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어느 고등학생의 청춘
작가 : 신수
작품등록일 : 201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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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上(11)
작성일 : 16-10-22     조회 : 540     추천 : 0     분량 :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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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평범...?

 

 “풉.” “큽.”

 

 내 입을 포함해, 웃음소리를 참으려는 시도가 들렸다.

 째릿.

 웃지 말라는 건지, 한여름이 눈치를 줘서 다물어야 했지만.

 

 “......흠, 흠.”

 

 그래도 이건 너무 웃기잖아.

 사람 이름이 평범이라니.

 부모님이 어지간히 평범함을 지향하시나 보다.

 앞의 안소은이 숨죽여 깔깔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여름도 웃기긴 한지 얼굴에 미소 한가득이었지만, 이내 진정했는지 빠르게 미소를 지워냈다.

 

 “아하하. 이름이 특이하시네요.”

 “......네.”

 ““......””

 

 ‘이름이 특이하시네요.’를 끝으로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어쩐 일로 오시게 된 거예요?”

 

 내담자의 태도로 보아 더 이상의 잡담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한여름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리고 그건 내담자 이평범도 바라는 일이었는지, 지금까지처럼 머뭇대지 않고 대답이 바로 나왔다.

 

 “전... 웹툰작가가 꿈인데요...”

 

 말 더듬는 건 여전했지만.

 발음도 뭉갰고.

 

 “만화가... 재미가 없어요...”

 “만화요? 웹툰 말씀하시는 거죠?”

 “......네.”

 

 지금까지 한 마디도 안 하던 내가 불쑥 물어서인지 흠칫,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시구나.”

 

 오. 웹툰이라.

 정상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중·고등학생이라면 일주일에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웹툰을 볼 거라고 생각한다.

 무료로 볼 수 있고, 보기도 쉬운데다가 재미까지 있으니까.

 얼마 전에 몇 년 전에 비해서 몇 배는 커진 웹툰 시장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아마 간편성과 재미를 갖춘 컨텐츠이기 때문이겠지.

  웹툰을 즐기는 사람은 많아도 지망생은 아무도 없던데, 이 내담자의 꿈이 웹툰작가인가 보다.

 두 번째 내담자만에 내가 관심 있을만한 주제가 나와서 뭔가 반갑네.

 신기하기도 하고.

 

 “그럼, 만화가 재미가 없어서 오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네...”

 “저희가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까요?”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의 한여름.

 걱정과 불안이 잔뜩 있는 사람이 한여름의 특유의 산만하지 않고 차분한, 거칠지 않은 맑은, 쓰지 않고 달콤한 목소리를 여기 와서 듣게 된다면 분명 마음이 편안해질 거다.

 항상 ‘난 니 말을 듣고 있어’라는,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주기까지 하니까.

 그 덕분인지 이평범의 말투도 점점 차분해져가는 게 느껴졌다.

 처박힌 고개 각도도 점점 올라오고 있고.

 

 “제 만화에서 모자란 부분...을... 알려주세요... 고칠 수 있게......”

 

 그래도 웅얼거리는 건 여전하군.

 

 “저희로도 괜찮으시겠어요? 아시겠지만 저희가 이 방면으로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괜찮...아요...”

 

 음...

 “친구분들한테 여쭤보진 않으셨고요?”

 “......네.”

 

 응?

 

 웅얼웅얼대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네’ 한 마디였지만 또렷하게 딱 끊어내는 게 느껴졌다.

 한여름을 슬쩍 봤지만 이 미묘한 말투변화를 눈치 못 챘는지 “그리신 만화는 가져오셨어요?”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다.

 뭐, 만화가 재미없어서 온 사람인데 괜히 참견할 필요는 없겠지.

 

 “...네. 잠시만요.”

 

 한여름의 물음에 더듬지 않고 대답하더니 매고 온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아...”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가져온 줄 알았는데... 두고 왔나 봐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평범이 다리를 달달 떨면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평범하게 못 생긴 게 저러니까 참 보기 싫네.

 

 “아뇨. 괜찮아요. 다음에 가져오시면 되죠.”

 

 내담자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한여름이 바로 괜찮다고 해줬다.

 

 “그,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러자 눈 굴리는 건 멈췄다. 다리는 아직도 떨고 있지만.

 

 “내용이야 평범씨가 알려주시면 되죠~ 그렇지?”

 

 한여름이 날 슬쩍 보며 눈치를 줬다.

 

 “그, 그렇지. 무슨 내용인가요?”

 “......그냥, 평범한 이, 일상물이에요...”

 “음... 제가 웹툰을 좀 봐서 아는데, 그런 일상물은 캐릭터성이 좋거나 스토리를 잘 끌고 가야 인기가 많던데-...”

