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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
작가 : 브로컬리
작품등록일 : 201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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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 04
작성일 : 16-10-29     조회 : 384     추천 : 0     분량 : 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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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년 11월

 

 “아이, 봉철아... 봉철이 게 있냐?”

 “누... 누구... 어... 엄니?”

 “쉿... 조용허고 잠깐만 들어가자. 금방 나오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밤중에 봉철이를 찾아왔다. 어머니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조차 가릴데로 가리고, 손은 낡고 더러운 붕대로 대충 감아놓은 상태였다. 나병이었다. 어머니는 봉철이가 안겨오자 당황하며 한사코 밀쳐내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 벽을 보고 입을 가리고 이야기를 했다.

 

 “나가 염치는 없는디 어디 남은 밥 짠 없냐? 아부지는?”

 “아... 아버지는...”

 

 봉철은 그때서야 통곡을 하며 그간의 사실을 고했다. 어릴 적 어머니라 하면 늘상 아버지에게 많이 맞던 기억 밖에 나진 않아 죽었거나 도망간 줄로만 알고 있었다. 봉철은 서둘러 비상으로 숨겨두었던 감자와 무를 꺼내었다.

 

 “그기 아녀... 느그 아버지가야, 휴~”

 

 허겁지겁 먹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당시 천형(天刑)이라던 한센병은 발각되면 당장 소록도로 떠나야 했다. 아버지 역시 그곳에서 친형과 헤어진 기억이 있고, 그곳의 생활이 어떤지 대강은 아는 편이라 절대로 보낼 순 없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어머니를 때려 상처를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상처를 붕대로 감싼 줄로만 알고 있었지, 나병 걸린 줄은 몰랐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같이 살 순 있었다 생각했지만, 점점 어려워지기만 했다.

 

 “어디 애양원이라도 갈랑가? 여수 가믄 거가 나병환자들 돌봐준다더구먼...”

 “지가 가야 남은 식구들이 맘이라도 편하겄구먼요.”

 

 한센병인 게 알려지면 가족 모두 같은 취급을 당했으니 알려지지 않으려면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기에,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야반도주를 한 것처럼 꾸몄다는 게 어머니의 기억이다. 온 가족과 마을을 모두 전염시키고, 가족 대대로 유전될 것이란 공포가 낳은 비극이었다.

 

 “거가 있었는디, 진창낄에 빠져가꼬, 기어나올라고 헌디 손꾸락들이 다 나가브러야...”

 

 어머니의 손에 남은 손가락이 없었다. 걸레만도 못한 붕대로 감고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이었다.

 

 “거그가 난리가 나가꼬, 소록도로 들어간단디, 마지막으로라도 느그 얼굴 보고 죽을라고 왔제...”

 

 여순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병도 숨겨야 했고, 여수에서 온 것도 숨겨야 했다. 봉철은 그날부터 어머니를 숨겨놓고 봉석이에게도 숨겼다.

 

 “니 오늘부터 며칠간 저그 혜진이 집에 가 있그라...”

 

 봉석이에게는 어머니가 어디서 주어 온 사탕을 쥐어주고는, 사랑방 한쪽에 급히 벽을 만들었다. 사람 한 명 겨우 들어갈 틈에 판자를 대어놓고 어머니를 그 안에 모셨다.

 

 “어찌되았든 편하게는 못모셔도 어떻게든 해볼랑께요...”

 

 이부자리와 요강을 넣고 얼른 문을 닫았다. 봉철은 간절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사악함을 만들었다. 그의 눈은 이전보다 더 사납게 변해 있었다. 봉석은 거의 집에 들어올 수도 없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무서웠던 형은 사탕을 하나씩 주었고,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잘 굴러다니고 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비오리 사탕이라고 동전만한 크기에 새 모양으로 생긴 사탕이 있었는데, 그것조차 귀했었던 때였다. 어머니가 어떻게든 자식들 만나면 주려고 모았던 사탕이었으니 아무에게도 주지 말라는 당부를 형으로부터 들었던 봉석은 그걸 들고 동네 어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며 먹곤 했다. 아이들은 한 입만 먹게 해달라고 하면 봉석은 끝내 주지 않고 다 먹었다.

 

 “한 입만!”

 “싫다! 울 형아가 주지 말랬다!”

 “아따 고라지 말고 함만 주라!”

 “다 먹었다!”

