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사야지존
작가 : 나민채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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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화
작성일 : 16-11-22     조회 : 657     추천 : 0     분량 : 7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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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당신 정말 전화기를 모르는 거냐?”

 “전화기? 그게 뭐지? 크크크.”

 즉살마의 웃음은 괴기스러웠다. 평소 날카로운 눈과 쭉 뻗은 수염이 위엄을 발한다면, 웃을 때는 그 위엄이 이상하게 돌변하여 괴기스럽게 보였다.

 “그 미친년에겐 수백 번 설명해줘야 알아듣더군. 네놈은 수천 번 설명해야 알아듣겠어? 단순하게 말해주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거지.”

 백호영의 중국말은 뜻만 그럭저럭 알아들을 정도였다. 즉살마는 그의 중국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뒤 뜻이 전혀 맞지 않는 괴상한 말이 되어버리니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라…… 천음전밀이라도 말하는 것이냐?”

 천음전밀! 백호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상당히 반가운 표정이었다.

 “오! 네놈은 아는가보군. 전화기를 천음전밀이라고 하나보지? 그래, 떼놈들은 말도 참 어렵게 하더군. 아무튼 그거 어디 있지?”

 정말 어수룩한 중국말이었다. 즉살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크크. 말버릇이 고약해. 크크크크. 과연 내 제자답군.”

 “씹! 이 미친놈! 남 말버릇 고약하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대답이나 하라고! 그거 어디 있지?”

 백호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다. 이러다가 심장이 뛰쳐나오고 혈관이 폭죽처럼 터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제자야, 뭔가 잘못 알고 있나보구나. 케케. 어디 있는 게 아니라. 그건 단지 전설일 뿐이지. 그 정도의 전음을 사용할 수 있는 고수는 아직 중원에 나타나지 않았지.”

 뭣! 백호영은 주먹을 휘두를 뻔했다. 도저히 짜증 나서 대화를 못해먹겠다. 때문에 이 미친 노인하고 대화를 하기 싫다는 것이다.

 “전화기가 전설이라고? 정말 미친놈은 원시인이나 마찬가지군. 크하하하!”

 그가 대소를 터트렸다. 마른침이 입 밖으로 튈 정도였다.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어젖히자 즉살마가 그의 다리를 살며시 건드렸다. 순간 백호영은 엄청난 충격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부아를 못 참고 즉살마에게 주먹을 날려버렸다. 예상된 일이지만 즉살마는 가볍게 웃으며 그의 주먹을 공중에서 받았다. 백호영은 꼼짝할 수가 없었고 단지 입만 자유로웠다.

 “이거 놔! 놔! 더러운 개자식!”

 마음 같아선 한 번 죽도록 패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미친 노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백호영은 현실을 부정하듯 왼쪽 주먹까지 날려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즉살마는 제자의 두 주먹을 붙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표정이 매우 심각했다.

 ‘내 제자가 완전히 삼류잡배로 변해버렸군. 말투와 표정과 무공까지. 말투는 갑자기 고쳐지는 게 아니니 차분히 바꿔야겠지. 크크. 무공은 당장 내일부터 가르쳐야겠어. 그 암기마저 없다면 정말 맞아죽기 십상이군.’

 제자의 손을 놓아주었다. 백호영은 씩씩거리며 연신 콧바람을 내뿜었다. 그의 주먹엔 어느새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는 분하다는 듯 즉살마를 노려보며 벌떡 일어섰다. 우뚝 선 그의 눈엔 마기가 가득했고, 손엔 살기가 무성했으며, 발엔 귀기가 스며 득실거렸다. 그의 얼굴이 흉귀(兇鬼)와 같이 변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은 다 죽여 버릴 수도 있지.”

 그는 오토잭나이프를 뽑으며 동시에 발을 들었다. 쉬잉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휘둘려 찬 그의 발은 제법 위력적이었다. 독일에서 활동할 때 하체단련 운동을 조금 했었다. 그의 다리가 즉살마의 귀밑을 향해 날아들었다.

 “미친놈!”

 기분이 더러울 땐 이용 도구고 뭐고 보이지도 않는다!

