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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크 하울러
작가 : 태선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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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화
작성일 : 16-11-22     조회 : 666     추천 : 0     분량 : 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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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10.

 

 얀 님이 가고나자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이 다시 생각났다.

 ‘어째서 몬스터가 없는 거지?’

 사람이 없는 건 나인 때문이다. 하지만 몬스터까지 그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내가 묻자 나인이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말했다.

 “그건 몬스터도 무서워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죠.”

 몬스터도 무서워하는 존재? 그런 게 있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자 나인이 대답했다.

 “이 층에는 밴시가 있답니다.”

 그 순간, 내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저, 저기 그거 꼭대기에 있는 거 아닌가요?”

 “몬스터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답니당?”

 사정은 무슨 사정!

 5층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창문이 있다고 해도 어둠을 쫓아내기는 턱 없이 부족했다. 이 어둠 속에 이 던전의 보스, 밴시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나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지금 던전 꼭대기에는 밴시마저도 무서워한다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죠.”

 그건 뭔가 굉장히 비정상적이었다.

 그러니까, 던전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던전 보스다. 그런데 던전 보스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죠?”

 그 말에 나인은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퀘스트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아요?”

 아, 밴시를 성불시키라는 퀘스트…….

 “무리예요. 저 혼자라고요!”

 도와줄 파티가 있다면 모를까. 혼자서는 무리였다. 무엇보다 저 인간이 순순히 몸빵을 해줄 사람도 아니고 말이지.

 분명히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합니당. 착한 어른이 되어야 하죠? 자이하 군’ 이런 말이나 해댈 게 틀림없어. 그런데 난데없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제가 자이하 님의 힘이 되어 드릴게요.”

 “네?”

 그렇게 말하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져서는 ‘밴시 양! 밴시 양? 어디에 있습니까?’ 란 소리나 지르고 다니는 게 아닌가?

 얼마 안 있어서 밴시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 밴시의 비명! 충격으로 5초간 멍해집니다!

 뭔 놈의 비명만으로 3초도 아니고 5초간 멍해지게 할 수 있어? 이렇게 멀리 있는데?

 그런데 나인이 어둠 속에서 질질 기어 나오며 나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드는 게 아닌가? 그것도 양 귀에 피를 질질 흘린 채로.

 아니나 다를까 뭔가 거대한 것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져서.

 “저기 도, 도와주실 거죠?”

 라고 물으니 나인이 이렇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팔도 한 짝밖에 없는데다가 방금 공격으로 치명타까지 먹었답니다. 데헷.”

 ‘데헷’ 하지 말랬지…….

 “그럴 거면서 왜 부르신 거예요?”

 “자이하 님이라면 알아서 잘 하겠죠? 아하핫.”

 “…….”

 당신 지금 비쩍 골은 마법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거야. 저 아가씨 한 방이면 아이언 실드가 아니라 아이언 실드 할아버지가 와도 평타에 죽어.

 무리야. 무리라고!

 내가 도망갈 궁리부터 하자 나인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어딜 가십니까?”

 “일단 살고 봐야죠!”

 그 말에 나인이 배시시 웃는 게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전투력이 높으면 퀘스트도 쉽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랍니다.”

 “전 마법사라고요! 무리잖아요! 이런 것.”

 그 순간, 밴시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풀어헤친 검은색 머리카락이 허공에 일렁거렸다. 머리카락 속에 보이는 눈동자가 기괴하게 빛났다.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나인이 말했다.

 “게임에서의 특권을 누려요.”

 “그, 그게 뭔데요?”

 “어떤 결말이 나와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의 망막을 통해 내 얼굴을 보았다. 붉은 눈 속에 있는 나는 부질없는 겁쟁이였다. 밴시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공격을 하려다가 문득 퀘스트와 함께 오카리나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꺼내서 입에 물자 밴시는 행동을 멈추었다.

 ‘아, 연주할 줄 모르는데. 어떡하지?’

 부는 악기라고는 리코더와 단소가 전부인 나였다. 오카리나 같은 걸 불어봤을 턱이 없잖은가. 내가 그렇게 주저주저하자, 밴시의 머리카락이 다시 부풀어 올랐다.

 ‘이런, 화난 모양이다!’

 일단 급한 대로 아무 소리나 내봤다.

 비이―

 피아노로 치면 ‘도’에 해당된다. 이번에는 검지에 있는 구멍을 뗐다.

 이건 ‘레’다.

 나는 밴시의 눈치를 살폈다. 가만히 있는 걸 보니 뭔가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중지를 떼서 불어보고 약지를 떼서도 불어봤다.

 나중에는 구멍 두 개를 빼서 불어보고 두 개씩만 짚어서도 불어봤다.

 ― 오카리나 운지법을 익혔다!

 ― 오카리나를 감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의 오카리나]

 퀘스트 아이템

 북의 마녀, 클라레스가 죽은 딸을 생각하며 만든 오카리나. 분노한 영혼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영혼과 딸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음을 연주해야 한다.

 

 그 순간, 밴시가 크아앙! 하고 소리를 질렀다.

 ― 밴시가 오카리나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이 다음에 어떻게 하라고!”

 내 비명에 그가 소리를 질렀다.

 “연주해요. 연주!”

 “무슨 노래를요?”

 “퀘스트에 관련된 노래라고는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보니 그때 미친 할머니가 흥얼거리던 자장가가 있었다. 같은 멜로디가 느릿느릿하게 반복되는 덕분에 나라도 연주할 법했다. 하지만 절대음감도 아니고 음계를 모르고서야!

