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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우스 - 이능사건전담반
작가 : 예늘
작품등록일 :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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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이능반 델타팀에 온 걸 환영한다
작성일 : 16-10-17     조회 : 450     추천 : 1     분량 : 6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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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백민은 답답함에 가슴을 내리치던 도은강에게 이끌려 한 빌딩으로 들어왔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까진 아니어도 회사가 주변에 있다는 추측은 맞아떨어졌다. 그 회사가 게임회사가 아니라는 점은 틀렸지만.

 

 으슥한 골목으로 데려가면 비명이라도 지를까 했는데, 그가 백민을 안내한 장소는 도심 한 가운데 노른자 땅에 자리 잡은 뻔쩍거리는 빌딩이었다.

 

 ‘뭐하는 회사지? 빌딩 임대료를 꼬박꼬박 내려면 많이 벌어야 할 텐데.’

 

 ‘Alius Korea 중앙지부’라고 적혀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무슨 사업을 운영하는지 추측할 수 없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회사일까? 예를 들면 사채업이나 밀수 같은……. 그러나 그녀를 데려온 남자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바짝 긴장하고 올라탄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멈췄다.

 

 “들어와. 다들 외근 나갔나 보네. 히키코모리 하나 있을 텐데, 아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편하게 앉아.”

 

 아직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아 모르지만, 일반적인 회사와는 180도 다르리라. 드라마에 나오는 회사 내부 구조와도 완전히 딴판이었다. 각자 할당된 데스크와 컴퓨터도 없었고, 파티션도, 잔뜩 쌓인 서류도 없었다.

 

 대신 푹신한 소파와 개성 있는 디자인의 알록달록한 의자들, 벽걸이TV, 널찍하게 마련된 부엌이 있었다. 꽉 닫힌 문 네 개가 보였는데 욕실 외에 침실까지 따로 있나 싶었다. 사무실이라기보다 모델하우스 같았다.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이죠?”

 

 “차근차근 설명할 테니까 재촉하지 마. 커피 한 잔 마실래? 키티 형님이 좋은 원두 사다놨는데.”

 

 “……주세요.”

 

 어울리지 않는 요상한 단어가 들렸지만 착각으로 치부하고 넘겼다. 자기 영역이라지만 사무실을 집처럼 자유분방하게 사용하는 도은강을 보고 백민도 긴장을 풀었다. 소파에 몸을 묻고서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 저녁은 제육볶음 해주려고 했는데. 톡 보냈으니까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알아서 차려먹었겠지…….’

 

  이후의 일정이 전부 엉망이 돼서 백민의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내일까지 제출해야하는 과제가 있었다면 끝까지 안 오겠다고 버텼겠지만, 거절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꿈도 아닌데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마냥 피할 수도 없다. 어미 개를 본 강아지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닐 가능성도 다분해 보인다. 백민은 계속 도망가야 하는 귀찮은 짓을 하기보다 차라리 한번 물리고 마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연하게 내렸으니까 마시면서 들어.”

 

 “네.”

 

 “여기는 이능력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이능사건전담반이다. 이능력자들이 일하고 있지. 이능력자의 공식 명칭은 다른 사람들이라는 뜻의 라틴어, 알리우스(Alius). 어르신들은 이인(異人)으로도 부르시기도 한다. 이능반 우리 팀은 알리우스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도 하고, 알리우스 범죄자를 잡기도 하고, 경호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방면의 일을 맡는데 그건 그때 가서 설명하지. 백민. 네가 동의하면 여기서 일하게 될 거다.”

 

 “……여기서요?”

 

 “어쨌든 답은 예스. 근로계약서를 쓰면 이능반 델타팀에서 일하게 된다.”

 

 “저는 투시라던가 예지, 사이코메트리 같은 초능력 없는데요.”

 

 “없기는. 아까 그 남자를 만들어낸 게 넌데. 네 능력은 환상구현이라는 희귀한 능력, 상상을 실재(實在)로 만드는 힘이다.”

 

 수상하긴 했다. 손가락으로 건드린 그 광고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왼쪽이 뻥 뚫려 비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백민은 자신이 주체였다는 확신을 받지 못했다. 자기가 벌인 일이라면 무슨 느낌이라도 나야 하지 않겠나.

 

 “그 자리에 사람들도 많았는데 제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아저씨가 착각했을 수도 있고요.”

 

 “아저씨……? 너보다 여덟 살밖에 안 많거든? 나 한창 팔팔할 땐대. 스물두 살 백민.”

 

 “제 나이는 어떻게……. 죄송합니다. 나이 가늠하기가 어려운 모습을 하고 계셔서.”

 

 그제야 자신의 전신을 훑어 확인한 도은강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밤을 꼴딱 새고 겨우 잠들었다가 갑자기 사건이 발생해서 튀어나느라 상태를 확인할 새가 없었다.

