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널 찾을 것이다. 찾아내서…… 죽여 버릴 것이다 (2)
기다리던 소식은 이틀 만에 들어왔다. 북쪽으로 백오십 리 떨어진 동아현(東阿縣)에서 조상구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개새끼, 열라 빠르네.”
장연우는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이틀 동안 장연우에게 시달려 핼쑥해진 순풍이는 어서 가라는 눈빛으로 장연우를 보았다. 장연우는 시선을 보낸 순풍이를 마주 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말했지? 대금은 그놈 잡으면 준다고.”
“괘, 괜찮습니다. 어서 가시죠.”
“정말 그래도 되나?”
“물론입죠! 이러다 놈을 놓치면 어떡합니까? 한시가 급한데 어서 가시죠.”
순풍이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이 흉악한 놈에게 시달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향주(鄕主)에게 욕을 먹고 두들겨 맞는 게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장연우는 웃으며 하오문을 나섰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순풍이는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장연우를 욕하며 눈을 감았다. 자칫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장연우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참 동안 욕설을 퍼붓던 그가 입을 다물 때였다.
“컥!”
벽면에 상체를 기대고 있던 순풍이의 목에 올가미가 감겼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순풍이는 필사적으로 올가미를 떼어내려 발버둥 쳤으나, 그럴수록 천장에서 내려온 올가미는 순풍이의 목을 더욱 더 단단히 죄어가고 있었다.
순풍이의 발버둥은 금세 멈췄다. 목뼈가 부러지며 마지막 숨까지 토해낸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을 끊은 올가미는 스르르 풀려 천장으로 향했다. 곧이어 나무를 틈새에 끼워 맞추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한 사람의 시체가 남은 방 안은 정적에 잠겼다.
그 정적은, 동료의 죽음을 발견한 하오문도가 비명을 내지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
장연우는 이를 갈며 발을 떼었다. 조상구가 목격됐다는 동아현의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개놈의 새끼.”
그 배은망덕한 도둑놈의 새끼를 떠올린 장연우는 부드득 이를 갈며 발을 놀렸다.
그가 찾는 곳은 의원과 약방이었다. 분명 그 도둑놈의 새끼는 자신의 짐에서 백 년 묵은 하수오를 발견했을 터, 그렇다면 틀림없이 의원이나 약방에 팔았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일은 생각만큼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다섯 군데나 되는 의원과 약방을 돌아다녔는데도 백 년 묵은 하수오가 있는 곳은 없었다. 열 받은 장연우가 살기까지 흘렸는데도 고개를 저은 것을 생각해 보면, 의원이나 약재상이 숨기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로 들어선 약재상에서, 나이 든 의원은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물건이라면 흑시(黑市)에 가서 찾아봐야 할 거요.”
“약재상이 아니라?”
의원은 말했다.
“우리도 물건을 보는 눈이 있다오. 정확히는 약초를 캐어 온 사람의 눈빛을 읽지.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말이오, 물건을 가져온 사람이 약초꾼인지 도둑놈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오.”
장연우는 미심쩍은 눈으로 의원을 보았다.
의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탐욕에 빠져 그런 물건을 사들이는 자들도 있겠지만, 이 동아현은 작은 현이라 그런 물건을 사 봐야 소용이 없소. 그걸로 만든 약재를 살 사람이 없으니 말이지. 그러니 백 년 묵은 하수오를 사는 건 짐덩이를 사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으음.”
장연우는 그 말에 설득당했다.
나이 든 의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 현 북쪽에 있는 소진장(小秦莊) 뒤편 거리에서 흑시가 열린다는 소문이 있소. 만약 그 도둑이 백년하수오 같은 고가의 물건을 이 현에서 처분할 생각이라면 분명 그곳에서 팔려고 할 거요.”
“열리는 게 언제요?”
“열흘마다 한 번씩 열린다 들었소. 그러고 보니 바로 오늘 저녁이로군.”
“거, 의원 양반이 별 걸 다 아시는구려?”
“오래 살았으니까.”
의원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렇게 의원을 돌아봐야 찾을 수 없을 거요. 약재상 역시 다르지 않겠지.”
