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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하늘
작가 : 훈트리버
작품등록일 : 201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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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엉키다
작성일 : 16-11-09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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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가 떠난 뒤

 

 두 사람은은 소녀가 떠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로 다른 이유의 이유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훈이었다.

 

 "저하..."

 

 훈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신 죽여주시옵소서.. 저하의 예체(세자의 몸을 높힌 말 옥체는 왕이다.)를 지키지 못하였나이다."

 

 소녀가 떠난 곳을 응시하며 제가 입을 열었다.

 

 "일어나거라 네 탓이 아니다. "

 

 "저하!! 익위사로서 저하를 지키지 못했나이다. 소신을 처벌하여 주시옵소서."

 

 제는 난감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지나치게 우직하구나..

 좋은 방법이 없을까..

 

 제는 좋은 방법이 떠오른 듯 훈을 바라보았다.

 

 "내 너를 벌하겠다. 각오는 되어 있느냐?"

 

 "무엇이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훈이 담담한 어조로 제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도통 짐작은 할 수 없었으나

 무슨 처벌이라도 달게 받으리라..

 

 "다음에 나올 때도 나를 잘 호위하거라 이게 네 처벌이니다."

 

 제의 목소리에 훈이 벌떡 일어났다.

 

 "잘못 들었사옵니다."

 

 "다음번에도 잘 부탁한다고 하였다."

 

 훈이 눈을 땡그랗게 떴다.

 

 처벌을 내려달라 하였는데

 다음에 나오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한단다.

 

 큰 처벌을 기다리던 훈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저하께 제대로 된 처벌을 바란 자신이 잘못이지.

 

 이내 훈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것은 처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상한 반응인 듯 제의 입꼬리의 한 끝이 올라가며 반문했다.

 

 "훈아."

 

 "......."

 

 불길한 기운이 훈의 온 몸을 강타했다.

 

 "네가 어떤 처벌도 따른다고 하지 않았더냐. "

 

 "차라리 처벌을 내려주십시오."

 

 "이게 내 처벌이다."

 

 "따를 수 없습니다."

 

 무척이나 당당한 목소리에 제는 다시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따를 수 없느냐?"

 

 "차라리 처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명.이.다."

 

 제의 끊어지는 목소리가 훈을 짓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의 말

 

 "또한, 내가 내린 처벌에 복종치 않았으니 그것도 죄를 물어 하나의 처벌을 더 내리겠다."

 

 자연스럽게 늘어난 처벌에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또 어떤 처벌입니까? 처음부터 이것을 노린 것이 아니십니까?"

 

 "네 눈엔 내가 그렇게 부덕한 자로 보이는가?"

 

 "......"

 "왜 대답이 없는 것이냐..어찌 되었던 너에게 처벌을 내리겠다."

 

 훈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되었던 자신은 꼬리처럼 따라 붙은 하나의 처벌을 더 받으리라.

 

 "..달게 받겠습니다."

 

 "방금 그 소녀에 대해 조사해 오거라."

 

 "그 소녀가 어디사는 누군지 알고 조사해 오라 하십니까?"

 

 "하여 내가 처벌이라 하였지 않았느냐?"

 

 훈이 엉킨 실타래 같은 머릿 속을 간신히 부여 잡은 채 말을 이었다.

 

 "소신이 찾기는 찾겠사옵니다. 허나 그 소녀는 저하와 무관한 자이지 않습니까?

 득 될 것이 없는 일이옵니다."

 

 "무관하지 않다. 내 뺨을 때린 여인이지 않더냐? 그리고..."

 

 제는 과거 외가에 살적 기억을 떠올렸다.

 

 아끼던 매가 죽어 슬픔에 빠져있을 때

 

 숙부가 다가와 자신의 눈물을 훔쳐 달래며 말했다.

 

 "저하 슬프시옵니까? 모든 사람은 슬프면 안으로든 밖으로든 눈물을

 흘립니다. 안으로 흘리는 눈물은 어쩔 도리가 없지만 밖으로 흘리는 눈물은 이렇게

 닦아 줄 수 있사옵니다.그러니 저하께서는 눈물을 흘리는 자가 있다면 달래 주시옵소서"

 

 그때부터였다.

 `

 제는 눈물을 흘리는 자를 지나치지 못했다.

 

 울던 그 소녀도 필시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내 백성이다. 이 이상의 무슨 이유가 필요 있느냐?"

 

 훈이 깊게 가라앉은 눈매로 제를 쳐다보았다.

 

 "...명령 받잡겠나이다."

 

 "그래..비록 표현방식이 잘못 되었지만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내 그 아이의 눈물을 그치게 할 것이다."

 

 제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슬피 우는 바람이 달만이 걸려있는 하늘에 멤돌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품어달라는 것 처럼..

 

 쓸쓸한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제가 고개를 돌려 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가자꾸나"

 

 ***

 제와 훈이 호수에 도착하기 몇시진 전

 

 짙푸른 달빛이 비가 되어 한양을 적셔갔다.

 

 달빛이 유난히 비추던 한양 중추부사(종2품의 벼슬) 곽선의 짚 안,

 

 한 무리의 여인들이 한 소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휼, 네 이년 천민이면 천민답게 알아서 기어야 되지 않겠느냐?"

 

 "......"

 

 "호오? 대답도 안 한다라? 네 이년이 맞아야 대답을 할 것이냐?"

 

 '짝' 높고 알싸한 기운을 품은 소리가 퍼져나갔다.

 

 어린 소녀의 힘이 맞는 것일지 의심이 될 정도로 어린 소녀의 손찌검은 매서웠다.

 

 "......."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이다.

