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판타지/SF
더스크 하울러
작가 : 태선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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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화
작성일 : 16-11-21     조회 : 659     추천 : 0     분량 :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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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8.

 

 To. 자이하

 자이하 님, 나 해랑이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모리 님이 완전히 진노해서 길드 추격대 만들었어. 지금 어둠의 진영을 넘어서 바람의 대하를 건너고 있어.

 길드원들이 모두 몸이 날래다 보니 곧 빛의 진영에 도착해.

 길드 마스터 쳐 잡으려고 추격대 만든 건 전대미문이야. 그런데 모리 님이라면 정말로 죽일 것 같더라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모리 님을 막으려면 모리 님보다 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런데 난 모리 님보다 약하잖아?

 난 안 될 거야. 아마.

 어쨌거나 모리 님이 길드 마스터에게 동조한 자이하 님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어야겠대.

 그래서 그냥 죽이면 안 되겠다고 했어.

 길드원들이랑 로그아웃 안 하고 캐릭터에 미련이 철철 남으면서 어떻게 하면 나락까지 잔혹하게 지옥을 맛볼 수 있을지 매일 회의하고 있어.

 미안, 자이하 님. 난 힘이 없잖아? 아하하하

 어쨌거나 다들 사람 잡는 데는 이골 난 형들이라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

 응원할게, 형. 아하하하.

 참참, 시스가 안부 전해 달래. 회의에서 그 녀석은 중국 고전을 인용해 자이하 님 살점을 떠서 젓갈을 담자고 하더라고.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하대.

 우리 시스가 좀 호기심이 많아. 아하하하.

 어쨌거나 자이하 님이 어디에 있는지 곧 찾을 것 같아. 거대 뼈 맘모스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억할 법하잖아?

 나인 님의 덤보 사랑은 여전한 것 같아.

 그러면 또 봐. 자이하 님.

 감기 걸리지 말고 몸 건강히 지내. 보고 싶다.

 From. 해랑

 

 “아, 덤보…….”

 빌어먹을 덤보, 그놈의 덤보 좀 두고 가자고 몇 번을 말했건만 이놈은 내 동생이라며 끝까지 끌고 가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아, 미치겠다.

 해랑 군의 능글능글한 쪽지를 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저 나선계단을 타고 추격대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내가 원하는 힘, 자근 물…….”

 ― 마법이 실패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이 술렁이자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적이 이쪽을 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전투 중에 쪽지를 봤다면 금방이라도 죽었어야 하는 상황. 나는 크게 심호흡하고 다시 주문을 외웠다.

 “내가 원하는 힘, 작은 무우…….”

 주문이 틀리기 무섭게 얼음이 제자리에서 터졌다.

 쨍강!

 얼음 파편이 날카롭게 손을 가르고 지나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감쌌다.

 “빌어먹을!”

 ― 크리티컬! 출혈상태에 빠집니다. 3초간 멍해졌습니다.

 마법 한 번 실패로 피가 반 가까이 떨어졌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빌어먹을 나인은 놀러나간다고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코빼기도 뵈지 않는다.

 “후우…….”

 추격대에게 잡힐 경우 무서운 건 처벌이 아니었다.

 친했던 사람들이 내게 화를 낸다는 게 견딜 수 없이 무서워졌다. 빌어먹을 소심증,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래서는 사냥은 무리다. 넋 놓고 주문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마법사가 만만한 직업이 아니거니와 마법이 어디서 저항이 뜰지 모르는데 자신도 없다.

 “젠장, 대체 왜 내가…….”

 흐으, 나는 머리를 벽에 쿵쿵 박았다. 던전 벽이 차갑다.

 “크와악!”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니 마음이 좀 차분해졌다.

 붕대를 꺼냈다. 손끝이 작게 떨려왔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려면 몇 레벨이나 더 올라야 할까.

 아니, 그 전에 레벨이 오른다고 마법사가 둘 이상의 적을 무찌를 수 있을까?

 서클 수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레벨만 오르는 거다. 둘 이상 상대하려면 정말 압도적인 레벨이 되던지 서클을 한 단계 올리는 수밖에 없다.

