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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
작가 : 브로컬리
작품등록일 : 201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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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 06
작성일 : 16-11-05     조회 : 383     추천 : 0     분량 : 8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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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6월 25일

 

 아무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38선 인근에서는 툭하면 다툼이 있었고, 당시 정부에서는 언제든 북녘을 칠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방송이 나왔다. 북녘에 대해 너무 몰랐든지 아니면 우리를 전혀 몰랐든지 했을 것이다. 때론 호기라도 부려 안심시켜야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어쨌거나 무방비 상태이자 속수무책으로 당한 전쟁이었다. 북쪽이 침략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창설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3군 원대 복귀 지시에 장병들만 서둘러 집결했고, 호외라도 괴뢰군들이 새벽 4시를 기해 불법남침을 했다고 했을 뿐이지 엉망이었다.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국무회의가 열렸고, 육군 참모총장 채병덕마저 적의 전면 공격이 아닌 이주하, 김삼룡을 탈취하기 위한 책략이라 했을 정도이니 일반 사람들은 어땠으랴. 26일 정오 즈음에 야크기 두 대가 김포공항을 폭격하니 그제서야 전쟁이 심각함을 깨달았다. 신문들은 그 난리에도 적의 전면전 패주라는 둥, 해주까지 탈환했다는 오보를 냈다. 김성칠, 역사앞에서 한 사학자의 6.25 일기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에게 긴급전화를 걸어놓고 6월 27일 새벽 2시에 대전으로 먼저 도망갔다. 서울을 버리고 수원천도 방송이 나오더니 이내 취소방송이 나왔고, 27일 밤에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가 나왔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선에서도 충용무쌍한 우리 국군이 한결같이 싸워서 오늘 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가는 적을 추격중이니 국민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함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대전 방송국에서 보낸 이승만의 담화를 서울 중앙방송국이 전화로 받아 방송하였다. 대구로 내려갔다 너무 많이 내려갔다는 참모들의 건의에 대전으로 다시 올라온 대통령이었다. 돌이켜보면 임진왜란 대 선조와 비슷한 점이 많았던 대통령이다.

 

 그러면서 믿었던 미군은 노근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일반인들을 거침없이 총살하였고, 국군 역시 보도연맹을 총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담양에서는 7월 12일 수북면 성암골짜기에서 보도연맹을 모조리 총살하였다. 원래 보도연맹은 좌파들의 전향을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건수 올리기에 급급하다보니 사상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빨갱이라 이름이 적힌 사람들, 심지어는 중고생들까지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날 다들 죽은 목숨이 되었다. 2009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상이 분명한 수만 5,000여 명에 육박하였으니 실상은 어떠했겠는가?

 

 이런 식이었다. 북한만 전쟁을 벌인 게 아니라, 남쪽에서도 민간인들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었다. 친일파 숙청과 토지개혁조차 못한 무능한 정부는 공산당만 미워할 줄 알았지 자기 국민을 돌볼 줄 몰랐다. 역설적일지 몰라도 인민군이 내려오기만 바랐던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가 되었다. 빨갱이가 되지 않으면 죽어야 했다. 인민군이 내려오는 거리마다 곳곳에 <조선인민공화국 만세!>라는 피켓을 들고 환영을 했고, 또 했어야 했다.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국군은 잘못했고 인민군이 잘했다고 하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총을 든 모두가 민간인을 적으로 돌렸다는 뜻이다. 마을마다 인민재판을 열어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 “이자는 반동이오, 아니오?”라 묻고 악질반동분자란 말만 나오면 따발총으로 갈겼다. 노동자가 아닌 예술가나 학자는 범죄자로 지목되었다.

 

 7월 23일 담양에도 인민군이 도착했다. 전쟁난 지 한 달 만에 국토의 2/3가 인민군의 차지가 되었다. 언급했듯이 전쟁나기 전 이미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새삼 다를 게 없었다. 담양에도 이미 인민위원회가 발족되었었고, 정경인이란 이가 회장으로 선출되어 인민군을 모집하고 다녔다.

 

 “인민공화국 만세!”

