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판타지/SF
더스크 하울러
작가 : 태선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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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화
작성일 : 16-11-22     조회 : 717     추천 : 0     분량 : 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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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투명한 보석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냈다. 강한 마력이 봉인되어 있는 모양이다. 특별 등급, 나인은 희귀보다 한 단계 위라고 했다.

 나는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했던 퀘스트들은 하녀의 식칼을 모아오라던가, 20마리를 잡아 원한을 갚아달라는 등 전투에 관련된 퀘스트였다. 하지만, 이것만큼 무서웠던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만큼 뿌듯한 것도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성직자가 우르르 와서 억지로 성불시킨다면 퀘스트가 완료되었을까요?”

 “완료되었겠죠. 하지만 진짜 시나리오는 몰랐을 거예요. 어쩌면 이 반지도 못 받았을 거고요.”

 나는 물끄러미 반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조금 불쌍하네요.”

 나인이 쿡쿡 웃었다.

 “그건, 자이하 님이 약해 빠졌으니까 퀘스트를 풀 수 있었던 거랍니다.”

 윽, 약해 빠지다니.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라도 파티원들은 잔뜩 끌고 왔다면 다짜고짜 밴시를 공격했을 것 같았다. 밴시는 몬스터니까. 나인이 말했다.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게임방식이 있으니까요. 자이하 님에게는 자이하 님의 방법, 그리고 다른 이에게는 다른 이의 방식이 있겠죠.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 순간,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이 우르르 울리기 시작했다. 굉음에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다. 탑이 부서질 것처럼 요동쳤다.

 “이, 이게 무슨 일이죠?”

 그 순간, 나인의 눈동자가 전구가 켜지듯 불이 올랐다.

 “말했잖습니까. 이 탑에는 천하의 밴시도 무서워할 존재가 있다고요.”

 “그런 게, 대체 왜?”

 나인은 찢어진 로브를 벗어던졌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에는 살을 꿰맨 자국이 가득했다.

 “유영화가.”

 “네?”

 “유영화가 라운.”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반짝 스파크가 튀었다. 라운, 유영화가. 지금 내가 받은 퀘스트, 소녀의 영혼을 붙잡아 두고 있다는 악랄한 마법사!

 탑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 탑도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나인은 표범처럼 몸을 튕겼다. 나 역시 비틀거리는 벽을 짚으며 나선 회랑을 따라 올라갔다.

 

 

 11.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공포 중 하나가 지진이라고 한다.

 언제라도 굳건히 받치고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의 뿌리 같은 게 순식간에 뽑히는 기분.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탑을 올라갔다. 나인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 탑이 무너졌다가는 나도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전에 바닥이 흔들린다는 느낌만으로도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드디어 꼭대기가 보였다.

 나인의 등이 보였다. 그의 가슴께를 감고 있던 붕대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탑 가운데에는 강한 바람이 뿜어 나왔다.

 나인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제 오셨나요?”

 “좀 천천히 좀 가자고요.”

 나인의 넓은 등 뒤로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너무 놀라 멍한 눈으로 그것을 좇았다.

 “이, 이게 뭐죠?”

 “마법사가 해서는 안 될 짓.”

 홀 가운데에는 마법사가 서 있었다. 남자의 두 눈은 붕대로 감겨 있었는데 붕대가 풀어지며 나인과 같은 붉은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팔을 완전히 덮은 소매는 찢어질 듯 거칠게 나부꼈다. 이렇게 바람이 강한데, 그의 모자는 머리에 붙어 있는 것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남자 주변에는 빛으로 된 마법진이 몇 겹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룬문자, 한자, 라틴어, 그리고 알 수 없는 언어들. 기하학으로 보이는 도형들, 그리고 숫자들, 사대 천사의 이름.

 풋내기 마법사는 범접도 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우가 내리쳤다.

 라운, 유영화가 라운.

 음침하고 음험한 중년 변태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가 풍겨내는 기운은 남달랐다.

 ‘이런 자가 대체 왜 그런 소녀를…….’

 대체 어떤 집착이 죽음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붙잡을 정도란 말인가. 남자는 나인을 보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유계(有界)의 개가 납셨군. 그래 이번에는 어느 신의 청탁을 받고 왔나? 라엔? 엘룬? 아니면 마법의 테티스인가?”

 나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시치미를 뚝 뗐다.

 “개라뇨. 그냥 지나가는 과객입니다만.”

 “그래, 네놈이 이곳에 왔다는 건. 내가 시도하고 있는 마법이 진짜라는 거겠지.”

 마력의 폭풍우는 강해졌다. 힘에 밀려 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자 그가 말했다.

 “어린 마법사로군. 떠나라. 상관없는 자의 목숨을 빼앗고 싶지 않다.”

 그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나는 용기내서 소리쳤다.

 “안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그녀를 해방시켜 주세요!”

 놀랍게도 그의 눈동자는 반가운 빛을 띠었다.

 “안나의 부탁이라고? 그녀를 만나고 온 겐가? 아이는, 그 아이는 대체 무슨 말을 하던가?”

 “자신을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죽었는데도 이승을 떠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다고요.”

 “오오, 그런, 그런 일이!”

 뭔가 잘못됐다.

 그는 진심으로 안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째서? 왜? 저 사람은 안나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일 텐데? 내 머릿속이 생각들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는 잠시 괴로워하더니 이내 결심했는지 주먹을 꽉 쥐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끝날 거다. 이 일만 끝낸다면 그 아이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내가 그를 향해 다가가며 소리쳤다.