 

 늘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런 봉석이와 어울리려 하진 않았는데, 유독 혜진이만 봉석이를 돌봐주었다. 먹을 것을 따로 챙겨주지 않아도 봉석이를 자기 동생 챙기듯 데리고 다녔다.

 

 “봉석이도 데려가야제...”

 “니는 봉석이 그만 좀 챙겨야, 뭔 좋은 일 있다고 그리 챙겨쌌냐? 시집갈라고 그냐?”

 

 아이들이 그렇게 놀렸어도 혜진인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았다. 콧방귀나 낄 소리임이 분명했다.

 

 “나는 울 큰오빠같은 사람헌티 시집 갈랑께, 니나 봉석이헌티 시집가라!”

 

 혜진인 동네에서 그 또래들 사이에선 제일 똑똑했다. 아버지의 영향이었기도 했지만 큰오빠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일곱 배나 부풀려서 맛깔나게 이야기할 줄 아는 아이였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혜진으로부터 얻어들었던 이야기는 그날 저녁 집 식구들에게 다 전해주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혜진에게 들었던 게 재밌고 유익했을 것이다.

 

 혜진의 가르침은 못난 봉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배우기 전에 둘을 잊을 봉석이는 혜진의 교육법이 맞았는지 한글은 겨우 뗄 수 있었다. 혜진은 팔을 구부려 이마에 대고,

 

 “이게 기역이여, 기역! 따라해 봐!”

 “기... 기억..”

 “아니 기억이 아니고 기역!”

 “기... 기역...”

 “그려, 이거이 간다 할 때 기역이여!”

 “기역이 왜 가는거여?”

 “아따, 참말로... 그냥 <그> 소리라고 알아두믄 뒤야..”

 

 혜진인 봉석이가 멍청하다고 짜증내진 않았다. 가르치길 좋아하는 것은 오빠보다 더 했다. 하지만 봉석이도 만만친 않았다. 하루 배운 게 이틀을 넘어가진 않았다. 강적과 강적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잠들기 전에 혜진은 반드시 봉석이를 가르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어따, 봉석이도 엥간해야제... 그 애비라는 놈도 썩 못되았고...”

 

 동네 사람들도 혜진이 봉석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뒤에서 수근거릴 정도였다. 그런 봉석이가 어느 날엔가는 혜진이에게 아끼고 아끼던 사탕을 줬다. 놀랄 일이었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 혜진에게 사탕을 준 것이었다. 봉석이는 뭔가를 누구에게 줘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무서운 형으로부터 누구에게 주지말란 소리부터 들으면서 먹었던 까닭도 까닭이려니와 본래 누구에게 주고 받는 것에 대해 이해가 없었을 정도였다.

 

 “자... 이거 먹...어.. 서... 셔물이여..”

 “말 더듬지 말고 말해봐, 선! 물!”

 “선물!”

 “잘했어, 인자 아이들헌티도 나눠줘!”

 “알았어... 근디 울 형아가 나눠주지 말랬는디...”

 

 봉석이는 무서운 형보다 어린 혜진이의 말을 더 잘 들었다. 혜진의 승리였다.

 

 그 무렵 성균이 여자를 데리고 여수에서 돌아오자, 다들 신식으로 연애 결혼한다고들 호들갑이었다. 어디 양반 집안에 중매도 없고 길일도 받지 않고 결혼하냐고들 극성이었다.

 

 “이거이 신식이어! 결혼은 좋아허는 사람이랑 해야제...”

 

 아버지는 아들의 행동이 한켠에는 서운했는지 모르겠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들의 결정이 옳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 모두 그 집 며느리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보았다. 여수에서 온 게 아니었다고 해도 이방인에 대한 경계는 쉬이 사그러들지 않았다.

 

 “오메, 얼마나 되았다고 임신이랴?”

 “몸은 저리 말라가꼬 배는 저라고 크믄 뭔 이상 있는 거 아녀?”

 “쌍태 아닌가 모르겄어?”

 

 사람들의 수군거림 사이에 봉철도 있었다. 여수에서 처음 온 날부터 봉철은 심사가 뒤틀려 있었다. 두근거리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녀 앞에선 모든 게 부끄러웠고, 성균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병 어머니와 반푼이 동생까지 있는 마당에 결혼따윈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그러다 임신한 형수의 모습은 더 눈이 갔다.

 

 “애양원서 안 있다냐? 눈꺼정 멀었던 환자가 갓난 아이 하나 쌂아묵고 깨끗허니 나았다든만... 아녀, 그런 일이 어서 있겄어? 관심두지 말어... 걍 해본 소링께.”

