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점프볼은 키가 조금 더 큰 선율이 선점했다.
선율이 손에 닿은 공을 자기 편 쪽으로 돌리자, 공은 곧장 은빛의 품으로 날아갔다.
“아차.”
하지만 공을 잡은 은빛은 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그저 당황한 듯 선율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지? 혹시 기본 룰을 모르는 거야?’
다솜은 걱정되는 눈길로 은빛을 바라보았다.
그때, 선율이 뛰어와서 은빛이 들고 있는 공을 낚아채더니 상대편 골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기 편 공을 스틸(steal)해? 뭐 저런 플레이가 다 있어?”
선율이 은빛이 패스할 틈을 주지 않고 공을 뺏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이기적인 플레이에 혀를 내두를 틈도 없이 선율은 재빠르게 골대로 달려가 공을 던졌다. 공은 ‘철렁’ 소리를 내며 골대를 통과했다.
“벌써 1점? 빨라!”
다솜은 선율의 실력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입만 산 건 아니었군.”
골을 통과해 떨어지는 공을 보며 현석이 중얼거렸다. 현석은 큰 몸으로 리바운드 포지션을 맡아서 자기 편 골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지혁이 순식간에 나타나 현석의 앞을 빠르게 지나쳐 가서 떨어진 공을 잡더니 곧장 신입생들의 진영으로 뛰어갔다.
뒤따라온 선율이 지혁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앞을 막아서자 지혁은 그 자리에서 슛을 쏘았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선율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지혁을 막고 있던 몸을 뒤로 돌려서 날아가는 공을 보았다.
하지만 공은 그 먼거리를 날아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골대를 통과했다.
“3점 슛! 지혁 선배 나이스!”
그 모습을 본 다솜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쥔 팔을 몸 쪽으로 당기며 소리쳤다.
“윤다솜! 중립 지켜, 편들지 마!”
멀리서 심판을 보던 세현이 다솜에게 소리쳤다. 다솜은 괜히 민망해져서 다시 조용히 벤치에 앉았다.
이번에는 션이 몸을 움직여 신입생 쪽 골대에서 떨어진 공을 받았다.
그 때 코트에서 볼멘소리가 들렸다.
“둘 다 뭐하는 거야. 농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
팀워크는 나 몰라라 하고 1:1로 싸우고 있는 지혁과 선율을 보다 못한 찬성이 불만을 내비친 것이었다.
찬성은 공격보다는 수비를 주로 맡고 있었는데, 공을 기가 막히게 패스하는 포인트 가드였다. 그는 공을 갖고 있는 션에게 접근했다. 찬성은 션이 들고 있던 공을 손쉽게 빼앗았다. 그리고 그 공을 주변에 마크한 사람이 없어서 몸이 자유로운 현석에게 패스했다.
그러자 현석이 골대로 몸을 날려서 묵직한 덩크슛을 내리 꽂았다. 골을 성공시키고 바닥에 착지한 현석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열 받은 건 최지혁 뿐만이 아니라고.”
아무래도 선율의 도발 때문에 현역 멤버들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런 현석을 보면서 선율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만만치 않겠는데……’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자기편 골대에서 떨어진 공을 은빛이 얼결에 주웠다. 은빛은 이번에는 뭐라도 해보겠다는 각오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한 발, 두 발, 세 발.
“안 돼! 은빛아, 그거 반칙이야. 공을 잡은 채로 세 걸음 이상 걸으면 안 된다고.”
“헉, 정말요?”
은빛은 다솜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쟤를 어쩌면 좋아. 생각만 순수한 게 아니라 실력도 순수하잖아. 아무 것도 없어!’
다솜은 은빛을 보며 손톱을 잘근 깨물었다.
은빛은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던 찬성에게 어색하게 공을 건네주었고 찬성은 그 공을 지혁에게 패스했다. 하지만 선율이 지혁에게 가던 공을 날카로운 동작으로 뺐었다. 그리고 전력질주를 해서 기어이 공을 골대에 집어넣었다.
