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양생록(陽生錄)
작가 : 백린
작품등록일 :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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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널 찾을 것이다. 찾아내서…… 죽여 버릴 것이다 (1)
작성일 : 17-07-21     조회 : 539     추천 : 0     분량 : 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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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널 찾을 것이다. 찾아내서…… 죽여 버릴 것이다 (1)

 

 

 “저, 저도 반대편으로 건너가고 싶습니다. 대협과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앳되어 보이는 청년 하나가 입을 열었다. 여객선에 타고 있던 승객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장연우는 물었다.

 “동평현으로 가는 길 아니었소?”

 “그, 그랬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무서워져서요. 그냥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장연우는 미간을 찡그리며 그를 보았다.

 “그럼 그러쇼.”

 어차피 이런 사람 한 명 정도 태우고 가는 데 별일이 있겠나 싶어, 장연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약속된 신호로 사공을 불렀다.

 이윽고 쭈뼛거리며 천천히 배를 몰아 다가오는 사내가 보였고, 장연우는 손을 크게 저어 안심하고 와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룻배가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사내는 이내 호숫가에 배를 멈춰 세웠고, 쓰러져 묶여 있는 수적들을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장연우를 바라보았다. 저 많은 수적들을 이 빠른 시간에 쓰러뜨렸다는 것에 놀랐던 것이다.

 “수적들은 저기 보이는 선장이 처리하기로 했고…… 끝났으니 나 좀 반대편까지 태워다 주쇼.”

 “무, 물론입니다, 대협.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장연우는 웃었다. 화풀이하려고 팬 거지, 니들 구해주려고 팬 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채였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사내는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밝아진 얼굴로 노를 잡았다. 이 사람을 태워 여기까지 데려온 자신도 수적 토벌에 나름 공을 세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평생의 술안주로 삼을 만한 이야기가 생겼다는 생각도 들어서였다.

 나름 양념을 좀 쳐서 함께 싸운 걸로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니잖은가.

 “빨리 갑시다. 내가 좀 급해.”

 “옛!”

 사내는 장연우의 말을 듣고는 힘차게 노를 저어 호수를 건넜다.

 약 한 식경 후, 배는 출발한 곳과는 반대 지점에 있는 곤산촌(昆山村) 나루터에 도착했다.

 “어, 수고했소.”

 장연우는 배에서 내리며 말했다.

 수채에서 따라온 청년도 곧장 배에서 내렸고, 배를 몰고 온 사내는 장연우를 향해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배를 돌렸다. 수적들을 몰아냈으니 그의 생업인 고기잡이도 조금은 편해질 터이기 때문이었다.

 장연우는 손을 홰홰 저어 그를 보내 버리곤 몸을 돌렸다. 수채로 들어가느라 물속을 헤엄친 탓에 찝찝한 느낌이 들고 있어, 가까운 여관으로 들어가 몸을 좀 씻어낼 생각이었다.

 “대협께서는…….”

 “장연우요.”

 “아, 옙. 장 대협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장연우는 팔뚝을 타고 흐르는 닭살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대협은 무슨. 그냥 장형이라고 부르쇼.”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알렸다.

 “저, 저는 조상구입니다. 하택현(荷澤縣) 출신이고요.”

 “거기가 어디요?”

 “복양 바로 아래에 붙어 있는 곳입니다.”

 “아, 그렇소?”

 장연우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곧 헤어질 건데 하택이면 어떻고 하남이면 어떤가.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지워져 버렸다. 조상구의 말 때문이었다.

 “대협이 절 구해주셨으니, 적어도 오늘 숙박과 식사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정말이오?”

 “어차피 수적 놈들에게 다 빼앗길 처지였습니다. 은인을 대접하는 게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조상구는 웃으며 말했다. 장연우가 수적들을 두들겨 패는 사이, 자신을 비롯한 포로들이 수채를 뒤져 빼앗긴 돈을 되찾아 왔으니 부담 가질 거 없다는 이야기였다.

 “아, 그렇소?”

