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어느 고등학생의 청춘
작가 : 신수
작품등록일 : 201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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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上(14)
작성일 : 16-10-25     조회 : 555     추천 : 0     분량 : 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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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교시. 급식 먹을 시간이다.

 밥이 뭐냐고 옆에다 물어보니 오늘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메뉴가 뭔데.”

 “생선.”

 

 뒤에 앉은 이은범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매점 고고?” 하길래

 “아니.”

 “너 생선 싫어하잖아? 그럼 넌?”

 

 

 옆의 전재호는 끄덕이며 매점행에 동의했다.

 

 “진짜 안 갈 거야?”

 “어. 혼자 먹으련다.”

 그러자 “왜 저래?”

 

 그렇게 둘은 가버렸다.

 의리도 없는 새끼들이다 정말.

 

 “......”

 

 그런데 이상하긴 하네. 왜 안 간다고 했지?

 생각해보니까 내가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매점 싸구려 음식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밥 먹을 이유가 전혀 없잖아.

 아직 멀리 못 갔으면 같이 매점에 가려는 마음에 서둘러 문에 가서 밖을 내다봤지만 벌써 없다.

 전화해서 같이 간다고 할까 싶었지만 뱉은 말을 번복하는 건 남자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그만뒀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하게 혼자 밥을 먹도록 해야겠어.

 텅텅 빈 교실을 벗어나 식당으로 향한다.

 종이 땡하고 치면 애들이 우루루 나가기 때문에 10분 정도 지난 이 시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별로 없다.

 

 10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밥을 받는데 성공했다.

 메인메뉴는 역시나 맛없는 생선이었다.

 거기다 살보다 뼈가 더 많아서, 나를 포함한 많은 애들은 생선이 나올 때마다 그냥 안 먹는다.

 에휴... 왜 혼자 먹겠다고 한 거지... 내 결정을 후회하며 먹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응?

 지저분한 삐죽삐죽한 검은 더벅머리에, 두꺼운 뿔테안경, 얼굴 곳곳에 난 여드름 자국으로 이평범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는데, 손으로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암울했던 캐릭터를 본인 모습 본 딴 거 아니랄까봐 역시나 혼자 먹고 있다.

 서로의 거리는 고작 두 테이블 정도.

 

 “올...”

 

 뭘 하고 있나~ 하고 잠깐 봤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왔다.

 이평범은,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밥을 먹는 와중에도 반대쪽 손을 정신없이 놀리고 있었다.

 고개를 태블릿에 처박고 열심히 만화를 그리다가도 박자 맞추듯이 밥을 한 번씩 입에 밀어 넣는다.

 만화에 대한 열정은 인정해줘야겠군.

 

 “......”

 

 열정이 많으면 뭐하나. 재미가 없는데.

 물론, 막상 인터넷에 올렸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를 수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은 채 만화에 빠진 이평범은 뒤로하고, 간단히 식사를 끝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을 삼십 분 남겨둔 지금, 밥을 뭐 먹을지 고민하던 조금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마디.

 오늘의 밥은 최악이니까 매점 가.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기운이 학교 전체에 퍼지고 있었고, 그건 상담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전운이 감돈다고 해야 하나.

 

 “야.”

 “응? 왜?”

 “...아냐.”

 

 딱히 식당에서 이평범 봤다는 얘기는 안 해도 되겠지.

 애가 내 상사도 아니고.

 

 “뭐야? 싱겁게.”

 

 한여름은 날 한 번 쓱 보더니 안소은에게 다시 시선을 뒀다.

 

 “왕건이 호족세력을 통합시키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혼인이요!”

 

 안소은이 호기롭게 외쳤다.

 

 “정답. 다음 문제, 왕건이 나라 안과 밖에 추진하던 정책들의 기본 방향은?”

 “나라 안은 민생정책, 나라 밖은 북진정책!”

 “공부해왔네?”

 

 한여름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네! 잘했죠?!”

 

 뿌듯한지 안소은은 눈까지 반짝반짝 빛내면서 ‘날 더 칭찬해주세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응! 열심히 했네~”

 “헤헤.”

 

 실실 웃는 안소은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야. 이거 하는데 얼마나 걸렸어?”