 탁

 즉살마가 맞는 소리는 아니었다. 다시 붙잡힌 백호영의 다리.

 ‘정말 맞아죽기 십상이구나! 크크크.’

 단호한 표정을 지은 즉살마는 백호영의 다리를 땅으로 내리꽂았다. 백호영은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오토잭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만 하거라!”

 내력이 실린 사자후! 백호영은 오토잭나이프를 더욱 꽉 움켜쥐며 늙은이를 노려보았다. 고막이 터질 듯했다.

 ‘역시 내 제자군. 평범한 무인이라면 벌써 도망가고도 남았을 테지. 크크크. 오호, 무기 또한 놓치지 않았군. 오호, 저 눈! 정말 더러운 고양이 새끼 같군. 파육정묘검법에 천부적인 자질을 지녔어.’

 “역시 내 제자구나. 제자야!”

 즉살마는 크게 웃으며 백호영의 반대편 어깨도 짓눌렀다. 백호영은 발버둥치며 은도를 휘둘렀지만 손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성질 급한 그는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더 이상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 미친 노인네! 지금 뭐 하는 거지?’

 백호영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고 싶었지만 불가했다. 몸이 돌처럼 완전히 굳어버린 것이다. 단지 눈만 껌벅거리고, 숨만 쉬고, 귀만 열려 있는 장난감 같았다.

 ‘제길! 저 미친놈은 날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건가! 이용 도구 주제에!’

 밤엔 충분히 죽일 수도 있었다. 미친 노인이 잠들었을 때 SIG P―305를 정수리에 갈겨버리기만 한다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죽을 수밖에 없다. 몇 번 시도하려 했지만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죽이기 싫었을 뿐.

 ‘오늘은 기필코 죽여 버려야지.’

 “제자야, 도저히 못 보겠구나. 크크크. 네가 중원말을 완벽히 배운 후에야 무공을 다시 되찾게 하려 했으나 더 이상 못 참겠구나. 눈을 감아라. 그리고 기억하거라.”

 즉살마의 음성은 진지했다.

 ‘뭘 기억하라는 거지?’

 백호영은 반발심에 눈을 더욱 부릅떴다. 그러나 곧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으로 밀려드는 한없이 온유한 기운 때문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이쪽이 선기혈이다.”

 몽롱한 와중에 미친 노인의 음성이 아득하게 들렸다. 가슴속엔 따뜻한 기운으로 넘쳤다. 명치 부분에서 맴도는 이 온유한 기운!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자궁혈을 지나 옥당혈이다.”

 명치에 머물러 있던 기운이 마치 물처럼 밑으로 흘러내려갔다. 백호영은 온몸이 나른해졌다. 씩씩거리던 거친 숨소리도 잠든 아기처럼 쌔근쌔근했다. 따뜻한 기운과 함께 마음마저 부드럽게 흐르는 듯했다.

 “잔중혈과 중정혈을 지나 구미혈이다.”

 ‘구미혈…… 좋구나.’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까지 녹아내려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백호영의 혈맥은 이미 구십여 일 전에 뚫어놓았다. 구십 일이 지난 지금 뚫린 혈맥은 생기를 맘껏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혈맥이 뚫린 그에게 인위적으로 운기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는 완전히 내기와 일체되어가고 있었다.

 “거궐혈을 지나 유문혈이다.”

 본시 하나였던 따뜻한 기운이 두 개로 나뉘어 배꼽 윗부분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합쳐졌다. 순간 몸이 불에 달군 듯 뜨거워졌다. 백호영은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몸속에 느껴지는 신기한 기운들에 호기심이 일었다.

 “량문혈을 지나 중완혈이다.”

 그 기운이 정신을 쏙 빼놓았다. 온몸의 피로가 설탕처럼 달콤하게 녹아들었다. 몸속의 모든 불순물이 완전히 정화되는 듯했다.

 “음교혈과 기해혈을 지나 중극혈이다.”

 기운이 배꼽 밑으로 내려왔다.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하반신이 나른해졌다. 정신은 온통 그 기운에 실려 있었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도 없고, 단지 이 기운만 있다!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가!

 “역(易).”

