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은거기인
작가 : 건아성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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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화
작성일 : 16-11-25     조회 : 438     추천 : 0     분량 : 6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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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권을 할 줄 아는가?”

 『자유롭게 움직일 정도는 합니다.』

 “그렇군. 그래서 흐트러짐이 없었군. 그럼, 검을 손이라 느끼는가?”

 『아직은…… 호흡을 함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닿으리라 생각합니다.』

 “천생 검사는 아닌 모양이군. 그렇다면 검은 들지 않는 것이 좋을걸세. 허명일지 모르나, 내 호와 이름은 신권이니 말이야.”

 사악.

 땅을 밟는 신권의 발이 낮아졌다.

 하얗게 날리던 숨조차 멈췄다.

 권 하나로 정도 무림을 평정한 신권이다.

 일찍이 호사가들은 그의 권 앞에서는 태산도 무너진다 하지 않았던가.

 창천은 한 번의 걸음만으로 주변의 경관을 깨끗이 지워낸 신권의 모습에 감탄했다.

 과연 정도 무림의 거성(巨星)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로 이어진 자세가 활시위처럼 힘을 당기고 있다.

 팡!

 부풀어오른 신권의 소매가 터져올랐다.

 시작의 서종이다.

 신권은 터져오른 소매의 모습에 빠르게 발을 밟았다.

 사악!

 늘어진 그림자가 지면을 할퀴며 달려나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잡을 수 없는 빠르기가 있다 했던가.

 창천은 순식간에 쇄도해 들어오는 신권을 바라보며 재빠르게 주먹을 찔러 넣었다.

 잡을 수는 없지만 예측은 할 수 있었다.

 신권은 가슴팍으로 날아드는 주먹에 슬쩍 손을 쳐올렸다.

 부웅―!

 손에 깃든 기운이 넓게 퍼지며 날아드는 창천의 주먹을 밀었다.

 주주죽―!

 청천이 두 줄기 긴 줄을 남기며 물러섰다.

 가벼이 휘두른 손짓이 항거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힘의 파도를 부른다.

 이미 반박귀진에 이른 내력.

 씩, 웃음 짓는 신권의 몸이 퉁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콰앙!

 폭음이 울리며 신권이 뛰어오른 땅 위로 깊게 족적이 파였다. 머리 위로 뜬 태양빛처럼, 일순간 뛰어오른 신권의 주먹이 빛 무리를 뿌렸다.

 콰과과과광―!

 한 방, 한 방 힘을 머금은 주먹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과연 발을 놀려 피할 수 있을까?

 창천은 쏟아지는 권의 비를 바라보며 으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파앙!

 이를 악물고 내지르는 주먹이 공기를 꿰뚫고 날았다. 무자홍의 검을 막아 내었던 검막처럼, 신권의 주먹에 대항해 터져 나오는 창천의 주먹이 허공을 휘감았다.

 쾅! 쾅! 쾅! 쾅! 쾅―!

 인간의 주먹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욱신.

 맞부딪친 창천의 주먹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주먹에 강철이라도 댄 것일까?

 창천은 맞부딪칠 때마다 튕겨져 나가는 주먹을 바로잡으며 턱을 바짝 당겼다.

 밀렸다.

 더는 내지르는 주먹으로 몸을 지킬 수가 없다.

 빠악!

 정확하게 얼굴을 후려치는 신권의 주먹에 창천의 몸이 부웅 날아올랐다.

 쿵!

 바닥에 떨어진 창천의 몸 위로 땅에 쌓여 있던 눈가루가 날아올랐다.

 “소싯적에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지금과 같았네. 양수(兩手)를 그리 자유롭게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굉장한 강권이로구먼.”

 그런 창천의 앞에 사뿐히 내려서는 신권은 벌겋게 달아오른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광이 깃들었는지, 창천의 주먹은 뜨거웠다.

 한 수, 한 수.

 검막처럼 촘촘하게 펼쳐진 주먹은 마치 빛을 머금은 화구 같았다.