 

 어머니 뿐 아니라 당시 소문에 문둥이(한센병 환자)가 갓난아기를 먹으면 아이처럼 깨끗한 피부를 가지게 된다고 하였다. 봉철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절대 그럴 리 없다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그리 되신 걸 보니 점점 마음이 옮겨갔던 것이다. 반신반의를 지나 확신으로 바뀌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거시 효도 아니겄어? 아이야 또 낳으믄 되는 것이고!’

 

 봉철은 자신 속에 있는 악마성을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선한 마음은 지키려고 안허믄 그냥 날라가브러야, 나쁜 마음은 안할라고 애를 써도 들어온디, 긍께 얼마나 덕과 선을 쌓아야 쓰겄냐?”

 

 그때부터 봉철은 글공부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대신 그의 아비가 했던 것과 똑같이 강한 자들의 편에 서서 약한 자들을 짓밟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지가 빨갱이 새끼들 다 잡아가꼬 올랑께요, 지 좀 여그 넣어 주시오!”

 

 그는 북녘에서 온 서북청년단의 단원이 되기 위해 애를 쓰고 다녔다. 출신이 다른 그가 인정받는 길은 그들보다 더 악독해야 했다.

 

 동네 아이들도 이들이 나타나면 울음을 그친다던 서청(서북청년단)은 해방 후 북녘에서 공산주의 정책이 시행되면서 친일매국과 지주층들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과 숙청이 단행되자, 그 일을 피해 월남한 사람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1946년에 출범하여 1949년 대한청년단에 흡수되기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아래 지역에서는 서북청년단의 이름으로 계속 활동하였던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태극기와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을 비싼 값에 파는 일말고도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정치깡패같은 노릇을 하고 다녔다. 앞서 제주 4.3 사건이 일어나자 이들은 제주도에 내려가 거의 사냥하듯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 이외에도 정치적으로 김구 암살 같은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서청보다 더 표독스러웠던 이가 바로 봉철이란 이야기다. 그는 서청 단원이 가는 길마다 앞서나가 갖은 만행을 먼저 저질렀고, 단원들보다 훨씬 더 잔혹하게 저질렀다. 그가 저지른 수법은 뻔하다. 빨간 책이라 알려진 공산주의 서적을 몰래 한 집에 숨겨두고 서청단원들과 그 집에 들어가 그 책을 찾아내어 책 주인을 사상범으로 몰아가는 일이었다. 그 가족들로부터는 돈을 받아 챙기고, 서청에게는 그 집에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을 파는 일을 하게 하고, 갖은 고문으로 없던 죄를 씌우고, 여러 사람을 동조자로 몰아가는 일이었다. 미산, 자기 마을에조차 인정사정 두지 않았다. 그는 대낮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 그 책을 성균의 집에 감춰두고 그 길로 읍내에 있는 서청 사무실에 달려갔다.

 

 “야, 지는 저그 수북 미산에 사는 최봉철이라 허요. 나으리들 바쁘신디, 우리 마을에 공산당이 있어라우!”

 “날래 출동하자우!”

 

 그들은 반란사건을 계기로 여수에서 돌아와 신혼 생활을 하던 최성균을 붙잡았다.

 

 “최성균, 당신이 이 책을 본 거 맞지?”

 

 무슨 책인 줄은 알았지만, 읽기 거북한 빨간 책이었다. 성품상 그런 과격한 공산주의 사상과는 어울리지도 않았다. 어디 누가 가져다 둔 건지는 모르겠고, 지난날에 오쿠보 상이 줬던 책들 사이에 본 것 같은 기억은 났다. 분명 버렸다 생각했는데, 태우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봉철은 이 책으로 여러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갔다.

 

 “내 읽다 버렸소만...”

 “끌고 오라!”

 

 처음에는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며칠 동안 고문도 없이 진행했다. 밑도 끝도 없는 배후자가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내... 여수에서 공인(工人)들 글공부 시키다 온 것 뿐이오. 공산당이라니...”

 “오호, 그러니까 지금 여수에서 글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사상교육을 하고 왔구만 기래, 그래서 그곳에서 반란사건이 일어났고, 이 동무 안되겠구만!”

 “내가 가르친 내용은 고작 한글과 한문이 전부요!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사상을 가르친다고 합니까?”

 “동무는 보도연맹 소식 못들었소?”

