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마음속으로 하는 다짐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알리우스, 마인드리더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도은강은 그런 이능을 가지지 못했다. 백민이 향후 수년을 자발적 솔로로 지낼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도은강은 이 자리에서 빠진 누군가를 찾았다. 여기 있는 멤버가 델타팀의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근데, 산이는 왜 안보여?”
“왜 안 보이겠어요. 낯선 사람이 온다는데 히키코모리가 나올 리가 없죠.”
“사권일. 그 히키코모리가 내 조카다.”
그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관계를 도은강이 지적했다. 뾰로통하게 대꾸하던 사권일이 찔끔했다. 지금 불참한 멤버가 히키코모리라는 점은 도은강에게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외삼촌 앞에서 대놓고 조카 흉을 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잘못했어요. 형.”
“은강아, 권일이가 오늘도 산이한테 조금 데였어. 좀 심술이 나서, 그래서 그래. 너무 혼내지 마아……. 어흥.”
이수철이 주눅 든 사권일을 감쌌다. 고운산과 사권일의 신경전은 익숙하다 못해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이다. 어떤 진행과정을 거쳐 현재 상황에 이르렀는지 안 봐도 훤히 보였다.
둘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의지는커녕 관계개선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니 친해지도록 부추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일은 칼 같이 깔끔하게 처리하니 흠 잡을 수도 없었다.
팀장이라고 해도 사적인 영역까지 개입하는 건 옳지 않았다.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까지 가만히 내버려둘지 그 경계를 구분 지을 수도 없었다. 가족이 팀원이 되다보니 이게 제일 문제였다.
도은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산이 소개시켜주고 올게. 다들 볼일 봐.”
“그래, 걱정 마. 개굴.”
“따라와. 백민.”
백민은 애꿎은 머리카락을 쑤석거리며 걷는 도은강을 따라갔다. 멈춰선 곳은 철문 앞이었다. 백민은 어제 사무실 구경을 하다 이 철문을 보고 멋대로 짐작했었다. 보안이 필요한 이능력 장비라도 있나 하고.
‘아니면 일반인에게 공개되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극비 서류라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도은강이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의 행동을 보니 안에 누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노크소리가 울린 후에도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기계가 돌아가는 묵직한 진동과 요란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희미하게 전해졌다.
“그럼 그렇지……. 고운산. 들어간다!”
도은강은 문 안쪽까지 돌리도록 크게 말하고는 묵직한 문을 잡아당겨 열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백민은 도은강 뒤에 서서 미어캣처럼 안쪽을 훑어봤다. 그 안에는 자그마한 꼬마가 커다란 사장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나 졸업했을까 싶은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아이였다. 안경을 끼고 포니테일을 한 아이는 들어온 사람을 곁눈질하지도 않고 미친 듯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
“스톱!”
바깥은 해가 쨍쨍한 낮인데 이곳은 해가 산 너머로 진 저녁이었다. 어둑한 방 안에 환한 모니터만 보고 손가락 잔상이 남는 속도로 자판을 쳐대는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고운산. 당장 멈춰!”
“조무래기가 시비 터왔단 말이야! 이 식빵! 이걸 가만 놔둬?”
“욕 하지 말랬지. 그리고 신입 팀원 데려왔으니까 잠깐 인사만 하고 다시 해.”
“삼촌! 진짜 딱 10분만! 해커로서 내 명예가 달렸어!”
“너, 엄마한테 이른다.”
뚝, 한순간에 손가락이 멈췄다. 소녀의 어머니가 얼마나 무서운 분이시기에 곧바로 얼어버리는 건지. 고운산의 고개가 끼긱끼긱거리며 왼쪽을 향했다. 그러더니 후다닥 뒤로 물러나서 컴퓨터 모니터로 숨어서 눈만 빼꼼 내놨다. 경계심 많은 고양이 같은 태도였다.
“여기는 내 조카이기도 한 기억조작 알리우스 고운산. 열일곱 살인데 열 살 때 능력을 발현하고 바로 이능반에 들어와서 벌써 8년차다. 사실 알리우스로서 이능을 자주 쓰는 편은 아냐. 알리우스 범죄자 정보를 수집하거나 알리우스 관련한 정보를 은폐하는 등 정보담당이야. 코드명은 피노키오. 낯을 많이 가리니까 참고하도록.”
“반갑습니다, 고운산 선배님. 백민입니다.”
백민은 도은강이 말하는 고운산에 대한 정보를 집중해서 기억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모니터 위로 드러난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와! 삼촌! 이 언니 나한테 존댓말 써!”
“산이한테까지 깍듯할 필요는 없는데…….”
