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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하늘
작가 : 훈트리버
작품등록일 : 201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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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기억들
작성일 : 16-11-09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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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전

 

 따스한 봄바람이 산천을 포근하게 감싸안았다.

 

 만개한 봄꽃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저자(시장)를 가득 메웠다.

 

 흩날리던 봄바람의 편린들이 사뿐히 내려 앉았다.

 

 만개한 봄꽃의 향기가 가득찬 저자 한 구석의 점포

 앞에서 제와 한 사내가 실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숙부 저는 저 단검을 사야합니다."

 

 제의 말에 무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됩니다. 저하께서 검이라니요?

 위험합니다."

 

 단호한 것이 자신의 외숙부가 확실했다.

 

 제는 고개를 돌려 단검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단검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정감이 가는 물건..

 

 포기할 수는 없다.

 

 제가 눈빛에 물기를 머금으며 말했다.

 

 "외숙부 정녕 사주지 않을 것입니까?"

 

 "절.대.로 아니 됩니다.왜 하필 검입니까 ?그것도 두 개나.. 차라리 다른 것을 말씀하신다면 사드리겠습니다."

 

 제가 단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단검 가진 자를 지켜준다고 하였단 말입니다."

 

 "그걸 믿으십니까? 다 상술입니다. 그러니 안됩니다."

 

 제가 고개를 떨궜다.

 

 내가 너무 심했나..

 

 무구는 미안한 마음에 제에게 다가갔다.

 

 무구가 다가갈 때 돌연 제가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제가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함께

 무구에게 안겼다.

 

 "외 숙부우~~ 정말로 정말로 사주지 않을 것입니까? 응 응?? 정말 안 사주실 겁니까?"

 

 제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는 민무구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아....아니.... 사줄...것 입니다."

 

 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무구의 손은 의지를 배반하듯 이미 계산을 치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물건을 건내는 경쾌한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구는 자신이 또 영악한 자신의 조카에게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역시 저를 이렇게 생각해 주시는 것은 숙부 뿐입니다. 주십시오!! 제가 들겠습니다. "

 

 제는 뒤꿈치를 세운 채 팔짝팔짝 뛰었다.

 

 무구는 고개를 돌려 다시 검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검이라... 장사치의 입발린 소리임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위험한 검이다.

 제가 아무리 조르더라도 사주는 것이 아닌데.....

 

 "숙부~ 숙부~ 무슨 생각하십니까? 저는 말입니다. 사실 숙부가 제일로 좋습니다."

 

 무구가 검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 제가 자신의 두팔을 병아리처럼 파닥이며 말했다.

 

 무구의 입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장사치의 입발린 소리면 어떻고 조금 위험한 검이면 어떠랴 이렇게 자신의 조카가

 기뻐하는 것을 ....

 

 무구는 제의 손에 칼을 꼭 쥐어주며 말했다.

 

 "저도 저하가 참 좋습니다.. 대신 저랑 약조 하나만 해주시지요. 항상 지금처럼만 웃어 주십시오

 지금 모습을 잃지 말아 주십시오. 약조하시겠습니까?"

 

 "약조하겠습니다.숙부"

 

 봄바람을 닮은 따뜻한 미소가 제의 얼굴에 피어났다.

 ***

 어둠이 깔린 시간

 

 제는 동궁전(궐내 세자의 영역)의 침소에 앉아 낮에 산 단검을 바라보았다.

 

 '이 검으로 말하자면 검을 지닌 자를 보호해주는 수호검 입죠 한 자루로도 효과는 괜찮지만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 선물로 같이 지니고 있으면 그 사람의 염원 덕에 효과가 더 뛰어납죠.'

 

  어린 나이의 제가 들어도 믿지 않을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허나 싫지는 않았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정적으로 가득 찬 방에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들어왔다.

 

 한 내관이었다.

 

 "저하 소인 한내관이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라"

 

 한 내관을 슥 훓어보던 제가 물었다.

 

 "그래 어인 일인가? ."

 

 "주상전하께서 저하를 보고싶다 하십니다."

 

 "그래? 알겠다 채비를 하고 나가겠다."

 

 한 내관이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제의 소리에 한내관이 걸음을 멈추었다.

 

 "내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 단검이 어떠하느냐?"

 

 한 내관 앞으로 단검 두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내관은 단검과 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세자저하께서 저리 눈빛을 반짝이는 것을 보아

 칭찬하는 것이 맞으리라.

 

 "매우 예쁘옵니다 전하."

 

 원했던 답이 아닌 것일까? 제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금 물었다.

 

 "내 다시 묻겠다 솔직하게 대답하거라 단검들이 어떠하느냐?"

 

 한내관은 잠시 고민했다.

 

 투박하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것인가?

 

 "저하 진정으로 솔직하게 말하옵니까?"

 

 "그럼 나에게 거짓을 고할 것이냐?"

 

 그래..솔직하게 말하라 하셨다. 무슨 일이 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

 

 이윽고 한내관이 입을 열었다.

 

 "저하 소신이 볼 때 단검들이 매우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입니다."

 

 "......"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제의 입안에서 정적을 깨는 '뿌드드득'소리가 들렸다.

 

 "한..내관.. 내 검들이 투박하단 말이지..

 내 잘 알겠네.."

 

 말이 끝나자마자 쾅하고 문을 닫고는 나가버렸다.

 

 

 "......?"

