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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생록(陽生錄)
작가 : 백린
작품등록일 :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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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진단
작성일 : 16-10-12     조회 : 787     추천 : 2     분량 : 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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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진단

 

 

 “……그래서, 처방은 있소?”

 “없습니다.”

 장연우는 분노했다.

 "환자를 고치는 게 의원의 사명이 아니었던가!”

 진심으로 분노한 장연우는 문한상의 멱살을 잡아들었다. 나름 이백 근이 넘는 몸무게를 자랑하던 문한상은 왼손만으로 자신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린 장연우의 괴력에 놀라 눈을 크게 부릅떴다.

 옷깃이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목을 조르자, 켁켁거리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 하, 할 이야기가 이, 있습니다.”

 “해.”

 “이, 이것 좀 놓아 주시면…….”

 장연우가 잡고 있던 옷깃을 놓았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 문한상은 아직도 졸려오는 듯한 목을 몇 번이나 매만지다, 분노한 호랑이 같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장연우를 발견하곤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저는 처방이 없지만, 처방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누구냐.”

 장연우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문한상은 아직도 목이 졸려오는 느낌에 목을 매만지느라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말해, 새끼야!”

 분노가 치솟은 장연우는 주먹으로 문한상이 기댄 벽을 거칠게 쳤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흔들리며 지붕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문한상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리다 힘겹게 질문에 답했다.

 “귀, 귀의(鬼醫), 귀의 심영생(沈影生)이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귀의?”

 문한상은 조금 누그러지는 듯한 장연우의 모습에 화색을 띠며 급히 말했다.

 “귀신 같은 의술을 지녔다 해서 귀의라고 부릅니다. 본래 활동하는 지역은 섬서성 남부의 안강현(安康縣)근처인데…….”

 “짧게.”

 “옛! 최근 황하 일대의 역병을 살피겠다며 하남으로 향했답니다.”

 장연우는 문한상의 안색을 살폈다. 흑도 바닥에서 십 년이 넘게 굴러온 그의 감각으로는 거짓말을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귀의라는 자의 의술이 그의 말대로 신묘하다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문한상이 그렇게 믿을 만큼은 되는 것이다.

 “귀의…… 귀의라…….”

 그러나 장연우는 그 말에 안도할 수 없었다. 본래 의원이라 함은 전문 분야가 따로 있는 탓에, 명의(名醫)라 해도 고칠 수 있는 병과 고칠 수 없는 병은 분명히 존재했다. 어떤 질병은 한 성(省)에서 이름난 명의보다 저잣거리의 약장수가 더 잘 고치는 경우도 있었던 터라, 과연 그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문한상은 눈치 빠르게도 그 점을 알아차렸다.

 “특히 이런 부분은 심영생이 전문입니다. 섬서에서만 발…… 흠흠. 그것에 시달리던 고령의 노인들을 삼십 대 청춘마냥 만들어 놓은 것으로 이름이 높죠. 그렇게 벌어들인 돈만 물경 일만 냥에 달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정말이냐?”

 “무, 물론입니다.”

 그 말에 약간이나마 위안을 얻은 장연우는 다시 말을 높였다.

 “그 말이 사실이면 좋겠소만.”

 “……틀림없는 사실일 겁니다. 태원 유가장의 가주도 그를 만나러 섬서까지 갔다 와서 늦둥이를 봤으니까요.”

 “아, 그 영감…….”

 아는 체를 하려던 장연우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칫 잘못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면 그 무슨 개망신인가.

 어쨌거나, 그 영감의 늦둥이가 바로 그 귀의 심영생의 작품이라면 자신에게도 희망이 생긴 셈이다.

 “그래. 하남 어딜 가면 만날 수 있소?”

 “그건 저도 잘…….”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원래 안 주는 놈보다 줬다 뺏는 놈이 더 나쁘게 느껴지는 법이다.

 장연우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하, 하지만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있습니다!”

 만약 문한상의 말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아마도 문한상의 코뼈는 제자리를 유지하지 못했으리라.

 간신히 주먹을 멈춘 장연우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단서?”

 “예, 예.”

 “말해 봐.”

 문한상은 놀란 가슴을 애써 쓸어내리며 바닥을 기어, 장연우에게 한참이나 물러나서야 입을 열었다.

 “황하에서 역병이 돌았던 지역은 크게 세 곳입니다. 그 중 하남이라면 복양(濮陽)이겠죠.”

 “복양, 복양이라…….”

 태원에서 복양까지의 거리는 천 리(里)를 조금 넘었다. 그 한 마디 말만 가지고 찾아가기엔 너무 먼 장소였다. 하물며 장연우 자신은 혈혈단신의 몸도 아닌, 한 문파의 주인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들은 걸로 넘기기엔 사안이 심각했다.

 “복양에 가면 귀의를 찾을 수 있는 거냐?”

 “그건……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장담할 수 없다 말하려던 문한상은 장연우의 주먹을 보고 말을 바꿨다.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든 벼루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 저 손이 너무도 위협적으로 느껴진 탓이었다.

 “아마…… 아마라…….”

 장연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아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단지 그 말을 제일 싫어하게 된 것이 바로 오늘 이 시점부터였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그, 그래도 그 이상은 모릅니다. 정말이에요.”

 문한상은 무릎까지 꿇고 빌듯이 말했다. 그 모습에서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음을 느낀 장연우는 몸을 돌렸다. 치료에 대한 단서를 얻은 이상 여기서 낭비할 시간이 없다 여긴 것이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던 장연우는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참.”