 “대체 뭘 하려는…….”

 그때 나인이 날 막아섰다.

 “말했잖습니까. 마법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려 한다고요.”

 “그게 대체 뭔데요?”

 “시간을 되돌리는 것.”

 “네? 타임머신 같은 건가요?”

 “아뇨, 단 한 사람의 시간만 되돌리는 것. 인과율을 비틀어 죽은 자를 살리는 일.”

 그의 말에 움찔, 라운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그건 네크로맨서인…….”

 “전 시체만 일으키지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저 사람은 죽은 안나의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살았을 때로 만든다는 말. 그런데 사람 하나 살리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게 마법사의 최대 금기라고까지 말하는 건, 좀 지나친 게 아닐까? 내가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짓자 나인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이고, 마법은 대체 어떻게 만듭니까?”

 “그거야 몸 안에 있는 마력과 공기의 마나를 끌어 모은 후 주문을 통해…….”

 “그러면 시간을 되돌리는 어마어마한 마법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마나를 빨아들여야 할 것 같나요?”

 그 순간,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룬 아카데미에서 얻은 ‘속성마법의 기초’.

 스킬을 익히기 위해 억지로 읽은 책이었다. 거기서는 세상을 이루는 게 마나라고 했다. 마법사는 그 마나를 축적하고 결합해서 마법을 만든다고 했다.

 시간을 돌리는 마법, 솔직히 얼마나 거대한 마법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최소한 1서클부터 6서클 마법에서는 시간에 관해서는 언급도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나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적어도 일 년은 언데드도 못 사는 폐허가 될 겁니다.”

 “그, 근처에 마을이 있잖아요! 그런 짓을 했다가는 모두…….”

 내 절규에 남자의 얼굴이 더욱 고통스럽게 구겨졌다. 그는 눈을 꽉 감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인이 말했다.

 “틀렸어요. 저 남자에게는 딸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좋으니까.”

 “……딸? 딸이요?”

 내 말에 나인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대체 딸이란 걸 어떻게 안 거죠?”

 내 안의 퍼즐이 맞춰졌다. 이 남자는 소녀를 탐하는 변태가 아니었다. 딸을 살리고 싶은 아버지일 뿐이지. 그렇기에 그녀에게 집착했다. 아버지니까. 죽음에서도 놔주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니까.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그녀가 살길 바라니까!

 그제야 이 남자의 모든 행동이 이해갔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무시한 채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점점 다가갔다. 남자는 나를 바라보더니 팔을 휘둘렀다.

 터엉!

 닿지도 않았는데 내 몸이 저절로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그는 애써 무심하게 말했다.

 “안나에게 선택 받은 놈이라 해도, 이번까지다. 다음번에는 봐주지 않겠다.”

 “왜 그러는 거죠? 당신은 착한 사람이잖아요!”

 “미안하군. 나는 착한 놈은 아니야.”

 거짓말, 그렇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왜!

 나는 신음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막아, 막아야 해요.”

 나인이 나를 붙잡았다.

 “제 무덤을 그렇게 파고 싶으세요?”

 비아냥거리는 것도 유분수지. 그는 이 상황에서까지 냉소적이었다.

 “어떻게든 해야죠!”

 “하아, 자이하 님은 스탯 아까운 줄도 모르는군요. 내버려뒀다가는 귀한 스탯이 남아나질 않겠어요.”

 아니, 그 전에 여기의 보스는 밴시잖아! 대체 왜 NPC가 멋대로 행동하는 건데. 그리고 이 모습은 정말로 진짜로 심장이 뛰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마음을 가진…….

 “……사람 같아.”

 “자이하 군. 말했잖습니까. 이 게임은 운영이 막장이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팔을 쭉 뻗었다. 그 순간, 그의 붉은색 눈동자가 폭발할 것처럼 빛났다.

 “타이틀 장착, 카오스 로드.”

 검은색 불꽃이 발밑에서 피어났다. 그리고는 망토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이윽고 잘려나간 어깨에 검은색 불꽃이 모여들었다.

 그것은 거대한 팔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시크릿 타이틀 장착, 카오스 데스.”

 그 순간 드래곤의 뼈 투구가 나타나 그의 얼굴 절반을 덮었다. 뼈 투구 사이로 진홍빛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는 주머니에서 암흑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보석을 꺼내들었다.

 “펜릴의 심장을 제물로 바쳐 소환, 헤르메스의 창.”

 펜릴, 하늘을 찢고 땅을 가른다는 신화의 마수(魔獸), 이름만 들어도 엄청나게 대단한 놈일 것 같았다.

 심장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순간, 전에 그의 팔을 집어 삼켰던 것과 똑같은 어둠이 열리더니 보석을 집어 삼켰다. 바닥에는 알 수 없는 불길한 문양이 떠올랐다.

 ― 계약은 성립되었다.

 짐승의 울음 같은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닥에는 흰 뱀과 검은 뱀을 나선 모양으로 꼰 모양의 창이 튀어나왔다.

 라운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네크로맨서가 창까지 쓸 줄은 몰랐군.”

 나인이 웃었다.

 “마법사에게 마법으로 상대하는 것만큼 미친 짓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구한 게 헤르메스의 창인가?”

 나인은 발끝으로 창을 퉁 튕기더니 한 손으로 그 거대한 창을 휘둘러 어깨에 걸쳤다. 나는 그제야 상황이 몹시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만둬요!”

 나인이 웃었다.

 “말했잖습니까.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게임방식이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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