 장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되찾지 못했더라도 부담을 가지진 않았을 장연우였지만, 그래도 이럴 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게 낫다는 걸 아는 그였다.

 “그럼 오늘 신세 좀 집시다.”

 자기 돈 들여서 대접하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는 일이다.

 조상구는 기쁜 표정으로 길을 앞장서 객잔으로 향했다. 바로 어제 자신이 묵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여기가 음식도 괜찮습니다. 들어가시죠.”

 장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조상구는 점소이를 불러 이것저것을 주문하고는 장연우가 앉은 탁자로 다가갔다. 얼마 뒤 점소이가 음식을 내어오자, 조상구는 자신을 미심쩍게 보는 점소이에게 음식 값을 건네주고는 입을 열었다.

 “목욕물은 준비되었나?”

 “잠시만 기다리십쇼.”

 점소이는 돈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큼지막한 통을 들어 이 층으로 가져가 빈 방에 내려놓고는, 조상구에게 돌아와 말을 이었다.

 “이 층 끝에서 두 번째 왼쪽 방입니다. 주방에서 뜨거운 물을 가져다 부을 테니 마음껏 씻으십시오.”

 “고맙네.”

 조상구는 점소이의 손에 동전 두 개를 건네주었다.

 점소이는 밝아진 얼굴로 주방으로 향했고, 이내 큼지막한 물통에 김이 올라오는 물을 가득 채워 빈 통을 가져다 놓은 방으로 향했다.

 장연우는 남은 음식을 죄다 쏟아붓듯이 삼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완전히 마르지 않은 옷에서 나는 냄새도 신경 쓰였던 데다, 머리에 남은 물기가 기분을 나쁘게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옷 좀 사올 수 있나?”

 “물론입죠.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점소이는 돈을 받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손을 펴본 점소이의 표정은 심각하게 구겨졌다. 장연우가 건네준 돈은 고작 동전 열 문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거지가 입던 누더기나 얻어 올 수 있는 금액이 아닌가.

 “허허…… 이거 받게.”

 조상구는 점소이에게 동전 스무 문을 더 주었고, 점소이는 그제야 구겨진 얼굴을 바로 하곤 자리를 떠났다.

 “그럼 먼저 씻으시죠. 전 식사가 좀 늦는 편이니 제가 나중에 씻겠습니다.”

 “그럽시다.”

 장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상구가 그렇게 권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던지라 다른 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이 층으로 올라간 장연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씻었다.

 그 사이 옷을 준비해 온 점소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허름한 옷을 내려놓고 아래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객점의 누군가가 입던 헌옷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장연우에겐 그런 것 정도는 웃으며 넘어가 줄 만한 아량이 생겨나 있었다.

 “으, 좋다.”

 장연우는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고개를 돌렸다.

 무심코 밖을 내다 본 장연우의 눈이 커졌다. 어째서인지 객점에서 멀어지는 조상구의 손에,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그 물건은 바로 장연우 자신의 짐이었다.

 “……어?”

 장연우는 눈을 끔뻑거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던 조상구의 시선이 장연우의 얼굴에 와 닿았다.

 바로 다음 순간, 조상구는 바람 같은 속도로 도망쳐 갔다. 무공이 일류에 달한 장연우마저도 놀랄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장연우는, 조상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가 거의 다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소리 질렀다.

 “야 이 개새끼야!”

 그 사이, 조상구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장연우는 외쳤다.

 “이 씨발새끼야아! 내 하수오 내놔아아아!”

 

 ***

 

 “산동쾌도(山東快盜)?”

 장연우는 험상궂은 얼굴로 눈앞의 사내를 윽박지르듯 물었다. 재수 없게 걸린 하오문의 순풍이(順風耳)였다.

 “그, 그렇습니다. 조상구라면 분명 산동쾌도라 불리는 도둑놈입죠.”

 “이런 씨발!”

 장연우는 주먹을 내리쳤다.

 하오문 순풍이는 두 동강이 나 바닥을 뒹구는 탁자를 보곤 침을 꿀꺽 삼켰다.