 ‘

 ‘아무리 급해도 이 꼴로 다녀오다니. 도은강 가오 다 죽었네. 그나저나 첫인상이 엉망진창이겠는데…….’

 

 도은강은 착잡함과 민망함이 뒤섞인 속마음을 숨기며 말을 이었다.

 

 “뭘 정중하게 사과까지. 흉한 모습 보인 내 잘못도 있으니 넘어가자고. 흠.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난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졌다. 기본적으로 내가 시간을 멈춰도 알리우스들은 움직일 수 있어. 이능을 사용했는데 너는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알리우스가 맞아.”

 

 백민은 원래 이런 식으로 알리우스를 확인하는지, 아니면 다른 확인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따로 확인하는 수단이 있지 않을까? 너무 얼렁뚱땅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알리우스들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나지 않아. 알리우스의 능력은 대를 이어 전해지니까 예비 알리우스들은 거의 파악하고 있다.”

 

 “……유전? 유전된다는 소린가요? 그럼 제 동생들은!”

 

 “아니. 동생들은 아니야. 넌 모계 쪽 유전.”

 

 “아…….”

 

 아버지가 백민의 친어머니와 이혼 후 새어머니와 재혼해 백진과 백영을 낳았다. 때문에 어머니에게서 핏줄로 전해진 유전적 요인이라면 진이와 영이는 예비 알리우스도 아니다. 백민은 아직 도은강이 수상했지만 SF영화를 실시간을 감상한다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쳤다.

 

 “제 어머니가 알리우스였나요?”

 

 “예비 알리우스였지. 예비 알리우스여도 모두 각성하진 않아. 몇 대를 건너뛰기도 하고. 각성 확률이 낮은 편이라서 알리우스 협회 본부가 우리나라에 있어도 수는 그리 많지 않지. 질문 남았으면 하도록.”

 

 “알리우스로서 지켜야할 규칙은 없나요?”

 

 “살인, 폭행, 절도 등등 범죄를 저지르면 안 돼. 우리도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인간’이니까. 알리우스로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자신의 능력을 일반인 앞에 노출시키면 안 된다는 것. 물론 알리우스의 존재를 발설해서도 안 되지.”

 

 “가족들한테도 말하면 안 되나요?”

 

 “들켜서 기억제거 당하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보던지. 원칙적으로 예비 알리우스에게조차 알려선 안 돼. 몇 가지 예외가 있긴 한데 차차 알게 될 테고.”

 

 그 중 하나는 각성 알리우스의 약혼자나 배우자. 옛날에는 배우자에게조차 알리우스의 비밀을 알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결혼 전에 선택적으로 정체를 공개할 수 있었다.

 

 만약 약혼자가 비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기억을 지우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결혼이 흐지부지 무산된다. 상대방에게 평생 비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니까. 알리우스 스스로의 존재 자체도 영원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의미니까.

 

 기억을 제거당한 배우자와 살다가 아이가 알리우스로 각성하는 과정에서 배우자가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열이면 열, 가정이 파탄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데요?”

 

 “과태료 물어야 해. 아니면 자원봉사를 하던지. 무엇보다 일상이 피곤해져. 뒷수습이 보통 귀찮은 게 아니라 뒷수습 담당 직원에게 십중팔구는 보복당하니까.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길에서 넘어지고, 변비에 시달리고 흑역사가 공개되고 뭐, 그런 수준이니까 겁먹진 않아도 된다. ”

 

 “더 겁나는데요…….”

 

 “그리고 능력을 드러내고 다니면 알리우스 테러범의 공격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라.”

 

 “테러범이요?”

 

 “위험한 능력을 가진 테러범들이 있어. 테러범이라고 칭하는 건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규모가 크기 때문이지. 알리우스뿐만 아니라 일반인 살해를 즐기는 미친놈들이 많으니까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아니면 그들에게 대항할 힘을 지니거나. 그게 이능반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움직이는 이유다.”

 

 “위험하진 않나요? 들어보니까 거친 일 같은데…….”

 

 “범죄자들은 주로 알파팀에서 담당하니까 델타팀에 배속될 너는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지. 안전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는 드물어.”

 

 알리우스 협회의 무력을 책임지는 알파팀과 달리, 델타팀은 자잘한 잡무가 대부분이었다. 알리우스들의 만능 심부름꾼이 되어 사소한 고충을 처리한다고나 할까. 다른 팀들과 협업을 하게 되면 범죄현장에 불려가기도 했지만,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였다.

 

 “자세한 사항은 이 책자를 통해 확인해.”

 

 백민은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알리우스를 위한 안내서」를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눈에 띄지 않는 칙칙한 잿빛 표지,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적힌 제목. 일반인들에게 목격되지 않기 위한 디자인이겠지만, 참으로 고루해 보이는 표지였다.

