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하윤의 귀에 음악의 소리가 아닌 큰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어떤 두 물체가 충돌하는 소리로 예상되었고 뒤를 돌아본 하윤의 눈앞에는 교통사고가 나 있었다. 조그마한 택시가 길가에 세워져있던 트럭에 박아 조수석 쪽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고 택시 안에는 택시 기사와 손님 하나가 타 있었다. 하윤은 놀란 상태에서 일단 한 쪽 귀의 이어폰을 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교통사고가 난 것을 발견한 사람은 하윤뿐만이 아니었다. 사고가 난 장소의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서 아이들과 나오는 아주머니와 여러 어른들이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 그 누구도 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아주머니께 하윤이 물었다.
“이럴 땐 112랑 119중에 어디에 신고해야 해요?”
“글쎄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아주머니의 대답을 들은 하윤은 잠시 망설였다. 망설이던 중 하윤은 잠시 사고가 난 두 차량을 바라보았고 택시에 타 있던 기사와 손님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단 하윤은 바로 119를 눌렀고 전화를 건지 오초쯤 지나서 한 여성이 대답하였다.
“네, 여보세요.”
“여기 사나 아파트 앞 도로인데요. 지금 교통사고가 나서 빨리 오셔야 해요!”
“일단 진정하시고요, 사고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 일단 저는 정확한 거는 모르겠고요.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길가에 세워져있는 트럭에 택시가 박은 거로 보여요.”
“부상자는요?”
“택시 안에 두 분이 타 계셨는데요, 지금 뒷좌석에 타 계시던 손님은 차 안에서 나오셨고 운전석에 계신 기사님은 못 나오고 계세요!”
“부상자는 두 분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하윤은 두 손으로 전화기를 꼭 잡고 기도하였다. 택시 기사와 손님이 아무 곳도 다치지 않았기를 빌었던 것이다. 하윤은 기도를 잠시 하고 있던 중 계속 기사를 꺼내주려고 혼자서 노력하고 있는 택시 손님에게 다가갔다.
“문이 계속 안 열리나요? 일단 119에 신고는 했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좀 도와주시면 더 감사할 것 같네요.”
“네? 네.”
하윤이 나서서 함께 문을 당기자 택시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택시의 문이 열려서 겨우 빠져나온 기사의 말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괜히 나 때문에 어떡해요, 학생.. 동생에게 급한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괜찮습니다. 이제 가보면 되는걸요.”
택시 기사는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것인지 택시에 타고 있던 자신의 손님 걱정만 하였다. 가방을 챙기고 가려고 하는 택시 손님의 팔을 하윤이 붙잡고 말하였다.
“이봐요, 그 상태로 어딜 가려고요! 기사님이 더 심하지만 그쪽도 머리에서 피나고 있거든요?”
“그쪽이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지금 바빠서요, 이거 놓으세요.”
택시 손님에 말에 하윤이 소리를 질렀다.
“절대 못 놔요”
“좀 놓으라고요, 나 바쁘다고요!”
하윤의 억지에 택시 손님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 구급차가 도착하였고 구조대원들이 택시 기사와 손님을 구급차에 태운 후 하윤에게 말하였다.
“학생 보호자 면같이 좀 가줄래요?”
“네? 저, 저는..”
솔직히 말하자면 하윤은 그들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냥 보내면 왠지 택시 손님이 치료를 받지 않고 도망칠 것 같아서 구급차에 올라탔다.
“저기요, 저 좀 내려주세요. 저 빨리 가봐야 한다고요!”
“이 사람 절대 내려주지 마세요. 머리 다쳤잖아요.”
하윤의 말에 택시 손님이 하윤을 노려보았고 어색한 분위기와 함께 얼마 되지 않아 병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택시 기사의 아내가 오고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하윤은 사라진 택시 손님을 찾기 위해 병원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응급실을 빠져나와 계속 택시 손님을 찾던 하윤은 결국 병원 밖까지 나와서야 택시 손님을 찾을 수 있었다. 택시 손님은 병원 앞 벤치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런 택시 손님에게 다가가 하윤이 말했다.
“이봐요, 그쪽. 치료는 하고 이러는 거예요?”
하윤의 말에 택시 손님이 벌떡 일어나 하윤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당신 때문에 하나뿐인 내 동생이 다친 후에 바로 수술에 들어가지 못했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내가 괜찮다는데 왜 그쪽이 난리냔 말이야!”
“... 저기요!”
“그쪽 나, 도원주 절대로 잊지 마. 내가 꼭 당신 찾아가서 갚아 줄 테니까.”
원주는 자신의 말을 다한 후 하윤과 어깨를 부딪치고 가버렸다. 하윤은 원주와 부딪친 어깨를 붙잡고 뒤를 돌아 원주를 노려보았다.
“감사할 줄 모르는 거야 아니면 화낼 줄만 아는 거야? 너희 학교에서는 감사라는 것도 안 가르쳐주든!”
하윤은 아랫입술을 깨물어 나오려는 욕을 삼켰다. 원주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하윤은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집으로 향했다.
하윤이 사는 사나 아파트 앞, 걷던 중 멈춰 서서 잠시 심호흡을 하는 하윤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여보세요?”
“경찰입니다. 재빠른 신고 덕분에 다행히 택시 기사님이 무사하셨습니다.”