 ‘공기를 달아오르게 만들만큼 뜨거운 화기라…….’

 신권은 쓰러진 창천을 쏘아보며 생각했다.

 과연 무엇이 그의 주먹을 뜨겁게 만든 것일까?

 창천의 권을 살피는 신권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

 한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던 창천이 몸을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한참을 누워 쉬었음에도 아직 세상이 흔들려 보였다.

 꽈악.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주먹을 다시금 말아 쥐었다.

 “더 할 수 있겠는가?”

 주먹을 말아 쥐는 창천의 모습에 신권이 물었다.

 『아직은…….』

 흐릿한 미소를 흘리며, 창천은 말아 쥔 주먹을 폈다. 꽉 쥐어지지 않는 주먹을 굳이 고집할 이유는 없다.

 “좋은 모습이군. 마치, 옛날의 그를 보는 것만 같아. 하지만 잊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자네를 우습게보고 있지 않아. 한 수 한 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이네.”

 신권은 자세를 다잡는 창천을 바라보며 바닥 위 돌을 툭, 차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손을 뻗어 차올린 돌 위로 손가락을 퉁겼다.

 따악―!

 퉁겨진 돌조각이 작게 바스라지며 창천을 향해 날카롭게 이빨을 세웠다.

 쇄엑!

 비도처럼 바람을 가르는 돌조각이 창천의 귓불을 스쳤다.

 핏.

 돌조각이 스쳐 지나간 귓불 위로 붉은 핏방울이 맺혀 흘렀다.

 두근!

 귓불에 맺혀 떨어지는 핏방울에 낮게 가라앉아 있던 심장이 요동쳤다.

 만일 그가 돌조각으로 심장이나 목을 노렸다면 피할 수 있었을까?

 귓불에 맺힌 핏방울을 닦아내며 휘휘 고개를 저었다.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 아닌가.

 톡톡 이마를 두드리자 충격에 흔들리던 세상이 바르게 섰다.

 『방금 전 그것을 무엇이라 합니까?』

 “탄지공이라 하던가? 하도 오랜만에 펼쳐보는 수라 내 이름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구먼.”

 『탄지공…….』

 창천은 뒷머리를 긁적이는 신권의 모습을 보더니 툭,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조각을 차올렸다. 그리고는 따악! 소리가 날 정도로 날아오른 돌멩이를 퉁겼다.

 퍼석!

 힘껏 퉁긴 돌멩이는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바스러지며 가루를 날렸다.

 “탄지공을 흉내내려 하는가?”

 『아닙니다. 그저 돌이 얼마나 단단한가 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내 목을 뚫을 수 있을까, 과연 내 머리를 부술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호오, 그래서 어떠한가? 뚫고 부술 수 있을 것 같은가?”

 창천은 궁금해 묻는 신권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신권의 주먹이 바위보다 약하지는 않을 테지요.』

 굳어진 몸을 푸는 창천의 몸이 날래게 움직였다.

 타악!

 디딤 발이 지면을 퉁겼다.

 순식간에 면전까지 쇄도한 걸음.

 창천은 달려온 다리를 그대로 들어올려 신권의 얼굴로 차올렸다.

 쇄엑―!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발에 힘이 실렸다.

 단 일 수에, 한 번의 호흡에 실린 빠름!

 신권은 턱끝으로 차올려지는 창천의 발을 슬쩍 피하며 권을 내질렀다.

 파앙!

 허공을 격하고 날아든 주먹이 기합을 내질렀다. 주먹 끝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이 예사 주먹이 아닌 듯싶었다.

 따악!

 주먹에 떠밀린 발이 방향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힘으로 버텨내기엔 창천이 뻗은 차기는 신권의 주먹에 미치지 못하는 듯싶었다.

 “허!”

 그때였다.

 주먹으로 발을 뿌리쳤다 생각한 순간, 눈에 보이지 않던 사각에서 창천의 주먹이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초식과 궤도를 넘은 기괴한 주먹!

