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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하늘
작가 : 훈트리버
작품등록일 : 201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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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내리는 밤
작성일 : 16-11-09     조회 : 314     추천 : 0     분량 : 4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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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녕전에서 나온 제는 터벅터벅 자신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님께서 왜 그런 것일까?"

 

 제의 고운 이마가 찡그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한 듯 싶었다.

 

 역시 토끼때문인가.....?

 

 하.... 모르겠다 모르겠다.

 

 제는 생각을 털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털었다.

 

 얼마나 걸은 것인가?

 

 생각을 했을 때는 강녕전이었건만, 어느새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의 처소가 보였다.

 

 "저하 주상전하는 잘 뵙고 오셨습니까?"

 

 한 내관이 미소를 지으며 제를 반겼다.

 

 "그래 잘 뵙고 왔다네 한 내관 오늘따라 자네가 보고 싶었네."

 

 자신을 보고 싶단 말에 한 내관은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하... 내 오늘은 피곤하니 일찍 침소에 들겠네..그럼 고생하시게나."

 

 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한 내관에게 날리곤 발걸음을 옮겼다.

 

 저하께서 왜 저러시는 걸까..?

 불안하군 불안해.

 

 ***

 풀벌레 소리만이 고요하게 내려앉는 밤

 

 주위의 고요와는 다르게 동궁전의 뒷편 담장에는 쿵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구구..... 아파라. 담이 쓸 데 없이 높구나."

 

 제가 자신의 엉덩이를 문지르며 나지막히 말했다.

 

 "훈 걔 있느냐?"

 

 부름과 동시에 검은 장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칼로 베어낸 듯 선명한 만월(滿月)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따라 달이 매우 밝지 않느냐?"

 

 "달이 밝은 것은 사실이오나 이 야심한 밤에 월담이라니 아니되십니다."

 

 제가 고개를 돌려 훈을 바라보았다.

 

 "내 오늘 근심이 가득해 답답한 궐에 못 있겠다. 내 숙부집으로 가겠다."

 

 제의 황당한 말에 훈이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동궁전에서 벗어 나신 것도 큰 일이온데 월궁을 하시겠다니요?

 아니되옵니다."

 

 "시끄럽다. 내 가겠다 말리지 말거라."

 

 훈이 제의 앞을 막아섰다.

 

 "차라리 신을 죽이고 가시옵소서."

 

 "후....."

 

 제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역시나 허락 받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호한 훈의 대답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랄까?

 

 "정말로 안 되느냐.....? 내 오늘 정말로 답답하여 버틸 수가 없구나....."

 

 제가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거리며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그렇게 우셔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쳇"

 

 이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방법이다.

 

 제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하였구나. 허.나 너희 익위사의 임무는 나의 명에 따르고 나를 호위하는 것이 아니더냐? 비록 네가 나를 막아 나의 몸을 호위할지라도 오늘 나가지 못 해 썩어가는 내 마음은 어떻게 지킬 것이더냐? 너는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느냐?"

 

 훈은 어이가 없었다.

 

 세자의 말은 궤변이었다.

 

 하지만 오늘 자신이 호위하지 않는다면 계속 월궁을 시도하리라.

 

 곧 훈은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이번 한 번만 나가시는 것입니다."

 

 제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훈의 손에 걸며 말했다.

 "내 약조하겠다."

 

 "정말 이번 한 번만이옵니다."

 

 "그래 내 약조한다 하지 않았더냐?"

 

 훈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불안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이런 일이 이번이 끝이 아니라고 말하듯이....

 

 ***

 잠시후

 

 궐의 담을 넘어 얼마나 걸었을까?

 

 앞서 걷던 제는 갈림길에서 그 걸음을 멈췄다.

 

 제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멋적은 듯 크게 웃었다.

 

 "훈아 내 길을 잊어버렸다."

 

 "........"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제가 입을 열었다.

 

 "아!! 갑자기 기억이 나는 듯하다."

 

 제가 훈의 손을 이끌었다.

 

 "왼쪽이다 왼쪽."

 

 얼마간의 걸음 끝에 훈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

 

 제의 외숙부 민무구의 집이 아니라 풀벌레 소리 가득한 호수의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저하 왼쪽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훈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허나 여기도 나쁘진 않구나"

 

 제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달빛은 품은 호수는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바람이 쓰다듬는 초목들은 보기 좋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는 막혔던 가슴이 탁 트임을 느꼈다.

 

 "저하 이제 가셔야 하옵니다."

 

 "벌써 말이냐? "

 

 분위기를 깨는 것에는 무엇인가 있다.

 어찌 이렇게 파악을 못하는지...

 

 "알겠다 채비 하거라"

 

 어깨를 축 늘인 제가 걸음을 옮겼다.

 

 그때 였다.

 

 "흐윽...흐윽......,......흐으으그.."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낮은 귀곡성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훈아?? 무슨 소리 못 들었느냐?"

