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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하늘
작가 : 훈트리버
작품등록일 : 201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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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작성일 : 16-11-09     조회 : 535     추천 : 0     분량 : 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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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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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던 초목이 그 푸르던

 옷을 벗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다.

 

 스치는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것을 보아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궁궐의 안도 예외는 아니라는 듯 차가운 바람이

 길게 맴돌았다.

 

 동궁전의 어느 곳

 

 차가운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한 사내가 초록의 관복을 휘날리며,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저하..헥....어디...계시옵니까?"

 

 그가 지나간 자리에 초록의 잔영만 남는다는 바람이라 불리는 한내관이었다.

 

  항상 바빠보이는 그였지만 오늘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더 바빠보였다.

 

 한내관은 글썽이는 눈빛으로 지나가는 나인을 붙잡고 말했다..

 

 "자네 세자 저하를 보았는가? 제발 보았다면 알려주시게."

 

 이런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는 듯 나인은 딱하다는 듯한 눈빛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활을 쏘러 가셨.."

 

 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내관은 이미 저만치 사라지고 없었다.

 

 "불쌍도 하시지..."

  나인은 한 내관이 사라진 곳을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

 

 쉬익. . ' 탁 '경쾌하게 공기를 가르는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이어지는 화살들도 원래 자신이 가는 곳은 정중앙이라 말하듯 중앙을 연달아 꿰뚫고 있었다.

 

 "과연..명궁이십니다!!누가 저하의 솜씨를 감히 따르겠사옵니까?"

 

 상당히 약게 생긴 한 사내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

 

 화살을 쏜 사내는 대꾸없이 화살에 살을 먹였다.

 

 그때였다.

 

 "저하 거기 계시옵니까?"

 

 초록의 바람이 소리와 함께 사내를 스쳐지나갔다.

 

 잠시후 초록색 바람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저하....헥...여기 계시면 어찌합니까? 지금은 석강시간이옵니다.헥헥....문학(정5품 세자 교육기관인 세자시강원의 직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내관은 그렁거리는 눈망울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잘 벼려놓은 칼과 같은 날카로운 눈매

 먹을 머금은 듯한 맑은 흑색 눈동자

 그리고 붉디 붉은 입술

 모든 것이 소름끼치게 조화를 이루어 내관인 그가 보아도 반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순간 한 내관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네....누가 왕족의 얼굴을 멋대로 보라고 하였는가?"

 

 냉기를 머금은 서리바람이 이럴까? 냉기를 풀풀 품기는 목소리가 한내관의 귓가에 내려 앉았다.

 

 "주..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벌벌 떨며 엎드린 채 얼마가 지났을까 영겁 같은 침묵 속에서

 작은 웃음과 함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되었다.. 일어나거라 무슨 일이더냐?'

 

 아까의 일은 없었다는 듯 한내관이 눈물을 다시 글썽이며 말했다.

 

 "흑 흑... 저하 지금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석강 시간이지 않습니까 문학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아니 간다 그 골치 아픈 공부를 왜 한다더냐 내 아니 간다고 일러라"

 

 "저하!!!!!아니 됩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모시고 갈 것 이옵니다."

 

 "호오? 자네 나에게 지금 소리친 것인가?"

 

 "아....아니옵니다.."

 

 세자가 입에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 번은 봐주지만 두 번은 안되지 한 내관 내 자네에게 벌을 내리겠네."

 

 한 내관이 큰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저..저하... 저에게는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이 있습니다....아....아니...자식과 아내는 없지만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한 내관을 유심히 바라보던 세자가 입을 열었다.

 

 "흠... 내가 끝이라고 할 때 까지 여기서 눈 감고 있게나."

 

 한 내관은 생각보다 가벼운 처벌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았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잠시후

 

 한내관은 자신의 옆구리 찌르는 손길에 눈을 떴다.

 

 눈뜬 자신을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세자저하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아닌 주인 없이 덩그라니 버려진 활이었다.

 

 "..저하?"

 

 망연자실한 한 내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약게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세자저하께서 아니 가신다라고 전하라 하셨네.

 힘내시게.."

 

 동궁전의 어느곳

 

 세자저하!!!!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초록색의 바람이 하루종일 보였다고 한다.

 

 ***

 

 한내관을 피해 세자 이제(李提)가 도착한 곳은 경회루였다.

 

 항상 마음이 답답할 때 제는 이곳에 들르곤 했다.

 

 주위에 맑게 일렁이는 물들은

 제를 품어주는 듯 하였고,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은 응어리진 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씻어주는 듯 하였다.

 

 "그나마 여기가 낫군.. 이 넓디 넓은 궁궐에서 맘 편히 있을 곳이 여기 뿐인가?"

 

 연못을 바라보던 제는 빠진 것이 생각난다는 듯 소맷자락을 뒤적이다 작은 호리병 하나를 꺼냈다.

 

 "그래 이렇게 심란할 때는 이것이 빠지면 안되지."

 

 경쾌한 '퐁'소리와 함께 마개가 열리자 알싸한 술 냄새가 제의 코를 찔렀다.

 

 술을 마실려는 찰나 부스럭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시선을 제는 느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넓은 경회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은 것인가?

 

 다시금 들려오는 부스럭 소리

 

 고개를 돌려 주위를 천천히 확인해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갑갑했으면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구나."

 

 제가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술을 먹기 시작하자

 

 부스럭 소리와 함께 '어 어 어!!!!!'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검은색 물체가 대들보에서 떨어졌다.