 “음~ 다 하는 데에 한... 여섯 시간 정도요!”

 

 여섯 시간이라... 올~

 

 ......

 

 잠깐. 이게 아니지.

 

 “여섯 시간?!”

 “네!”

 “쉰 시간 논 시간 다 빼고?”

 “넵! 왜요?”

 

 안소은이 뭐가 문제냐는 듯 물어왔다.

 

 “......나보다 많이 하는 거 같은데 그 정도면?”

 “정말요?” 놀랐는지 눈이 잠깐 커지더니,

 

 “선배도 별거 아니네요.”

 

 날 무시하는 걸로 마무리지었다.

 

 “...뭐래.”

 “둘 다 조용히 해. 마저 해야지.”

 

 한여름의 중재에 우리 둘 다 입을 다물자,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기에 반사적으로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갔지만, 순수하게 공부했던 게 진짜로 여섯 시간이라면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보통 마음잡고 공부해도 순공 세 시간 찍기가 힘든데 여섯 시간이라니...

 독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순공을 여섯 시간이나 했는데도 아직 공부를 못 끝냈다는 건 또 다른 충격이다.

 보통 집중해서 두세 시간 정도 해주면 암기과목 하나는 끝나는데...

 지금까지 공부를 얼마나 안 했던 거야?

 

 “아 맞다!”

 

 안소은이 갑자기 큰소리를 냈다.

 

 “아씨. 깜짝이야.” “놀래라.”

 

 우리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자 그게 또 재밌는지 웃어댄다.

 

 “헤헤헤. 놀라셨어요? 그냥 오늘은 걔 안 오나 해서요... 헤헤.”

 “평범씨 말하는 거야?”

 “네!”

 “이번 주는 더 안 오구, 다음 주에 오기로 했어~ ”

 “그렇구나...”

 “맞다, 얘.”

 

 한여름이 ‘얘’라고 부르는 건 여기서 나밖에 없다.

 

 “왜.”

 “평범씨 말이야.”

 “응.”

 “그림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렸다고 했잖아?”

 “근데?”

 “그림 실력은 어떤 거 같아?”

 “음......”

 

 사제지간이 아닌 이상 작가마다 그림체는 웬만하면 거의 다 다르고, 독자가 생각하기에 이건 잘 그렸네~ 혹은 이건 별로네~ 하는 그림체들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도 굳이 평가해보자면...

 

 “잘 그리던데?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웹툰작가들 중에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받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미술전공 했던데 걘 고등학생이잖아. 그걸 감안하면 진짜 잘 그리는 거 같던데.”

 

 그 특유의 어두우면서 사실적인 그림체는 이평범 부류의 사람들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평범이 느끼는 교실 분위기는 어둡고, 고독하다.

 넓은 운동장도 반 아이들의 시선을 피하기엔 좁다.

 실제로 걔가 그린 만화를 보면 교실도 일부러 어둡게 그리고 운동장도 좁게 그렸단 말이지. 그런 본인만의 그림체는 웹툰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큰 매리트라고 생각한다.

 아님 말고.

 

 “그래? 그러면 그림 쪽에 재능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스토리 문젠가 보지 뭐.”

 “저기... 언니.”

 “응? 왜?”

 “저도 볼 수 있을까요? 저도 만화 좋아해서요... 헤헤.”

 “그럼~”

 

 한여름이 안소은에게 이평범의 만화를 보여주었다.

 

 “우와~ 그때 걔가 이걸 그렸다구요?! 완전 멋있다......”

 “걔가 뭐가 멋있어? 그냥 평범하게 생겼잖아?”

 

 안소은은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뭘 모르시네요.’하는 것처럼.

 내가 모르긴 뭘 몰라?

 트렌드에 얼마나 민감한데.

 

 “아니죠. 선배는 남자라 모르시나본데 여자 입장에서는 일에 푹 빠져있는 모습만큼 멋있어 보일 때가 없다구요! 그쵸 언니?!”

 “으음... 그런 거 같기도...? 아하하...”

 “그러냐...”

 

 멋있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보다 어린놈이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는 건 살짝 배 아프다.

 흡사 나보다 어린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각종 매체에서 활약하는 걸 보는 기분이다.

