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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크 하울러
작가 : 태선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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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화
작성일 : 16-11-23     조회 : 712     추천 : 0     분량 : 5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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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그의 몸이 단숨에 그를 향해 달려갔다. 라운은 손을 뻗어 내게 날렸던 그 힘을 나인에게 날렸다. 나인은 거대한 헤르메스의 창을 무슨 레이피어 다루듯 휘둘렀다.

 카앙!

 힘과 힘이 맞부딪쳤다.

 놀랍게도 마법사의 마력과 나인의 창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나인이 기합을 지르자 창은 점점 마법사의 마력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 과연 헤르메스. 모든 마법을 뚫는다는 건가. 하지만, 하지만!”

 그가 주문을 빠르게 외웠다. 얼마나 빠른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법은 제대로 완성되고 있는 걸 보니 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인지 알 것 같았다.

 “지옥의 불꽃.”

 그 순간, 보라색 불꽃이 나인의 몸에 달라붙었다. 지옥의 불꽃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초고온의 화염이 그를 태웠다. 라운이 말했다.

 “네놈이 죽을 때까지 이 불꽃은 모든 걸 태울 것이다.”

 바닥이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용암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매캐한 유황냄새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나는 로브로 코를 가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나인의 몸을 감싸던 검은색 불꽃이 보라색 불꽃을 덮어 버렸다.

 “이거이거, 죽을 뻔했네요.”

 나인은 여전히 뼈 투구 아래서 미소 짓고 있었다. 라운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대, 대체.”

 그 순간, 라운의 몸에 그가 소환한 보라색 지옥의 불꽃이 타올랐다.

 “크아아아!”

 그가 주문을 외우며 마법을 해제하려 하자 나인은 헤르메스의 창으로 힘껏 그의 가슴을 찔렀다. 살을 찢고 뼈를 뚫는 소리와 함께 라운의 몸이 창에 밀려 벽에 박혔다.

 “커헉, 컥, 커헉!”

 라운은 마른기침을 뱉으며 비명을 질렀다. 나인이 아이처럼 웃었다.

 “안 되죠. 안 되죠. 금기를 어기려 하지 않았습니까. 죽은 애는 불쌍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산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야죠.”

 “딸, 안나……. 내 아이야.”

 그는 극심한 고통에 이제는 환각마저 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그를 향해 달려갔다.

 “제발 그만해요!”

 나는 나인을 밀쳤다. 헤르메스의 창이 느슨해지려는 찰나, 라운을 따라 흐르던 마나가 난데없이 거꾸로 회전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나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 리치.”

 리치, 고전게임에서는 대마법사가 죽음을 피해 마왕에게 영혼을 팔아 스스로 언데드가 된다고 한다.

 언제나 게임 마지막 보스로나 출연하는 무서운 녀석이었다. 설마 그 리치?

 나인은 나를 밀치더니 헤르메스의 창을 꽉 틀어쥐었다. 그리고는 그의 심장을 향해 꽉 눌렀다.

 “안 되잖습니까. 멋대로 리치가 되려 하다니요. 그쯤 되면 마을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재앙이라고요. 왜요. 윤회를 벗어나 마계라도 열려고요?”

 우드득!

 라운은 신음을 내뱉었다. 사람 뼈 부러지는 소리가 리얼하게 들렸다. 나는 미성년자 모드로 맞추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랬다면 무식하게 커다란 창이 가슴을 파고들어가 뼈째로 뭉개는 광경을 보지 않아도 됐으니까. 나는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딸을 살리고 싶다잖아요!”

 나인의 팔에 힘줄이 뱀처럼 돋아났다.

 “그래서 마을을 덮치는 건 괜찮다고요?”

 으득, 우드득!

 “그게 꼭 이런 방법이어야 합니까. 좀 더…….”

 나인의 눈이 붉게 빛났다.

 “몇 번이나 말했잖습니까.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게임방식이 있다고.”

 창이 살을 뚫고 지나갔다. 헤르메스의 뱀들은 그의 몸 안에서 회전하던 마나서클마저 관통해 버렸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도와달라는 걸까?

 나는 엉겁결에 손을 함께 뻗었다. 그의 손과 내 손 끝이 맞닿았다. 죽어가는 인간의 손 끝은 놀랍도록 따뜻했다.

 으드드드득!

 들락날락 여리게 호흡하던 그의 숨결이 완전히 침묵했다.

 그의 몸이 보랏빛 불꽃과 함께 흩어졌다. 자그마한 수첩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걸 집어 드는 순간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안나에게 보상을 받으세요.

 “…….”

 그 순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분노했다.

 

 

 12.

 

 내가 어떻게 화를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적어도 욕설을 내뱉거나, 놈을 향해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 언뜻, 놈의 턱을 주먹으로 후려친 부분은 기억났다. 피가 났었는데, 검은색이었다.

 리치 직전까지 간 대마법사도 막아내는 놈이 어째서인지 내 주먹에는 순순히 맞아주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나는 이렇게 화를 내는구나.’

 그동안 한 번도 화낸 적이 없냐고 한다면, 글쎄……. 초등학교 이후로 제대로 화낸 적이 없었다. 화낼 만한 일이 딱히 없기도 했고, 남한테 화를 내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참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하아.”

 층계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삐그덕거렸다. 죄책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살릴 수 있었다. 대화를 하고 마음만 통한다면 어쩌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아.’

 단순히 NPC로만 느꼈다면 이런 죄책감도 없어졌을까.

 아래를 내려다보니 순간 멀미가 올라왔다. 그때 아래에서 삐그덕 삐그덕하고,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나는 숨을 죽인 채 난간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지난번에 모리 님과 이야기했던 GM이었다. 남자의 코트가 바람에 펄럭였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인 님은 일은 잘 처리했나보죠?”