 ― 붕대감기(중급) 숙련도가 올랐습니다.(150/244)

 우선,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추격대를 피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컨트롤이 좋고 몸이 날래다고 해도 마법사인 이상 불가능하다. 내가 무슨 도적이나 암살자도 아니고…….

 거기다가 피할 생각도 없다.

 죄 지은 사람도 아닌데 도망 다니는 건 진저리가 난다.

 나는 쪽지를 꺼내 그간 사정을 적어서 모리 님께 보냈다. 물론 비겁한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할 수 있는 건 해봐야 했다.

 “이 문제는 여기까지.”

 이 이상 뭔가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걱정한다고 더 좋아질 것도 없다.

 그럴 바엔 접자!

 “두 번째, 다음 층.”

 현재 레벨 25, 사실상 한계다. 레벨이 오른다고 딱히 두 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한 마리를 더 수월하게 잡을 수 있으면 모를까.

 그때, 누군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추격대가 벌써 온 건가 싶어서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저, 저기 누구시죠?”

 창문 없는 탑, 어두운 횃불이 일렁거렸다. 인기척은 기둥 뒤에서 느껴졌다. 나는 다시 물었다.

 “저기 누구신지 말씀 좀?”

 대답이 없다. 몬스턴가 싶어서 나는 마력을 손바닥에 끌어 올렸다. 차가운 냉기가 손바닥에 맺혔다.

 이윽고 그림자 속에 누군가가 수줍게 걸어 나왔다. 긴 귀에 눈이 가는 아가씨였다. 긴 머리카락을 땋아 내렸는데 빛을 받을 때마다 금색으로 찰랑거렸다.

 등에는 활을, 허리춤에는 단검을 든 게 전형적인 레인저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새처럼 떨렸다. 다행히 추격대는 아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벽에 기댔다.

 그녀는 그걸 도리어 자신을 한심하게 보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죄송해요. 구경할 마음은 없었는데, 마법사 혼자서 사냥하는 게 신기해서…….”

 “…….”

 내가 봐도 내가 신기하긴 하다.

 이럴 때는 능글맞게 괜찮다고 이야기해야 할 텐데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말을 건다고 생각하니 도리어 말이 막혔다.

 “죄송해요. 정말……. 화 많이 나셨어요?”

 “아뇨, 아뇨, 이렇게 미녀가 말을 걸어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한걸요.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사냥이나 함께할까요?”

 ……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는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이 아가씨는 도리어 겁을 집어먹고는 내 눈치를 열심히 살폈다. 나는 간신히 쥐어짜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과묵하시네요.”

 과묵하긴요. 그저 여자 손만 잡으면 작아지는 숙맥입니다.

 물론, 이 말도 나오지 않았다.

 “…….”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다시 돌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정말로 내가 진짜진짜진짜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리고는 힘없이 뒤를 돌아갔다.

 ‘이게 아닌데, 아으…….’

 목소리야, 제발제발 나와라! 미녀 앞인데 말 한 마디 못하고 보내면 비참하잖니.

 “……사냥!”

 이게 내 첫 마디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더니 되물었다.

 “사냥?”

 “…….”

 말해야 한다. 말해야 한다. 빌어먹을 혓바닥아 뭐라고 좀 지껄여봐라. 남자는 강철 주둥이! 남자는 강철 주둥이!

 “사냥 좋아하십니까?”

 아, 썩을! 이 말이 아닌데. 왜 멋대로 나오는 거냐.

 주변이 어두운 게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삶은 문어가 된 내 얼굴을 봤을 테니까.

 그런데, 그녀는 진짜로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네! 좋아해요. 같이 하실래요?”

 내, 내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

 행복감에 다시 굳어 버리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죄, 죄송해요. 갓 만난 사이인데 너무 주제넘었나요?”

 나는 쥐어짜듯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뇨.”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눈부시도록 밝아졌다. 흐린 날씨가 순식간에 개인 것처럼 너무 밝고 예뻐서 눈이 부실지경이었다.