장연우는 수긍했다. 나이 든 의원의 말대로일 거라 생각한 것이다.
“저녁 언제쯤 열리오?”
“그것까진…….”
의원은 말했고, 장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향했다.
장연우는 의원을 나선 후 그대로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다. 운이 좋다면 이렇게 걷다가 조상구를 찾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음을 깨달은 장연우는 거리를 걸어 흑시가 열린다는 소진장 뒤편 골목으로 발을 옮겼다. 거리를 헤매는 동안 동아현의 지리를 어느 정도 익히게 되었던 탓에, 소진장 뒤편 골목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한 시진이 흘렀을 무렵, 동아현 여기저기서 수상한 사내들이 하나 둘씩 몰려왔다. 놀라운 것은 지역 유지의 장원이라던 소진장 안에서 수십 종의 물건을 실은 수레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기가 흑시의 본점이었군.’
장연우는 인상을 구기며 그들을 보았다. 혹시 자신이 도둑맞은 백년하수오가 있을지도 몰라서였다.
그러는 사이 노점의 배치가 완료되었다. 길바닥에 깔린 노점들은 각각의 물건을 늘어놓고 있었고, 그 중엔 물건을 잘 모르는 장연우조차도 관심이 갈 만한 것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장연우는 그것들을 힐끗 보고는 그냥 지나쳤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 상황이 아닌 것이다.
잠시 후, 장연우는 특이한 노점을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노점이었다.
물건이 없는 걸 보면, 분명 판매가 아닌 매입을 목적으로 개설한 곳이리라.
‘조상구 이 개놈의 새끼…….’
장연우는 골목 끄트머리에 숨어 그 빈 노점을 바라보았다. 만약 조상구가 이곳에 왔다면, 틀림없이 저곳을 통해 백년하수오를 팔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장연우가 골목에 숨어 기다린 지 반 시진 만에, 반대편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는 조상구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등엔 훔쳐 달아난 자신의 짐이 묶여 있었다.
“조상구, 이 개놈의 새끼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장연우는 골목에서 튀어나와 소리 질렀다. 느긋한 표정으로 걷던 조상구는 흠칫 놀라 멈춰 장연우를 보았고, 곧바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개새끼. 너 뒈졌어.”
장연우는 몸을 날렸다. 조상구는 화들짝 놀라며 장연우를 피해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그 바람에 가까이 있던 노점 하나가 엎어져 버렸고, 골목을 지키던 흑시의 무사 하나가 조상구와 장연우 사이에 끼어들어 이 난장판을 막으려 했다.
“길 막지 마! 죽여 버린다!”
장연우는 분개해 외쳤다. 도둑놈의 새끼가 저기 있는데! 왜 내 앞길을 막는가!
“감히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네놈 눈엔 흑시가 우습게 보이…… 컥!”
“막지 말라고!”
장연우는 뭐라 소리치던 무사의 턱을 날려 버렸다. 흑시의 무사가 나타났음에 안도하던 조상구는 그 모습을 보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가오는 장연우를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곤 그대로 몸을 돌려 튀어 버렸다.
그 모습은 장연우의 분노를 한층 더 키웠다. 당장 무릎을 꿇고 빌지는 못할망정 도망을 쳐?
“거기 서, 새끼야! 서라고!”
장연우는 땅을 박찼다.
그러나 장연우는 불과 세 걸음 만에 발을 멈춰야 했다. 호각(號角)이 울리며 나타난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장연우를 막아서며 외친 것이다.
“감히 흑시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목숨이 몇 개는 되는 모양이구나!”
“꺼져, 이 새끼들아!”
“쳐라!”
흑시의 무사들은 장연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장연우는 옆구리를 날카롭게 베어드는 검격을 느끼곤 황급히 몸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마자 재를 뿌려 빛을 가린 창날이 미간을 노리고 날아들었고, 간신히 그 예기(銳氣)를 감지한 장연우는 손을 위로 쳐올려 창을 쳐내며 크게 외쳤다.
“제발 좀 꺼지라고!”