“택시 기사님 치료는 잘 끝났나요? 크게 다치셨던데..”
“네, 무사하십니다. 저는 일이 있으니 끊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하윤의 볼에서 전화기가 떨어지자 달빛에 반짝이는 투명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아저씨.. 다행이에요.. 신고가 늦어서 죄송해요.. 흐, 흑.. 정하윤, 네가 사고 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슬프냐...”
하윤은 그렇게 서서 잠시 울었고 그 모습을 한 남성이 지켜보았다.
아침이 되고 하윤은 눈을 비비며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주방 식탁에는 하윤의 어머니께서 차려두고 간 아침 밥상이 있었고 일주일 용돈이 놓여 있었다. 하윤은 용돈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욕실로 들어갔다.
“아휴, 하윤아 등교 준비나 하자꾸나.”
하윤은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린 후 깔끔하게 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하윤은 주방으로 다시 와서 식탁에서 용돈을 챙겨 집을 나왔다.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하윤은 엘리베이터에 있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가지런히 빗었다. 머리를 빗고 빗을 가방 속에 넣은 후에 하윤의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하윤에게 전화를 건 주인공은 바로 하윤의 남자친구인 하려였다.
“하려세요? 헤헤, 설마 벌써 아파트 앞이야?”
“그래, 우리 강아지. 오빠 아파트 앞에서 이십분쯤 기다리고 있었다. 날 추운데 우리 강아지 교복 위에 겉옷 입었니?”
“당연히 입었지! 이제 일층 거의 다와 가니까 곧 만나요, 주인아!”
“그래, 우리 강아지.”
전화를 끊고 하윤은 거울을 바라보며 입술에 립밤과 틴트를 발랐다. 하윤의 아파트는 총 스무 층, 하윤의 집은 십팔 층이며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느리기에 하윤의 시간은 충분하였다. 립밤과 틴트를 가방에 넣자 엘리베이터는 일층에 도착하였다. 곧이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 앞에는 하려가 서 있었다.
“하려야!”
“으이그, 우리 강아지! 오빠가 거짓말 싫다고 했지!”
하려가 하윤의 볼을 꼬집으며 말하자 하윤이 반박하였다.
“아악, 나는 거짓말 안 했어!”
하윤의 눈에 눈물이 조금 고이자 하려가 하윤의 볼을 놔주며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말이야, 하윤아. 여섯 시 오십분에 이 자리에 서서 너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너는 나에게 엘리베이터라고 말을 하였지. 그때 이 엘리베이터는 십오 층에 가있었고 네가 전화를 끊을 때 일층에 다와 간다고 말했지만 엘리베이터는 칠층에 가있었지. 이래도 거짓말이 아니야, 우리 강아지?”
“치... 들켰네. 잘못했어, 주인아.”
“흠.. 오늘 우리 강아지 하는 거 봐서 벌칙의 세기를 정해야겠다.”
“너 대게 무서운 애구나.”
“이제 알았어, 강아지?”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 보이곤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정류장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서로의 손을 잡고 흥얼거리는 두 사람은 누가 보아도 커플로 보일 것 같았다. 그때 하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려는 그런 하윤을 올려다보았고 하려가 하윤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옮긴 곳에는 원주가 있었다. 하려는 원주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하윤에게 눈길을 옮겼고 하윤에게 아는 애냐고 물었다.
“조, 조금 알아..”
하윤이 조금 말을 더듬으며 말할 때 원주는 어느새 하려가 앉아 있는 의자까지 오게 되었다. 거기까지 오고서야 원주의 눈에 하윤이 보였고 원주의 얼굴이 굳혀졌다. 원주는 얼굴을 잠시 풀고 미소를 지으며 옆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우야, 잠시 욕 좀 하면 안 돼?”
“조금만 해, 욕 좀 줄여야지.”
“알겠어.”
원주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원주가 하윤에게 말했다.
“같은 교복이네, 시발? 하.. 너도 문학 고등학교 다니는 거냐?”
"그래, 근데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내가 왜?”
“어제 나 아니었으면 병원 못 갔잖아.”
“지랄하네, 병원은 무슨. 입 닫아.”
원주의 욕설에 하려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하려를 하윤이 진정시켰다. 때마침 버스가 도착하였고 하윤이 하려의 손목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탔다. 운명의 장난인 것인지 멘 뒷자리가 비어있었고 하려가 안쪽으로 들어가고 하윤이 그 옆에 앉았으며 옆에 있는 남은 두 자리는 원주와 원우가 앉게 되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원주가 하윤의 옆에 앉게 되었고 원우와 하려는 자리에 앉자마자 잠에 들어버렸다. 하윤은 계속 원주가 신경이 쓰였고 하는 수 없이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기로 하였다.
자는 척을 하던 하윤은 결국 진짜로 잠에 들게 되었다. 하지만 잠에 든 지 얼마 되지도 잠시 하윤은 잠에서 깼고 앞이 옆으로 기울어져서 보이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든 하윤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하윤은 고개를 돌려서 눈을 마주치게 된 원주의 눈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원주는 하윤의 손목을 잠시 바라보았다. 바라보던 중 원주는 갑자기 하윤의 손목을 거세게 붙잡았고 학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하윤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다.
“도, 도원주? 너 이거 안 놔? 빨리 놔! 도원주! 아야!”
하윤의 부름에 원주가 뛰는 것을 멈추고 하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