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다. 만월도 아니다. 몇 일전 올려다 본 달이 만월이었다. 반쯤 사라진 달 달은 15일을 살고 다시 태어난다. 그렇다면 15일 전의 달과 이후의 달은 다른 것일까? 달은 15일 살고 나는 하루를 산다. 그래서 불만은 없다. 책을 덮는다. 중국어를 다 배우고 나서 라는 기한이다. 그래서 책을 덮는다. 사성을 배웠다. 그 이후에는 단어를 배울 것이다. 그리고 문장을 배우고 문단을 배울 것이다. 그렇담 부지런히 만 하면 1년 안에 다 배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에서 살 정도가 되면 족할 것이다. 그 정도 면 그만이다. 중국영화를 자막 없이 볼 정도라면 중국 여행을 가이드 없이 갈 수 있을 정도 중국으로 이민을 가서 슈퍼에서 물건을 살 수 있을 정도 직장을 구해서 중국 사람들같이 살 수 있을 정도 그 정도 라면 하지만 나는 지금 책을 덮는다. 급격하게 중국어에 대한 갈증이 일면 책을 펴겠지. 그런 갈망이 생겨 다시 사성다음 단원을 공부 할 때가 오겠지. 그래도 기한은 그때까지 이다. 중국어를 다 배울 때까지.
달이다. 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 지 알면 놀랄 것이다.
나는 휘영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왜라는 물음에 나는 어떻게 대답 했어야 했을까? 적당한 대답을 에둘러 해야 했을까? 아님 정확한 대답을 해야 했을까?
내가 그에게 했어야 했던 정확한 대답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는 당신의 연인이자 당신의 친구이다. 그리고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떠 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파했다. 그것은 사랑이 떠나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대상이 떠나기 때문이고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살기 위한 도구가 떠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슬펐다. 그들의 정당성 그들의 정당성 사이에서 설명 되지 않는 나의 감정 그 혼돈이 나를 파괴 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완력 싸움에서 떠나야 했다. 하지만 끔찍한 것은 내가 아프고 슬프다는 것이고 그것은 휘영 때문이 아니라 인하 때문이었다. 인하가 나를 사랑했다고 해도 나는 휘영을 떠났을 것이고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떠났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그를 떠나야 했고 그가 아파 하는 것에다 대고 비웃음을 폭죽과 같이 쏘아 올려 야 했다. 그는 완벽하게 나를 사랑하는 최면에 빠졌던 것이다. 그래서 나 때문에 아파하고 흔들리는 약혼자의 역할은 완전히 소화 해내려 발버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는 두 사람 인하와 나
나는 역겨웠고 인하 역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의 기만 때문이었고 인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 지 눈으로 목도 해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인화는 휘영을 죽였다. 그 추악함이 역겨워서 자신이 얼마나 역겨운 연극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자기 최면
휘영을 죽이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다. 친구의 연인을 사랑한 불륜남을 살인자의 오명도 불륜 남의 오명도 자신의 완벽한 실체를 보여주는 것 보다 덜 공포스러웠다.
그는 울고 있는 거울 앞에서 술을 마신다. 거울 속의 사내는 연인을 잃은 자가 된다. 그는 천부적인 연기자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박수라도 쳐 주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마며 자리를 뜬 남자의 잔에다 신경안정제를 넣는다. 정확하게 30분 뒤에 졸음이 쏟아질 것이다. 그는 30분 안에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사내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 그에게 미래를 제시 해야 하고 이후의 행동 지침도 교시 해야 한다. 그리고 술값을 계산하고 그가 술을 마셨지만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이유도 말해야 한다. 그는 운전대를 잡기에 의식이 온전한가? 아님 그렇지 않은가? 실패를 했을 경우의 수도 생각 해 둬야 한다. 이번 한번에 완전히 끝내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렇담 다른 수를 둬야 한다. 그것은 지금 생각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차차 생각 하면 된다. 살의는 그렇게 형성이 된다. 지독한 혐오로부터 사랑했었다고 착각했던 깊이만큼 혐오는 깊어 진다. 사랑과 혐오의 대칭성
지독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 날 아침은 그래서 이른 시간에 잠을 깨서 이불을 추스르고 다시 잠에 들었다. 하지만 의식을 웃도는 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몇 개의 꿈을 뒤 엉겨서 꾸었다. 그런 기억이다. 그가 자신의 자동차에 타서 그 길로 세상을 등지던 날의 그 시간의 나는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어떤 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꿈이 기억이 나서 그가 떠나기 전에 나를 찾아 왔더라라는 헛된 판타지도 없다. 그저 그는 죽었고 나는 잠을 잤다. 엉긴 꿈들이 실타래처럼 단서를 늘어 뜨려 주었다면 말이다 그런 또 다른 판타지가 시작되고 이야기가 쓰여진다면 그의 죽음은 또 다른 것으로 치환이 되어서 더 빛 났을 까? 설탕가루까지 살살 뿌려 놓은 푸딩이 알고 보니 계란 짐이었다니 하는 깨달음 그것은 반가운 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죽음을 두고 반가웠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죽음과 반가움
