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은거기인
작가 : 건아성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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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작성일 : 16-11-16     조회 : 460     추천 : 0     분량 : 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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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

 파앗!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창천이 몸을 움직인 것은 꼬박 삼 일이 지나서였다.

 실룩실룩 움직이던 근육이 굳어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머릿속을 괴롭히던 생각이 하나 줄어든 것이다.

 “그것 참.”

 소요자는 조그마한 원 안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창천을 보며 길게 자란 수염을 쓰다듬었다.

 틀에 묶여 정립된 초식이 틀을 뚫고 나왔다.

 손발은 더욱더 빨라지고 초식은 물 흐르듯 정갈해졌다.

 툭하고 튕겨 나온 것처럼 보인 주먹이 어느새 팔꿈치가 되어 닿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빨라…… 너무 빨라.”

 소요자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창천을 바라보다가 세워 놓았던 창을 들었다.

 저 아이라면 닿을 수 있을까?

 이상보다 높은 경지를 볼 수 있을까?

 조바심이 일었다.

 창천의 뛰어남에 오히려 소요자가 조바심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허허…… 나도 참, 아직까지 욕심이 식지 않았구나.”

 두근거리는 가슴을 내리누르며 소요자는 오랜만에 가부좌를 틀어 명상에 잠겼다.

 조바심 내지 않아도 그는 알아서 길을 찾을 것이다.

 천재.

 하늘이 내려준 인재는 언제고 하늘에 닿는 법이다.

 

 타악!

 “……!”

 쭉 내뻗은 주먹에 놀란 숨이 튀어나왔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내지른 주먹에서 요상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벼락처럼 몸 안을 흐르는 호흡이 내뻗은 정권을 꿰뚫었다.

 심장이 폭발하듯 세차게 뛸 만큼 고양된 느낌.

 창천은 벼락에 타 버린 듯 바스스 흩어지는 옷깃을 쳐다보며 자리에 멈춰 섰다.

 알 수는 없지만 몸 안의 무언가가 변했다.

 그런 창천을 바라보며 소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때가 되었구나.’

 타앙!

 쇳덩이가 울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산자락을 울렸다.

 “쥐어라.”

 “……?”

 멍하게 서 있던 창천의 앞으로 커다란 장창이 던져졌다.

 <이것을 쥐라는 말씀이십니까?>

 “권은 뻗을 만큼 뻗지 않았느냐. 내 얼굴에 얼마나 많은 주먹을 뻗을 참이냐. 그 정도면 되었다. 사용하지 않던 근육과 호흡을 그만큼 끌어냈으면 이제 그만 권은 되었어.”

 <아! 하지만 방금 전에 무엇인가가…… 조금만 더 해 보면 무언가…….>

 “이놈! 그것은 아직 네가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우연을 잡으려 용쓰지 마라. 우연은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버럭 일갈을 내지르는 소요자의 모습에 창천은 작게 고개를 떨궜다.

 “너는 천재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천재일 게야. 하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게야. 우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나를 믿는다면 그만 권을 접어라. 지금은 때가 아니야.”

 <예……, 그리 하겠습니다.>

 창천은 딱 부러지게 말하는 소요자의 모습을 보며, 움켜쥔 주먹을 풀었다.

 마음속 깊이 욕심이 일었지만, 스승을 믿는다.

 그가 옳다면 옳은 것이다.

 창천에게 있어 스승은 믿음을 배반할 사람이 아니다.

 꾸욱.

 몸을 웅크려 바닥에 떨어진 장창을 쥐었다.

 “주먹과 창은 다르지 않다. 궁리해라. 그 창을 어찌 쓸 지, 어떻게 활용할 지 궁리하고 또 궁리해라.”

 <궁리…….>

 소요자는 장창을 쥐고 선 창천을 바라보며 휙 몸을 돌렸다.

 태어나 처음 쥐는 창일진대 쩌릿쩌릿한 예기가 벌써부터 창부리에서 춤을 춘다.

 이대로 창만을 쥐어 준다면 신창(神槍)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파앗!

 소요자는 곧게 창을 내지르는 창천을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권성이나 신창에 머무를 인물이 아니다.

 무존(武尊)이다.

 그는 능히 무존에 이를 인재다.제4장 은거기인

 

 

 

 

 

 천하제일이라 불리던 검파가 무너진 이후, 무림은 둘로 나뉘었다.

 정도 무림의 기둥이라는 도왕, 검왕, 신권, 신창이 이끄는 무림맹과 마도의 하늘이라는 불리는 도귀, 검귀, 혈권, 마창이 이끄는 마천루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이들은 파벌을 나눈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벌였다.

 사소한 일들이 피를 불렀으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건지 모를 싸움은 서로의 사활을 건 무림대전으로 바뀌었다.

 그들의 알력이 온 무림에 닿아, 곧 터질 것 같은 폭탄처럼 무림을 달궈 놓은 탓이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서로를 향해 겨눠진 칼끝은 그렇게 수년 간 내려질 줄을 몰랐다.

 

 “몰아!”

 “놓치면 안 돼!”

 살기 실린 목소리가 산자락을 울렸다.

 피가 진득하게 묻은 도검을 쥔 사내들…….

 모용혜미는 빠르게 몰려드는 사내들을 돌아보며 미친 듯 산을 탔다.

 ‘잡히면…….’

 상상하기조차 몸서리쳐지는 일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일까?