 이들이 이러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니

 곧 제 풀에 지쳐 돌아가리라.

 

 휼이 자신을 애써 위로하고 있을 때

 

 또 한 번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익숙한 알싸한 통증과 함께 비릿한 혈향이 자신의 입안에서 느껴졌다.

 

 "이년이 아직도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냐? 내 오늘은 너를 요절낼 것이다."

 

 순간 휼의 머릿 속에서 한 가닥의 무엇인가가 '뚝'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습니까!!!"

 

 소녀가 어이가 없다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하....? 이년이 드디어 실성했나? 어디서 소리를 지르느냐?"

 

 "맞을 때 맞더라도 그 이유라도 알고 맞겠습니다. 제 잘못이 무엇입니까?제가 무엇을 그리 잘못하였습니까!!"

 

 북받친 서러움을 토해내듯 휼이 소리쳤다.

 

 "풉......푸하하하"

 

 터져나온 웃음을 멈춘 소녀가 말을 이었다.

 

 "네년은 개미를 밟을 때 죄책감을 느끼더냐? 네년은 나에게 있어 그저 개미와도 같은 존재다."

 

 "어찌 사람을 개미와 비교하십니까?"

 

 "더러운 기생년의 몸뚱아리에서 나온 천 것이 사람이더냐? 난 네년이 이 집안의 식구라는 것에

 속이 뒤집힐 것 같구나."

 

 소녀는 휼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내 눈앞에 다시는 띄지 말거라 알겠냐?"

 

 자신의 뺨에 묻은 침을 닦아낸 휼이 소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아씨 겉만 양반이면 양반입니까?"

 

 "방금 무어라 지껄였느냐?"

 

 "껍데기만 양반이면 양반이냐 아룄습니다."

 

 휼의 뺨을 향해 다시 손이 날아왔다.

 

 하지만 그 손은 휼의 손에서 갈 방향을 잃었다.

 

 휼이 말을 이었다.

 

 "하찮은 소녀에게 과분한 관심은 그만두시고 이럴 시간에 부족한 아씨의 인성을 쌓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아니? 네년이 감히.."

 

 휼이 잡은 손을 놓고 걸음을 돌렸다.

 

 몇걸음 채 가지 않았을 때 휼이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 또 잊은 것이 있습니다. 천한 소녀보다 용모가 떨어지는 것은 개미보다도 못한 것 아닙니까?"

 

 "네년!!!!!!!"

 

 자신의 머리를 쥐어채려는 손을 가뿐히 피한 휼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무시한 채

 

 자신의 걸음을 옮겼다.

 

 ***

 

 집을 나온 휼은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즈음 걸음을 옮겼을까?

 

 자신이 자주 오던 호숫가가 보였다.

 

 휼은 나무 아래에 앉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곧 휼의 눈동자의 습기어린 하늘이 담겼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시리도록 푸른 달만이 물에 잠긴 듯 그 형체를 일그리고 있었다.

 

 저 외로워 보이는 하늘이 자신의 신세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저 달만 걸려있는 외로운 하늘에 따뜻한 바람 한 점 불었으면 좋았을 텐데...

 

 '뚝,뚝'

 

 따뜻하지만 서러운 물방울이 한이 되어 휼의 손등에 떨어졌다.

 

 휼 울면 안된다.

 

 다짐과는 다르게 가슴이 언저리가 뜨거워지며,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울..면 안 돼.

 

 휼은 자신의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배반하듯 묵혔던 서러움이 한이 되어 흘러내렸다.

 

 "흑.....흐...흑........."

 

 얼마 즈음 울었을까?

 

 "울지 말거라 예서 왜 울고 있는 것이냐?"

 

 자신의 눈가에 느껴지는 따뜻한 손길에 휼은 고개를 들었다.

 

 이내 눈물로 어룽진 휼의 눈가에 따뜻한 소년의 모습이 맺혔다.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소년의 모습이..

 

 휼은 실로 오랜만에 따뜻함이란 감정을 느꼈다.

 

 얼마만인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기억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자신이 느낀 시선은 경멸어린 차가움이었다.

 

 어머니께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을 삼킨 서러운 울음 뿐

 

 어릴 적에는 어머니의 그 울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어머니를 슬프게 했다고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점차 커감에 따라 모든 시선의 원인이 자신의 신분임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얼녀(양반과 노비사이의 아이)라서 양반의 탈을 뒤짚었지만 그 실상은 노비보다 못 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외면만을 보고 따뜻함을 준 사람들도 똑같았다.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자

 

 눈동자의 어린 시선은 경멸로 바뀌었다.

 

 이 소년 또한 마찬가지리라

 

 그리하여, 일부러 일부러 매몰차게 말했다.

 

 그리고 과할 정도로 손을 썼다.

 

 '이만하면 정나미가 떨어졌겠지..어차피 너도 나를 알게 된다면 똑같겠지..'

 

 속마음을 되삼킨 휼은 뒤로 돌아섰다.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을 털어버리려는 듯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미안하구나. 내 함부로 손을 대었구나 미안하다."

 

 소년의 말과 함께 따뜻한 한 줄기의 바람이 불었다.

 

 휼이 귓가에 스치는 따뜻함에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외로운 하늘을 포근히 품는 바람이 보이는 듯 하였다.

 

 ".....보기 좋네."

 

 문득 하늘을 보던 시선을 내린 휼이 짧게 읊조렸다.

 

 그리곤 멈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이제는 볼 일이 없겠지.. 돌아가야지..

 

 하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이 어찌 이리 무거운 지 모르겠다.

 

 어이 이렇게 가슴 한 켠이 아릿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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