그러나 그 말을 들을 무사들이 아니었다. 흑시의 경호를 대가로 수백 냥이나 되는 은자들을 받아 챙긴 그들이기에, 흑시에서 일어난 소란은 반드시 제압해야만 했던 것이다.
장연우는 이를 갈며 주먹을 날렸다. 이들을 뚫지 않고서는 조상구를 쫓을 수 없음을 느껴서였다.
“이 개새끼들! 조상구 저 새끼 놓치면 다 네놈들 책임이야!”
“네놈 목숨이나 걱정하거라!”
검을 든 무사가 외치며 달려들었다. 강 건너 평양현(平陽縣)에서 최고의 검객으로 꼽히던 그였던지라, 이번 일 수(手)로 장연우의 목을 따 버리고 말겠다는 기세와 자신감을 담은 채였다.
“이…… 이 쳐 죽일 놈의 새끼들…….”
장연우는 날아오는 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맨손으로 검을 상대하려는 장연우의 모습에 실소하던 무사는 검을 부숴버리고 날아드는 주먹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 입에서 소리가 채 나오기도 전에, 장연우의 주먹은 그의 얼굴을 그대로 뭉개고 치아를 다섯 개나 날려 버렸다.
“크아악!”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무사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동료의 불행을 본 흑시의 무사들은 더욱 더 분개했다. 조금 전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들인지라, 그들의 눈에는 공포 대신 분노만이 깃들어 있었다.
“쳐라! 죽여 버려!”
“으아아아!”
장연우는 분노했다. 어디서 이런 날파리 같은 것들이 나타나 앞길을 자꾸 막는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 조상구는 경공을 펼쳐 북쪽으로 달아났다. 무사들 사이로 그 모습을 본 장연우는 무의식적으로 그 뒤를 쫓으려다 날아드는 검날에 어깨를 베였다. 치명상까지는 아니었지만, 조상구에게만 집중되었던 의식을 흑시의 무사들에게 돌릴 만큼의 상처는 되는 수준이었다.
“꺼지라고 했잖아!”
장연우는 몸을 날려 흑시의 무사들을 쓰러뜨렸다. 가장 가까이 있는 무사는 들고 있던 봉(棒)을 발길질로 꺾어 버리고 멱살을 잡아 머리로 들이받아 기절시켰고, 그 옆에 있던 무사는 삼호방 말단 시절 배웠던 섬전각(閃電脚)으로 종아리를 부숴버린 후 주먹을 날려 허공으로 띄웠다.
화들짝 놀란 흑시 무사들은 나름 협공을 시도한다며 동시에 무기를 휘둘렀지만, 이런 개싸움에 더 능숙한 것은 그들이 아닌 장연우였다.
“죽여 버린다, 이 개새끼들아!”
장연우는 내력을 실은 손으로 무기들을 받아냈다. 동시에 당황하는 무사들의 무기를 잡아당겨 빼앗아 버린 후, 그것을 엇갈려 던져 상대방의 복부와 가슴을 가격하고는 뒤이어 시전된 연속차기로 그들의 정신줄을 끊어 버렸다.
“히엑!”
남은 무사들은 기겁하며 물러났다. 아무리 흑시의 호위무사라고는 해도, 동아현 같은 작은 고을에서 열리는 흑시의 무사라면 잘해야 평범한 낭인 수준인 것이다.
장연우는 그들에게 달려들며 크게 외쳤다.
“그러니까!”
낭아봉(狼牙棒)을 든 무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박치기였다.
“막지 말랄 때!”
뒤돌아 도망치려던 맨손의 무사가 허공을 날았다.
“막지 말았어야지!”
장연우는 마지막으로 남은 무사를 잡아 빙빙 돌리다 허공으로 내던졌다.
한참이나 허공을 날던 무사는 소진장 뒤편에 있는 마구간에 처박혀 꿈틀거렸다. 죽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이 개놈의 새끼들…….”
장연우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흑시의 무사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시간만 많다면 이들을 깨워 곡소리가 날 때까지 두들겨 패고 싶지만, 지금은 이놈들보다 도망쳐 버린 조상구를 잡는 게 훨씬 급했다.
고개를 돌린 장연우는 부드득 이를 간 후, 조상구가 도망친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