 

 당시 보도연맹에 대한 소문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애어른이고 할 것 없이 잡혀 들어가면 총살이라는 소문이었다.

 

 “내는 모르는 일이오. 나도 모르는 일에 배후는 있을 수 없소이다.”

 “알았소. 내일 또 봅시다.”

 

 그리고는 거의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서에 오라고 하질 않나, 감시가 따라붙어 다니질 않나 하더니 그날은 새벽부터 출두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날은 모든 게 달랐다. 서청사무실이 아니라 경찰서로 들어갔는데 그곳 고문실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예, 나으리 지가 반드시 기필코 입을 열겄습니다요!”

 

 봉철이었다. 그러나 반가워할 처지가 아니었다. 보는 순간 싸늘한 미소를 띄며 다가왔다.

 

 “워따, 행님도 좋은 집에서 그간 편히 사셨소? 공부가 그리 좋아 그런 못된 책도 수집허고 다니요?”

 

 말 끝내기가 무섭게 그의 채찍이 온 몸을 휘감았다. 철사같이 가는 대꼬챙이로 온 몸에 집어넣었다 뺐다하면서 고문을 하고는, 마지막에 손, 팔, 다리부터 몸통과 머리까지 온 몸의 뼈를 몽둥이찜질을 해서 죽여버렸다. 악랄하다는 서청단원들도 보기에 끔찍했던지 맡겨두고 나갈 정도였으며, 그게 또한 하찮은 그로서 서청의 인정을 받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봉철이, 자네 왜 그란가?”

 “몰라서 묻소? 우린 형님들 공부헐 때 소처럼 일만 혔어라!”

 

 성균은 함께 글공부하다가 봉석이는 글과는 거리가 멀었고, 봉철이 역시 공부하기 싫다고 뛰쳐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기억난 게 없다. 봉철이의 마음은 악으로 들끓었다.

 

 “우리 아부지는 또 어르신이 죽이라 했제. 그 때 내가 암만 경찰서 문을 두드려도 눈 하나 꿈쩍 안한 거 봉께, 다 느그 아부지랑 그 일본놈이랑 짜고 그랬든만...”

 

 답답했다. 어떤 말도 자기 기억과 일치되는 게 없었다.

 

 “울 아부지처럼 좋은 사람 없어라, 시상에 우리 살리라고 얼매나 고생한 줄 아요?”

 “그래서 일제 때 동네 아가씨들 끌고 공납한겨?”

 “허, 울 아부지가 아니어도 그럴 사람 많았을 거여, 안그요?”

 “그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까봐 당신 아버지가 잘못을 먼저 저지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에잇, 이 육시럴 놈이!”

 

 봉철은 말문이 막히면 더 잔인하게 고문했다.

 

 “이 빨간 책 어디서 나왔는지만 말허믄... 장차 우리 조카헌티도 좋을 것이고, 우리 아버님, 어머님, 성현이랑 모도 다 같이 잘 살 것인디... 딱 3명만 갑시다! 형님 친구들 이름 세 명만 대믄 어느 정도에서 풀려나게 해주께!”

 “아니, 그렇게 벗들 팔아 발 뻗고 잘 살 수 있당가?”

 “아니 그라고 공부해가꼬도 모르요? 시방 시상이 어떤 시상인디...”

 “양심을 두려워허지도 않으믄 고거이 금수여!”

 “에라이!”

 

 봉철이는 가지고 있던 철퇴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쓰러진 그의 입에서 의미없는 가쁜 입김만 나오고 있었다. 봉철은 서류를 가지고 와서 성균의 지장을 찍는 것으로 모든 고문을 다 마치고 거적에 둘둘 말아 성균의 집으로 가져갔다.

 

 이틀 전만 해도 봉철이가 찾아와 아버지를 만났었다.

 

 “어따, 우리 아버님도... 우리 투사님들 목도 축이시게 좀 허고 그라시제, 참말로...”

 “봉철이 자네가 그곳 사람들과 친한가? 울 아들, 울 아들 좀 봐주시게...”

 “야, 지가 힘 좀 써볼랍니더... 근디 아버님 이번 책이 솔찬히 문제가 커서 말이여라잉, 그런 불온서적은 소지만 해도 난리가 난단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얼른 뛰어가 돈을 마련해 온다. 오쿠보 상에게서 받았던 돈 전부였다.

 

 “이 돈이믄... 걍 사상교육 받고 부역하는 걸로다가 지가 힘 좀 써볼랍니더.”