 

 술을 마시던 제는 떨어진 검은 물체에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물체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이제는 환청에 이어 환각인가

 역시 궐안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군..

 

 제는 고개를 돌려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형님!!!!!!!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환각이 말을 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군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제에게 환각이 다가왔다.

 

 "형님 아우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야되지 않습니까? 이 아우 섭합니다."

 

 환각 주제에 제법 시끄럽기까지 하다.

 제는 귀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물렀거라 오늘은 환각따위와 놀아줄 기분이 아니다."

 

 아드득.

 

 제의 손을 환각이 물었다.

 

 "형님 저입니다 충녕입니다 충녕!!!!!"

 

 손가락에 전해지는 아릿한 통증과 함께 제는 충녕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다시금 돌려 환각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을 담은 듯 따뜻한 눈길

 자신을 닮은 짙은 먹색의 눈동자

 분명 자신의 동생인 충녕이었다.

 

 "충녕이로구나 그래 왠일인 것이냐?."

 

 아까전의 환각 취급은 없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형님!!!"

 

 매서운 눈빛과 함께 충녕이 소리쳤다.

 

 "너무하십니다. 아우는 형님께서 근심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근심을 풀어주려 이곳에서 얼마나 기다린지 알고 계십니까!!! 그런 아우를 환각 취급이라니 형님은 정말 ....."

 

 제가 손을 들어 충녕의 입을 막았다.

 가만히 두면 계속 지청구를 날릴 것이 틀림없다.

 

 "시끄럽다 충녕 경치 보는 데 방해되지 않느냐.. 네 마음은 충분히 받았다."

 

 읍읍 소리와 몸부림을 치던 충녕이 벗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

 

 "후....제가 형님 덕분에 못 살겠습니다. 그리고 술을 드실 때 무엇인가 같이 드셔야 몸이 상하지 않는다고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말을 마친 충녕은 소매에서 편육을 꺼내 제에게 내밀었다.

 

 "시끄럽다. 고기만 찾는 너에게 들을 얘기는 아닌 것 같구나. "

 

 제가 다시금 소매를 뒤적거리자 술잔이 나왔다.

 이내 기분 좋은 술잔이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좋은 음식도 생겼고 나를 걱정해 주는 아우도 있으니 기분이 풀리는구나 한 잔 하겠느냐?"

 

 충녕의 앞에 가득찬 술잔이 다가왔다.

 

 좋은 경치에 오랜만에 형님과 마시는 술이라

 좋다.

 

 하지만 자신에게 술을 쓴 맛이 없는 음료일 뿐 아니라 자신은 술이 약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충녕은 다가온 술잔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충녕을 살짝 흘기며 제가 술잔을 다시 자신의 쪽으로 가져왔다.

 

 "아직도 잘 마시지 못하는 것이냐? 마시지 말거라 억지로 권하지는 않겠다.

 오랜만에 동생과 한 잔 하려고 했건만...."

 

 "아닙니다!!저 마실 수 있습니다. 형님."

 

 제의 손에서 낚아챈 술잔을 다시금 바라보며 충녕은 생각했다.

 

 '형님이 오랜만에 권하신 것인데....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극복할 수 있다.'

 

 이내 맘을 굳힌 충녕이 술을 입에 털어놓았다.

 

 알싸한 향이 코를 파고들고 화끈한 열기가 목을 넘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생각보다 달다 .

 

 역시 예전에 내가 아니다.

 

 자신감을 얻은 충녕은 술잔을 잡은 두 손을 제에게 내밀었다.

 

 "형님 보십시오 잘 마시지 않습니까? 오늘따라 맛있는 것 같습니다. 한 잔만 더 주십시오."

 ***

 "하하하하 혀어어어엉님 한 잔 더 주십시어 아우 아직 멀쩡합니다."

 

 혀가 꼬부러 지는 소리와 함께 충녕의

  몸이 비틀거렸다.

 

 말리던 제의 손을 뿌리치고 더 마실 수 있습니다를 외친 지 반시진도 채 되지 않았건만

 

 반시진(한시간)이라는 시간은 술이 충녕의 몸을 잠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충녕의 하얀 얼굴에 연분홍 빛 꽃들이 수를 놓았다.

 

 비록 빙글빙글 돌고 어지럽기는 하지만

 나른한 몸상태가 좋았고,

 

 무겁기만 했던 몸이 날아다니는 새가 된 듯 가벼워 좋았다.

 

 그리고 더욱이 할 수 없었던 말을 할 수 있는 듯한 용기가 생겨 좋았다.

 

 이래서 술을 마시는구나 라고 충녕은 생각했다.

 

 "미안하다 충녕 내가 너를 너무 많이 마시게 하였구나 그만 마시거라."

 

 제의 물음에 충녕이 비틀거리며 대답했다.

 

 "형님 취하셨습니까? 왜 이렇게 비틀거리십니까? 저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말과는 다르게 많이 취한듯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더욱이 입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듯 계속 말을 이었다.

 

 "형님 전 말입니다.. 형님이 정말로 부럽습니다.잘난 형님도 부럽지만 왕세자라는 그 자리가

 너무나 부럽습니다.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자리에는 앉지 못하지 않습니까?...하하 세상이 참 웃깁니다 하하하."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충녕은 몰랐다.

 그저 몰려오는 졸음에 이겨내기 위해 계속 말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을 이길 수는 없다는 듯 충녕의 의식은 끊임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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