 “이승만 정권 타도!”

 

 마을마다 선전하기 바빴다. 빨치산들까지 내려와 이들에 가담을 하며 힘을 실었으니 서북청년단은 벌써 부산으로 도망갔고, 봉철이 형제와 마을 구장들, 아까워 떠나지 못한 지주들, 몇 명 되지 않은 경찰들이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23일 새벽을 기해 봉철이는 봉석이와 피난을 결심하였다.

 

 봉철이는 봉석이 몰래 어머니에게 물과 감자, 주먹밥을 잔뜩 넣어 드렸다.

 

 “엄니, 전쟁이 나가꼬 지가 뜨메가꼬라도 가야쓴디... 우짜믄 좋으께라? 마을 사람들이 질 죽일라고 염병들 한다고 해싸소!”

 “내 걱정 마고...”

 

 어머니는 거의 임종에 가까워졌다. 팔을 들고 손이라도 뻗어 잡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없다. 봉철 역시 좁은 입구에서 손을 뻗었지만 닿지도 못했다. 그저 앙상한 팔만 흔들고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아무 생각없는 봉석이를 데리고 떠나야 했다.

 

 “서둘러라, 뭐 아무 것도 챙기지 말고, 언능 돈이랑 챙겨가꼬 나온나!”

 “아따, 그란 거 말고, 주먹밥이나 좀 더 넣어!”

 

 모든 집문서, 땅문서는 마당을 파서 일치감치 숨겨두었지만 어머니 때문에 피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 밤에 누군가 찾아와 뭐라고 쑥덕거리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뻔 했다. 봉철과 동생은 새벽 날이 밝을 무렵에 서둘러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빠져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마을 사람들이 빨간 완장을 차고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도망가는 봉철을 향해 낫과 돌을 던졌다.

 

 “에라! 이 죽일 놈아!”

 

 누군가의 낫이 날아오자 봉석이 발목에 맞았다. 허둥거리며 뒤처진 봉석이 봉철을 잡으려 하자,

 

 “이거 좀 놔, 내가 난중에 찾아올랑께... 기필코...”

 

 동생을 밀쳤다. 봉석은 땅바닥을 뒹굴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동생은 놔두고 가네!”

 

 마을 사람들은 봉석을 잡았으나, 바보같이 웃기만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풀어주었고, 봉철이 살았던 집만 불을 태웠다.

 

 “오메 이렇게라도 한께 속이 씨원허네!”

 “인자 인민군 들어옹께 준비나 하소!”

 “그랍시다!”

 

 봉철은 저멀리서 자기 집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이를 갈며 도망갔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인공기를 들고 인민군 환영 준비를 해야 했다. 싫든 좋든 살려거든 그게 답이었다.

 

 “인민 해방군 만세!”

 “위대하신 김일성 사령관님 만세!”

 

 인민군의 행군을 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혈입성이었다. 덜그럭거리는 탱크와 길게 늘어선 행렬, 그리고 맞이하는 시민들로 담양은 북적거렸다. 서울에서야 3일 머물렀지 다른 도시들에서도 저항은 거의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모두 도망을 가거나 환영을 했었던 까닭이다.

 

 “인자 봉철이 그놈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 아니겄어?”

 “그랑께 말이시, 인자 저짝 부산 낙동강만 건너믄 해방군 차지 아니겄어?”

 

 부모님의 말씀에 성현이 끼어들었다.

 

 “지가 이번에 전남도당 박영발 위원장님과도 만날 것이구만요!”

 

 성현은 이미 인민군복을 꺼내 입고 완장을 찬 모습이다. 학도병이지만 이미 빨치산으로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다. 혜진, 혜숙은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집안의 밝은 분위기였다.

 

 “아직 꺼림칙하지만 읍내 가서 인민위원회 좀 갔다와볼라니까, 집 보고 있으시게!”

 

 아버지는 오래간만에 말끔하게 갓을 쓰고 의기양양하게 행차를 하셨으나, 이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뭔 일 있으시다요?”