“아니요. 한참 선배님이신데요. 당연히 존중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민은 단호하게 물렁해질 여지를 잘랐다. 그 태도가 고운산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워낙 어린 나이에 이능반에 들어와 일을 시작하기도 했거니와 타고난 동안이었다. 그 탓에 애송이라고 얕잡아 보인다면 모를까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인정받을 기회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 이 언니 좋아! 맘에 들어! 사권일은 나 처음 봤을 때 사탕 줄까 물었는데!”
사권일과 고운산은 첫 만남부터 삐끗했다. 거기다 옅은 동족혐오까지 겹쳐서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렸다. 이쯤 되면 본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도은강과 팀원들은 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도 도은강은 둘을 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깐죽대는 사권일도 사권일이지만, 자기보다 8살이나 많은 녀석에게 뾰족하게 대꾸하는 조카 고운산을 위해서였다.
‘누나는 내 뭘 믿고 자기 딸을 맡겼는지. 산이 녀석이 떼라도 썼나.’
매일 이 방에서 꼼짝도 안하는 이상, 이미 보통사람처럼 살기는 글렀지만, 도은강은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고운산에게 사회생활을 가르쳐야 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의 예의라도.
“산이 너, 권일이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지. 버릇없게.”
“싫어! 삼촌이 호칭 자유롭게 부르자고 해서 그렇잖아! 미지 언니만 빼면 다 나를 선배님으로 모셔야하는데! 다들 어린애 취급만 하고! 나 석사 학위도 있는 전문가라구!”
“그래도 성인은 아니지. 3년만 참아. 그때부턴 어른 취급 해준다.”
“쳇.”
입술을 삐죽거리는 모양이 어색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의 실랑이가 아닌 것 같았다. 열일곱 살에 석사 학위가 있다는 믿지 못 할 이야기가 나왔지만, 백민에겐 그보다 팀원 중 한 명에게 점수를 땄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그래, 그래. 하던 일 마저 해.”
느릿느릿 제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본 고운산이 놀라서 소리쳤다.
“아앗! 젠장! 뭐야, 한 눈 파는 사이에! 이 새끼가 이 몸이 누군지 알고 들이대! 엉망진창으로 짓뭉개서 질질 짜게 만들어주겠어! 그 때 가서 반성해보라지! 으흐흐.”
어린 나이의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욕설. 도은강은 자신의 지적을 우적우적 씹어 먹는 조카를 보며 입을 달싹거리다가 다물어버렸다. 넷상에서 더 걸쭉한 말버릇을 배우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럼 우린 나간다. 아주 압도적으로 눌러서 콧대를 꺾어놔.”
그 와중에도 도은강은 제 조카를 응원했다. 이왕이면 다신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놓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승부욕으로 따지면 그도지지 않았다.
“당연한 말씀! 삼촌 이따 봐! 민이 언니도요!”
백민은 과격한 언사를 일삼는 작은 소녀를 뇌리에 새겨뒀다. 예의범절에 엄격한 그녀에게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고운산은 상당히 거슬렸다. 두 명의 남동생을 키운 엄한 누나라서 오지랖이 살짝 발동하기도 했다.
‘마냥 오냐오냐 해주면 안 되는데. 저럴 땐…….’
그러나 한참 선배인 고운산에게 따끔한 충고를 건넬 입장은 아니었다. 아직은.
*
첫인사가 정신없이 마치고 백민은 팀장 도은강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왔다. 뭔가 홱 지나간 것 같아서 얼떨떨했다.
‘일반 회사에도 신입이 들어오면 이러나?’
신입직원 소개라기보다 친구들을 소개받는 기분이었다. 아르바이트 할 때보다도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델타팀 구성원들의 성격 때문일까.
나쁠 건 없었다. 백민은 이런 유연하고 수평적인 공기가 위계질서가 명확한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자신에게 이로우리라 여겼다. 어떤 라인에 서야할지 고민하고 권력싸움에 휘말리거나 막내인 자신에게 업무를 미루는 일은 없을 것 같아 한숨 돌렸다. 눈치껏 견뎌낼 수는 있지만 상당히 스트레스 받을 테니까.
‘직원들의 평균연령이 젊은 점도 장점으로 볼 수 있겠지.’
속으로 이능반 델타팀 팀원들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동안 몇몇 팀원들은 그새 볼일이 생겼는지, 이따 보자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사무실보다 거실이라는 설명이 적합한 공간에는 사권일과 도은강, 백민만이 남았다.
도은강은 기다란 소파에 깊이 기대앉으면서 뻣뻣하게 굳어있는 백민에게 말했다.
