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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등학생의 청춘
작가 : 신수
작품등록일 : 201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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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上(4)
작성일 : 16-10-17     조회 : 546     추천 : 0     분량 : 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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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 너 대학로 가면 연극하시는 분들 많은 거 알지? 그분들 중에 알바 뛰어가면서 연극하시는 분들 엄청 많아. 너 말대로 먹고 살려면 차라리 공사판 가서 노가다라도 하는 게 먹고 살기는 더 편할 텐데 뭣하러 힘들게 돈 안 벌리는 연극에 매달리고 있겠니? 다~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지. 안 그래?”

 “응. 안 그래.”

 

 내 확고한 대답에 한여름이 ‘뭐야 얘는.’ 하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미인의 이런 눈빛에 마음이 살짝 상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난 그런 사람들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 저런 시간낭비를 왜 하고 있지? 차라리 그냥저냥한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는 게 부모든 본인의 생활에든 훨씬 좋을 텐데.”

 “뭐래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당연히 해봐야 되는 거 아니야?”

 “그건 사람마다 다르지.”

 “넌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이 마음을 모르는 거야.”

 “없는 사람이 더 많은데 뭐.”

 

 내 대답에 짜증이 솟구치는지 한여름의 선 고운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져갔다.

 

 “...”

 

 지금 느낀 건데, 예쁜 사람은 뭘 해도 예쁘다.

 어떻게 얼굴을 찌푸려도 예쁘냐.

 

 “...그러는 넌, 관심사라도 있어? 있으면 한 번 들어나 보자. 얼마나 대단한 관심사길래 노력하는 분들한테 그렇게 말하는지.”

 “딱히 없는데?”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요즘 꿈이 없는 애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해?”

 “일단, 내 알바가 아니어서 별 생각 없지만 니가 듣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까 한 마디만 하자면, 딱히 꿈이 없다고 해서 불행하다거나 할 건 아니라고 봐.”

 “왜?”

 “다 없이 사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꼭 다 그런 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실인데?”

 

 담임한테 했던 얘기를 또 해줘야겠군.

 

 “꿈 찾겠다고 시간낭비할 바엔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나아. 공부는 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이지만 꿈에다 낭비하는 시간은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이거든.”

 “......”

 

 이겼나? 하는 내 눈에 들어오는 건 패배자의 불쌍한 눈이 아닌 승리하고 싶어 하는 굳은 열망뿐이었다.

 아무래도 호적수를 만난 것 같다.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이런 얘기 나오면 진적이 없거늘.

 다시 말해, 이건 나뿐 아니라 내 친구들의 자존심도 걸려 있는 일이다.

 

 “...넌 나랑 얘기를 쫌 많이 해봐야겠어.”

 

 바라던 바다.

 

 “생각해봐,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우리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 교육과정이 있어? 없지. 그냥 더 나은 대학교로의 진학을 위해 계~속 달려갈 뿐이잖아. 빠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입시위주교육 속에서 어떻게 학생들이 지들이 하고 싶은 걸 찾겠냐?”

 “아니, 그건 꿈을 찾으려는 노력은 안 해서 그런 거지.”

 “그러니까, 그럴 시간이나 시기가 없다는 거지 내 말은.”

 

 아무래도 얘는 나랑 생각이 정반대인 거 같다.

 같은 생각을 한여름도 했는지 답답해하는 말투다.

 

 “그래도 꿈을 가질 사람은 다 가진다구. 나처럼. 너 애가 아주 부정적이구나? 언제 나랑 상담 한번 하자.”

 “지금 하고 있는 건 뭔데?”

 “지금 하는 건 맛보기지.”

 “됐거든? 전문 상담사도 아닌 사람한테 받는 건 사양일뿐더러, 애초에 난 이런 주제로 상담 받을 필요도 없어.”

 

 내 말에 한여름은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괜히 선생님이 보내신 게 아니구나...”