 

 한 내관이 머리를 긁적였다.

 

 "혹여 제가 실수라도 하였습니까?"

 

 "자네......고생하시게.."

 옆의 동료 내관이 한내관의 어깨를 두드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닐세.."

 

 한 내관은 알지 못했다 이로 인해 얼마나 자신이

 

 세자에게 미운털이 박혔는지... 이 미운털이 얼마나 지속 되지를..

 

 

 

 ***

 "한내관은 정말 바보다 바보야!"

 

 제는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강녕전(왕의 침전)으로 옮겼다.

 

 이내 강녕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바마마께 내가 왔다고 이르게."

 

 "예 저하"

 

 제의 명령에 내관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저하 세자저하께서 뵙기를 청하옵니다."

 

 "들라하라."

 

 묵직한 목소리가 강녕전을 메웠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

 

 안으로 들어온 제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자신의 아버지의 눈이었다.

 

 자신과 같은 묵색이건만 지독하리만치 시린 짙은 묵빛.

 

 몇번을 보아도 적응 되지 않을 시린 눈빛이 제를 처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제의 몸을 옭아메었다.

 

 제는 가만히 시선을 바라보았다.

 

 이 지독하리 만큼 시린 눈빛이 곧 바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자신을 꿰뚫던 시린 눈동자는 이내 자신을 포근히 품어주는 따뜻함으로 바뀌었다.

 

 "세자 왔는 것이냐? 내 너를 얼마나 기다린 지 모른다."

 

 왕이 두팔을 크게 벌렸다.

 

 "세자 이 아비 품으로 안기거라. 어서 안기거라."

 

 왕의 명에 제는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마냥 쪼르르르 달려가 왕의 품안에 쏙 안겼다.

 

 왕이 자신의 품의 제를 꼬옥 안으며 말을 이었다.

 

 "세자 내 세자가 짧은 시간이 중용을 다 배웠다 들었다. 벌써 중용을 다 배웠다니 세자는 누구를 닮아 이렇게

 영민 하느냐."

 

 제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아바마마를 닮아 그렇사옵니다."

 

 "하하하하."

 

 왕의 호탕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그래 그래 그건 그렇고 세자 궁궐 생활은 어떠하느냐? 맘에 드는 것이냐?"

 

 세자 책봉후 궁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세자를 걱정해 물은 말이었다.

 

 "아바마마 소자 궁이 불편하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이냐."

 

 제를 바라보는 왕의 눈빛이 깊어졌다.

 

 "실은...."

 

 제가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궁에는 토끼가 없습니다."

 

 왕의 눈빛이 돌연 탁 풀리고 말았다.

 

 세자가 말 못할 고민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알았건만

 그것이 겨우 토끼 때문이라니..

 

 왕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쓸 데 없는 기우였군..

 

 "토끼라면 이 아비가 얼마든지 잡아주겠다 염려말거라."

 

 "정말입니까? 역시 아바마마십니다."

 

 왕의 말에 제가 폴짝폴짝 뛰었다.

 

 폴짝 폴짝 뛰던 제가 돌연 왕의 소매를 잡었다.

 

 "아바마마 또 불편한 것이 있사옵니다."

 

 "그래 무엇이더냐?"

 

 그럼 그렇지 설마 토끼때문이랴?

 누군가 괴롭히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지 누가 감히 이 나라의 세자를 괴롭히겠는가?

 그럼 무엇인가?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궁에는 숙부와 숙부의 가족들을 잘 보기 힘듭니다. 소자 숙부와 있는 것이 편하옵니다."

 

 제의 말에 왕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공기가 급격히 무거워져 제의 어깨를 눌렀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걸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 것일까?

 

 잠시간의 정적 후 왕이 입을 열었다.

 

 "세자 아비가 피곤하니 그만 나가보거라."

 

 갑작스런 축객령에 제는 고개를 갸웃하다

 짧은 인사를 올리고 걸음을 옮겼다.

 

 ***

 침묵이 무게가 되어 강녕전의 공기를 무겁게 내리 눌렀다.

 

 제가 나간 강녕전 안

 

 왕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일렁이는 촛불이 신경 쓰일 법도 하건만

 촛불을 바라보는 왕의 얼굴에는 한 치의 움직임도 없었다.

 

 흔들리는 촛불은 심지를 타닥타닥 태우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왕은 무심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심한 표정과는 다르게 왕의 속마음은 일렁이는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외가' '외숙부' '민무구'

 

 세자가 말한 이 말들이 머릿속을 쉼 없이 맴돌고 있었다.

 

 왕이란 무엇인가?

 

 따르는 많은 권력만큼이나 막중한 의무와 책임이 따랐다.

 

 그 의무에는 비정함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를 사랑하되 그 누구도 특출나게 사랑치 말아야 했다.

 

 그것은 자신의 피붙이라도 마찬가지 였다.

 

 공정치 않으면 한쪽의 힘이 실리고 그 힘은 곧 파벌이 되어 자신의 숨통을 조여왔다.

 

 하여 자신은 자신의 피붙이마저 다 제거했다.

 

 왕이란 그래야 한다.

 

 마찬가지로 왕의 준비 단계인 왕세자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기에 세자는 어리다.

 

  때가 되어 이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하여도

 자신은 자신의 아들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다.

 

 "세자.... 더럽고 추잡한 것은 이 아비가 다 하지요.... 세자는 좋은 것 좋은 것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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