 

 궁금한 어머니가 물어보시니 굳은 표정을 지으시면서,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무슨 사람들을 그리 죽인단 말야...”

 “아따, 토지개혁도 하고, 농민들을 위해서 거시기하느라 안그요?”

 “아니, 무슨 인민재판을 한다더니, 건넛마을 김씨네 식구들을 다 세워놓고 총살을 하지 뭐야, 그것도 그집 하인들이 완장을 차고선 말이지...”

 “허긴 그리 죽이면서 뭔 혁명을 한다고...”

 “어진 사람은 천하에 적이 없는 법이야, 어진 사람으로 어질지 못한 이를 징벌하는데 어찌 피가 강처럼 흘러 절구가 떠다니게 한단 말이야...” 『孟子』 盡心章句 下 第三章 ...仁人無敵於天下。 以至仁伐至不仁, 而何其血之流杵也

 

 

 부모님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으나, 성현은 달랐다.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이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다. 그들이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그는 분명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 전문을 다 외우고 있을 만큼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말릴 겨를도 없이 뛰어나가 인민군에 합류했다. 그가 속한 부대는 무등산으로 향하였고, 얼마 전에 보도연맹을 총살했던 신공식 경감 일행을 추적했다.

 

 부대원들은 꼬막재에서 곧장 정상 쪽으로 오르려 했으나, 성현이가 속한 소대는 신선대를 거쳐 인계리로 내려갔을 수도 있다하여 길을 돌렸다. 한껏 포위를 해가며 열심히 추격하니 길 끝에 가쁜 걸음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이 성현의 눈에 띄었다. 총도 없는 그였기에 길을 돌아 그의 앞길을 막았다.

 

 “헉... 헉...”

 

 숨이 턱에까지 차오른 경감은 이내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이야, 우리 어린 동지가 실력이 엄청나구만 기레... 총 한 방 쏘지도 않고야...”

 “민족 해방의...”

 “그래 그래, 죽인 걸로 되았다. 동지들을 그리 죽이고도 살아볼라고 그리 도망갔단 말이제!”

 

 성현은 그곳에서 전남도당 박영발 위원장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바심재 사건으로 유명한 성현은 소년 영웅대접을 받았다.

 

 “그래 우리 사령관 동지도 만나러 가자고!”

 

 그는 성현을 얼싸안으며 기뻐했고, 학도병에서 정식 인민군 간부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이미 10월 중순에 담양은 국군에 의해 수복되었고, 한 번 더 세상이 바뀌게 되었다.

 

 “워메, 나라가 바뀐 줄 알았더니 아직 끝내지도 못했는디...”

 

 어머니는 입을 막고 우시기만 했다.

 

 “고작 서너 달이여... 이기 먼 복수당가...”

 

 저 멀리 마을 밖에서 봉철이 경찰들과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죽여버려야 할 놈이 커다란 칼을 어깨에 올린 채 거만하게 돌아오는 꼴을 봐야 했다. 인민군 환영보다 더 맘을 졸이며 그를 맞이해야 했다.

 

 “봉철이... 자네 고생 많았네...”

 “아따 우리 구장님헌티 봉철이가 뭐요 봉철이가... 퍼뜩 구장님 고생하셨는디 목이라도 축이시게 술상이라도 내와보쇼!”

 

 봉철의 눈의 살기와 입가의 웃음은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다음날 그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소집하더니 자기 아버지 돌아가신 대밭에 갔다.

 

 "우리 어부지 우째 죽인지 기억나요? 죽창에다 이라고 푹푹 쭈셔댔지라? 울 엄니는 또 어뚜고 죽은 줄 아요? 불에 이라고 태워브렀어라우..."

 "어이 봉철이, 참말로 미안헌디 우리도 몰랐당께..."

 “아니 고래가꼬 무슨 임병헐 짓들을 헌가 모르겄어? 이기지도 못헐 싸움 아녀?”

 “어따 우리가 거슥... 잘못혔드랑께...”

 

 마을 사람들은 기세등등한 봉철 앞에 다 죄인이었다. 그러나 봉철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 단속만 하고 다녔지 딱히 뭔가 해꼬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봉철의 속내는 관용과는 멀었다.