 

 훈의 옷깃을 꽉 잡은 제가 물었다.

 

 "들었사옵니다."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훈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저 나무 밑에서 소리가 난 듯합니다."

 

 훈이 자신의 허리 춤의 칼을 꺼내며 나무 밑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저하 물러 가심이 옳은 듯...."

 

 "저 나무 밑으로 가보자꾸나."

 

 마주친 시선은 서로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나보다.

 

 "흐윽....흐그그극...."

 

 또다시 귀곡성이 낮게 깔렸다.

 

  울음소리가 다시 깔리기가 무섭게 제가 그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저하!! 아니 되옵니다. 가시면 아니되옵니다."

 

 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훈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제는 빠르게 빠르게 소리를 찾아 그 걸음을 옮겼다.

 

 ***

 잠시후

 

 나무와 조금 떨어진 무성한 풀숲 안

 

 훈과 제의 머리가 풀숲을 뚫고 그 모습을 빠금히 드러냈다.

 

 "저하 돌아가셔야 합니다. 무슨 변고가 생길 지 모릅니다."

 

 제를 쫓아 풀숲으로 들어온 훈이 목소리를 높혔다.

 

 "조용히 하고 저기를 보거라."

 

 제는 자신의 입에 검지를 댄 채 나무밑을 가리켰다.

 

 밝은 달빛이 비추는 나무 아래에는

 달빛을 머금은 하얀색의 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울고 있었다.

 

 풀숲에 숨어 소녀를 훔쳐 보던 제가 고개를 돌려 훈을 바라보며 작게 소근거렸다.

 

 "무슨 연고로 저런 어린 소녀가 우는 것인가?"

 

 "저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왜 이런 야심한 시간에 이런 곳에서 울고 있는 것일까?

 

 제가 몸을 일으켰다.

 

 "저하 어디 가시옵니까?"

 

 "저기 소녀가 울고 있지 않느냐?"

 

 "아니 되옵니다. 저 소녀가 무엇인지 알고 가시려는 것입니까?"

 

 "내 사내된 도리로 우는 여인을 지나치지 말라 배웠다. 하물며, 나는 세자가 아니더냐?

 우는 내 백성이 있는데 어찌 지나가겠느냐?"

 

 제가 풀숲을 헤치고 나무로 다가갔다.

 

 "후.....저하...........저도 모르겠사옵니다."

 

 한숨을 쉬던 훈도 제의 뒤를 뒤따랐다.

 

 ***

 제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 밑의 소녀는 제가 옆에 온 지도 모르고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다가온 제가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의 별을 담은 듯 맑고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붉디 붉은 입술

 

 눈꽃을 갈아놓은 듯 새하얀 피부

 

 비록 눈물에 젖어있지만 눈물은 그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했다.

 

 제는 손을 뻗어 소녀의 눈물을 훔쳤다.

 

 "울지 말거라 무슨 연고로 얘서 울고 있느냐?"

 

 눈가에 스치는 낯선 손길에 소녀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야심한 밤 낯선 사내의 손길에 놀랄 법도 하건만 소녀는 오히려 제를 흘겨보았다.

 

 "치워!!! 누구 마음대로 내 얼굴에 손을 대냐?"

 

 소녀가 제의 손을 탁 치며 말했다.

 

 "감히......네가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이리 무례하게 구느냐?"

 

 제가 흥분한 훈을 손을 들어 제지했다.

 

 "되었다. 내가 먼저 잘못하였으니 그만하거라."

 

 제가 미소를 지으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래 왜 울고 있는 것이냐? 내게 말해보거라 내 들어줄 것이다."

 

 이내 소녀의 입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야!!!!!! 너 나 언제 봤냐? 어디서 친한 척이야? 내가 여기서 울던 웃던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그게 아니지 않느냐? 나는 네가 구슬피 울길래.. 달래주려했......"

 

 제의 말이 미처 끝나기 전 소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누가 멋대로 내 얼굴에 손 대라고 했냐? 내가 네거야? 어??? 또 더냐 ~하더냐?

 어디 있는 집 자식이라도 되는 모양인데 보기 싫으니 갈 길 가라?"

 

 말을 마친 소녀는 발걸음을 돌렸다.

 

 "잠깐 기다리거라!!"

 

 제가 돌아서는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짧지만 강렬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짝'

 

 제는 자신의 빰에 알알한 통증과 함께 후끈한 열기를 느꼈다.

 

 이제까지 맞아본 일이 없는 제에게 생소한 느낌이었다.

 

 "네 이년!!!!!!!! 지금.... 지금 누구를 친 것이냐? 네 년이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구나"

 

 훈이 자신의 칼을 뽑아 외쳤다.

 

 "멈추어라!!!!!!! 내 너에게 멈추어라 하였다.

 "허나.. 저 계집이..."

 

 제가 훈을 저지한 후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마음대로 손을 대었구나 미안하다 미안하구나."

 

 제의 사과에 소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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