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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라(Nu-Era)
작가 : Ress
작품등록일 : 201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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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 뭔 소리야 잘 다니던 회사가 망하다니
작성일 : 16-10-04     조회 : 720     추천 : 0     분량 : 6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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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두웠다. 지나치게 어두웠다. 내가 죽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빛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가 보이니 여기저기에서, 점점 더 많은 빛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은하수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꿈이구나, 하고.

 자각몽을 꾸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평온해진 마음으로 꿈 속 은하수를 구경했다. 그러다 느꼈다. 맨 처음 빛나기 시작했던 그 빛이, 아주 밝은 것을.

 본능적으로 그 빛에게 다가갔다. 다른, 그보다 희미한 빛무리들은 양 옆으로 늘어서있었다. 마치 길을 만드는 것처럼. 그 끝에서, 가장 밝은 무언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니... 그쪽이 아니야..."

 낯익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누군지 기억나지 않았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끝없는 어둠과 나를 부르는 그 환한 빛. 그리고 길을 만들고 있는 희끗한 빛들. 어쩐지 깊은 외로움이 밀려왔다. 동시에 두려움도.

 

 "어서... 와... 어서 와... 성... 수... 야..."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죽을 때가 돼서 조상님이 부르는 걸까. 두려웠다. 차갑게 식은 그 목소리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목소리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외면할 수 없는 내가 더 두려웠다.

 어서 이 꿈에서 깨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라서 깨고 싶다고 미친 듯이 외쳐댔다. 어릴 적에 주워들은 가위 푸는 방법─손 끝부터 조금씩 움직이기─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소용이 없었다. 등 뒤에 식은땀이 주룩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싫어! 이놈의 다리가 미쳤나! 안 가! 안 갈 거라고!"

 꿈이어서 그럴까. 내 몸은 결국 나를 배신했다. 빛이 있던 반대 쪽, 처음 꿈을 자각했던 곳 보다 더 어두운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그 차가운 목소리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아직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닌데. 이 나이에 이렇게 자다가 가는 건 너무 비극적이라 느껴졌다.

 "제발 좀 깨자!"

 내 다리를 마구 때렸다. 제발 좀 멈추라고. 하지만 꿈도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계속 그 싸한 이질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손끝이, 또 발끝이 차게 식었다. 더 없는 긴장이 밀려왔다. 이제 갓 쓴 남자나 얼굴 없는 사람들이 나올 차례인가. 얼굴의 근육들이 굳었다. 신경이 곤두섰다. 무언가 작은 변화라도 생긴다면, 이번엔 진짜, 정말 반대편으로 죽어라 달려가겠다, 그렇게 다짐했다. 바로 그때, 익숙한 얼굴이 눈 앞에 나타났다.

 

 “성수야!”

 내가 마주한 것은 오래 전에 죽은 친구였다. 내가 50대 아저씨가 되어 있는 동안, 녀석은 기억 속에서처럼 젊고, 또 아름다웠다.

 그 녀석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났다. 이유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정말 죽는 게 아닐까 두려웠던 걸지도 몰랐다.

 

 "나... 죽는 거야?"

 멍청하게 묻는 내게, 녀석은 싱긋 웃어주었다.

 "아니. 네가 왜 벌써 죽어."

 그 웃음에 안심이 되었다. 벗어나고 싶던 그 싸한 이질감이 녀석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고도,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납득해 버렸다. 굉장히 오래 전에 죽은 녀석이 나타난 것도, '그저 꿈'이라는 이유로 납득해 버렸다.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그 역시 꿈이어서 일거라고 납득했다.

 중요한 건, 깨기 직전에 녀석이 한 말이 기억난다는 거다. 정확히는, 기억은 나는데,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

 

 "성수야. 잘 부탁해.. 라... 을.. 은... 만큼…"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갑자기 잡음이 낀 것처럼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신호가 굉장히 불안정한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녀석도 몇 번 흐릿해지는 것 같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렇게 어둠 속에 혼자 남겨져 버렸다. 그 순간, 엄청난 공허함이 밀려왔다. 기쁜 꿈에서 깨고, 그것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은 듯한 허무함이었다.

 

 "현승아?"

 나를 계속 불안하게 만들던 이질감은 사라졌지만, 나는 오히려 더 불안해 졌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 같은 공간에 혼자 남겨진 것이 두려웠다. 꿈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불안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흔하게 나오는 것처럼, 죽을 뻔한 걸 녀석이 막아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갑자기 어디 간 거야? 현승아?"

 덜컥 불안했다. 미칠 것 같은 불안함에 머리가 아팠다. 손이 덜덜 떨렸다. 오래 전에 있던 일이 하나 떠올랐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현승이를 부르던 목소리가, 두려움에 낮게 잠겼다.

 

 "...지!"

 그 순간.

 "아부지!"

 아들 놈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

 

 

 2

 "아, 아부지! 무슨 잠을 그렇게 자요? 내가 얼마나 불렀는지 알아?"