 

 그녀는 몰랐지만 그 안내서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 그 안내서에는 읽을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알리우스들의 능력이 스며들어 있었는데, 능력이 ‘인간’이라면 모두 적용되는 바람에 결함이 생겼다. 알리우스들을 위한 정보가 담긴 책인데도 불구하고 알리우스들조차도 읽기가 싫어진다는 뜻이었다.

 

 어쨌거나 백민은 안내서 표지를 만지작거리면서 고심했다.

 

 직접 목격한 시간 정지. 스르르 사라지던 전사 캐릭터. 얼마일지 어림짐작할 수도 없는 땅에 위치한 빌딩. 몰래카메라라고 하기엔 트릭이 정교했다. 한 사람, 그것도 별 볼일 없는 대학생을 속이기 위한 무대라고 보기엔 거창하기도 했고.

 

 “그래서. 여기서 일할 건가? 백 민.”

 

 “별로 끌리지 않는데요……. 바로 답해야 하는 건 아니죠?”

 

 우선은 튕겨봤다. 인생이 달린 중대한 결정을 선뜻 내릴 순 없었다. 그리고 취업을 하려면 이것저것 알아보고 재보고 그러는 법인데, 아는 거라곤 이름 밖에 없는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놓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의심스럽기만 했다. 이 세상에 초능력자가 있다니. 내가 이능력자라니!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남자가 눈앞에 있다니! 하지만 도은강은 매우 진지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번거롭게 들려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사기 아니죠?”

 

 “믿기 힘든 일이지만, 직접 보고서도 못 믿나. 그럼 이 사태를 뭐라고 설명할래? 속고만 살았어? 수상쩍긴 해도 사람 해치는 일 아니고 기본 월 400은 나오는데 속는 셈치고 해볼 만하지 않나?”

 

 “……세후 400이요?”

 

 “세후. 4대 보험료도 내주고. 정년퇴직 그딴 거 없다. 보통 3,40대에 그만두긴 하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할 수 있지. 경력 쌓이면 연봉도 올라가고. 어때?”

 

 “좋아요! 당장 일할게요!”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보다 높은 초봉! 이 돈만 있으면 주말에 하는 아르바이트도 스케줄을 빡빡하게 채운 과외도 그만둘 수 있다! 언제 짤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생활이 여유로워지고 윤기가 돌 것이다.

 

 도은강의 말이 사실이기만 하다면!

 

 “저기……. 여기서 종일 일해야 하나요? 대학교 재학중이라서요.”

 

 “출근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고 수업 들어갈 시간은 재량껏 빠져도 돼. 기본적으로 사건 의뢰가 들어오면 처리하는 방식으로 일하니까. 다른 팀원들도 있고.”

 

 이런 꿀 같은 직장이 있다니! 이능력을 발현한 알리우스여야 하는 괴상한 자격조건이 있지만, 이런 후한 조건이라면 여기서 뼈를 묻어도 좋았다. 당장 학교를 그만두라고 해도 따를 용의가 있었다.

 

 허무맹랑하면 어떠랴, 황당무계하면 어떠랴. 나중에 오해가 있었다면서 내쫓으려 한다고 해도 절대로 내 발로 나가지는 않겠다! 백민은 굳게 다짐했다.

 

 “자, 여기 근로계약서.”

 

 그녀는 냉큼 근로계약서를 받아 읽었다. 기본급 이외에도 출장수당, 위험수당이 따로 있었고 업무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은 특이한 계약서였다.

 

 ‘퇴근 없이 24시간 돌리는 건 아니겠지?’

 

 폐인이 다 된 도은강을 보니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설마 그렇게 무자비하진 않으리라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회사명은 알리우스 협회가 아니라 ‘(주) Alius’였다. 누가 이 근로계약서를 보더라도 이능력자들이 모인 수상한 단체라는 생각을 떠올리진 못할 것이다. 사실, 백민은 이능반이 정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까 제멋대로 상상했었다. 국정원 비밀요원처럼. 그런데 알리우스 협회가 주식회사일 줄이야.

 

 근로계약서를 토대로 유추했을 때 이능사건전담반이 소속된 알리우스 협회는 재력이 엄청난 듯하다. 이능을 이용해 편법으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기라도 하는 걸까? 알리우스 협회의 돈줄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백민을 도은강의 단호한 발언이 방해했다.

 

 “사인해.”

 

 백민은 집에 가서 검토해보면 안되냐고 물어보려다가 단념했다. 진짜 이능력자라면 얼마든지 억지로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사인을 마치자 도은강이 빼도 박도 못한다고 선고를 내렸다.

 

 “이능반 델타팀에 온 걸 환영한다. 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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