 신권은 팽이처럼 회전해 주먹을 날리는 창천의 모습에 진각을 밟았다.

 쿠웅!

 진각을 밟은 발이 땅속 깊이 파묻히며 신권의 몸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내공을 돋워 몸의 무게를 늘린다는 천근추 수법이다.

 퍼억!

 사각을 파고든 주먹이 정확히 신권의 가슴을 때리며 커다란 소리를 울렸다.

 한 호흡이다.

 한 호흡에 달음질쳐 발차기부터 주먹까지 그 모든 것을 일 수에 뻗어냈다.

 촤좌좍!

 매서운 속도에 못 이긴 소맷자락이 찢겨져 나가며 불룩 솟아오른 창천의 팔 근육이 드러났다.

 “체외공(體外功)이 제법 단단하구먼. 요즘 사람들은 괄시하고 있는 것인데…… 허, 좋은 권을 보게 되는구먼.”

 일 권을 얻어맞은 신권이 창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의 권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일이다.

 “하지만…….”

 투웅!

 신권이 얻어맞은 가슴을 펴자 권을 질러 넣은 창천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갔다.

 반탄지기일까?

 아니, 호신강기다.

 힘껏 후려친 주먹을 흡착해 둔 모종의 기운!

 창천은 주륵 밀려난 걸음을 다잡으며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깊게 박힌 신권의 발이 솟아올랐다.

 쿠웅!

 신권은 발을 들더니 힘껏 내딛었다. 천근추의 수법으로 늘어난 몸의 무게가 거친 땅을 짓밟았다.

 바스스스.

 쿠웅, 울음을 토해내는 대지의 비명에 마른 나무가 몸을 떨었다. 대지에 박힌 돌멩이들이 맹렬하게 튀어올라 하늘을 가렸다.

 천원(天元) 탄지공(彈指功)!

 창천은 셀 수 없이 무수히 솟아오른 돌멩이들의 모습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매일 걸음 하던 공터 위로 이렇게나 많은 돌멩이들이 숨겨져 있었던가.

 피잉!

 귀를 울리는 따가운 소리와 함께 날아오른 돌멩이들이 신권의 손에 빗줄기처럼 날아들었다.

 따악!

 날아드는 돌멩이를 향해 날린 창천의 주먹이 힘에 부쳤는지 튕겨져 나왔다. 발로 차올려 바스러트렸던 돌멩이와는 격이 다른 힘이 느껴졌다.

 창천은 바르르 떨리는 주먹을 펴 장을 만든 후, 채찍처럼 휘둘렀다.

 짜자자작!

 따가운 소리가 울리며 돌멩이를 쳐내는 창천의 손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호흡을 돌려 두 손을 보호하고는 있지만, 일시적인 대안일 뿐이다. 격해지는 공격에 호흡은 흐트러지며 힘을 잃어가고 있다.

 으득!

 꽉 깨문 어금니가 갈리고, 휘두르는 두 손 위로 핏줄기가 터져 올랐다. 하늘을 가린 돌멩이들은 아직 반도 사라지지 않았건만, 휘두른 두 손은 벌써 넝마가 되어 버렸다.

 가슴을 찍어 누르는 압박감.

 창천은 돌멩이를 퉁기고 있는 신권의 모습에 짓눌려 마음이 물러서는 것을 느꼈다.

 이길 수 없다!

 상대할 수 없다!

 창천은 거대한 벽 앞에 선 듯했다.

 덜덜덜.

 패배를 예감하고 손이 떨릴 때였다.

 차앙!

 귓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허리춤에 매어둔 묵룡이 솟아올랐다.

 “이기어검!”

 스스로 드러낸 묵룡의 모습에 신권이 놀라 소리쳤다.

 묵빛 검신을 아우르는 푸른 빛줄기!

 창천의 숨결이 닿은 검이 파르르 떨며 그를 향해 날아드는 돌멩이들을 갈랐다.

 따다다다다당―!

 돌멩이를 가르는 검 끝으로 불꽃이 튀어올랐다.