 "어엉, 성준이냐?"

 사실 그때까지도 조금 얼떨떨했다. 분명 처음부터 꿈인 걸 알고 있었는데도.

 

 그나저나 몸이 찌뿌둥하다. 상당히 불편한 잠이었다고, 온 몸이 소리지르고 있다. 까탈스런 뼈들을 달래기 위해 기지개를 켜다가 깨달았다. 성준이 놈이 얼마나 열심히 깨웠는지, 볼이며 옆구리 같은 곳이 얼얼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애비 죽일 생각이냐. 너 임마, 이때다 하고 막 때렸지?"

 "나를 본인과 동급으로 생각하지 마시죠, 아버님."

 

 나이 스물 아홉 먹도록 우리 아들 놈은 자기가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걸 모른다. 떳떳하면 집요하게 아이컨택을 해오면서 큰 소리 치지만, 찔리는 게 있을 땐 차분하게 말한다.

 거짓말도 거짓말이지만, 나를 제 녀석이랑 비슷한 수준으로 생각했다는 게 조금 괘씸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그래, 뭐, 홀몸으로 아들 놈 키워봐야 아무 쓸모 없지, 뭐. 내가 네 녀석 생각해서 재혼도 안 했거늘."

 "그게 아니라 못 하신 거겠지."

 아들 놈은 혀를 베에 내민다. 살짝 찔린다. 안 한 것도 맞고 못 한 것도 맞으니까. 가만 두면 그걸 실토하게 될 까봐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뭐 때문에 꿀잠 자는 애비를 그렇게 열심히 불렀냐."

 

 "아 맞다!"

 성준이가 깜짝 놀란다. 설마 했더니 역시 본 목적을 잊고 있었다. 역시, 단순한 내 아들.

 "아부지 전화 왔었어! 건 사람이... 어, 싸장님이라고 돼 있던데?"

 시계를 보니, 아침인지 새벽인지 구분도 힘든 시간이다. 게다가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오늘은 토요일이다. 아무리 게임회사가, 특히 가상현실 게임 회사가, 밤낮 없고 휴일 없는 직장이라지만, 난 사무직 중간관리다. 사장이 사무직 중간관리를 평화롭고 화창한 토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찾을 리는 없고, 아마도 서주건이라는 사람이 안성수라는 사람을 찾는 것 같다.

 어쩐 일이지, 이 형이.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구석이 없다. 어제 야근거리가 있었는데 까먹고 안 처리했나? 주말인데 어디 놀러 가자고? 뭔진 몰라도 부디 나쁜 일만 아니면 좋겠다.

 

 "그래? 얼른 줘봐."

 "엉? 당연히 끊어진지 오래지."

 아들놈이 다시 없을 만큼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이 얄밉기도 하고 어이 없기도 하다. 내 아들이지만 가끔 보면 참 바보 같다. 나도 아니고 제 엄마도 아니고, 대체 누굴 닮아 저런 건지.

 

 "이 놈의 아들이! 얌마! 너는 또 그걸 끊어진 다음에 알려주냐!"

 "그게 아니라 아부지가 안 일어난 거잖아."

 할 말이 없다. 사실이기는 하다만. 어쨌거나 이 지나치게 천진한 놈과 더 이야기 해봐야 나올 게 없다. 그냥 녀석과의 대화를 포기했다.

 

 "오냐, 그래서 언제 왔는데."

 성준이가 시계를 흘끗 보더니 답한다.

 "한 5분 전?"

 

 생각보다 얼마 안 되었다. 안도감에 한숨이 폭 나왔다. 멍청히 있는 아들놈에게서 전화를 뺏어 들었다. 부재중 한 통이 찍혀 있는데, 역시나 우리 사장 형님이다.

 사실, 무슨 일인지는 여전히 감도 오지 않는다. 역시 그 답을 줄 사람은 사장님 본인뿐인 것 같아 주저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성수야! 오늘 집에 콕 박혀있어라! 참, 인터넷 절대 쓰지 말고!-

 "예에?!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몇 번 신호가 가는 듯싶더니 사장 형 목소리가 다급하게 튀어나온다. 영문도 모르겠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상황 파악이 잘 안 된다.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려 했지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설명이 폭풍 치듯 쏟아진다.

 

 -지금 완전 개비상이거든? FN에서 메인 서버 째로 털어갔다. 직원 정보도 나가서 걔들이 우리 잡아다 뭐할지도 모르겠는데 암호화도 벌써 애저녁에 풀린 거 같고… 여튼 뭐 그래. 넌 빨리 가서 도은이부터 챙겨! 그녀석 반쯤 FVR*에 동화된 녀석이니까!-

 

 암울한 현실이 속사포처럼 튀어나왔다. 듣다 보니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실없이 웃어버렸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날벼락일까. 머리가 아파온다.

 "아니 대체 무슨 수로요? 5년이나 못 털었잖아!"