 

 뭐라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누가 여기 오겠냐. 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만약 있어도 다 6층 상담실로 가지. 이건 마치 적법한 의사가 차린 병원 말고 돌팔이가 연 병원에 가는 거랑 똑같은 거 아냐?”

 

 완벽한 비유였다... 하고 감탄하고 있는데 아침이라도 잘못 먹었는지 한여름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전혀 아니지. 여기만이 가진 메리트가 있는걸. 모르겠어?”

 

 내가 그게 뭐냐는 표정을 짓자, 한여름은 답답하다는 얼굴을 했다.

 

 “어휴 답답해. 물론 6층에도 상담실이 있지만 거기랑 여기는 근본적으로 달라! 여긴 내가 하잖아. 아, 오늘부턴 너도 하겠지만. 어쨌든, 차이점이 뭔지 알겠어?”

 “차이점은 대충 알겠는데, 메리트까지는......”

 “가장 큰 메리트는 공감이야.”

 “공감?”

 “그래. 넌 학생이라는 점을 약점으로 지적했지만 이게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거든. 너가 시간 날 때 찾아보면 알겠지만 이미 학생들이 운영하는 상담실이 전국에 많이 있어. 이따 다시 설명해주긴 할-”

 “그럼 너 혼자하지 그랬어?”

 “......말 끊지 말아줄래? 참고로 내가 아직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없고 사람마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르니까 다른 사람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서 인원이 필요하다고 한 거야. 넌 나한테 오히려 고마워해야하는 거 아니야?”

 “내가? 왜?”

 “여기가 더 편해서 더 왔을 텐데? 그 선생님 성격상 여기 오는 거 아니었으면 훨씬 힘든 일을 시켰을 거 아냐.”

 “그건... 맞아.”

 

 얜 나랑 같은 반도 아닌데 어떻게 담임 성격을 아는 거야? 여자 반도 가르치나?

 

 “그런 건 어떻게 알아?”

 “몰라두 돼.”

 

 새침한 대답이 돌아왔다.

 

 “......야.”

 “...궁금한 거라도 있니?”

 “그래서 지금 나보고 오늘부터 오는 애들 상담하라는 거지?”

 “맞아.”

 “하...”

 

 난 오지랖 넓은 애들을 싫어한다.

 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불쑥 튀어나와서는 남 바둑에 훈수 두는 할 짓 없는 동네 할아버지마냥, 뭐 먹을 때마다 이건 이렇게 먹어야지 그렇게 먹냐~ 먹을 줄 모르네~ 이딴 소리하는 놈들을 볼 때마다 아주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근데 나보고 그런 일을 하라니.

 

 “남 일에 끼어드는 거 딱 질색인데...”

 

 그러자 아니라는 듯 한여름은 검지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아니지 바보야. 이건 끼어드는 게 아니라 도와달라고 오는 애들을 돕는 거니까 엄연히 다른 거지. 얘가 뭘 모르네.”

 

 그게 그거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에휴, 알겠다...”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 되지 꼭 그렇게 싫은 티를 내야겠어?”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만난 지 30분도 안 됐지만 잔소리 해대는, 귀찮은 타입이라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이럴 땐 대충 넘어가는 게 최고지.

 

 “미안. 열심히 할게.”

 

 그러자 한여름의 얼굴에서 짜증이 순식간에 가셨다.

 내 대답에 만족했나보군.

 하하하.

 그래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전히 살벌했다.

 

 “음...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지? 이번만 넘어가주는 거야. 다음에도 이런 반응 보이기만 해봐. 양로원에 보내버릴 테니까.

 “무슨 권리로 날 양로원에 보내?”

 “양로원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추천서 써주지 뭐, 됐니?”

 “.......뭐래. 정신 나갔나.”

 

 한여름에겐 안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했어?”

 “아, 아냐.”

 

 미심쩍은 눈을 뜨고 있는 한여름이지만, 지가 어쩌겠나.