 모용혜미는 자신만만하게 검을 꺼내들던 머저리들을 떠올리며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바보들 탓이다.

 ‘스스로를 잴 줄 모르는 탓에 남조차 재지 못하는 얼간이들…….’

 그렇게나 말렸거늘, 기어코 일을 터트렸다.

 “잡아!”

 귓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오금이 저려왔다.

 더는 뒤를 돌아볼 여력도 없다.

 곱게 차려 입었던 옷은 쫓기는 동안 넝마가 되었고 천금보다 비싼 영약으로 키운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대로 잡히는 것일까?

 모용혜미는 점점 좁혀지는 사내들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이를 악물었다.

 자진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잡혀서는 안 된다.

 산을 휘둘러보는 모용혜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음……?’

 산중턱에 올랐을까?

 모용혜미는 한순간 자욱해지는 안개에 걸음을 멈췄다.

 진(陣)이다.

 그것도 완벽에 가깝게 펼쳐진 운무진이다.

 “……누가 이런 것을!”

 “저기 있다, 잡아라!”

 “……!”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모용혜미는 운무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운무진에 대한 파훼법은 이미 오래 전에 배워 알고 있다.

 말을 익히기가 무섭게 배웠던 기관진식이 아니던가?

 모용혜미는 운무진으로 들어서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냉큼 걸음을 옮겼다.

 운무진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저들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다.

 사악.

 생문(生門)을 향해 나아가는 모용혜미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으음?”

 겹겹이 쳐 놓은 운무진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렇게나 깊게,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소요자는 시끄러워진 운무진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무림인이다.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소요자가 쳐 놓은 울타리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게 누구신가?”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운무진.

 모용혜미는 구름을 가르고 걸어 나온 듯한 소요자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 태연한 모습과 걸어 나온 방향으로 보건데, 그가 이 진을 만든 장본인인 듯싶었다.

 “소녀 모용세가의 장녀 모용혜미라 하옵니다. 간악한 무리들에 쫓겨 이렇게 자리를 찾게 되었으니, 부디 내치지 말아 주세요.”

 “간악한 무리라…….”

 소요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말하는 모용혜미를 보며 휙 손을 휘저었다.

 쩌렁!

 산자락이 울리고 한순간 자욱했던 안개가 흩어지며 텅 빈 공터가 자리를 드러냈다.

 극도의 내력!

 모용혜미는 몸이 진탕되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무, 무슨 일이?”

 한순간 안개구름이 비산하며 사라지자 길을 헤매던 사내들이 반사적으로 도검을 치켜들었다.

 몸이 울릴 만큼의 파동이다.

 위험하다.

 검을 쥔 손이, 온몸의 오감이 극도로 흥분해 위험신호를 쏘아 보내고 있다.

 “보아하니 안개에 가려 글을 읽지 못한 모양인데, 이만들 내려가 주지 않겠는가?”

 “무슨……!”

 소요자는 바락 소리치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손가락으로 공터 위 바위를 가리켰다.

 

 출입불가(出入不可)!

 

 “아!”

 일검에 새겨진 바위 위의 글을 보는 순간 몸이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들은 딱딱하게 굳은 몸을 움직이려 안간힘을 썼다.

 “이곳은 출입을 불가한 곳이네. 들어오는 것은 누구도 허락지 않네.”

 “하, 하지만……!”

 소요자는 무리의 선두에 선 사내를 흘깃 바라보고는 슥 뒤돌아섰다.

 “이곳은 들어올 수 없다 했네. 돌아가게. 이 땅은 자네들이 밟을 만한 곳이 아니야.”

 “크윽!”

 사술인가?

 사내들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려고 이를 악물었다.

 꽉 깨문 이빨 위로 피가 흐르고 이마에는 혈관이 불끈 섰다.

 안간힘을 다해도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고수다.

 말 한 마디, 글 한 구절로도 심금을 옥죌 만큼의 엄청난 고수!

 사내들은 바르르 떨리는 몸을 풀어 걸음을 옮기는 것을 포기했다.

 “소저도 마찬가지일세. 돌아가게. 이곳은 누구에게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네.”

 “노, 노 선배님! 소녀를 내치지 말아주세요. 저들은 간악한 자들이에요!”

 “간악한 자들?”

 소요자는 간절한 모용혜미의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아직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네. 들어오지 말라 해서 들어오지 않고 있고. 그런 그들이 무엇이 간악한가? 내게는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야.”

 “그, 그런…… 그들은 살인을 밥 먹듯 하는 마도인들이라고요! 마도인! 방금 전만 해도 저와 제 동료들을…….”

 “그럼 묻겠는데, 소저와 그 일행들은 저들의 동료를 죽이지 않았는가? 지금껏 한 번도 살인을 해 보지 않았는가?”

 “그, 그것은…….”

 모용혜미는 무심한 얼굴로 묻고 있는 소요자의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급박한 상황에 동아줄을 잡았다고 생각했거늘, 그것이 지푸라기였다.

 척 보아도 알 수 있다.

 눈앞의 그는 구해 줄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다.

 “찾았다!”

 그 자리에 멈춰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몸이 굳어 버린 모용혜미와 사내들 뒤로 청건을 맨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무림맹.

 무림맹에서 모용혜미를 찾기 위해 파견된 정예들이었다.

 “……청룡단주께서 이런 촌구석까지 어인 일로 납시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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