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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크 하울러
작가 : 태선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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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
작성일 : 16-11-16     조회 : 773     추천 : 0     분량 : 6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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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5.

 

 성 안으로 들어가자 나인은 내 뒷덜미에서 손을 뗐다. 로그아웃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라는 말.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도망쳐 버린다면 어쩐지 억울해질 것 같았다.

 도시에는 수많은 이종족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크와 드로우, 간간히 뱀파이어가 돌아다녔고, 거대한 수인족들도 보였다. 인간이나 엘프는 보이지 않았다.

 가끔 붉은빛이 도는 눈을 한 사람들이 보였지만 누구도 나인같이 타오르는 진홍색을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문득 나인은 무슨 종족인지 궁금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중에서는 아무도 그와 같은 종족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나인 군. 사과파이 다 됐다네.”

 “마나 증폭기를 만들기는 했는데 불안정해. 이따가 봐달라고.”

 “모리 님. 4중 압축 묵철이 완성되었습니다. 검 수리는 이쪽에 맡겨주십시오.”

 도시 사람들 모두 이들을 알고 있었다. 꽤나 유명하구나 싶어서 호기심이 생겼다. 나인은 분명 이 도시가 자기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안쪽에는 검은색 탑이 있었다. 아파트 10층 높이였는데 높은 건물이라고 해봐야 3층이 고작인 이곳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탑 꼭대기에는 붉은색 마법진이 스파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나인이 명랑하게 말했다.

 “여기가 바로 악의 제국 진군 기지입니다. 세계정복을 위한 초석이지요. 멋지지 않나요?”

 모리 님이 간추려서 대답했다.

 “길드 하우스다.”

 길드 하우스라는 게 이렇게 큰 건가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이 흑마법의 중추며 이곳 길드 하우스만 특별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법진이 늘어서 있었다.

 입구에 있던 수인족 남자가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형, 나 돈 좀 꿔줘.”

 인사치고는 별난 멘트였지만 모리 님이 대답했다.

 “돈 없다.”

 “그러지 말고 좀 빌려줘. 나 상납금이 이 주째 밀렸다고, 김 팀장이 내 목을 조를 거야!”

 뭐? 상납금? 김 팀장? 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모리 님이 대답했다.

 “다크게이머 팀이다. 게임 머니를 팔아 돈을 벌지. 팀원은 돈을 모으고 팀장은 그 머니를 한데 모아서 몰래 팔아치우는 역할을 한다. 상납금이 밀리면 팀에서 잘린다.”

 “그거 돈 많이 버나요?”

 나인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거 하면 사람 구실 못합니다? 나이 70살 돼서도 하루 18시간씩 노가다만 하고 싶으세요? 수입도 일정치 못한 백수입니다. 잉여인간돼요.”

 “우와 심하다. 본인 앞에서 대놓고 말하기야?”

 “해랑 군은 잉여인간이니까요. 엣헴.”

 길드 꼴 자알 돌아간다. 어쨌거나 해랑이라는 수인족이 머리를 벅벅 긁적이자 모리 님이 마지못해서 말했다.

 “던전을 돌아라.”

 “당장 김 팀장이 전화 날리고 있는데 어느 세월에 그 돈을 다 모아?”

 “길드 지하 던전을 돌아라.”

 그 말에 해랑 군이 눈을 크게 떴다.

 “오! 개방시켜 주는 거야?”

 “한 번만이다.”

 길드 지하 던전이라는 게 아이템이 많이 나오는 곳인 모양이다. 해랑이라는 사람은 콧노래를 부르며 너클을 챙겨 어딘가로 내려갔다.

 그 다음 모리 님을 따라 가운데 마법진으로 들어가자 기계음이 들렸다.

 ― 암호를 입력하세요.

 모리 님이 말했다.

 “어둠, 무한한 힘.”

 ― 게이트를 엽니다.

 주변이 빛으로 휩싸였다. 눈을 뜨니 거대한 마법진이 있는 홀에 도착했다. 사방에 있는 유리로 된 창문이 반짝거렸다. 마법진 가운데에서 조그마한 몸집의 누군가가 명상을 하고 있었다. 자기 몸집보다 거대한 구슬을 타고 있었는데, 용케 균형을 잡고 있었다.

 “이 아이 좀 봐주세요.”

 나인의 말에 검은 로브는 명상을 풀고는 이쪽을 돌아보았다.

 “어라, 인간이네.”

 해랑 군과는 달리 전달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구슬 째로 떠오르더니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수호신이 뭐죠?”

 그 말에 내가 대답이 없자 그녀가 답답한 듯 말했다.

 “아이, 수호신 말이에요. 게임 처음 시작했을 때 안내하던 신!”

 나는 개미만 한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테, 테티스.”