 

 아버지는 봉철이 말만 믿고 아들이 풀러나기만 기다렸다. 한 며칠 조사받을 것이란 말만 들었는데, 저녁에 수레에 실려 송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포승줄에 매였지만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나갔는데, 이제는 거적에 싸인 채 송장으로 돌아온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슬픔조차 두려움이 더 컸다.

 

 “아부지예, 지가 투사(반공투사=서북청년단)님들 헌티 식사도 험서 돈도 건내주었는디라... 고만 안타깝게 되부씸니더...”

 “.......”

 “그래도 지 입장 봐서 이라고 시체라도 찾아왔심더... 저번 읍내에서 빨갱이 공개총살한 것 아시지라? 거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 매장해브써라!”

 

 송장을 실어온 봉철이의 말이다. 그의 눈에서 나온 눈물을 보고 순진한 아버지는 또 굳게 믿었다.

 

 “고마우이... 이리... 시체라고 집에 데꼬 왔단말여...”

 “아녀라, 지가 아부지헌티 먹고 산 게 얼만디...”

 

 온통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워메 시장헌그... 밥 잔 있소?”

 “아가..그.. 밥... 밥 좀 챙겨줘라.”

 

 송장으로 만들어 온 집에 밥타령을 하는데, 아버지는 남편 잃은 며느리에게 밥을 주라 명하셨다. 젊은 새댁은 눈앞의 사실이 믿어지지도 않아 아직 슬픔이 시작도 되지 않고 놀랍기만 한 상태로 경황없이 남편 돌아오면 주려고 남겼던 밥을 그에게 주었다. 능글맞은 봉철의 얼굴에 홍조가 띄었다.

 

 “워메, 형수 미안허요.. 내 힘 좀 더 썼어야 된디...”

 

 젊은 새댁의 뒷모습을 음흉하게 쳐다보다 하는 말이다. 이후로 틈만 나면 그 집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고, 형수에게 농을 건네고 다녔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갓난아이가 태어날 것이고, 그 아이만 채가면 그만이다. 이미 계산된 수작이었다. 성균을 제물로 삼은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공연히 거짓말로 이간질을 하고 있었다.

 

 “워메, 성균 성님이 다 불어브렀드랑께...”

 

 아무 관련도 없는 마을 청년들 3명을 송장으로 만들고 나서 한 말이다. 이 일로 처음에는 성균의 집 식구들이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워메, 어르신 큰아들이 참말로 우리 아들을 그라고 밀고를 했다고라? 우리 아들이 뭔 잘못을 했간디...”

 “댁의 아들이 잘못을 하지 않은 건 내 알지, 내 아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지 않은가?”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봉철의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봉철의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텐찌에 민나 교산또데쓰다!”(천지에 모두 공산당이다!)

 

 술만 마시면 여지없이 질러대는 소리다. 남정네들은 부역 보내놓고 동네에 들어와 부녀자 성희롱하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아따, 세상 겁나 살기 좋소잉...”

 

 4명의 빨갱이 색출이란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여 나라에서 포상도 나오고, 구장이란 직분도 얻었다. 그보다 더 신나는 일은 자기 아버지의 복수를 이룬 것이었다. 마을마다 닭 한 마리 쯤은 그냥 자기 집에서 꺼내는 것 마냥 집어가지고 가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이쯤되니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만 해도 봉철이 욕하기 바빴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당하기만 했다. 일제 식민지가 끝나도 똑같고, 아니 더 비참한 자신들의 신세 한탄하기만 바빴다.

 

 “그랑께, 뭐헌다고 용머리를 자르냔 말여!”

 

 일제 때 치도사업이라고 하면서 길을 내는데 귀히 여기는 용머리를 자르며 길을 내니 장차 큰 난리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났었던 것을 동네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미신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다시 미신이 되는 딱 그만한 수준이었다.

 

 “이기 다, 용신께서 노하신 거여!”

 

 정성스럽게 치성을 드려야 한다는 무당의 말에 그의 말대로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용흥사까지 올라가 그 앞 느티나무에서 온갖 치성을 다 드렸지만, 당하는 건 변함없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비밀 모임을 만들어 남로당에 적을 두게 되었다. 공산당이 뭔진 아직 모르지만,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공산당이 되는 게 가장 나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인자 곧 천지가 개벽헐 것이구만!”

 “암 그래야제, 억울허니 죽어간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되지 않겄는가?”