죽음의 이유는 그만 알고 있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죽은 그는 약혼녀에게서 이별을 통고 받고 괴로워하다 자살하거나 혹은 과실치사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을 그가 선택을 했다고 생각 했다. 뭐가 되었든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사람 말고 그를 완벽하게 그가 아닌 것으로 알게 될 것이라는 반가움이 그 속에 있었다. 자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외적으로 그렇게 알려 져있는 상태가 가장 안온할지 모른다. 그래 그것이 정답이다. 그렇게 보여 지고 싶었던 그의 마지막은 그렇게 보여짐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그는 행복 했을까? 지독한 괴리 속에서 그는 등껍질이 벗겨 지는 것 같지 않았을까? 인화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사랑을 알게 해 준 것이 아니라 휘영이 겪던 괴리를 선사 한 것이다. 휘영을 사랑하는 외면의 껍질을 입은 인화로 향한 마음의 괴리 왜 겉과 속은 그리고 달라야 할까? 내가 휘영을 지독히 연민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도 그것이다. 나 역시 그것을 안다는 것 인화를 그렇게 사랑 할 수 있고 그를 죽일 수 있었던 이유 또 한 같다. 그것에 대한 아픔 그것이 주는 혼란
언제나 시작은 그렇다. 완벽히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완벽하게 속였다 하지만 완벽하게 속였다는 것은 완벽하게 속았다라는 말이 된다.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서 스스로도 스스로에게 속아야 하니까 그렇게는 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하고 하는 속임은 우리를 속인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단순히 인화가 질투에 눈이 멀었던 것도 아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이유 일 것이라고 자위 한다.
늘 질문을 한다. 그것은 뻔 한 질문이다. 선문답을 바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없다. 그냥 그것은 그것이니까
이것은 연필 입니까? 그렇다 그것의 실체는 연필이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다른 누군 가에게는 연필이 아닌 다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것의 다른 것 됨에 대한 이야기는 해 주지 않는다. 바보 연필이잖아. 그것도 몰라. 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모르겠다. 그것이 확실이 연필인지 확신 할 수 없다. 휘영은 휘영이다. 하지만 내가 알 고 있는 휘영이었을까? 휘영은 휘영이다. 혼돈하고 괴리된 두 개의 자아와 두 개의 영혼을 가진 것 나의 휘영이 휘영일까? 인화의 휘영이 휘영일까? 그 질문은 나에게 던지 수 많은 동일한 연필을 연필 입니까 하는 질문의 하나이다. 그 혼돈 그 자체가 휘영이다. 하나를 죽이고 나면 다른 하나가 휘영이 되기를 바랬던 어리석은 믿음, 하나를 죽일 수도 없을뿐더러 하나를 죽이고 나면 결국에는 휘영이 아닌 것을 휘영은 몰랐다. 둘은 공존한다. 그래야 진정한 휘영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며 이 사실을 적용 해 본다. 나는 나인가? 인화는 인화인가? 한쪽을 수용 하지 못하고 한쪽은 버려야 한다면 그 질문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피곤한 삶이다. 괴리된 표리된 영혼의 겉껍질을 입고 사는 것, 결국에는 영혼은 껍질을 벗어나려고 몸 부림 치고 그리고 또 그것을 억지로 붙들고 있다. 접착제가 필요하다. 강력한 것으로……진짜 강한 것으로 강한 접착제로 붙여 버리는 수 밖에 없다.
죽음은 답이 아닐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끝이 나 버렸으니까.
해석은 언제나 그렇게 진부하다. 현실은 까마득한데 그것에 대한 해석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과거를 그렇게 물 베듯 헤집어 놓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완전히 압도 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필요 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 천명이 죽어나간다. 전쟁이라는 신의 낫 앞에 우리는 낙엽처럼 떨어진다. 낙엽처럼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공부 따위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그것은 내일을 산다는 것을 확신 하는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어리석은 행진에 불과 하다. 나는 책을 덮는다.
나는 미래를 꿈꿀 자격도 없다. 나는 죄인이다. 그것은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이 죄 앞에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형사의 전화가 왔다. 전화기 액정을 내려 보다 이내 전화를 받았다.
밥은 먹었어?
대충
저녁에 외식이라도 할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여전히 나를 장악하고 있는 죄의식 속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먹고 싶은 거라 식욕 마저 도 없는 데 무슨 먹고 싶은 거를 말 해야 할까?
냉면
나는 낮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지 그의 목소리에서 웃음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