 “이 오빠 엄청 낯가리네. 테티스? 언어의 여신이네. 스탯 수치는?”

 그게 뭔가 싶어서 다시 멀뚱히 있자 그녀는 답답한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상태창! 아니 오빠, 어디서 이런 맹탕을 주워 왔어요? 평생 RPG게임 하나 한 적 없대요?”

 고전게임에서는 능력치라고 불렀단 말이다. 스탯은 다른 거 가리키는 줄 알았지! 나는 마지못해 상태창을 켰다.

 

 자이하

 직업 : 초보자

 레벨 : 1

 체력 : 30 마력 : 25 힘 : 2

 지능 : 40 지구력 : 5 민첩성 : 4

 손재주 : 6 매력 : 2

 성향 : 중립(Neutral)

 테티스 여신의 가호를 받은 초보자, 갓 이 세계에 눈을 떴다.

 

 그녀는 흐응, 하고 고민하더니 마법진 가운데로 향했다. 그러고는 구슬로 마법진 가운데를 꾹 누르고는 눈을 감고 무언가에 집중했다. 마법진은 실낱같은 빛을 뿌리며 바닥 위를 달렸다.

 이윽고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정통마법사네요. 그것도 원소계열.”

 그 말에 나인이 기쁜 듯 말했다.

 “이야아. 마법사가 당첨되긴 힘든데 말입니다. 대단하네요!”

 뭐, 뭐야 그렇게 귀한 직종이야? 나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인이 기뻐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불안해졌다. 모리 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캐릭터 삭제하고 다시 키워라.”

 “네?”

 “마법사는 무리다.”

 왜 무리라는 걸까?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로브를 벗자 늙은 할머니의 모습이 드러났다. 콧대도 부러진 것이 영락없는 마귀할멈이었다.

 내가 깜짝 놀라자 그녀는 ‘크헤헤헤’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다시 로브를 뒤집어썼다가 풀었는데 이번에는 아주 귀여운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녀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마법사는 강해요. 옛날에는 전체 직업군의 15% 정도 차지했죠. 화염마법의 경우 일반 검사가 검 네 번 휘두르는 것보다 강하고, 진짜 지존이 돼 버리면 조그마한 마을은 혼자도 부술 수 있으니까요.”

 “그, 그런 좋은 거 아니에요?”

 “문제는 지금은 전체 직업군의 0.4%라는 거.”

 그 많은 마법사가 다 접었다는 건가? 0.4%라는 건, 천 명 중에 고작 네 명이라는 말이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자 그녀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회사에서 하향 패치했거든.”

 그 정도로 줄었으면 슬슬 상향 패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물음에 대답하듯 그녀가 말했다.

 “회사가 막장이라 밸런스 개판이니까요.”

 우와, 막장. 나인이 보충설명해 주었다.

 “사실 회사에서 패치한 건 딱 하나예요. 그 많은 주문을 일일이 다 외워야 한다는 거.”

 그 말에 나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저, 파이어 볼 같은 단어 말고요?”

 내 말에 모리 님이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원하는 힘, 불타는 화염의 구. 나는 원한다. 내 손에 맺혀라. 파이어 볼.”

 “그러니까 그 문장을 싸울 때마다 외워야…….”

 그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마법일수록 주문은 더 길어진다. 몬스터에게 맞아서 집중이 끊기면 처음부터 다시 외워야 한다. 문장이 틀려도 다시 외워야 하며 몬스터가 움직여서 조준이 풀려도 다시 해야 한다.”

 나인이 간추려 말했다.

 “한마디로 강철 주둥이를 가져야 한다는 거죠.”

 “……패, 패치는요?”

 “애들이 계정비를 안 내줘야 빠릿빠릿하게 패치해 주는데, 욕 처하면서 계정비 꼬박꼬박 내주는 게 또 우리의 유저 아니겠습니까.”

 세계적인 가상현실 게임이었다. 마땅한 경쟁자도 없으니 고객서비스가 개판이라는 말이었다.

 “그, 그래도 마법사들은…….”

 “0.4% 정지해 봐야 간지럽지도 않답니당.”

 모리 님이 보충설명하기를 그 당시 마법사들은 마권사나, 마검사로 직업을 바꿨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려던 찰나 그가 딱 잘라 말했다.

 “네 적성은 순수한 마법사다. 체력과 힘이 지나치게 낮아. 민첩성도 낮아서 써먹을 데가 없다.”

 “차라리 나인 오빠처럼 네크로맨서가 됐으면 편했을 텐데. 마력이 높은 것도 아니라서.”

 역시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야겠다. 내가 마음을 굳히고 물었다.

 “그, 그럼 캐릭터 생성 대기 시간은요?”

 “15일이다.”