 

 어... 내 앞의 내담자를 뭐라고 지칭해야 하지...?

 평범씨? 너? 당신? 본인?

 딱히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쪽이 그리신 건 둘 중에 뭐예요?”

 

 그쪽이라니, 사무적 관계 같다.

 한여름이 싫어하겠네.

 아니나 다를까, 보이진 않았지만 날 노려보는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잘... 모르겠어요... 둘 다 아닌 거 같기도...”

 “그러시구나...”

 

 말은 ‘그러시구나.’라고 했지만, 뭔가 이상하다.

 어떻게 일상물인데 둘 다 아닐 수가 있지?

 주요 사건도 없고 캐릭터도 특출나지 않는데, 내용 전개가 되나?

 혹시 개그 일상물인가?

 쟤한테 풍겨오는 어두운 기운을 보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설마 진짜 평범하게 수업 듣고 학원 갔다오는 내용만 그리는 건 아니겠지.

 

 “저기요. 웹툰작가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리시는 만화 올리는 곳 있으세요?”

 “아...아뇨.”

 “연재사이트에라도 올리면서 피드백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내 질문을 무시하는 건지 대답을 못 하는 건지, 이평범은 침묵했다.

 떨던 다리는 어느새 딱 멈춰있었다.

 ......

 지금 말 씹힌 건가?

 기분이 썩 좋진 않군.

 감히 하늘같은 선배 말을 씹어?

 그런 이평범에게 한여름이 달력을 들이밀었다.

 

 “평범씨.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다음 상담을 먼저 잡고 싶은데 언제 시간 되세요?”

 “어... 그, 그게...”

 

 하면서 둘은 날짜를 잡기 시작했고, 대충 끝난 거 같기에 한여름에게 ‘나 화장실 좀.’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소은은 그제서야 다시 책을 펴고 있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말이야.

 

 “...공부 안 하고 뭐하냐.”

 “이제부터 해도 되거든요~”

 

 아직 뒤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었기에 나눈 대화는 속삭임에 가까웠다.

 

 드르륵

 

 화장실은 상담실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

 나와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된다.

 슬슬 해가 아파트 너머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

 

 지가 그린 만화가 재미없다고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네.

 만화가, 아니 웹툰작가라...

 요즘 여러 의미로 웹툰작가가 떠오르는 중이라 한다.

 각종 방송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번다고 하고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작가’ 특유의 자유분방한 이미지가 박혀 있어서인지 웹툰작가를 희망하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고.

 나는 안 보지만, 유료결제를 해야 볼 수 있는 사이트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고도 하고.

 분야에 관계없이, 돈이 된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는 순간 시장은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지망생이 많아도 프로의 길을 가는 건 소수다. 그것도 아주 극소수.

 웹툰, 즉 만화는 ‘예술’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고, 창작능력을 필요로 하는 ‘예술’분야는 노력만으로는 대성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미술시간에 칭찬 한 번 못 들어본 것처럼 말이다.

 혹은 단소소리를 제대로 내본 적이 없는 것도 예시가 될 수 있...나?

 어쨌든, 예술은 그만큼 어렵다.

 남이 도와주면 물론 도움은 되겠지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드르르-륵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약간의 인원배치가 있었다.

 안소은은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갔고, 이평범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날 가만히 쳐다보는 한여름에게

 

 “어디 갔어?”

 

 하고 묻자

 

 “가셨어.”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래.”

 

 이평범도 갔으니 나도 슬슬 짐을 챙기려고 자리에 앉았다.

 

 “얘.”

 “왜.”

 “평범씨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뭘?”

 “음... 성격이라든가... 태도라든가...... 교우관계라든가...”

 

 마지막 말하기 전에 말을 질질 끄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제일 궁금한 건 그쪽인가보다.

 

 “니가 나보다 잘 알 거 아냐?”

 “그래도 나 혼자 판단하는 것보단 너 생각도 들어보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음... 일단 내성적이야. 엄청.”

 “응. 그리고?”

 “태도는... 방어적인 거 같던데... 내 말 씹은 거 보면.”

 “아하하. 응. 그리고?”

 

 한여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교우관계는...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지 않아?”

 “왜 그렇게 생각해?”

 “걔가 우리한테 부탁한 건 그게 아니니까.”

 “신경 쓴다는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본 거예요 아저씨.”

 “아, 네.”

 “아까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교우관계가 별로긴 한 거 같긴 했는데...”

 “언제 말하는 거야?”

 “아까 너가 친구한테는 안 보여줬냐고 했을 때 말이야.”

 

 하더니

 

 “...너 설마 몰랐니?”