 그러면서도 몸뚱아리는 이미 문을 나서고 있었다. 신발까지 챙겨 신고. 머리가 정상이 아니래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위기 직감, 그만큼 지금 사태는 나한테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지금 보니 도은이 그녀석, 참 멀리도 산다. 최대한 가까운 집에 데려다 놓지, 대체 왜 이렇게 멀리다가 떨궈놨는지. 차마 밖으로 말하진 못하고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지들 기술이잖아. 우리 서버 지들 서버에 합치고 길 뚫어서 싹 긁어갔다던데?-

 참 간단명료하다. 대체 왜 지난 3년 간 실행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이해가 간다. FN은 우리뿐만 아니라 샤를이나 아놀드, 그 외 여러 위장 학생들이 여기저기로 자기들 기술 빼돌릴 때도 2년이나 몰랐다. 사실 근본적으로 궁금한 건 이놈들은 왜 항상 몇 년씩 늦느냐는 거다. 다들 눈치가 식물급인가? 아니면 지구는 넓고 가상현실 기술은 많아서?

 

 뭐, 그건 그거고, 지금 우리 상황은 딱,

 "......망했네요."

 그 한 마디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더 망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집에나 있어라. 너네 아파트 PS존이지? 괜히 나갔다가 어디 끌려가지 말고 가만히 찌그러져있어. 킥킥킥.-

 사장님이 괜히 겁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장난칠 수 있는 그 똘끼에 진저리가 난다.

 게다가 말은 저렇게 하지만 어디 잡혀가서 진짜 무슨 일 당하면 더 재미있겠다는 그 속내가 고대로 비친다. 아, 저 아저씨 저거. 내 밥줄만 아니면 진작에 얼굴 몇 번 갈겨 줬을 거다.

 

 “뉘예뉘예~ 도은이 단속하러 가겠습니다~ 근데 도은이 집이 좀 멀어서 오~래 걸리겠습니다?”

  쓸데없는 반항심에 나도 비꼬는 투로 응대해 주었다. 그랬더니 이 아저씨 하는 말이 참 가관이다.

 -안성수, 꼬박꼬박 말대꾸지? 저걸 확 자를 수도 없고.-

 잠깐 잊고 있었다. 저 영감 성격이 전체적으로 지랄 맞지만, 제일 짜증나는 게 바로 이거다. 본인 말투는 절대 생각 안하고 남 말투만 트집 잡는 거.

 

 그나저나 자른다 만다 하는 소릴 듣고 갑자기 생각난 건데, 회사가 망했다는 말은…

 “근데 형, 회사 망했으니까 형 이제 내 사장님 아니잖아. 우린 다시 수평관계, 오키?”

 -아오! 저걸 콱! 어떻게 해버릴 수도 없고!-

 그러게 평소에 말투를 곱게 쓰셔야지, 하는 말은 그냥 삼켜버렸다. 그 말을 했다가는, 뭔 쓸데없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혼자 노발대발하는 사장 아니, 전(前) 사장 형님 하는 양을 가만히 감상했다. 그게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걸어가면서 혼자 킥킥거렸다. 지나가는 아파트 사람들이 저 미친 놈 뭐야 하는 눈으로 보는 것 같았지만 별로 상관없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떠올랐기 때문에.

 

 "형! 근데 그럼 전화는?! 지금 이 전화도 끊어야 되는 거 아니야?!"

 -뭐? 큭큭큭... 너... 너 진짜 웃긴다! 푸하하하! 야 임마, 뒷북도 유분수지, 넌 그걸 이제서야 묻냐? 아, 저 미친놈 큭큭큭큭-

 남은 심각해 죽겠는데 이 망할 형씨는 혼자 미친놈처럼 웃고만 있다. 미치려면 좀 곱게 미치지, 남 심장 쫄려 죽게 만들 일 있나.

 차라리 지금이라도 전화를 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째 이미 내가 이 아저씨랑 통화한 내역이 FN 손에 고스란히 들어갔을 것 같다. 하, 자기 PS존 안 살면 혼자 잡혀갈 것이지, 괜히 나까지 피해보게 만들고 있다.

 

 한참을 실성한 사람처럼 웃던 형이 갑자기 웃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뭔가 굉장히 진지한 척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수야. 그놈들도 이건 해킹 못해. 아니다, 전파도 못 잡아낼 걸. 여기 라프리에트거든.-

 

 순간 얼굴의 솜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마침 도은이네 동이 몇 미터 앞에 보인다. 단숨에 뛰어 들어가 거의 본능적으로 엘레베이터를 눌렀다.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27층을 누르고는 미친놈처럼 닫기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27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무슨 27년처럼 느껴졌다.

 

 다시 문이 열렸을 때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셋, 넷, 다섯. 다섯 번째 집 앞에 급정거하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미친 듯이 초인종을 누르다가 기계음과 함께 열리는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엔,

 

 "반갑습니다. 안부장님. 아니, 안성수 씨."

 도은이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나는 그에게서 악마와 구세주를 동시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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