 그녀는 명랑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아이디는 세실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 세실 님께서 파티를 신청하셨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내 아이디만 말해 주면 된다. 나와라. 목소리야, 제발 나와라.

 “자이하.”

 “잘 부탁드려요 자이하 님.”

 ― 파티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9.

 

 어째선지 그녀는 내가 냉정하고 과묵한 사람이라고 오해했다. 그렇게 적을 상대로 대담하게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여자 앞에서 한 마디도 못하는 쑥맥일 거라고는 차마 상상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그렇게 봐주신 게 감사할 따름.

 “아,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아까 전에 있던 파티원들이 자꾸 집적거리는데, 무지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활을 집어 들었다. 머리카락이 나부낄 때마다 은색 귀걸이가 찰랑거렸다. 그녀가 지나가는 하녀 둘에게 화살을 동시에 날렸다.

 타당!

 활시위에서 하프소리가 났다. 화살이 시원하게 박히자마자 나는 주문을 외워 한 놈을 재웠다. 그리고는 다음 놈을 향해 아이스 애로우를 날렸다.

 ― 밴시의 하녀가 느려짐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화살 네 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더니 연달아 활시위를 튕겼다. 그러나 고작 화살 네 번에 죽을 놈은 아니었다. 그녀는 허리에 있던 단검을 꺼내더니 곧바로 적의 목을 그었다.

 핫팬츠 밑으로 사슴 같은 허벅지가 하얗게 빛났다.

 그녀는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사냥감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동시에 나는 파이어 애로우를 완성하고는 콤보에 들어갔다.

 “버닝, 헬 크로스!”

 콰아앙!

 푸른색 불꽃이 솟아오르자 밴시가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온다. 그녀는 화살로 내게 접근하지 않도록 놈을 견제했다. 그러고는 스킬명을 외쳤다.

 “샤이닝 애로우!”

 화살에 은빛이 맺히더니 긴 선을 그었다. 관통. 놈의 배에 큰 구멍이 뚫렸다.

 끼아아악!

 밴시의 하녀는 비명을 지르며 소멸되었다. 그녀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둘이 하니까 여기는 너무 쉽네요. 다음 층으로 갈까요?”

 내가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방긋 웃었다.

 “쿡쿡, 하여간 너무 과묵하시다니까. 가고 싶다는 말로 알게요?”

 그녀의 선한 눈망울은 내 안에 시커먼 늑대를 못 본 모양이다.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싶은데, 역시 집적이는 걸로 보이겠지.’

 물론 온갖 시커먼 속내를 뒤로한 채 내 표정을 돌처럼 굳어 있다.

 늑대가 있으면 뭐하나, 주둥이가 돌이라 말을 못하는데.

 “자이하 님이랑 있으니까 너무 편하네요.”

 ‘편하다고? 진짜로 편하다는 말일까? 할 말 없어서 편하다는 걸까. 역시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농담해서 재미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아이고, 아버지.’

 나중에 나인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때 주둥이가 돌덩이가 아니었으면 다시는 그녀를 못 봤을 거라고 했다. 내 작업 내공이 너무 낮기 때문이란다.

 “흠, 계단 위쪽에 몹 없나 먼저 올라가볼게요. 잠깐 기다려주세요.”

 찰캉, 찰캉.

 신발 굽이 회랑을 울렸다. 문득 뭔가 소리가 이상해서 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신발 굽이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요즘 레인저들은 신발 굽을 금속으로 쓰나?’

 더 응시하면 변태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호기심을 이길 수 없었다.

 금속 굽 아래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는데, 좀 더 자세히 보니 구멍 속에는 침 같은 게 장전되어 있었다.

 ‘킥과 함께 바늘을 쏘는 구조인가?’

 몬스터를 잡기에는 낭비가 심했다. 침을 회수하려면 힘들 테니까.

 목숨이 위험할 때 쓰려는가 보다 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그녀의 허리를 조이고 있는 코르셋이 금속재질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레인저들이 평소 가죽을 애용하는 걸 생각하면 독특한 의상이었다.

 위층으로 올라간 그녀가 이쪽으로 소리쳤다.

 “뭔가 이상해요! 이리 와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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