 

 “시장통에 기(게)들 봤어? 기들이 다라(대야)에서 벗어날라고 애를 쓴디, 주인 아줌씨는 보도 않혀! 냅두고 있당께, 옆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캐도 들은 척도 안해부러! 글다가 진짜 딱하고 툭 쳐블믄 한번에 다 다라로 우수수 떨어져블든만... 여그도 냅두고 있다가 한방에~ 조져브러야제!”

 

 마을 주민들은 앞 다투어 봉철의 집을 수리해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그의 눈치를 살폈으나, 이미 공산당의 세력이 다 꺾인 것을 안 혜진의 부모는 다른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도 공산당을 따라 올라갈 수 밖에 없겄네.”

 

 부모님의 결정에 혜진이는

 

 “작은 오라보니 오는 거 보믄 안됭가?”

 

 라고 물었다. 기약이 없다는 것을 안다. 전쟁통에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도 없고 기약도 없었던 터라 ‘살아있으면 언젠간 만나리라!’는 게 기대와 걱정의 기로에 서있는 자들의 선택이었다.

 

 “하루만, 딱 하루만 응?”

 

 혜진이의 설득에 정말 딱 하루만 있기로 했다. 아니, 봉철이 그놈을 죽이지 못한 게 맘에 걸렸다.

 

 ‘우리 성현이가 인민군과 돌아오면 딱 봉철 그 놈만 죽에블믄 딱이겄구만!’

 

 하지만 세상 일은 최첨식의 생각과 전혀 반대로 돌아갔다. 저녁도 지나 다들 잘 시간에 완장과 칼을 차고 봉철이 그 집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따라왔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다.

 

 “어이, 아제 참말로 방갑소잉!”

 

 방문을 열고 거침없이 들어오는 봉철에게

 

 “거그 문턱은 넘지 말고 잠시 기다리시게...”

 

 하고 말렸다.

 

 “아따, 지가 이 방에서 공부한 지가 몇 년인디 들어오지 말라 그요?”

 “개, 돼지는 방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마당에 있는 것일세!”

 “워메... 우리 아제도 참... 디질라고 용을 쓰요!”

 “나가 있게! 의관을 차리고 나갈라네.”

 “그라시오. 지는, 아니 쇤네는 밖에서 개 주인 바라듯 보고 있을라요!”

 

 사람을 죽이는 마당에도 여유가 넘쳤다. 이미 사람의 수준을 벗어난 그를 개, 돼지로 취급한 게 마지막 용기였다.

 

 “우리가 원통해도... 여그가 끝인가벼...”

 “휴~ 자식 죽고 하루도 편할 날 없었는디, 인자 우리 성균이 곁으로 가네요.”

 

 그들은 의관을 단정히 차려입고 문을 열고 나왔다. 마을 사람들 모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 잡는데 몽둥이가 웬 말인가? 그것은 개, 돼지 잡는데 쓰는 것이야!”

 

 불호령에 다들 들고 있던 몽둥이를 슬그머니 뒤로 감추었다. 마을 사람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봉철은 역정을 냈다.

 

 “아니, 우리 아버지 죽일 때는 몽둥이에 죽창으로 그리 쭈셔대고, 인자 법을 집행해야 쓴디 다들 그라고 조용허데요? 아 빨갱이여라! 빨! 갱! 이!”

 

 마을 사람들 중 빨갱이가 아니었던 사람들은 없었다. 인민군이 들어올 때 다들 환영했던 기억이 있고, 그 전에 봉철을 죽이기 위해 다들 남로당에 입적하지 않았던가? 봉철의 의도가 빤히 보였다.

 

 “이 자는 공산당이오, 아니오?”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묶여 있는 자가 되려 큰 소리를 내었다.

 

 “내가 먼저 한마디 하겠소. 지금은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득세하긴 했지만, 머지않을 것이오. 내 하늘에서 반드시 그 날을 보리다. 이 집안이 어찌 망하는지...”