 내 나이 정도부터 돈을 쓸어 담는 사람을 볼 때면 솔직히 질투 날 때도 있다.

 ‘쟤는 저렇게 돈을 마구 벌어대고 있는데 난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자괴감도 살짝 들고.

 

 “근데 이거, 내용이 너무 암울한 거 같은데요... 솔직히 별로 재미없어요.”

 

 한여름도 동의했다.

 

 “그렇지? 괜히 우리한테 온 게 아니었어... 친구도 없으신 거 같던데.”

 “유머센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근데 그런 유머센스는 노력으로 기를 수 있는 게 아닐걸?”

 “그래?”

 “니들 반에도 그런 애 하나씩은 있지 않냐? 말 꺼낼 때마다 분위기 죽이는 애들.”

 “있죠! 근데 그럴 때마다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해요! ......아!”

 

 부력을 깨달은 아르키메데스처럼 손뼉을 짝 하고 치더니,

 

 “그런 뜻으로 노력으로 못 기른다고 한 거죠?!”

 “어.”

 “올~ 방금 그 비유 좋았어요! 헤헤.”

 “그... 그래.”

 

 역시 적응 안 되네.

 

 그래도 내가 말했던 건 사실이다.

 아무리 웃기려고 노력해서 준비해 와도 타고난 사람의 한 마디를 이길 수는 없다.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로 판단해보자면, 탁재훈과 김영철이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 개그로는 안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너가 그때 개그나 스토리라고 했잖아. 그럼 스토리는?”

 “옴니버스나 스토리라고 했지... 그리고 그건 모르겠는데?”

 “왜 몰라?”

 

 한여름이 눈을 흘겼다.

 아니, 내가 신이라도 되나?

 모를 수도 있지.

 

 “걔가 스토리 짜는 걸 본 적도 없을뿐더러 며칠 전에 한 번 만난 사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장난하냐.”

 “그건 그러네.”

 “저... 언니.”

 

 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안소은의 표정은 딱 ‘부탁할 게 있는데요...’였다.

 

 “응? 왜?”

 “저도 얘 돕는 걸 같이 하면 안 될까요?”

 “왜?”

 

 ...이해가 안 되네. 왜 사서 고생을 하지?

 

 “음... 뭔가 불쌍하기도 하고... 또...”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 제 적성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도... 싶어서요. 헤헤. 상담도 뭔가 재밌어 보여요!!”

 “...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난 상관없어. 근데...”

 

 사람이 늘어나면 내가 할 일이 더 줄어들겠지?

 

 “할 말 있니?”

 “이제 나랑 얘랑 바꾸면 안 돼?”

 “어... 이제 안 오면 안 되겠냐는 소리야?”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아, 그렇구나~”

 

 한여름이 싱긋 웃었다. 그동안 상담실에 밝은 기운을 공급해주던 건 안소은이어서 몰랐는데, 한여름도 웃으니까 상담실이 환해졌다.

 

 “당연히 안 되지.”

 “...그러냐.”

 “소은이가 평범씨 건만 하고 다시 빠질 수도 있구, 우리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남았잖아?”

 “......그러네.”

 

 아직 중간고사도 2주 정도 남았고 안소은이 내주는 주제로 토의도 해야 되는구나.

 

 “그래도 정 그만두고 싶으면 담임선생님께 허락받고 와.”

 “...그냥 계속 나오라고 직접적으로 말해. 돌려 말하지 말고.”

 “아하하. 너무 보였나?” 하면서 소리 내어 웃더니,

 “그럼, 이번 건에 소은이도 참여해도 상관없다는 거지?”

 “어.”

 “좋아. 그럼 상담실장으로서 허락할게!!”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고 또 헤헤 거리면서 웃는다.

 “대신, 내준 숙제는 꼬박꼬박 해와야 해~”

 “당연하죠~!”

 “아, 근데 소은아.”

 “네?”

 “평범씨한테 말은 해둘 텐데 평범씨가 불편해하거나 하면 안 될 거 같아.”

 “아~ 그 정도는 저도 알죠~”

 “알면 됐구, 어디 보자, 시간이...”

 

 오늘을 마무리하려나 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네~”

 

 하길래 가방을 싸서 나왔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는데 날 부르는 헐떡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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