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백지초(白芝草) (1)
조상구는 울었다. 거의 한 시진 동안 얻어맞아 생긴 상처가 아파서는 아니었다.
“개새끼…….”
조상구는 자리를 비운 장연우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더불어 이제 그놈에게서 도망칠 수 없게 된 자신의 처지에 서글퍼져 울먹이고 말았다.
보물을 발견하면 뿌려두려고 준비했던 천리추종향이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도대체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이 조상구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상구를 때려죽이려던 장연우가 생각을 바꾼 건 조상구를 패기 시작한 지 반 시진 만이었다.
정확히는 얻어맞던 조상구의 품속에서 갖가지 물건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서였다. 그제야 조상구가 산동에서 이름 높은 도둑임을 깨달은 장연우는 혹시 자신의 치료에 필요한 약재를 구하는 데 조상구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잠시 구타를 멈췄다.
그리고 조상구가 떨어뜨린 물건 중 금속으로 된 약병을 발견한 장연우는, 그 안에 든 것이 천리추종향임을 알아채고는 쓰러진 조상구의 입안에 그것을 듬뿍 부어 버린 것이다.
‘한 달, 한 달만 참자.’
조상구는 되뇌었다. 몸 안에 들어온 천리추종향은 길어야 한 달을 가지 못할 터였다.
그때가 되면, 기회를 보아 어떻게든 탈출하리라.
그러는 사이 장연우가 돌아왔다.
“생각은 좀 났냐?”
“그, 그게…….”
장연우의 눈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솥뚜껑만한 손이 올라오는 건 덤이었다.
그러나 따로 재물을 모아두는 습관 같은 건 없던 조상구였던지라, 이미 먹어 버린 백년하수오의 대가를 지불할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자, 잠깐! 시,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 반드시 찾아보겠습니다!”
“빨리 찾는 게 신상에 유리할 거다.”
“그…… 그럼요. 물론입죠.”
조상구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개새끼, 씹새끼 등의 욕설을 마구 터뜨리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든 당신이 입은 피해를 복구해주겠다는 생각이 가득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고 있었다.
장연우는 흉험한 표정을 풀고 의자에 앉았다.
생각해 보니 천리추종향을, 그것도 반병이나 처먹은 저놈이 도망쳐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생각을 마친 장연우는 화제를 돌렸다.
“여기 밥 어떠냐?”
대답은 다른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 객잔은 이 임읍현(臨邑縣)에서 제일가는 숙수를 고용해 운영되고 있거든요. 뭐니 뭐니 해도 바다에서 잡은 해삼으로 만든 탕과 환자(丸子)는 현령님께서도 매번 찾으시는 임읍일미(臨邑一味)입니다요.”
객잔의 주인으로 보이는 배 나온 중년인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얼마요?”
“각각 한 접시에 은자 반 냥입니다요.”
“하나 내 오쇼.”
조상구는 인상을 구겼다. 먹는 놈은 장연우요, 돈 낼 놈은 조상구라는 걸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두 분인데…… 하나 가지고 되겠습니까?”
장연우는 조상구를 바라보았다.
자기도 달라고 하려던 조상구는 어차피 시켜 봐야 장연우가 빼앗아 먹을 거라 생각하고는 인상을 구기며 소면을 주문했다. 설마 해삼탕과 해삼완자를 먹고 소면을 뺏어 먹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객잔주는 조상구를 향해 눈을 흘기곤 주방으로 들어갔다.
결국 돈 내는 건 자신이라 외치고 싶었던 조상구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몸을 떨었다. 자신이라고 해삼으로 만든 탕과 완자를 먹고 싶지 않을 리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 조상구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연우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일단 하수오는 구했고…….”
장연우는 심영생에게 들었던 약재의 목록을 떠올려 보았다.
‘백년하수오 한 뿌리에 감초가 반 관, 백복령 한 되에 차전자(車前子:질경이) 반의 반 근…….’
생각을 잇던 장연우는 인상을 구겼다. 백년하수오 못지않게 구하기 힘든 물건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초(芝草:영지버섯) 두 근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지초 또한 백년하수오 못지않은 값비싼 약재였다. 물론 둘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느냐고 물으면 백년이나 묵은 하수오에 손을 들어주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희귀성으로 인해 한 근에 은자 다섯 냥이 넘는 가격이 책정되는 물건이 지초인 것이다.
게다가 은자 열 냥이 있다고 해도 지초 두 근을 산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초는 워낙 구하기 힘든 약재인 탓에, 경쟁이 붙으면 그 열 배까지도 올라가는 약초인 탓이었다.
더욱이 심영생이 요구한 것은 일반적인 적지초(赤芝草)나 황지초(黃芝草)가 아닌 백지초(白芝草)였다.
평생 약초를 캐 온 사람들도 십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다는 그 백지초 말이다.
“쓰벌…….”
차라리 호골(虎骨)이나 웅담(熊膽)이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장연우의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비록 태산에서 호랑이를 만나 죽을 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몸 상태만 정상이라면 호골 일만 근이 필요하다 해도 웃으며 구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초는 달랐다.
장연우는 고민했다. 배운 건 없었지만 지초가 얼마나 구하기 힘든지, 또 다른 버섯들과 얼마나 헛갈리기 쉬운 놈인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배고파 굶주리던 어린 시절 버섯을 잘못 먹고 죽을 뻔한 경험을 몇 번이나 했던 그였다.
“조상구.”
“예?”
“너 약초 좀 아냐?”
조상구는 입을 삐죽였다. 저 새끼가 날 뭘로 보고…….
“전 도둑놈이지 약초꾼이 아닌데요.”