 모리 님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15일은 너무 길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미래를 생각해서 15일이면, 작은 투자죠.”

 그 말에 용기를 내서 되물었다.

 “다시 만들었는데 또 이 적성이면요?”

 “음, 확률은 적어요.”

 그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다시 될 확률도 있다는 것. 그랬다가는 한 달 학원비를 공중에 날리는 셈이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적성을 무시하고 그냥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가 말했다.

 “무엇하러 제가 적성까지 알아봐 줬겠어요. 그러면 최고가 되기 힘들어요. 보너스 퀘스트가 붙는단 말이에요.”

 꼭 최고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적당히 즐기기만 하면…….

 나는 문득 나인의 붉은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넌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니?’라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

 굳이 말한다면 만족……할 수 있다. 남들만큼만 하고, 남들만큼만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 평생 그래왔으니까. 노력도, 공부도 언제나 남들만큼만 해왔으니까. 나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평생 바뀌는 일 없을 겁니다?”

 그랬다. 나는 ‘나’ 자신을 바꾸고 싶어 왔다.

 “아무리 쳐맞아도 할 말 한다는 건, 사나이의 기본 소양이지요. 주먹에도 굴하지 않는 강철 주둥이 아니겠습니까?”

 아아아,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고민된다. 그는 내 흔들리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 다시 키우세요. 자이하 군은 패기 없는 수컷이니까요.”

 그 말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해보죠!”

 그까짓 거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다고.

 그 말에 시스 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을까? 마법사는 고수들도 못 키우는 건데. 길드 입장에서는 유일한 마법사니 환영이지만…….”

 모리 님이 눈을 감았다.

 “바보짓 하는 것도 자유다.”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물었다.

 “저어, 그리고 보니 저 인간인데…….”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인간이 여기 와서 마법을 배운 건 처음인데, 괜찮을까? 무슨 직업이 탄생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나인이 환하게 웃었다. 그의 눈동자는 장난기로 번뜩였다.

 “아이코, 그게 또 게임하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젠장, 걸렸다.’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 선택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인의 눈동자는 ‘장난감이 생겼어!’ 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는 나를 질질 끌고는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요!”

 내 비명을 모리 님이 외면했다.

 “자초한 거다.”

 시스 양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귀여운 얼굴이지만 저렇게 웃으니 정말 무섭다. 시스 양은 한술 더 떠서 내 다리를 붙잡았다.

 “어떤 직업 되는지 구경하러 가요!”

 “참, 자이하 군. 한 번 전직하면 삭제하고 다시 생성하는데 한 달 걸립니당.”

 “지, 지금 지울래요, 지금 지운다니까!”

 “어허, 남아일언중천금!”

 뭔 놈의 손아귀 힘이 왜 이렇게 센지. 전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결국 나는 내 발로 가겠다고 우기고는 로브를 푹 뒤집어썼다.

 그가 향한 곳은 룬 아카데미라는 마법사 연구소였다.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입문자가 갈 수 있는 곳은 1층 로비뿐이었다.

 나인이 로비에서 후드를 젖히자 장내는 일순간 침묵에 젖었다.

 로비를 지키던 마법사가 다급하게 지팡이를 겨누며 노려보았다.

 “잘도 왔군. 이곳에는 무슨 볼일로 온 거지?”

 도시에서는 환영받았지만, 이곳은 아닌 모양이다. 나인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법사 입문하러 왔습니다.”

 “네놈이?”

 “제 아들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었다.

 “누가 자식입니까!”

 벰파이어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에 사고 친 모양이군.”

 ‘요즘은 유치원 때 애 갖습니까?’

 사람이 햄스턴가. 애가 애를 낳게. 어쨌든 간에 마법사들이 흉흉한 표정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지팡이를 이쪽에 겨누는 걸 보아하니 허튼짓이라도 했다가는 바로 요절낼 기세였다.

 시스 양은 쿡쿡 웃으며 유리구를 타고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뭔 일이 나든 구경만 하겠다는 뜻.

 서운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녀가 말했다.

 “전 모르는 일이라고요.”

 어떤 의미에서 나인보다도 더 악질적인 아가씨다. 나인은 붉은 눈을 빛내며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하십니다. 면학하러 온 학우를 이리도 박대하시다뇨.”

 “잘도 뻔뻔스럽게 말해대는군. 네놈 따위가…….”

 아, 빌어먹을……. 원한 관계였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폐를 끼친 모양이다.

 토낄 건지 일단 항복부터 하고 볼 건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동안, 나인이 말을 이었다.

 “폭력반대입니다. 싸우고 싶지 않아요.”

 “닥쳐!”

 그때 로비 한가운데에 붉은색 마법진이 빛났다. 마법진 밖으로 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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