 “씨발! 개 씨발놈의 새끼!”

 장연우는 연거푸 욕설을 내뱉었다. 그게 어떻게 구한 백년하수오인데!

 이를 갈던 장연우의 머릿속으로 태산에서의 일이 천천히 흘러갔다. 여섯 개나 되는 절벽을 기어오르고, 호랑이를 만나 죽을 뻔한 끝에 일곱 번째 절벽에서 간신히 구한 백년하수오였다.

 그런데 그것을 도둑놈에게, 그것도 자신이 구해준 도둑놈에게 홀랑 털리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조상구에게 묻는다면 이야기가 다르게 나올 터였다. 본래 조상구는 후산수채의 수적들이 모은 재물을 털어먹기 위해 동평호로 갔던 터였던지라, 장연우 때문에 그간의 노력이 엎어졌으니 그 보상을 받아야 한다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물론 알았더라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 장연우는 부드득 이를 갈며 눈앞의 순풍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불어.”

 “예?”

 “조상구 그 새끼에 대해 아는 대로 불어.”

 장연우는 사람을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겁먹은 순풍이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내용까지 죄다 말했다.

 “조상구는 특이한 도둑놈입니다. 보통 도둑놈들이 자기 본명을 숨기는 것과 달리, 그놈은 자신의 본명과 얼굴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 놈입죠.”

 “그리고?”

 “그…… 듣기로는 그게 그놈의 문파인 야조문(夜鳥門)의 수칙이라고 합니다. 붙잡힐 게 두려워 음지에 숨는 놈은 천하제일의 도둑이 될 수 없다는 이유라고…….”

 장연우는 벌컥 화를 내었다.

 “그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는지 불란 말이다!”

 “히익!”

 순풍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부들부들 떨었다. 잘못했다간 저 지랄 맞은 놈에게 맞아죽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새록새록 들었다.

 “말하라고, 새끼야!”

 “자, 잠깐만요! 정보 좀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연우는 순풍이를 놓아주었다.

 풀려난 순풍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벽 한쪽 구석에 놓인 책자를 집어 들어 휘리릭 넘기다 손을 멈췄다. 조상구에 대한 내용이 짤막하게 담긴 기록이었다.

 순풍이는 그것을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그…… 글자 읽으실 줄 아십니까?”

 “이 새끼가 날 천치로 보나…….”

 “아, 아닙니다, 대협. 천천히 보십쇼.”

 장연우는 순풍이의 손에서 책을 빼앗듯 낚아채 읽었다.

 얼마 후, 장연우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 책엔 일인 전승으로 이어지는 야조문에 대한 짤막한 내용과, 현 야조문주인 조상구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전부 배제하고 핵심만 말하자면, 조상구는 산동 무림에서 가장 발이 빠른 열 명 중 하나라는 이야기였다.

 장연우는 몸을 씻던 중 보았던 조상구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 일류 고수인 자신이 보기에도 놀랄 만큼 빠른 뜀박질이었다. 장연우 자신이 상황을 이해하고 몸을 일으키는 그 짧은 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의 속도였으니, 산동 십대 경공 대가라는 말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기도 했다.

 “이…… 이 개놈의 새끼…….”

 하기야 그런 발이 있으니, 감히 이 장연우의 물건을 들고 튈 생각을 할 수 있었으리라.

 “그 새끼 찾아내.”

 “예, 예?”

 “네놈들 하오문이잖아! 그 새끼 찾아내라고!”

 순풍이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그럼 대금은…….”

 “그 새끼 잡으면 준다. 그러니까 찾아내!”

 장연우는 핏발 선 눈으로 크게 외쳤다.

 관례대로 선금을 요구하려던 순풍이는 그 흉험한 눈초리에 신음을 삼키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금을 요구했다간 단매에 맞아죽을 것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조상구 이 새끼…….”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장연우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조상구의 모습을 떠올린 채였다.

 “널 찾을 것이다. 찾아내서…….”

 장연우는 말했다.

 “……죽여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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