 “일이요?”

 내 말에 남자는 말실수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대답 대신 내 어깨를 툭 치고는 나를 지나쳐 올라갔다.

 얼마나 더 내려갔을까.

 문득, 나는 나인이 왜 안나가 라운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해졌다. 거기다가, 일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올라가는 GM. 그리고 일? 무슨 일이라는 걸까.

 이건 꼭 마치 나인이 GM에게 사주라도 받은 것 같지 않은가?

 결국 망설이다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계단을 밟았다. 그 순간, 아래층에서 계단이 삑삑, 신음을 내질렀다.

 난간으로 슬며시 보니 빛의 진영 사람들이었다. 무기 하나씩 꼬나들고 오는 폼이 나인이 떴다는 제보를 받고 왔다는 그 정예들인 모양이다.

 “으악, 벌써?”

 나는 죽어라고 층계를 밟아 올라갔다.

 

 

 13.

 

 워낙 체력이 적다 보니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찼다.

 결국 꼭대기에 도착하니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꼭대기 층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끼익.

 녹슨 경첩 소리가 났다.

 내심 걸릴 것 같아 마음이 뜨끔해졌다. 그러나 나인과 GM은 대화에 푹 빠져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전처럼 깔끔한 솜씨이군요.”

 나인이 대답했다.

 “레인스톤 님, 그러기에 NPC에게 감정을 주는 건, GM이 GM질 하는 걸 포기한다는 뜻이라니까요. 통제가 안 되잖습니까. 까딱했으면 마을 하나 날릴 뻔했다고요.”

 “덕분에 유저 수는 늘었지요.”

 “이놈의 막장 게임.”

 나인이 투덜거리자 GM 레인스톤이 말했다.

 “그리 욕하셔도 저는 그냥 월급쟁이랍니다. 불만은 높으신 분들께 직접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그리고?”

 GM 레인스톤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안경을 치켜올렸다.

 “게임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주제에.”

 지독한 독설에 나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 인간을 쓸 정도로 무능한 GM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서로를 아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한, 사이 나쁜 이웃 같았다. 옆에 있는 건 지독하게 싫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그런 사이.

 나인은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어쨌거나 이번 의뢰, 완수한 것으로 알겠습니당.”

 둔한 나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흔들리는 탑 위를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평형감각으로 제 로브자락에 제가 걸려 넘어졌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됐다.

 그가 유저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히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져갈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길드에 이 말을 하고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상황을 보니 비밀로 하고 있는 일인 모양.

 ‘그래서 처음부터 길드 자금을 핑계로?’

 왜 그렇게까지 더러운 일을 맡아서? 무슨 대가를 받고?

 그때, 등 뒤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내게 소리 지르자 나는 엉겁결에 후드를 벗었다.

 “인간이군.”

 “초보 유저 같은데요?”

 그들은 그렇게까지 말하고는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나인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인파 속에 파묻혀 그를 향해 다가갔다.

 GM 레인스톤이 엿 먹어보라는 듯 빙긋 웃더니 벽 속으로 사라졌다.

 진한 담배연기만이 그가 여기 있었다는 걸 말해 줬다.

 나인은 상큼하게 미소 지으며 남은 팔을 들었다.

 “안녕하십니까아.”

 “잘도 말하는군. 빌어먹을 썅년.”

 “어라라, 군대 다녀온 대한민국 건아에게 년이 뭡니까. 년이?”

 사방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이 들렸다. 역시나 원한을 달고 사는 모양이었다.

 문득 그의 어깨 아래로 진득하게 흘러내린 핏방울을 발견했다. 한쪽 팔은 잃었다. 밴시의 비명도 직격으로 맞았다. 거기다가 방금 대마법사와 전투까지 치른 몸이었다.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

 나인은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신호하면 뛰세요.’

 그 순간, 나인은 기합을 지르며 바닥을 후려쳤다.

 “지금!”

 강한 마력으로 후려치자 결국 탑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갔다.

 그는 번지점프를 하듯 양팔을 벌리고 바람을 만끽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바닥에 닿는 순간 내 몸은 사기그릇처럼 산산조각 날 게 분명했다.

 그 순간 나인이 소리쳤다.

 “덤보!”

 왜 아기코끼리는 부르고 자빠졌나 싶었는데, 난데없이 공중에서 뿌우!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더, 덤보가 날고 있어.”

 10톤은 족히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본 맘모스가 귀를 날개처럼 펼치고 날아오르는 장면은 개그를 떠나서 기괴하기까지 했다.

 덤보는 코로 나를 낚아채더니 나인을 등에 태웠다.

 그리고는 행글라이더처럼 활강하는 게 아닌가?

 나인은 한쪽 팔로 히틀러 같은 포즈를 취하더니 헛소리를 지껄였다.

 “이게 바로 사나이의 로망, 3단 변신!”

 변신 버전이 여기에 더 있다는 거냐!

 뿌우우―

 덤보는 기분이 좋은지 크게 울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3단 변신 본 맘모스를 보며 경탄을…… 하기는커녕 공포로 몸을 떨었다.

 “엄마, 저거 무서워.”

 “가족들을 지하실로 대피시켜! 여기는 내가 지키마!”

 “으아앙, 으아아앙. 아아빠아아아. 으허어어엉.”

 당연하게도 모리 님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들고 있던 롱소드를 힘껏 집어던졌다.

 물론, 기술 10점, 예술 10점의 완벽한 직선을 그리며 롱소드는 덤보의 양쪽 귀를 관통했다. 그리고 덤보는…… 추락했다.

 “덤보오오오오!”

 나인의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모리 님이 차갑게 말했다.

 “목표 포획 성공. 추격대 전원 철수!”

 그 말이 사형선고처럼 내 머릿속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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