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잠에서 깨어난 창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틀에 넣은 검이 굳었다.
아직 두드려야 할 망치질이 수천 번이 남았다. 한데 칼날을 세우지도 않았는데 틀에 굳어진 검은 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슬쩍.
손을 뻗어 형틀에 굳은 검신을 집어 들었다.
묵빛으로 빛나는 검신은 매끄럽게 뻗어 예리한 예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손에 쥐는 것만으로 예광이 빛살처럼 쏟아진다.
명검, 명도들이 그러하던가?
창천은 쩌릿쩌릿하게 느껴지는 검의 예기에 흠칫 놀라 손에 쥔 검신을 놓칠 뻔했다.
『분명…… 날을 세운 적이 없는데…….』
검신을 훑는 창천의 얼굴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잠든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형틀에 넣어 굳은 만년한철은 완벽한 검신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긴 검신을 빙 두르며 비늘무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한 마리의 뱀과도 같은 기기묘묘한 형상.
창천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생한 뱀의 비늘을 쓸어 만져 보고는 감탄을 토해냈다.
쇠붙이가 이런 감촉을 가질 수도 있던가?
마치 비단결을 타고 흐르듯, 손끝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신의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만년한철이라 그런 것일까?
묵빛을 발하는 검신을 바라보며 창천은 쩍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었기에, 이리도 대단한 검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명검이다.
아니, 그런 말을 굳이 달 필요도 없다.
그저 놀랍기만 한 검이다.
타앙! 타앙―!
흐뭇한 얼굴로 창천은 다시 망치를 집어 들어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검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미리 만들어 놓은 검 자루를 꺼내 검신과 잇는 일, 그리고 검집을 다듬는 일 뿐이다.
기분 좋게 땀을 쓸어 닦는 창천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완성이 되었다고?”
소요자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창천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만년한철이 녹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검을 만들었다고?
꾀를 피운 것일까?
얼굴에 묻어나는 자신감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기교 없이 투박하게 채워진 검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좋은 검은 검집을 넘어서까지 예기를 발하는 법이다.
소요자는 한참을 말없이 창천의 검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기묘한 느낌이 드는 검이다.
예기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다.
검을 보는 것인지 검이 자신을 보는 것인지 모를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검집에 담긴 검이건만, 창천의 손에 쥐어진 검은 금방이라도 이빨을 세울 듯 으르릉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흐음……, 어디 검을 한 번 보여 줄 수 있겠느냐?”
묘한 기분에 소요자가 수염을 매만지며 물었다.
검에서 피어오르는 기묘한 감각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예, 물론입니다. 검을 보는 눈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만년한철이 부끄럽지 않을 검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사부님.』
창천은 결코 경솔한 아이가 아니다.
소요자는 자신 있게 말하는 창천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검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스릉!
검을 뽑아든 창천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날을 울리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뽑힌 검신 위로 줄기줄기 흐르는 묵광.
“허……!”
소요자는 검 위로 줄기줄기 쏟아지는 묵빛 광채에 감탄을 내뱉었다.
만년한철은 광이 없기로 유명한 광석이다.
때문에 만년한철로 만든 검은 수수한 서생의 검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런데 이 검은 다르다.
쭉 뻗은 검신에 흐르는 묵광에 눈이 부실 정도다.
매끄럽고 날렵한 검신 위로 날카롭게 이를 세운 칼날!
조심스레 검자루를 건네는 창천의 모습에 소요자는 놀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망치질도 제대로 익지 않은 그가 만든 검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럼 어디…….”
소요자는 고개 숙여 검을 건네는 창천을 보며 슬쩍 검자루를 잡아 쥐었다.
순간.
우웅, 검이 울음을 토해내며 울었다.
“……!”
검곡(劒哭)!
분명 검곡이다.
“허…… 이것이!”
소요자는 검자루를 제대로 쥐기도 전에 바닥에 틀어박히는 검을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검이 손을 피했다.
마치 제 주인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소요자의 손길을 피해 바닥으로 틀어박혔다.
푹!
소요자는 깊숙이 틀어박힌 검을 보며, 놀란 눈을 뜨고 있는 창천을 보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느냐?”
『그, 그것이…….』
바닥에 박혀 부르르 떨리는 검에 놀라기는 창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귀에도 들릴 만큼 커다란 검곡과 함께 검이 소요자의 손을 피했다.
소요자의 손이 닿기가 무섭게 몸을 떨어 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흠…….”
소요자는 바닥에 틀어박힌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검자루를 향해 다시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웅― 하는 검곡과 함께 검자루가 손을 피했다.
“허, 제 주인이 있다 이거구나, 이놈.”
소요자는 손을 피하는 검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면 오기를 부려서라도 검을 잡아 쥐었겠지만, 이미 지난 기억 속에 있는 일이다.
사람의 손을 타는 검이라니…….
오랜만에 든 옛 생각에 절로 웃음이 흘렀다.
“한 번 검을 쥐어보겠느냐?”
『아……! 예, 사부님.』
창천은 기분 좋게 웃는 소요자의 모습에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땅바닥에 틀어박힌 검을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별 놀람이 없는 듯한 모습이다.
검이 사람의 손을 피한다니…….
창천은 혹 소요자가 자신을 놀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심스레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윽.
창천의 손에 닿은 검이 부드럽게 바닥에서 뽑혀 다시금 아름다운 묵빛 검신을 드러냈다.
장검.