“쓸모없는 새끼.”
장연우는 조상구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개새끼.’
조상구는 속으로 외쳤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막느라 목구멍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수저로 국물을 뜨던 장연우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 안에 든 무언가를 보고서였다.
장연우가 보는 건 해삼 탕에 들어있는 버섯이었다. 아까부터 지초 생각을 해왔기 때문인지, 이게 지초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마저 머릿속 가득 들고 있었다.
“이보쇼, 주인장.”
“예?”
“이 버섯 뭐요?”
객잔주는 말했다.
“석이버섯입죠.”
“그거 꽤 비쌀 텐데.”
조상구는 해삼탕에 든 석이버섯을 바라보았다.
석이버섯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나 나온다는 걸 알고 있던 그였던지라, 탕 한 그릇에 저렇게 많이 들어있다는 것에 살짝 놀란 듯한 표정도 떠올라 있었다.
객잔주는 그 말에 대답해 주었다.
“건너편 약재상 하던 추 노인이 약방을 접는다고 싸게 팔길래 주워왔습죠.”
“약방을 접는다고? 그게 무슨 소리요?”
장연우는 물었다.
평소라면 관심도 두지 않았을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잘하면 필요한 약재를 헐값에 주워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게 말입니다요.”
객잔주는 빈 의자에 앉았다.
사실 약재상 추 노인이 처한 상황에 일종의 측은함도 느끼고 있었던 그였던지라, 무림인으로 보이는 이 두 사람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요약하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임읍에서 약재상을 하던 추 노인이 정력제로 쓰이는 음양곽(陰羊藿:삼지구엽초) 삼백 근을 구입했는데, 그것으로 만든 약을 먹고 과도하게 거사를 치르던 환원문(桓原門)의 문주가 복상사로 죽어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개새끼.”
장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부러움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양물이 서지 않는 장연우로서는 죽은 환원문 문주가 부럽게만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거랑 약방을 접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상관이 있습죠.”
객잔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
새로 환원문의 문주가 된 조중연이라는 작자는 전 문주의 죽음이 추 노인에게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추 노인이 약을 잘못 쓰는 바람에 전 문주가 죽어버린 것이니, 환원문이 그 보상을 받아야겠다며 은자 이천 냥을 요구했다는 이야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환원문은 임읍에서 가장 세력이 큰 문파였다. 게다가 현령과의 관계도 친밀해 관(官)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임읍현령의 아들이 환원문의 대제자가 되었으니, 관이라고 해서 추 노인을 도와줄 리 없는 것이다.
“아니 그런 개새끼가!”
장연우는 분개했다.
‘그런 명예로운 죽음(?)을 선사해 준 사람을 치하하진 못할망정 해치려 한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라는, 남이 들으면 미친 새끼라는 소리를 할 법한 생각 때문이었다.
객잔주는 감동했다.
‘생긴 건 흉악하지만 대협이구나.’
며칠 전 누군가가 하던 오해를 그대로 답습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장연우의 두 손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
“대협!”
장연우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팽개쳤다.
대협이라니, 그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란 말인가.
뻘쭘해진 객잔주는 어색한 표정으로 두 손을 바지춤에 슥슥 문지르다,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호, 혹시 생각 있으시면 추 노인을 만나 보십쇼.”
“어디요?”
객잔주의 표정이 다시금 밝아졌다. 손을 뿌리친 것은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 거라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오해를 풀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객잔주는 의기 높은 대협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장연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추씨 약방입니다. 남쪽으로 반 각만 걸어가면 볼 수 있습죠.”
***
“끌어내!”
갈색 무복을 입은 사내가 외쳤다.
그의 수하들로 보이는 네 명의 사내는 버둥대는 노인의 사지를 잡아 밖으로 내던졌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한 바퀴 구른 노인은 허리를 붙잡고 끙끙대다가, 안에 쌓인 약재를 마구 내던지는 사내들을 보곤 갈색 무복을 입은 사내에게 달려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소리 질렀다.
“이보시오!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 있단 말이오!”
“꺼져!”
“어이쿠!”
노인은 다시 바닥을 굴렀다.
갈색 무복을 입은 사내는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콧잔등을 씰룩였다. 자기라고 저 늙은 노인을 걷어차고 싶었겠는가.
‘조중연 이 새끼. 이런 건 꼭 나만 시키더라.’
사내는 새로 문주에 등극한 조중연을 욕하며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신음을 끙끙 흘리며 다시 일어나 사내의 바짓가랑이를 또 한 번 잡았고, 사내는 흘러내리려는 바지를 붙잡아 올리며 노인을 밀어냈다.
그도 노인이 불쌍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백주대낮에 바지가 벗겨지는 치욕을 당할 수는 없었다.
“이 영감탱이가!”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바지 끈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야, 너! 이 노인네 잡아!”
그는 쑥이 가득 찬 망태를 집어던지려던 무사를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지목당한 무사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버둥대는 추 노인을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추 노인은 처음엔 애원하다, 약방에서 완전히 끌려 나갈 즈음에는 조중연과 갈색 무복 사내를 향해 저주 섞인 욕설을 내뱉으며 버둥거렸다.
“저 미친 노인네가!”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나빴던 그였다. 욕까지 듣고서야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걸었다.
한쪽 손으로는 바지춤을 붙잡고 있어 언뜻 우습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두 눈에 드러난 살기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구경하던 사람들마저 욕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버릴 정도였다.
“이 천벌을 받을 놈들! 네놈들은 밤중에 급살이나 맞아 뒈……. 컥!”
사내는 주먹을 휘둘렀고, 노인은 피거품을 내뿜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때였다.
“야, 이 개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