 “아니, 영석이 고놈이 날 때부터 백친 건 모르는 것도 아닐틴디, 몸에 나 있는 구멍마다 대꼬챙이로 쭈셔브러가꼬 죽였다고... 시상에... 아, 글고 이번엔 대낮에 장성댁꺼지 끌고가서 겁탈했다고 허드구만요.”

 “참말로 고 새끼 때메, 임병헐 동네 여자들 씨 말라블겄소...”

 “우짜쓰까 모르겄어요.”

 “즈그 애비가 허던 거 똑같이 허구먼...”

 “아따 오도시(공갈)도 검나게 치요...”

 

 그러다 엄청난 이야기가 나오고야 말았다.

 

 “내 실은 얼마 전에 광주를 댕개왔는디, 먼 요상한 이야기를 합디다? 쏘련이 가만 안있을거란 말이 안 나오요...”

 “저그 38선은 계속 싸우고 있다 안그요?”

 “아니 조만간에 뭔가 사단이 나겄드만...”

 “나가 그래가꼬 이참에 쏘련이 내려오믄 저그 봉철이 주게블라고 요새 누구 좀 만나요.”

 

 그 시절 낮에는 경찰이 사람들을 잡고, 밤에는 빨갱이들이 사람들을 잡는 세상이라 흉흉한 판에 곧 전쟁이 날 것이라는 소문도 제법 돌고 있었다.

 

 “우리 대통령님도 날마다 북진 북진헌디, 김일성 그짝도 안글겄소?”

 “근디 참말로 전쟁 인나믄, 봉철이 그 새끼 죽일 수 있다요?”

 “당신은 가만 있어 보시오.”

 

 최첨식 부인이 끼어들어 물어보았지만, 남편은 이내 말문을 막았다. 그래도 분위기상 다들 그게 목적이었다.

 

 “암, 그라지요. 고것이 참다운 해방 아니겄소? 이거이 뭔놈의 해방이다요, 일제나 미제나 우리는 맨날 이라고 살고 있는디, 북쪽에서는 친일했던 놈덜 벌써 다 잡아 죽여브렀당께요!”

 

 그 모임은 봉철의 만행에 대해 쑥덕거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어느새 반란군의 입장을 지지하는 모임으로 바뀌게 되었다. 제주와 여순 사건을 계기로 계엄령이 전라도에 내려졌지만, 이미 전쟁은 내부에서 시작되었고, 곪은 것을 제대로 짜내지 못하고 시작한 정부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마을 모두가 분개해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매일 모여 웃고 떠드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혜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봉석도 의아해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혜진을 찾았지만 그날 저녁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부모 역시 크게 마음을 쓰고 있진 않았다. 일에 치이고 밤엔 또 모여서 의논을 나누느라 정작 아이들 크는 것은 그리 신경을 쓰질 않았다.

 

 위험한 산길, 빨치산이 나온다는 삼인산 오름길이다. 동네에서 한 두 시간 떨어진 산에 가쁜 숨을 쉬며 혜진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삼베 천이 한 조각 들려있었다. 숨차게 오르니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덤까지 오르더니 공손히 절을 하고서는 무덤 한 쪽 귀퉁이 언 땅을 돌로 긁어 팠다. 그리고 그 천조각을 넣고는 다시 묻었다.

 

 <큰오라버니, 혜진이어요. 지헌티 조은 이야기 마이 해줘서 참말로 고마워요. 헐 수만 있다믄 죽은 사람과도 통화할 수 있는 날이 오믄 좋겄구만요. 인자 시상은 봄인디, 날이 마이 추워요. 그짝 추운 것만 하랴만 이짝도 얼마 추운가 몰라요. 시상이 어째 그랑가 모르겄어요. 다같이 사이좋게 지내야 쓸 것인디, 우쨌든 담 시상은 좀 따뜻해졌으면 좋겄어요. 그라고 이쁜 아들 못보고 가서 우짠대요? 지가 잘 데꼬 있을랑께, 염려는 마시오!>

 

 어린 나이에 만가(輓歌)를 알 리 없었지만, 혜진은 그렇게 무덤 한 쪽에 편지를 써서 주고 싶어 그리 했다. 죽은 이를 위한 노래, 입관 때에 함께 넣기도 하지만, 혜진은 그렇게 할 순 없었고, 대신 큰오라버니와의 생전에 좋았던 일이 떠오를 때면 그렇게 무덤 주변을 파서 천조각을 넣어 놓곤 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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