이다."

 약간 노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황제가 재차 물어보자 그녀는 눈으로 실뱀을 쫓으며 무성의한 대답을 내놓았다.

 "페, 페하. 소녀. 잠시 저 곳으로 가면 아니될런지요."

 "뭐라?"

 "배, 뱀이...."

 "뱀? 배~엠?"

 황제가 뱀이라는 말에 펄쩍 뛰어 올랐다.

 "배, 뱀이 갑자기 어디서 나온 것이냐. 여봐라. 황군! 황군은 어디 있느냐. 어서, 뱀을 잡아 죽이지 않고 무얼 하는 게야!"

 "페하."

 "그대도 어서 피해 있으라. 뱀이 나왔다지 않아."

 "페하. 뱀이 나왔다 한 것은 소녀가 한 말이온데...."

 황제가 사색이 된 얼굴로 물었다.

 "뭐?"

 "소녀가 잡을 수 있습니다."

 "배, 뱀을 잡아?"

 "네. 페하."

 그녀가 생긋 웃자 황제의 퉁퉁한 얼굴이 파들파들 떨려 왔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소녀가 잡을 수 있습니다. 페하."

 "........."

 "그러니 소녀가 뱀을 잡을 수 있도록, 윤허 해 주시어요."

 "네, 네가?"

 "네. 페하."

 황제가 어이 없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러자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벌레 씹은 얼굴로 그녀를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윤허 하겠느니라."

 "감사합니다. 페하."

 황제는 여전히 사색이 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때마침 쩔쩔 매면서도 나풀거리는 비단 천을 바닥에 끌며 뱀을 유인하고 있던 궁녀들 틈에서 뱀을 구석에 몰았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후,

 "잡았다. 요놈!"

 "배, 뱀!!"

 풀썩.

 의주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실뱀을 잡아 올리자마자 황제의 몸이 힘 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페하!!"

 "페하가 쓰러지셨다! 어서 어의를 불러라."

 "페하! 페하!"

 별궁에서 시작 된 난리통이 황궁 전체로 번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큭큭크흡큭큭."

 청룡은 숨죽인 웃음을 흘리며 그 광경을 즐겁게 쳐다봤다.

 '거, 참. 걸출한 인물이로고!'

 그녀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황제를 비롯한 황족들 및 비빈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뱀을 좋아하는 여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줘서 저들이 그녀를 뱀처럼 끔찍하게 여기도록 만들려는 계략이었다.

 '허나, 자칫 독수가 될 수도 있음이야.'

 

 

 

 

 

만우절재방송 16-12-20 19:05
 
꼭~남의 말 안 듣는 왕들이 문제죠 문제 ㅋ ^^
(작가님~! 중간에 내용이 중복된 부분이 있어용)

아!그리고 시상식때 혹시 오셨나하고 제가 작가님 찾았는데 하하하~다음엔 뵙으면 좋겠어요~!
  ┖
야광흑나비 16-12-21 16:41
 
앗! 저를 찾으셨다는 작가님이 만우절 재방송님이셨군요. ㅜㅜ 저는... 가려다가 못 가 버렸습니다. 상황도 여의치 않고 몸 상태도 메롱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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