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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하늘
작가 : 훈트리버
작품등록일 : 201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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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리 찜찜한 것이더냐
작성일 : 16-11-09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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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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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하.. 어디가셨습니까..흑...."

 

 동궁전의 침소 앞 한 내관이 한 손에는 서한을 든 채 흐느끼고 있었다.

 

 흐느끼던 한 내관은 어룽진 눈가를 소매로 쓱 닦은 후 다시금 서한을 펼쳐보았다.

 

 '잠시 답답하여 바람만 잠시 쐬고 오겠네..아바마마나 다른이들에게는 반.드.시.함구하게나.'

 

 흰 종이 사이로 상당히 글 쓰는 것도

 귀찮다는 듯 휘갈겨 적은 글씨사이로

  제의 얼굴이 겹처보이는 듯 하였다.

 

 "저하...어쩌시자고.."

 

 자신이 서한을 발견한지 이미 한 시진이 지난 시간..

 

 설마? 세자저하께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어디라도 다치신 것은 아닐지?

 

 누구에게 보쌈이라도 당하신 것이 아닐까?

 

 한 내관의 머릿 속으로 최악의 사건들이 휙휙 지나갔다.

 

 그렇게 된다면..필시 자신도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안 돼!! 내 지금이라도 당장..."

 

 한 내관이 소리치며 뛰쳐나가려는 그때.

 

 덥썩.. 서늘한 무엇인가가 한내관의 허릿춤을 잡았다.

 

 "......누..누구십니까?"

 

 "....."

 

 허리를 잡는 서늘함이 힘을 더했다.

 

 "지금 어디를 가는 것이냐?"

 

 느껴지는 서늘함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앳되지만 위엄있는 목소리 이런 목소리를 가진 자는 하나 뿐이리라

 

 "세..세자 저하?"

 

 고개를 돌린 한 내관의 눈 앞에는 제가 입꼬리를 뒤틀고 있었다.

 

 "정녕 세자저하십니까?"

 

 한 내관이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세자가 두 명이 있더냐?"

 

 제가 날이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날이 선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다행입니다..다행입니다."

 

 한 내관이 그렁이는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저하...제가 얼마나 걱정했는 지 알고 계십니까?"

 

 "내 그리하여 서한을 남기지 않았더냐?"

 

 제가 한 내관의 손의 서한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렇게 언질도 주지 않고 서한만 남기고 나가시는 것이 어디있사옵니까?"

 

 "......"

 

 제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이리라

 

 "저하..저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자들이 많사옵니다. 그것만은 기억해 주시옵소서."

 

 한 내관이 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 너에게 걱정을 끼쳤구나."

 

 제가 따스히 한 내관을 감싸 안았다.

 

 그때였다.

 

 돌연 제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한 내관?? 그런데 말이다. 내가 왔을 때 어디로 그렇게 발걸음을 급히 옮겼나?"

 

 "......."

 

 "왜 대답하지 못 하는가? 혹여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간 것은 아닐게야? 난 자네를 믿네."

 

 제의 서리낀 웃음에 한 내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저하 그것이 소인은 저하께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염려되어.."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 내관을 바라보던 제가 돌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내 자네를 믿었건만.. 자네는 나를 믿지 못 하는 것이구나.."

 

 "아닙니다 저하 소신 저하를 믿사옵니다!"

 

 한내관의 대답에 제가 눈가를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도 나를 믿는다고 약조하겠느냐?"

 

 "예 약조하옵니다."

 

 약조라는 말이 미심쩍지만 저런 밝은 표정의 제를 볼 수 있다면야..

 

 "내 자네를 믿겠네."

 

 한 내관을 토닥이던 제가 걸음을 돌려 나갔다.

 

 이 때 한 내관은 장난끼 어린 제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

 

 "저하 기침하셨습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가 제의 아침을 깨웠다.

 

 간밤에 무리해 월궁한 탓일까?

 

 졸음이 눈 앞에 일렁거렸다.

 

 잠시후, 궁녀들이 익숙한 몸놀림으로 제의 옷을 갈아입히고, 의관을 정제하자

 

 제가 졸린 눈을 비비며 자신의 침소를 나섰다.

 

 "저하, 저하"

 

 제를 따르던 내관 한 명이 다급히 제를 불렀다.

 

 "저하 이른 시간부터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십니까 ?"

 

 제가 걸음을 멈추고 내관을 바라보았다.

 

 "내 오늘은 아바마마께 문안인사를 올릴 것이다."

 

 내관이 돌아온 길을 돌아보며 말을 뱉었다.

 

 "저하..송구하오나 이쪽은 강녕전으로 가는 길이 아니옵니다."

 

 "...."

 

 그러고 보니 이 쪽이 아니 것 같기도 하다. 맞다고 생각하고 나선 것인데...

 

 잠깐의 상념을 깨고 제가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그럼 이 방향이겠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가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저..저하 그쪽이 아니옵니다."

 

 내관의 다급한 외침을 듣지 못한 제는 또 다시 걸음을 옮겼다.

 

 ***

 강녕전의 최 내관은 의아한 표정으로 뜻밖의 방문객을 바라보았다.

 

 "저하 이른 시간에 무슨 연고로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최 내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식된 도리로 부모께 문안인사를 올리는 것이 도리가 아니더냐?"

 

 "그렇사옵니다.."

 

 '허나 평시에는 문안인사는 내관을 보내시지 않았사옵니까?'