 짧은 소리와 함께 배꼽 아랫부분에 머물러 있던 기운이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몽롱했던 정신이 새하얗게 맑아졌다.

 “크크.”

 예전에 이 미친 노인이 해 준 마사지와 비슷했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이미 혈맥이 뚫린 상태라 혈맥을 뚫을 당시 느껴졌던 강한 고통은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이건 뭐지?”

 독일과 한국에서 많은 미인들과 잠자리를 할 때도 지금보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잠자리 같은 단순무식한 일시적 쾌락이 아니라 이것은 순수한 정신적 쾌락이었다. 마음속 저 밑대궁까지 뿌듯하고 따뜻했다.

 “운기라고 하는 것이지. 생기를 혈도에 따라 운기시키는 것이다. 크크크.”

 “좋군.”

 백호영은 오늘밤에 미친 노인을 죽여 버리겠다고 한 다짐을 까마득히 잊었다. 몸속에 흐르는 물 같은 괴상한 기운. 분명 피도 아닐 텐데 왜 이리 온유하단 말인가!

 “생기?”

 “크크. 제자야, 정파 놈들에게 당해서 완전히 잊어먹었구나. 운기까지 잊어먹다니.”

 즉살마의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갔다. 정파인들에 대한 복수심이 다시 거세게 일었다.

 “정파 놈들! 다 죽여 버릴 것이다.”

 즉살마는 살심 어린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놈의 미친 노인. 이젠 정말 완전히 돌아버렸군.’

 백호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즉살마가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오늘은 운기를 한 것만으로 됐다. 내일부터 시작하지. 크크크.”

 “뭘 시작한다는 거냐?”

 “잃어버린 무공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너 정도의 무골과 자질이면 파육정묘검법을 완공할 수도 있겠지.”

 “그 하늘로 뛰어오르고 검이 수백 개로 보이는 거?”

 “크크. 그건 잊지 않았군.”

 ‘아! 아!’

 즉살마에게 표정을 들킬세라 백호영은 얼굴을 다리 사이로 파묻었다. 그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눈은 뱀의째진 눈동자처럼 음흉했고, 입꼬리는 얄팍하게 올라가 뱀의 혀처럼 날름거렸다. 몸을 웅크린 채 흥분에 잠긴 그는 흡사 고양이 같았다.

 민담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회합을 가진다고 한다. 집고양이, 야생고양이 가릴 것 없이 온갖 고양이들이 한곳에 모여 회의를 한다. 이번 달엔 어떤 인간을 죽이지?

 몇몇 고양이는 자신의 주인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몇몇은 어떤 재수 없는 꼬마 놈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명을 다한 늙은이를 죽여야 한다고도 한다.

 지금 백호영의 모습이 꼭 놈들과 같았다. 누구를 죽일 것인지 음모를 꾸미는 고양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이제야 이용도구 노릇을 제대로 하려는 모양이군.’

 사람을 죽인 고양이를 식인살묘(食人殺猫)라 일컫는다.

 第6章 천 년시공(千年時空)의 검무

 

 

 

 

 

 ‘이것인가!’

 미친 노인이 기억하라 했던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은 백호영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의 일부가 아닌 것 같은, 실존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

 “쿠쿡.”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기어이 웃고야 말았다. 눈이 번쩍 떠지며 몸속에 느껴지던 그것도 사라져버렸다. 백호영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어젖혔다. 나머지 한 손으론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유는 없고 그냥 웃긴다. 그것뿐이다. 몸속에서 나도 모르는 어떤 것이 돌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웃긴다.

 “크큭! 큭.”

 겨우 진정한 백호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하단전에 존재하는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부용설리가 멀리서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낭군님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성질이 불 같은 분인데!

 “훗!”

 또다시 느껴진다. 몸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것! 어제 노인이 기억하라고 했던 대로 그것을 끌어내렸다. 명치 부분부터 하단전까지. 그리고 다시 끌어올렸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졌다. 눈이 부시도록 투명하면서도 따뜻한 이스라엘의 사해(死海)를 맨몸으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무중력의 감각! 아지랑이가 뭉클거리는 따뜻한 봄날에 호젓한 오솔길을 홀로 걷는 듯한 자유로운 느낌!