그 검신에서 풍겨 나오는 날의 아름다움은 보석보다 더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역시나 좋은 검이구나. 하하하. 그리 의심할 것 없다. 무엇이 그리 의심스러운 게냐. 내가 검 한 자루에 농을 칠 것 같아 보이느냐?”
『그것이…….』
“하하! 내 무엇을 위해 네게 농을 친단 말이냐. 검에게 물어 보거라. 내 농을 치고 있는 것인지.”
『…….』
창천은 웃으며 말하는 소요자의 말을 듣고는 다시 검을 보았다.
진정 검이 손을 피한 것일까?
참말로 모를 일이다.
“그런데 검신 위에 그 무늬는 무엇이냐? 생각했던 것보다 손재주가 좋은 모양이구나. 검집을 볼 때는 몰랐는데 말이야.”
『아,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잠시 눈을 떼었는데…… 그때 바람이 빠지며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빠졌다? 하하하! 그럴 리가. 그런 것으로 그런 무늬가 생긴다면 세상에 수많은 도검장들은 손을 놓아야 할 게야.”
소요자는 뒷머리를 긁적이는 창천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만든 창천도 아는 것이 없을 만큼 의문이 많은 검이지만, 생각보다 더욱 좋은 검이 나왔다.
길한 자에게는 길한 일이 생긴다고, 검에 대한 정성이 검에 닿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검에 넣을 이름은 정하였느냐?”
『묵룡(墨龍)이라고 지었습니다. 검신이 품고 있는 비늘과 날이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워 검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묵룡…… 묵룡이라……. 검에 꼭 맞는 좋은 이름이구나. 앞으로 너와 더불어 좋은 뜻을 펼칠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창천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소요자의 모습에 멋쩍게 웃었다.
묵룡.
손에 쥐어진 검이 기쁘다는 듯 울고 있었다.
제7장 행(行)
스릉!
검을 뽑자 쇳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드러난 묵빛 검신 위로 저릿저릿 쏟아져 나오는 예기가 흘렀다.
꾸욱.
창천은 장검을 움켜쥔 채 호흡을 멈췄다.
터질 듯 부푼 가슴을 펴고 가볍게 움켜쥔 검을 내리그었다.
사악.
바람이 검날에 갈라지며 몸을 타고 흘렀다.
마치 체외 호흡을 하듯.
창천은 갈라지는 바람을 맞으며 멈춘 호흡을 뱉었다.
『후우…….』
커다란 숨소리가 흐르며 내린 검이 다시금 정 자세로 올라섰다.
단순한 세로 베기가 그리도 힘든 것일까?
창천은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쓸어 닦으며 조용히 검을 내렸다.
정신을 집중해 검 끝을 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갈라지는 것을 보며, 몸을 스치는 바람에 날에 베인 바람의 상처를 가늠해 보았다.
일직선.
곧게 내려진 검날에 갈려진 바람의 상처는 푸근했다.
아이의 몸을 감싸안는 어미의 손길마냥 따스하고 푸근했다.
‘이게…… 아니야.’
창천은 일전에 몸을 스쳤던 도귀의 도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도는 달빛을 갈랐다.
달빛은 그의 칼날에 무참히 찢겨져 울었다.
서슬 퍼런 예기를 품고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의 귀곡성을 불렀다.
‘하지만 그 역시 푸근했지.’
내린 검을 흘깃 바라보고는 왼발을 한 걸음 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검자루를 고쳐 잡고는 창을 잡듯 가슴팍까지 끌어올렸다.
팡!
커다란 소리가 울리며 한순간 창천의 손에 쥐어진 검이 허공을 꿰뚫었다.
검을 내리그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반동이 인다.
창천은 꿰뚫려 사방으로 퍼져오르는 바람을 보며, 다시금 검을 거뒀다.
찌르기와 베기.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그것을 어떻게 한데 어우를 수 있을지 고민이 생겼다.
“어째서 검을 내리느냐?”
『아…….』
생각에 잠긴 사이, 소요자가 창천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베기와 찌르기를 어찌 합칠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베기와 찌르기를 합친다?”
창천은 되묻는 소요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의 외향을 따라 생각했다.
베기와 찌르기를 합치는 길.
소요자는 검을 쥔 창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어째서 둘을 합치려 하느냐? 서로 다른 것은 다르게 두면 되는 게 아니냐? 찌르기는 찌르기대로, 베기는 베기대로 두면 된다. 서로 다른 것을 억지로 엮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가 되어 검이 된 것이 아닙니까. 두 개가 하나가 되었을 때는 그만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한 무언가가 있다?”
소요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창천을 보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촤앙!
한순간 눈부신 검광이 사방으로 쏟아지며 신검이 울음을 토해냈다.
우우우웅―
빛을 가르고 빛을 꿰뚫을 검!
창천은 소요자의 손을 떠나 자유롭게 허공을 유영하는 검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검이 하늘을 난다.
아무런 도구도 없이 홀로 날아올라, 마치 물 만난 고기마냥 허공을 유영한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묻지 말고 궁리해 보거라. 찌르기와 베기, 그것을 합치는 것을 궁리하는 것보다 이와 같은 것을 궁리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그, 그렇지만…….』
“검에 맞춰 가려 하지 말고 생각에 검을 맞춰 보아라. 생각은 우주와 마찬가지로 무한하지 않느냐.”
『아!』
창천은 가볍게 손을 들어 검을 불러들이는 소요자를 바라보며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무한한 생각만큼이나 무한한 검이 있다는 것일까?
텅, 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리가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