 이기어검이라니…….

 신권은 빙글 날아 선 검에 아연실색했다. 그것은 손자뻘의 아이가 펼칠 수 있는 검술이 아니다.

 『하…….』

 놀란 것은 신권뿐만이 아니다.

 창천 역시 스스로 날아오른 검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우웅.

 울음을 토해내는 검을 쳐다보며 창천은 피로 물든 손을 뻗었다.

 사악―

 서늘한 기운이 손에 감겼다.

 “그, 그것이 무엇인가? 진정, 진정 이기어검인가?”

 창천은 놀란 얼굴을 한 신권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묻고 싶은 말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역시 알고 싶었다.

 『저 역시…… 어찌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검이 튀어올랐다고밖에는…….』

 “허! 검이 절로 튀어올랐다는 말인가?”

 창천은 더욱 놀라워 하는 신권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맹을 나오기 전에 자네가 가진 검이 상현의 일궁일도삼검일지 모른다는 소리를 내 듣긴 했네만……, 스스로 날아 올랐다라…… 허허…….”

 후두둑!

 하늘로 날아올랐던 돌멩이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천원 탄지공이 고작 명검에 가로막혀 떨어질 만한 무공이었던가.

 신권의 얼굴 가득 허탈한 미소가 맺혔다. 사실 창천의 주먹이 가슴을 때렸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졌다.

 너무 오랜 시간을 쉬어 버렸다. 주먹을 휘두른 일도, 초식을 고민한 일도 없다.

 신권이라는 이름도, 권치라는 말도 지금에 빗대어 본다면 모두 옛말일 뿐이다.

 “내 오늘 이곳에서 자네를 만나 내게 남은 모든 허명을 털어 버리고 가는구먼. 노부의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네. 오늘의 비무는 여기까지만 하세. 내 말년에 얻은 인연을 이리 다하고 싶지는 않구먼.”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입꼬리에 달린 쓴웃음을 지워낸 신권이 말했다.

 “일 년 후, 다시 노부와 손을 섞어 주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엉터리 비무가 아닌, 노부의 이름을 건 싸움을 자네와 치러 보고 싶네.”

 『이름을 건 싸움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창천은 고개 숙여 말하는 신권의 모습에 놀라 물었다. 무림에 대해 잘은 모르나, 그들이 이름에 갖는 자부심만큼은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세상 많은 이들이 이름을 위해 살고 또 죽지 않았는가.

 이름을 건 싸움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

 “자네는 알지 모르나, 나는 지금 이 싸움으로 많은 것을 얻고 잃었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싸움은 내가 처음부터 진 것과 다름이 없네. 한참 후배인 자네와 맞수로 싸운 것 자체가 그러해. 때문에 고마운 마음도, 서글픈 마음도 있네. 자네는 분명 내 황혼기에 만난 마지막 인연이야. 그러니, 나는 이 인연의 끊고 맺음이 분명했으면 좋겠네.”

 『그렇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신권께서 이름을 거실만큼 값진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아니, 그렇지 않네. 자네는 결코 작지 않은 사람이야.”

 『하지만…… 저는…….』

 창천은 고개를 가로 젓는 신권의 모습에 더는 뭐라 말하지 못했다.

 “일 년은 나만의 시간이 아니네. 자네는 그렇지 않은가? 그 검의 도움이 아닌, 자네의 의지로 검을 움직였던 간에, 나와 전력으로 맞부딪쳐 보고 싶은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

 『저는…….』

 가슴을 짓누르던 패배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보는 것조차 압도되었던 순간.

 손에 쥐어진 묵룡이 웅, 소리를 내어 울었다.

 “일 년 후에 다시 찾아오겠네. 그때는 서로 아쉬운 마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 아, 그리고 이것은 선물일세. 자네의 손가락은 너무 단단해.”

 휙.

 품고 있던 책 한 권을 던지고 돌아서는 신권의 눈이 빛났다.

 천원 탄지공.

 던져진 책자가 불어 오는 바람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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