 물증이 없는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아까 하던 말 계속하자면 우리만의 메리트가 있어. 너도 알아둬야 하니까 지금 설명해줄게.”

 “으응.”

 “친절하게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듣도록 해.”

 “...예예.”

 

 됐거든? 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착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안 웃고 있잖아...

 

 “너 말대로 6층에도 상담실이 있어. 근데 거기 상담선생님은 여러 학교를 같이 관리하시느라 우리 학교에 계시는 시간이 무지 적으시거든. 그래서 아예 내가 하나 만들었어. 처음엔 그 상담실 보조 같은 걸로 들어갈까도 생각해봤는데 역시 내가 직접 경험을 쌓는 게 좋을 거 같더라구.”

 “......”

 “듣고 있니?”

 “...네.”

 “...그리고 우리 나이대면 각자 고민도 많을 텐데 제대로 된 상담실 하난 있어야 하지 않겠어? 물론 전문적이진 않지만, 우리랑 나이차이 나는 어른들보다 우리 나이 또래가 상담하면 고민을 좀 더 공감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구. 그래서 너가 필요했다는 거야.”

 음...

 “혼자 하긴 좀 무리였나 봐?”

 

 그러자 대답이 다시 싸늘해졌다.

 자존심이라도 상했나...?

 

 “...보조 몰라? 넌 잡일담당 겸 자문정도라구. 메인상담사는 나고! 알겠어?”

 

 아, 네.

 

 

 

 오늘은 할 말 다했다며 쫓겨났고 그대로 집에 갔다가 학원에 얼굴 도장을 찍었다.

 바쁜 하루, 그 마지막의 시작은 내 침대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자아를 성찰해보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만약 친구와 말다툼을 했다면 이 시간대에 곰곰이 잘잘못을 가려보고, 성적이 안 나온다면 그 이유를 본격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오늘의 주제는 내 강제상담활동이다.

 한여름이라.

 어렸을 적 이름으로 놀림 깨나 받았을 것 같던 이름의 소유자는, 오늘 만나본 바로는 나와 정반대였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왜 욕하냐고 했었나?

 담임이 요구한 인생의 목표와는 살짝 다른 주제다.

 그래도 지금 그 대답을 해보자면, 꿈은 없어도 된다.

 꿈은 필요 없고 그냥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딱이다.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다.

 사실 평범하고 싶은 마음에 ‘평범’을 지향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한다.

 본인이 특별했으면 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대세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고, 대세는 괜히 대세인 것이 아니다.

 아니,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힘들다고 난리다.

 이런 팍팍한 상황 속에서 굳이 튀어보겠다고 한 레인 옆으로 갈 필요는 없다.

 그냥 대세에 편승하면 된다.

 트렌드에 올라타면 된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평범하게 살기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평범함을 지향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라다보니 한여름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꿈’이라는 환상에 대한 콩깍지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활짝 열려 있던 수천 갈래의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길들이, 한 살 먹어갈 때마다 수백 갈래씩 닫혀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딱히 바꾸려들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남들이 하고 싶어서, 되고 싶어서 난리인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까.

 

 

 

 다음 날.

 청소를 끝내고 상담실에 내려가는 길.

 하기 싫어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남자가 하겠다고 해놓고 쪼잔하게 도망갈 수는 없지.

 좋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제 이 길을 지나갈 때는 발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오늘은 정반대다.

 깃털처럼 가볍다.

 어젠 내가 왜 이런 걸 도와줘야 하나 싶어 화가 치밀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마치 못 다한 학원 숙제를 끝마치라는 하늘의 계시와 같은 시간이 아니겠는가.

 사람도 없는데다 조용하기까지 하다.

 완벽 그 자체.

 역시 모든 일은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옛 명언을 되짚어보면서 상담실에 들어섰다.

 

 “안녕.”

 

 내가 손을 살짝 흔들며 인사를 하자 한여름도 똑같이 손을 흔들며 답해왔다.

 

 “안녕.”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저기...”

 “왜?”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어. 중요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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