“잠깐 시간이 비니까 그동안 편하게 앉아있어. 사무실은 마음대로 구경해도 된다. 건물 안에 있는 편의시설은 며칠 이내로 너 혼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거고.”
출입금지 구역이 몇 군데 있지만 백민이 거기까지 빨빨거리고 돌아다닐 정도로 활발한 타입으로 보이진 않아서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물론 쉽게 들어갈 수도 없지만.
“네. 팀장님.”
백민은 남아도는 의자 하나를 골라서 앉았다. 긴장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허리를 직각으로 세운 채로. 도은강은 그 모습을 보고 편하게 앉으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그랬다간 더 어정쩡하고 불편한 자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권일은 둘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 한쪽에 있는 고가의 오디오를 조작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가 선택한 노래는 가사 없는 클럽음악이었다. 볼륨이 커서 바닥까지 쿵쿵 울렸다. 그에 도은강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좋은 말 할 때 꺼라. 아님 클래식으로 바꾸던지.”
“아, 형! 고리타분하게 클래식이 뭐예요. 형은 바흐, 모차르트 대신에 최신 음악을 들어줄 필요가 있어.”
잔잔한 클래식이 그나마 낫지만 도은강에게는 정적이 제일 편안했다.
“사권일. 너나 들어. 혼자 헤드폰 끼고.”
도은강은 주먹 쥔 손의 툭 튀어나온 부분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사권일은 마지못해 오디오 정지버튼을 누르고 다른 CD를 찾으면서 꿍얼거렸다.
“그놈의 만성두통. 두통 때문에 신문물을 전파할 수가 없네. 형도 EDM의 중독성에 취해보라고요.”
“능력 부작용이 두통으로 오는데 어쩌겠냐. 먹고 살려면 일해야 하고 일하면 머리가 아프고. 불가항력이지.”
만성두통은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이능 자체를 사용하는 반동으로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시간정지 이능을 써서 완벽한 고요와 불쾌한 소음 사이를 오가다보니, 청각이 혹사당해 그 여파가 두통으로 왔다.
‘알리우스라고 하더라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구나.’
자신이 알리우스라고 할 때부터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괴리감에 시달렸던 백민은 조금 안심했다. 그의 불평에 친근감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야근에 찌든 회사원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에이, 우리 팀에서 연봉 가장 높은 분이 누군데 엄살은. 그리고 형 집안 부자인 거 팀원들이 다 아는데. 쪼들리는 척 하지 마요.”
사권일의 첨언을 듣고 백민은 어느새 자라난 동질감의 싹을 잘랐다.
‘알리우스들은 다들 부유한가? 돈 버는 데 능력을 이용하면 쉽게 벌 수 있나? 걸리지만 않으면 묵인하나? 그럼 나도? 내 능력으로 지폐도 만들 수 있나? 아, 화폐위조라서 잡혀가나?’
돈을 주제가 되자 점점 불법적인 방법들만 떠올랐다. 그녀가 속으로 범죄모의를 하든 말든 도은강과 사권일은 꿋꿋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게 내 돈이냐? 집안 돈이지.”
“집안 돈이 내 돈, 내 돈이 내 돈 아니겠어요?”
“넌 정신 상태부터 글러먹었어, 인마. 그런데 너 오늘은 한가하다? 평소라면 이때쯤 뺑뺑이 칠 시간인데.”
“형! 부정 타게 그런 말 하지 마요! 저 2주 만에 느긋하게 쉬는 거란 말이에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권일의 스마트폰이 징징 울렸다. 그는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 보더니 절망해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형 때문이잖아! 망했어…….”
그는 한참 징징거리다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너무 유능해도 문제라니까. 난 왜 이렇게 잘나게 태어나서!”
사권일은 자아도취적인 대사를 날리며 가기 싫어하는 심정을 행위예술로 절절하게 표현했다. 다리가 어찌나 무거워 보이는지. 발이 질질 끌리며 지나가는 자리마다 움푹 파일 것 같았다.
“다이아몬드 수저면 뭐하냐고. 내 밥은 내 손으로 퍼먹어야하는데. 아이고, 불쌍한 내 신세야…….”
그는 신세한탄의 꼬리를 길게 늘이더니 이따 보자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은강은 넓은 데스크에 놓인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 다음 스케줄을 확인하고 멀뚱하게 서 있는 백민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우리도 능력 측정실로 가볼까?”
“능력 측정실이요?”
“지하 3층에 넓은 훈련실이 있어. 정확히 어떤 이능이 있는지 능력 한계가 어디까진지 확인해볼 수 있는 장소지.”
그때 도은강의 주머니에서 기본 벨소리가 울렸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백민을 돌아보는 그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묻어있었다.
“이런. 현장실습 먼저 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