 그 순간, 그가 정확히 계이름을 부르며 음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 들었을 뿐인데, 당사자인 나도 기억이 애매한데 정확히 짚어내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캬앙―!

 밴시가 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나는 구르듯이 피하며 오카리나를 입에 물었다. 숨이 차올랐다. 나인의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나는 첫 음절을 눌렀다.

 푸우―

 놀랍게도 내가 운지법을 익히면서 불었던 음보다 더 맑은 음색이 퍼져 나왔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다시 우뚝 멈춰 섰다. 쉬운 음이지만 실수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내가 따라하기 쉽게 느릿느릿 계이름을 불렀다. 박자는 조금 늦더라도 실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르골처럼 여린 음색이 가늘게 떨렸다.

 마지막 음을 짚을 때까지 영원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다시 숨을 몰아쉴 때까지 그녀는 우두커니 서서는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마냥 무섭고 극악하고 악독한 귀신인 줄로만 알았는데, 저렇게 울고 있는 걸 보니 한없이 가련해 보였다.

 그녀는 더듬더듬 음색에 맞춰 짤막한 동요를 흥얼거렸다.

 

 별이 떨어지는 곳에 별사탕.

 아기여우는 사탕을 오독오독 씹었지.

 참 달고 맛있어.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녀의 목에 나 있는 큼지막한 상처를 발견했다. 문득 전에 만들었던 유령붕대가 생각났다.

 ‘한 대 치는 거 아닐까?’

 이렇게 크고 무서운 몬스터인데 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리라. 반투명한 붕대에는 내 손이 비쳐보였다.

 나는 나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는 멋대로 가사를 붙여서 자장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자이하 떨어지는 곳에 모모 군.

 모모 군은 자이하를 오독오독 씹었지.

 참 달고 맛있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우느라고 내가 다가온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게임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했지. 그게 인생에는 없는 게임만의 특권이라고.’

 이윽고 붕대를 꺼내자 그녀가 깜짝 놀라더니 으르르거렸다.

 나는 지팡이를 떨어뜨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는 붕대로 내 목을 감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슥―

 몸이 통과되어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붕대는 그녀의 어깨에 제대로 얹혀 있었다. 붕대를 통해 만져보니 촉감이 느껴졌다.

 유령인데도 어쩐지 따뜻했다.

 그녀의 목에 붕대를 감으려는 순간, 무언가가 머리를 후려쳤다.

 그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배드엔딩을 맞는구나 싶었다. 배드엔딩이라도 상관은 없었다. 그녀를 향해 비명을 질렀던 때보다 훨씬 후련했으니까.

 그런데 죽었다는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

 슬그머니 머리를 만져보니 상처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주변이 변해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긴 빨간색 카펫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사제로 보이는 사람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옆에는 그 미친 할머니가 서서 울고 있었고, 마을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뒤를 바라보니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울며 서 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여전히 상처가 나 있었다. 나는 그제야 밧줄 자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을 매 죽었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다는 사실을, 그것도 결혼식 날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는 걸까? 자살은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다가섰다.

 그녀는 계속해서 흐느꼈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손은 그녀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그래서 같이 걸어주기로 했다. 내가 팔을 내밀자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내 팔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앞을 향해 걸었다.

 걸어갈 때마다 그녀의 기억이 터진 둑처럼 흘러나왔다.

 태어났을 때, 엄마에게 대들었을 때. 마법을 처음 배웠을 때, 그리고 사랑하게 됐을 때. 그 사람이 집안의 보물들을 훔쳐서 다른 여자와 함께 도망갈 때 던진 비웃음. 지독한 배신감.

 그저 비명 같았던 목소리 사이로 그녀의 입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엄마.’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그녀의 목에서 상처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퀭한 뺨에는 다시 사과 빛 혈색이 돌았고 흰자위가 번득였던 눈동자에는 다시 검은자위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눈물을 그쳤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엉켰다. 할 말이 많았는데, 할 수 있는 말은 너무 적었다. 나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건넸다.

 “웃어요.”

 그녀가 웃었다. 그리고는 내 뺨에 키스를 건넸다.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도 울던 어머니도 꽃잎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환상이 흩어지며 던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밴시는 이제 예전의 밴시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의 반지를 빼서 건네주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만큼은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그녀의 몸이 그렇게 빛이 되어 흩어졌다.

 ―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증거로 노파에게 면사포를 돌려주면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나인이 내 어깨에 삐딱하게 기대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뭐가요?”

 내 말에 나인은 모르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요.”

 “한 게 뭐가 있다고요.”

 대단할 것 없었다. 그저 그녀와 함께 걸었을 뿐이니까. 그냥 상처가 아파보여서 그게 그저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도와준 것 뿐이었다.

 “누구든 죽이려고 했을 거예요.”

 나도 그랬다. 처음 나는 그녀와 싸워 이길 생각만 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나를 욕하고 때리던 미친 할머니에게 화를 냈다면 얻지 못할 퀘스트였다. 그리고 그녀를 공격했다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봉인된 언약의 반지]

 등급 : 특별

 북의 마녀가 딸에게 선물한 반지. 밴시가 된 후에도 그녀는 어머니를 잊지 못해 반지를 간직했다. 그녀는 당신에게 이 반지를 어머니에게 돌려주길 소망한다. 북의 마녀에게 반지를 돌려주면 봉인을 풀 수 있다.

 특수스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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