다솜은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율의 집념에 감탄했다.
‘선배들이야 원래 잘 했지만, 신선율……. 이정도일 줄이야!'
다솜은 팽팽한 신경전에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보았다.
하지만 승리는 조금씩 현역멤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지혁과 현석의 슛, 찬성의 패스. 그들은 그 동안 함께한 시간을 바탕으로 서로의 스타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구도로 시합에 임했다.
불안한 건 역시나 신입생들이었다. 셋은 아직 호흡이 전혀 맞지 않았고, 특히나 은빛은 이제 막 농구를 시작한 초심자였다.
하지만 혼자서 거의 세 명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선율의 실력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선율이 작게 욕을 하며 골대로 뛰어올라 마지막 1점 슛을 성공시켰다. 팀원들의 서포트 없이 이정도면 정말로 잘 버텨낸 것이었다.
그때 세현이 경기를 종료하는 호루라기를 불었고, 다들 자리에 서자 점수판을 보고 점수결과를 말했다.
“51점 대 29점. 선배들의 승리에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점수 차였다.
선율은 허벅지를 짚고 몸을 숙인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점수판을 흘겨보았다.
그때 선율에게 지혁이 다가왔다. 선율이 경계하는 눈으로 올려다보자 지혁은 선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동안 계속하고 있었구나, 농구. 많이 늘었네.”
선율은 지혁의 손을 바라보며 잠깐 고민하는 빛을 비췄다. 하지만 이내 ‘하’하는 소리를 내며 똑바로 일어서며 지혁의 손을 맞잡았다. 그는 차마 지혁과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 채 조금 어색한 투로 말했다.
“선배도 여전하네요.”
이 말을 하고 선율은 서둘러 손을 뺐다. 그러더니 멤버들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 게임 제가 이겼어요.”
“뭐?”
그 말에 현역 멤버들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고 옆에 있던 은빛이 수습하려는 듯 선율에게 다가갔다.
“야, 이제 그만 해. 순순히 인정하자. 선배들이 이겼어.”
하지만 선율은 그런 은빛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들어 봐. 기억 안나? 누가 공을 더 많이 넣었는지 따져봐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보다 못한 다솜이 나서서 선율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하지만 선율은 오히려 다솜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더니 다시 선배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선배들 점수를 분석해보면 지혁 선배, 현석 선배가 골고루 공을 넣었고 찬성 선배도 몇 번 넣었지. 그리고 지혁 선배는 3점 슛을 여러 번 넣었어. 하지만 이 쪽은? 공은 반 이상 내가 넣었고, 난 거의 1점 슛을 넣었어요."
“그게 뭐 어쨌다고."
세현은 있는대로 인상을 구기며 선율에게 짜증을 냈다. 하지만 선율은 그런 세현을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선배가 심판 봤으니까 계산해봐요. 선배들 각자가 공 넣은 점수요."
"내가 봤을 땐 대충 지혁 선배가 25점쯤? 그리고 현석 선배가 15점, 찬성 선배가 10점정도 넣었던 것 같아. 그런데 이게 어쨌다고. 쓸 데 없는 소리면 죽여버린다."
세현이 손가락으로 수를 세다가 울컥 성질을 냈다. 그래도 선율은 아랑곳않고 찬찬히 말을 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혁 선배는 3점 슛을 여러 개 넣었기 때문에 점수는 높지만 '횟수'가 많지는 않아. 반면에 나는 혼자 20점정도 넣었으니 점수는 25점 정도 넣은 지혁 선배가 근소하게 높지만, 나는 거의 다 1, 2점 슛이었으니까 공을 넣은 '횟수'로만 치면 내가 더 많아요.”
"그러니까 그게 뭐?"
"현석 선배. 자기가 말하고 잊어버렸어요? 골을 '제일 많이 넣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