 

 “......날 뭘로 보는 거야. 난 니가 그 미묘한 어투변화를 캐치할 줄 몰라서 물어본 거거든?”

 

 그러자 한여름은 팔짱을 끼고,

 

 “내가 그걸 왜 모르겠니. 바보도 아니구.”

 

 한숨을 푹 쉬었다.

 

 “어휴... 혹시 친구 없는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응?”

 “우리랑 뭔 상관이야? 방금 말했잖아. 해달라는 것만 해주면 되지 않아?”

 “아니.”

 

 한여름은 단호했다.

 

 “그렇게 표면적인 것만 보면 안 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구.”

 “...그럼 다음에 물어보든가.”

 “너가 안 그래도 그럴 거거든?”

 “아 예.”

 “소은아, 아까 하던 공부 계속 할까?”

 

 한여름이 안소은을 불렀다.

 쟤는 지치지도 않나.

 벌써 다섯 시 반인데 집에 가고 싶지도 않나 보다.

 

 “야.”

 “응?”

 “넌 피곤하지도 않냐.”

 

 한여름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피곤해?”

 “뭐?”

 “피곤할 이유가 뭐 있냐구.”

 “어... 학교 끝나고 상담실에서 이것도 하니까?”

 

 내 말에 한여름이 미소를 지었다.

 

 “바보.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피곤하고 말고가 어디 있니? 난 더 하고 싶은걸.”

 

 울렁.

 

 느닷없이 느껴지는 소용돌이를 무시하고 말을 끝마치려는데,

 

 “그러냐... 참 특이하-”

 “와... 역시 멋있어요!!”

 

 어느샌가 다가온 안소은이 끼어들어주었다. 고맙네.

 

 “아하하. 뭐가~”

 

 한여름은 ‘그렇게 치켜 세워주지 않아도 돼~’ 하는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좋긴 좋은지 헤벌쭉했다.

 야야. 표정이나 말 중에 하나만 하라니까.

 부끄러워하는 한여름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안소은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뇨... 어린 나이에 꿈을 위해 정진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아요!!”

 “니가 더 어리거든...?”

 “고마워. 아하하.”

 

 호들갑 떨어대는 성격답게 안소은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방방 뛰었다.

 그러더니 뭐라 중얼거렸다.

 

 “...저도 빨리 언니처럼 되고 싶네요...”

 “뭐라고?”

 “아니에요. 하하.”

 

 내 욕한 거 아냐? 자세히 캐묻고 싶지만 피곤하니까 오늘만 봐주기로 했다.

 

 “...그럼 공부나 해 빨리.”

 “넵!!”

 

 

 

 오늘도 힘든 하루가 끝났다.

 침대에 편히 누워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 보는 건 뭐랄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회상하게 만드는 느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정리해본다.

 왜 안소은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어차피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대학 가고, 힐링이다 뭐다 하면서 여행 좀 가주고, 인턴 좀 해보고 이력서 넣다보면 흘러가는 대로 직업을 갖게 될 텐데.

 물론 걔가 그때까지 해놓은 성과에 따라서 대기업이냐 중견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영세기업이냐가 갈리겠지만, 뭘 하든간에 결국 직업은 갖게 될 것을.

 취업난이라고 사람들이 난리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나라에서 해줄 테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일이 전혀 안 힘들 거라는 철없는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평범하게 생긴 게 특징인 이평범도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고 찾아왔었지... ‘재능이 없다’라.

 사실, 한여름 같이 상담사가 되고 싶어서 용쓰는 건 ‘뭐야 얘는?’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도 든다.

 필시 그건, ‘상담사’라는 직업을 하는 게 타고난 재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뭔가를 표현해내는 직업은 다르다.

 문학, 음악, 체육, 연기, 미술 같은, 이런 ‘예술’은 타고나는 게 있어야 한다.

 난 꿈이 없고 갖고 싶지도 않고, 더더욱 찾고 싶지도 않지만 이평범의 고민을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내가 죽도록 하고 싶고 노력해온 일이 ‘예술’쪽 직업이라면.

 그리고 정말 그 일에 모든 걸 바칠 만큼 절실하고, 간절하며, 열렬하게 원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열정, 돈, 시간, 환경, 필요한 모든 걸 다 갖췄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재능’이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과연 실패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물러설지, 인정하지 않고 계속 해볼지 난 모르겠다.

 살다보면 신문이든 기사든 이평범 같은 사람의 사연을 한 번쯤 꼭 읽어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왜 포기하지 않는 거지?’ ‘무엇이 이들을 의미 없는 일에 매달리게 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울렁거린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바보 같이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감정들은 들지 않는다.

 그저 알 수 없는 감정이, 묵직하게 내 안에 자리를 잡아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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