 눈을 떴을 땐 이미 두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백호영은 왼쪽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험한 일이 많아 흠집이 더러 나긴 하였지만 역시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아직까지 찬연한 금광을 발했다. 초침은 멎었으나 희한하게 시간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7시 35분. 크크크. 크크.”

 다시 웃었다. 두 시간이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도 웃기는지 배를 움켜쥐며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어깨가 달싹달싹할 때마다 목에 걸린 순금 십자가 목거리가 출렁거렸다. 앞머리도 찰랑찰랑 바람을 탔다. 길게 내려온 앞머리 사이로 부용설리의 전신을 훑었다.

 “낭군님,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나요?”

 한없이 부드러운 어투! 날이 가면 갈수록 그녀는 더욱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큭. 웃기지. 두 시간 동안 꼼짝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지.”

 낭군님의 중원말은 참으로 어설프다. 부용설리는 보이지 않게 슬며시 웃었다.

 “그래요?”

 웃음기를 억지로 지운 채 물었다.

 “크크크. 그래. 여자랑 자는 것보다 더 재미있더라고. 아니, 여자랑 자는 게 더 재미있나? 모르겠어. 아하하!”

 백호영은 참았던 웃음보를 시원스레 터트리며 그녀를 지나쳤다. 그가 향한 곳은 가옥 뒤쪽의 널찍한 공터였다. 원래는 나무가 무성했던 곳인데 미친 노인이 수련하면서 모두 잘라내 버렸다고 한다. 정말 광폭한 늙은이지.

 쉭쉭 슈슉

 벌써 광폭한 움직임을 시작한 터였다. 즉살마의 몸동작 하나하나엔 살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흥분이 되었다. 백호영은 즐겨 앉던 바위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바라보았다.

 웅크렸다가 미친 듯 달려들기도 하고, 씹어 먹을 듯 마구 난자하기도 하고. 미친 노인이 쓰는 검법은 미친 고양이의 몸동작 그 자체였다. 노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검법은 살묘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백호영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즉살마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한번의 손짓에 거목이 잘려져 나갔고, 그의 신형이 허공에서 다시 한 번 번쩍하더니 거목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졌다. 거목은 그렇게 지푸라기처럼 맥없이 흩어져 내렸다.

 “크크. 역시 미친놈이야.”

 어느새 웃음소리마저 즉살마를 닮아버린 백호영. 제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즉살마가 고개를 팩 돌렸다. 그의 표정이 만월보다도 밝아졌다. 백호영에게 달려드는 속도는 비호같았다.

 “제자야, 왔구나!”

 순식간에 코앞에 내려서자 백호영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가르쳐줘야지. 방금 네놈이 했던 거.”

 “아! 크크. 당연하고말고.”

 즉살마는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제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백호영은 인형처럼 그에게 이끌려 공터 한가운데로 순간이동을 하였다.

 “야 이 노인네야! 사람 좀 끌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냐! 내가 짐짝이냐?”

 백호영이 주먹을 불끈 쥔 채 즉살마를 노려보았다. 이 미친 노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성질을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눈에 독기를 품고 달려들었지만 매번 헛방이었다.

 “장난은 그만 하거라. 제자야.”

 ‘쳇!’

 주먹을 날리지도 않았는데 즉살마가 그의 눈을 보고 이미 혈을 짚어버린 것이다. 어깨에 통증이 밀려오자 백호영은 이를 악물었다.

 “이것 좀 풀어봐, 이 미친놈아!”

 “크크크. 그놈 성질 참!”

 즉살마가 어깻죽지를 다시 한 번 건드리자 그의 신음이 멎었다. 백호영은 어깨를 빙글빙글 돌려보며 즉살마를 노려보았다.

 “또 한 번 이러면 정말 죽여 버릴 거다.”

 즉살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제자의 더러워진 입놀림까지 정순해지길 바란다면 과한 욕심이겠지. 이 모든 것은 바로 그 정파 놈들 책임이다. 즉살마의 눈도 백호영처럼 살기를 띠고 있었다.

 “어제 기억하라고 한 것을 기억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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