 “내 뭔 복을 타고 났는가, 부부가 한날 한시에 같이 죽는 복도 나 누리오!”

 

 봉철은 안달이 나서 한 번 더 큰 목소리로 마을 사람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아니 어쩌면 두려움이 이미 그의 맘을 찌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외침 속에서는 분명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 자가 공산당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을 봉께로, 다들 공산당인가 보오? 통비라는 거 모르요?”

 “아... 아녀... 우리는 공산당이 싫소!”

 “그람, 그람, 우리는 공산당은 아니제...”

 “저기.. 저 어르신이 인공기 들고...”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봉철의 칼이 최첨식의 목을 갈랐다. 그리고 놀라 쓰러진 그의 아내의 배를 찔렀다.

 

 “이... 이제.. 그만 혀도 되겄소...”

 

 이미 죽은 지 한참 되었는데 계속 찌르고 있는 봉철을 누군가 만류했다.

 

 “테... 텐찌에... 민나... 헉헉... 교산또데쓰닷!”

 

 봉철은 칼을 버리고 희번득거리는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다 노려봤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누가 봐도 정신이 나가 있었다. 봉석이는 횃불을 들고 따라다니는 게 반가운지 옆에서 박수를 치고 웃다가 이내 측간 쪽으로 가서 한참 앉아있었다.

 

 1950년 10월 13일 저녁의 일이었다. 마을이 일순간에 공산당이 되어 좋다고 한 게 6월이었는데 서너 달 만에 공산당이라는 소리만 들리면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가야 했다. 동네 사람들끼리도 안부를 물어볼 수 없었고, 먹을 것조차 숨어서 먹어야 했다. 동네 인심마저 돌아선 곳이다.

 

 “내... 내일부터섬 경찰이 되가꼬 올랑께 잘들 있으시오...”

 

 봉철은 다음 날 경찰서에 들어가 경찰을 지원했고, 다음날 육군 11사단 20연대 1대대와 함께 담양읍 소탕작전에 나섰다. 짧은 머리에 곰같은 몸집으로 줄곧 최형록 대대장 주변에서 맴돌며 열성적으로 소탕작전에 참여한 끝에 공로를 인정받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밤의 일이다. 혜숙이가 밤에,

 

 "언니 나, 응가~"

 

 혜진인 비몽사몽에 혜숙이를 데리고 나와 측간에 갔다. 창고 옆 측간에서 혜숙이가 끝내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럽다.

 

 "헉!"

 

 봉철이었다. 봉석이도 얼싸덜싸 횃불을 들고 신기한 듯 따라왔고, 그중에 마을 사람들까지 대동하고 온 게 보였다.

 

 "아제, 잠이 오요? 날 그라고 죽일라고 해놓고, 인자 저승길 가야지라!"

 "빨갱이는 즉결 처분해야지라?"

 

 동네사람들이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또다시 말을 끄집어낸다.

 

 "빨갱이 도와주믄 통비아닌갑네?"

 "저기 그라믄..."

 "이 자는 김일성 도당으로 빨갱이 짓을 하며 우리 양민들의 고혈을 짜내어 호의호식하며, 무고한 양민들을 죽이려하였으므로 즉심에 회부하여, 이에 사형을 선도한다."

 

 혜진인 혜숙이의 입을 막고 그 광경을 다 엿보고 있었다.

 

 "니 암말도 말어, 울음소리도 내믄 인자 우리 둘 다 죽어!"

 

 봉철이가 아버지의 입에 쌀 대신 모래를 집어넣고, 옷에 뭔가를 쓴다. 그리고는 긴 칼을 들더니 아버지를 베었다. 그때부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텐지에 민나 교산또데쓰다!"

 

 두려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머리 속엔 오직 자신보다 혜숙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봉철이는 나가다말고 멈칫하더니,

 

 "가만, 여그 딸년이랑 아들놈도 있었는디, 니 어디있는가 보고온나!"

 

 딱 반푼이여서 다행이었다. 봉석이는 혜진, 혜숙이 숨어있는 바로 앞까지 왔었다.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여!”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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