 무의식중에 욕설을 내뱉을 뻔 했던 문한상은 간신히 혀를 깨물어 말을 멈추곤 장연우를 보았다.

 “날 봤다는 소리는 하지 말도록.”

 ‘당신이 누군 줄 알고!’

 순간, 문한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연우는 그것을 알아채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어쨌건 자신의 신분만 드러나지 않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

 숨을 돌린 문한상은 안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크게 외쳤다.

 “소금! 소금 가져와!”

 

 ***

 

 방(幇)으로 돌아온 장연우는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잠겼다.

 복양까지 가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도, 부담이 되지 않는 일도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을 계속 이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남자로서는 물론이고, 당당한 태원 흑도의 패자로서의 체면도 서지 않는 것이다.

 부담되는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어찌어찌 태원의 흑도 모두를 영향권에 넣어 태원의 패자가 된 삼호방이지만, 그렇게 흡수한 흑도 문파들의 결속력은 아직도 그리 좋지 않았다. 강제로 흡수한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은 탓도 있었고, 장연우 자신이 아직 스물 셋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망신살이 뻗치는 것은 둘째 치고, 간신히 제압했던 흑도 문파들이 자신을 우습게 보고 들고 일어날 것이 뻔한 일이다.

 “미치겠네.”

 장연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치료를 위한 단서를 잡았다고는 해도, 그 단서를 손에 쥐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자신을 첩첩이 둘러싼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복양.

 그 먼 곳까지 가야 할 이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방주님, 호철입니다.”

 “들어 와.”

 장연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산적 두목처럼 보이는 삼십 대의 장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삼호방의 세 개 당(堂) 중 하나를 맡고 있는 탐혈적호(貪血赤虎) 양호철이었다.

 “무슨 일인데?”

 “청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청?”

 “그게…….”

 양호철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연우가 그리 너그러운 성격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지금 자신이 하려고 하는 말은 장연우의 마음에 들 일이 아니라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 고향에 역병이 돌았다는 소문이 있어, 잠시 귀향을 했으면 합니다.”

 “새끼, 먹물 좀 먹었다고 말하는 것 좀 봐라.”

 “죄송합니다.”

 장연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콧잔등을 씰룩였다.

 간신히 문맹만 벗어난 그는 향시에 급제했던 과거를 가진 양호철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도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격식을 갖춘 양호철의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무식함이 들춰지는 것 같아 껄끄러운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양호철은 삼호방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방도들의 인망을 방주인 자신보다 더 얻고 있는 사람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어딘데?”

 “복양입니다.”

 “복양?”

 “네.”

 장연우는 갑자기 화색을 띠었다. 그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양호철이 흠칫하자 장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호철의 손까지 잡아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진작 나한테 이야기를 했어야지!”

 “바, 방주님?”

 양호철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언제부터 삼호방의 방주 철두광견(鐵頭狂犬) 장연우가 남의 아픔에 신경을 썼단 말인가.

 “그래.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나?”

 “괘, 괜찮습니다.”

 “아니, 아니. 내가 안 괜찮아. 그래…… 일단 은자 오백 냥 줄 테니 가서 고향 사람들 좀 도와주고……. 맞아. 내가 얼마 전 들른 의원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거기 귀의 심영생이라는 사람이 있다던데 말야. 그 사람이 그렇게 명의라더군.”

 양호철의 눈이 지난 삼 년을 통틀어 가장 커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던데…….’

 그런 양호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연우는 다시 한 번 양호철의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일단 자네가 먼저 가서 고향 사람들도 돕고 귀의도 찾아보게. 나도 곧 가지.”

 “……예?”

 “우리 삼호방의 핵심인 자네의 고향인데 어떻게 모른 체 할 수 있겠나.”

 “아, 아니 그게…….”

 순간, 양호철은 장연우의 얼굴 가죽을 잡아당겨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사람이 달라져도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다른 사람이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장연우인 척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는 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틀림없는 삼호방 방주 철두광견 장연우의 목소리였다. 제 아무리 훌륭한 인피면구를 뒤집어 쓴 역용술의 대가라 해도 목소리까지 똑같이 내기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오늘 뭐 잘못 먹었나?’

 두 번째 가능성을 점검해 보던 양호철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음식을 잘못 먹는 정도로 사람이 저렇게 바뀔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참,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한시가 급할 텐데 너무 오래 잡아두었군.”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 내가 괜찮지 않아.”

 그랬다. 양호철은 괜찮더라도 장연우가 괜찮지 않았다. 그로서는 단 일 각, 아니, 반의 반 각이라도 일찍 귀의 심영생을 찾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니 이 새끼가!”

 장연우는 본색을 드러냈다.

 “양호철 이 새꺄! 방주 말이 우습게 들리냐? 어?”

 “아, 아닙니다!”

 “그럼 닥치고 들어. 알았어?”

 “예!”

 양호철은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숙였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장연우는 밖을 향해 소리 질렀다.

 방주실을 지키고 있던 방도는 황급히 달려와 고개를 조아렸고, 장연우는 그를 향해 삼호방에서 가장 좋은 준마(駿馬)와 은자 오백 냥을 준비해 양호철에게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직후, 장연우는 다시 양호철을 바라보며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느새 다시 근엄한 모습으로 바뀐 후였다.

 “야, 양호철…… 아니, 양 대주.”

 “예.”

 긴장하는 그를 향해, 장연우는 진심을 담아 말을 이었다.

 “꼭 그 귀의라는 자를 찾게.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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