 

 최 내관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말을 다시금 삼켰다.

 

 "아바마마께 내 왔다고 전하게"

 

 최 내관이 문에 대고 이르려고 할 때였다.

 

 강녕전의 문이 열리고 왕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저하"

 

 최 내관을 비롯한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주위를 둘러보던 왕이 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자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인 것이냐?"

 

 왕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궁금증이 가득차 있었다.

 마치 이 시간에 제가 왜 여기 있는 지에 대한 궁금증.

 

 제가 입가에 보기 좋은 호선을 그리며 대답했다.

 

 "소자 아바마마께 문안인사를 올린 지 오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사옵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이리할까 싶어 이리 발걸음을 했사옵니다. "

 

 "무어라 하였느냐? 내 잘못 들은 것 같구나."

 

 "자식된 도리로 문안인사를 올리러 왔다 하였습니다."

 

 제의 대답에 왕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이내 제를 안아들며 왕이 말했다.

 

 "하하하 우리 세자가 이리 생각이 생각이 깊었구나. 최 내관 기특하지 않은가?

 이리 생각깊은 세자라니 그렇지 않은가?"

 

 "예 저하 그러하옵니다."

 

 연신 계속 되는 칭찬에 제는 뜨끔했다.

 

 문안인사를 핑계로 아바마마께 부탁을 하려 왔기 때문이었다.

 

 뜨금함을 애써 감추려는 듯 한 술 더 떠 말했다.

 

 "아바마마 혹시 초조반을 드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시선(왕의 수라를 세자가 살피는 것)

 을 보아도 괜찮겠사옵니까?"

 

 왕이 제를 천천히 응시했다. 이내 또 다시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세자가 이리 영민하구나 그래 들어가자꾸나 하하하."

 

 침소 안으로 들어가는 왕에 품에 안긴 채 제는 침소에 들어갔다.

 

 ***

 제가 들어선 강녕전의 침소에는 푸른 여명의 빛이 가득차 있었다.

 

 그 사이로 낯이 익은 사내 한 명.

 

 제와 왕이 들어서자 사내가 일어서며 말했다.

 

 "저하 소신 이만 물러나 보아도 되겠사옵니까?"

 

 "물러나 보거라"

 

 왕이 사내에게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왕의 재촉을 알아 차린 듯 사내가 서둘러 밖으로 사라졌다.

 

 "아바마마 방금 그자는 의금부(조선시대 사법기관) 판사(종1품)아니옵니까?"

 

 제가 사내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갸웃거렸다.

 

 "세자"

 

 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왕을 바라보았다.

 

 왕이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얼굴을 제에게 들이밀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자는 초조반을 살핀다 하지 않았더냐? 앉거라"

 

 왕의 말이 끝나자 마자 초조반이 들어왔다.

 

 숟가락을 든 왕이 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세자 이제는 말하지 않겠느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내게 무슨 하고픈 말이 있는 것 아니더냐?"

 

 "......"

 

 "아침 잠 많은 세자가 이리 발걸음을 하는 것을 보아 긴히 부탁할 일이 있을 터

 말해보거라 이 아비 오늘 기분이 좋구나."

 

 "무엇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니옵니다."

 

 제의 말에 왕이 짓궂은 미소가 걸렸다.

 

 "정녕 부탁할 것이 없더냐?"

 

 왕의 말을 이었다.

 

 "정녕 없다면 이만 물러가 보거라 이 아비 기분이 좋았거늘

 지금 말했다면 부탁을 들어줬을 터인데."

 

 "실은.."

 

 제가 마른침을 삼켰다.

 

 "외숙부에게 가보고 싶사옵니다."

 

 제의 말에 왕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왜 그러느냐?"

 

 찡그려진 왕의 미간을 본 제가 의아해 하며 말했다.

 

 "궁에 들어온 이후로 외숙부를 볼 시간이 많이 없었사옵니다. 하여 청하는 것이옵니다."

 

 "....."

 

 침묵이 제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잠시 후

 

 침묵을 깨고 왕이 어딘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하거라 세자"

 

 왕의 말에 제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정말이시옵니까? 숙부를 만나러 가도 되는 것이옵니까?"

 

 왠지는 몰랐으나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그리하거라 내 급히 할 일이 생겨 그러니 이만 나가보거라"

 

 "예 알겠사옵니다."

 

 강녕전을 나서는 제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허락해 주시는 것은 좋으나

 

 어딘가 모를 찜찜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 이리 맘이 불편한 것인지..."

 

 이유모를 찜찜함을 뒤로한 채 제는 발걸음을 옮겼다.

 ***

 

 제가 떠나간 후 묵직한 침묵이 강녕전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 묵직한 침묵을 깨고 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 내관 게 있느냐?"

 

 침소에 문이 열리고 최 내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게 명할 것이 생겼다."

 

 "하명하시옵소서"

 

 왕이 서한 한 장을 건냈다

 

 "이 서한을 의금부 판사에게 전하거라 최대한 신속히 또 눈에 안 띄게 가야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알겠사옵니다."

 

 머리를 조아린 채 내관이 빠르게 문 밖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왕이 중얼거렸다.

 

 "계획을 앞당겨야 하겠구나..이리 둘 사이가 각별하다니..

 세자 미안하구나 미안해.. 원망은 이 아비가 다 안고 갈 것이다."

 

 또 다시 강녕전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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